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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20년 러너가 본 러닝 열풍… ‘기록’보다 ‘배려’가 시장을 지킨다

서울레이스·춘천 트레일런 잇단 비보… 러닝 열풍에 '시장 커진 만큼 책임도 커져'

김성호 테넌트뉴스 기자
20년 넘게 달려왔다. 처음 운동화 끈을 묶던 시절, 새벽 공원에서 마주치는 러너는 손에 꼽을 정도였다. 서로 눈인사를 건네면 그게 동지애였다. 요즘은 다르다. 주말 아침 한강변과 공원은 형형색색 러닝복을 입은 2030 러너들로 가득하다. 오래 달려온 사람으로서 이 풍경이 반갑지 않을 리 없다.

유통 전문 기자의 눈으로 봐도 러닝은 지금 가장 뜨거운 시장이다. 아웃도어·스포츠 브랜드는 물론 식품 기업까지 대회를 열거나 후원한다. 이달 9일 공주 일대에서 열린 ‘2026 빙그레 그란폰도’는 접수에 1만여 명이 몰려 정원 2000명이 약 1분 만에 찼다. 대회와 크루 활동은 러닝화와 의류, 용품 소비로 곧장 이어진다. 브랜드에게 러너는 가장 충성스러운 고객이다.

그런데 최근 마음이 무거운 소식이 잇따랐다. 지난 11일 ‘2026 서울달리기(서울레이스)’ 하프코스에서 20대 여성 러너가 결승선을 약 500m 남기고 쓰러져 끝내 숨졌다. 9월에는 한 아웃도어 브랜드가 춘천 검봉산 일대에서 연 트레일러닝 대회에서 40대 남성이 쓰러져 세상을 떠났다. 산속이라 구조대가 닿기까지 1시간 가까이 걸렸다. 결승선이 보일 때 한 번 더 속도를 올리고 싶은 마음, 나도 수없이 느껴봤기에 더 아프다.

대회 안전이 무너지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는 2021년 중국 간쑤성 바이인의 100km 산악 마라톤이 보여줬다. 악천후 경고에도 대회는 강행됐고, 우박과 얼음비, 강풍 속에서 참가자 172명 중 21명이 숨졌다. 공무원 27명이 징계를 받았고, 대회 기획자 7명은 징역 3~5년을 선고받았다. 대회 운영은 축제 기획이 아니라 생명을 맡는 일이라는 사실을 이보다 분명히 보여준 사례는 없다.

다만 오해는 없어야 한다. 대회 중 사망사고는 예전에도 있었고, 위험은 오히려 줄고 있다. 2025년 미국의학협회지(JAMA)에 실린 연구를 보면 2010~2023년 미국 마라톤·하프마라톤 참가자 약 2931만 명 중 대회 중 심정지는 10만 명당 0.6건으로 2000년대(0.54건)와 비슷했다. 심정지 사망은 10만 명당 0.39명에서 0.2명으로 절반 가까이 줄었다. 달리는 사람이 많아져 소식이 자주 들릴 뿐, 달리기가 더 위험해진 것은 아니다. 현장 응급 대응이 좋아진 덕분이다.

자율적인 매너 가이드라인을 지키며, 지역 사회와 상생하는 러닝 문화가 시장의 지속 성장을 이끄는 힘이 된다.

대회 밖에서는 다른 그늘이 보인다. 30~40명이 무리 지어 좁은 보도를 차지하고, 스피커로 음악을 크게 틀며 보행자에게 비키라고 외치는 ‘러닝 크루’의 모습이 방송과 커뮤니티를 타고 퍼진다. 20년 전 새벽 공원의 러너들은 보행자가 보이면 먼저 속도를 줄였다. 길은 함께 쓰는 공간이라는 것, 러너라면 누구나 아는 기본이었다. 그 기본이 흔들리자 ‘건강한 열풍’이던 러닝이 ‘민원 대상’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이 그늘은 고스란히 브랜드의 리스크가 된다. 이름을 건 대회에서 사고가 나거나 후원하는 크루가 민원의 중심에 서면 소비자 인식은 단숨에 등을 돌린다. 이미 일부 기업은 부정적 이슈를 걱정하며 러닝 마케팅을 줄이고 있다. 시장이 커져 매출과 이익이 늘어난 만큼 안전과 배려에 대한 책임도 커졌다는 사실을 브랜드가 먼저 받아들여야 한다. 올림픽 마라톤 금메달리스트 황영조 감독도 대회가 돈이 된다고 우후죽순 생겨나는 만큼 주최 측이 안전 준비에 더 공을 들여야 한다고 했다.

해법은 거창하지 않다. 주최 측은 기념품보다 결승선 주변 의료 인력과 자동심장충격기(AED), 산악·수상 구간의 구조 동선, 악천후 중단 기준을 먼저 챙겨야 한다. 러너는 대회 전 건강을 체크하고, 몸이 이상하다 싶으면 멈출 줄 알아야 한다. 달리기 황제 황 감독 말처럼 포기할 줄 아는 사람이 잘 뛰는 사람이다. 크루는 달릴 때 인원을 줄이고, 붐비지 않는 시간과 코스를 고르고, 보행자를 먼저 보내면 된다. 달리며 쓰레기를 줍는 ‘플로깅’처럼 동네와 함께하는 달리기라면 금상첨화다.

러닝은 술자리 중심의 모임 문화를 건강한 운동과 대화로 바꿔놓은, 보기 드물게 좋은 유행이다. 지역을 활성화시키고 지방을 알리는 홍보 역할을 톡톡히 한다. 20년을 달려온 러너로서, 그리고 시장을 지켜보는 기자로서 이 열풍이 거품으로 끝나지 않기를 바란다. 준비된 대회는 생명을 지키고, 배려하는 러너는 도시의 환영을 받는다. 브랜드와 지자체, 그리고 우리 러너가 함께 기본을 지킬 때 러닝은 오래 달리는 시장이 될 것이다. 내일 새벽에도 나는 운동화 끈을 묶는다. 조금 천천히, 옆 사람을 살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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