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1호선 종로5가역에서 내려 동대문종합시장 방향으로 이어지는 종로40가길 일대로 들어서면, 불과 몇 걸음 차이로 서로 다른 세 가지 냄새가 뒤섞여 코끝을 스친다. 구수하게 우려낸 닭 육수 향, 매콤한 양념 속에서 지글거리는 곱창의 불향, 그리고 알싸하면서도 달큰한 한약재 냄새. 좁은 여러 골목을 사이에 두고 ‘닭한마리 거리’와 ‘곱창거리’, ‘쌍화차 거리’가 나란히 자리 잡은 이곳은 전국에서도 보기 드문 ‘삼색(三色) 미식 골목’이다.
세 개의 개성 강한 먹거리 상권이 한 지역, 같은 골목 반경 안에 몰려 있어 한 끼, 한 잔, 한 그릇으로 서로 다른 세 가지 경험을 모두 누릴 수 있는 곳은 서울에서도 이곳이 유일하다시피 하다. 저녁 시간이 가까워지자 골목 전체가 인산인해를 이룬다.

낡은 점퍼 차림의 시장 상인부터 캐리어를 끌고 온 외국인 관광객, 인스타그램 인증샷을 남기려는 20~30대 연인들, 그리고 담소를 나누는 주름진 어르신들까지 세대와 국적을 뛰어넘는 손님들이 골목 곳곳에서 뒤섞인다. 가게마다 내걸린 붉은 간판과 김이 서린 유리문 너머로 삼삼오오 둘러앉은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새어 나오고, 골목 초입부터 이미 대기 줄이 길게 늘어서 있는 풍경도 낯설지 않다.
이 일대가 활기를 띠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 인근 평화시장과 종로 원단시장이 전성기를 구가하던 무렵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고된 노동에 시달리던 시장 상인과 공장 직공들, 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않던 월급쟁이들에게 이 골목은 값싸고 든든한 한 끼, 혹은 지친 몸을 녹여줄 국물과 차 한 잔을 내주던 곳이었다. 반세기 가까운 세월 동안 세 골목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서민들의 허기와 피로를 달래 왔고, 그 흔적은 지금도 낡은 간판과 손때 묻은 테이블 위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수십 년째 한자리를 지켜온 노포들 사이로 최근에는 대를 이어 가게를 물려받은 2·3대 젊은 사장님들도 하나둘 늘고 있다. 부모 세대의 손맛과 레시피는 그대로 물려받되, 메뉴판을 영어·중국어·일본어로 함께 표기하고 매장 SNS 계정을 직접 운영하는 등 달라진 손님층에 맞춰 운영 방식을 조금씩 손보는 모습도 눈에 띈다.
낡은 간판과 세련된 인스타그램 피드가 한 매장 안에서 자연스럽게 공존하는 셈이다. 세 골목 사이사이에는 연탄불에 구운 ‘불꼬지 백반’으로 40년 가까이 손님을 맞아온 ‘송정식당’ 같은 동네 노포들도 자리해, 삼색 골목의 두께를 한층 더한다.

◇ 양은냄비부터 철판, 옹기 잔까지… 골목마다 다른 색깔
먼저 닭한마리 거리의 핵심은 단연 ‘양은냄비’와 ‘투박함’이다.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찌그러진 양은냄비에 통닭 한 마리와 대파, 감자가 툭 던져지듯 담겨 나온다. 보글보글 끓기 시작하면 가위로 닭을 듬성듬성 잘라, 손님이 직접 간장·겨자·다대기(양념장)·양배추를 섞어 만든 특제 소스에 찍어 먹는다. 담백한 국물에 김치를 넣어 칼칼하게 즐기다가, 마지막에 쫀득한 생칼국수 사리를 넣어 마무리하는 것이 이 골목의 불문율이다.
1970년대 후반 문을 연 ‘진옥화할매원조닭한마리’와 1971년부터 3대째 자리를 지켜온 ‘원할매소문난원조닭한마리’를 비롯해 ‘명동닭한마리’, ‘진원조보신닭한마리’, 광장시장 노포의 손맛을 더한 ‘순희네빈대떡닭한마리’ 등이 저마다 다져온 육수 비법으로 손님들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다. 한 그릇에 여럿이 둘러앉아 나눠 먹는 특성상, 가족 단위 손님은 물론 단체로 몰려온 외국인 관광객들에게도 ‘한국식 회식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장소로 통한다.

골목을 따라 조금만 더 걸으면 매콤한 불향이 코를 자극하는 곱창 거리가 이어진다. 진가는 매장 입구마다 펼쳐지는 ‘철판 퍼포먼스’에서 나온다. 주문이 들어오는 즉시 사장님들은 대형 철판 위로 손질된 돼지 알곱창과 양배추·당면·깻잎, 특제 양념장을 수북이 쌓아 올려 센 불에 재빠르게 볶아낸다. 뒤집개가 철판을 긁는 쨍그랑 소리와 함께 하얀 연기가 피어오르면, 지나가던 손님들의 발길도 절로 멈춰 선다. 완성된 야채곱창은 원형 드럼통 테이블 위 철판으로 옮겨져 마지막 한 점까지 따뜻하게 즐길 수 있다.

시어머니의 뒤를 이어 2대째 자리를 지키는 ‘함남곱창’은 사과를 넣은 양념으로 잡내를 잡고 부드러운 식감을 내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고, 오랜 세월 손맛을 이어온 ‘더우리곱창’과 ‘동대문할머니곱창’ 역시 아낌없는 야채 인심과 깊은 양념 맛으로 골목의 명성을 지키고 있다.
세 번째 골목은 닭한마리 골목과 이어진 쌍화차 거리다. 찻집 문이 열릴 때마다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김과 함께 묵직한 약재 향이 골목 전체로 퍼져나간다. 오한을 쫓고 피로를 풀어주는 백작약·숙지황·황기·당귀 등 한약재에 계란 노른자를 동동 띄운 쌍화차 한 잔은 예나 지금이나 바쁜 현대인들에게 가성비 좋은 ‘액체 보양식’으로 통한다.

1967년 문을 연 인근 한의원이 오랜 시간 연구 끝에 특허 제조법으로 선보인 ‘더쌍화’(대표 김득수)를 비롯해, 저마다의 비법으로 진한 수제 쌍화탕을 달여내는 찻집들이 골목의 명맥을 잇고 있다.
깊은 옹기 잔에 담겨 나오는 쌍화탕 위에는 잣·대추·밤·은행 같은 고명이 가득 올라가고, 뜨거운 차를 음미한 뒤 고소한 노른자를 살짝 적셔 입에 넣으면 쌉싸름함과 고소함이 조화를 이루며 온몸으로 따뜻한 기운이 퍼진다. 매콤한 곱창이나 진한 닭 육수로 속을 채운 뒤, 디저트 삼아 쌍화차 한 잔으로 마무리하는 코스는 이 골목을 아는 단골들 사이에서만 통하는 ‘삼색 완주 코스’이기도 하다.

◇ 외국인 발길에 들썩이는 골목… ‘K-푸드 코스’로 자리매김
세 골목이 한데 몰려 있다는 지리적 특성은 최근 들어 이 일대를 한층 특별한 상권으로 키우고 있다. 특히 닭한마리 거리는 최근 외국인 관광객이 몰리면서 상권 자체가 눈에 띄게 활기를 띠고 있다. 각종 해외 여행 매거진과 SNS를 통해 입소문이 퍼지면서, 이제는 한국을 찾은 외국인들이 캐리어를 끌고 일부러 찾아오는 필수 코스로 자리 잡았다.
골목 곳곳에서 영어·중국어·일본어가 뒤섞여 들리고, 외국인 손님들로 대기 줄이 길게 늘어서는 모습도 낯설지 않다. 매장 앞에 놓인 대기 명단에는 한글 이름 사이사이로 로마자 이름이 함께 적혀 있고, 일부 매장은 영어·중국어 메뉴판을 따로 마련해 두기도 한다. 이런 분위기는 자연스레 옆 골목인 곱창거리와 쌍화차 거리로도 이어져, 닭한마리를 먹으러 왔다가 곱창 철판 볶음까지, 혹은 쌍화차 한 잔까지 곁들이는 ‘삼색 코스’를 즐기는 발길도 늘고 있다.

한 골목에서 세 가지 서로 다른 한국의 골목 음식 문화를 한 번에 체험할 수 있다는 점은, 개별 맛집 단위로 흩어져 있는 다른 지역 먹자골목과 이곳을 차별화하는 가장 큰 요인으로 꼽힌다. 유통·상업시설 업계에서는 이 일대를 ‘좁은 골목에서도 회전율이 유독 높은 상권’으로 꼽는다.
골목 폭이 좁고 매장 규모도 크지 않아 대형 프랜차이즈가 들어서기 어려운 대신, 오랜 세월 한자리를 지켜온 개인 점포들이 저마다의 간판과 조리법을 그대로 지켜온 것이 오히려 이 골목만의 정체성을 유지하는 배경이 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임대료 상승과 대형 상권 위주로 재편되는 최근 외식업 흐름 속에서도, 이곳이 여전히 ‘원조’와 ‘노포’라는 이름값으로 버티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과거 어두컴컴한 시장 골목의 노동자 식당·선술집·다방에 불과했던 이곳은 이제 세계인이 찾는 글로벌 핫플레이스로 탈바꿈했다. 2030세대에게는 찌그러진 양은냄비와 원형 철판, 앤티크한 옹기 잔이 주는 레트로 감성이 매력으로 다가가고, 해외 관광객들에게는 한국의 개성 넘치는 골목 외식 문화를 한자리에서 경험할 수 있는 K-푸드 탐방 코스로 사랑받고 있다. 최근 몇 년 새 ‘할매니얼’ 트렌드와 맞물려,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골목 자체가 하나의 콘텐츠로 재조명 받고 있는 것도 이 상권에는 호재로 작용하고 있다.
물가 상승과 대형 외식 브랜드의 공세 속에서도 종로5가 삼색 골목이 굳건한 이유는 반세기 가까이 쌓아온 손맛과 사람 냄새 나는 인심, 그리고 세 가지 색다른 경험을 한 골목 안에서 모두 누릴 수 있다는 독보적인 매력 덕분이다. 찌그러진 양은냄비가 팔팔 끓고, 철판이 쨍그랑거리고, 쌍화탕이 모락모락 김을 내뿜는 이 골목은 오늘도 내외국인 관광객들의 발길로 붐비며 서울의 정겨운 하루를 채워가고 있다.
이 골목이 반세기를 넘게 버텨온 힘은 결국 가게마다 다른 사연과 손맛에서 나온다. 종로5가 삼색 골목을 지켜오고 있는 다섯 곳, ‘원할매소문난원조닭한마리’와 ‘순희네빈대떡닭한마리’, ‘더우리곱창’, ‘송정식당’, ‘더쌍화(K-쌍화)’를 직접 찾아 그 이야기를 들어봤다.

◇ 1971년부터 이어온 닭한마리 한 상… ‘원할매소문난원조닭한마리’
동대문 닭한마리 골목에서 ‘원할매소문난원조닭한마리’는 안복순 사장 가족이 3대째 운영하고 있는 닭한마리 전문점이다. 안 사장의 어머니가 1971년 시작한 가게에 그가 18세 때부터 함께했고, 현재는 아들이 가업을 잇고 있다. 안 사장은 50년 가까이 같은 자리에서 장사를 이어왔다.
닭한마리의 시작에는 가족과 함께 먹던 음식에 대한 기억이 있다. 어린 시절 강원도 산골에서 생활했던 안 사장은 자갈이나 모래를 걷어내는 일을 하면 밀가루를 배급받던 시절, 직접 키운 닭과 밀가루를 활용해 가족이 함께 음식을 만들어 먹었다고 회상했다. 당시 먹던 음식이 지금의 닭한마리로 이어졌다는 설명이다. 안 사장은 손님들로부터 이곳의 음식이 이북식 또는 시골에서 먹던 음식과 닮았다는 이야기도 듣는다고 말했다.

안 사장이 처음 장사를 시작했을 당시 이 골목의 닭요리 전문점은 두 곳 정도였지만 현재는 아홉 곳까지 늘었다. 안 사장은 ‘닭한마리 칼국수’라는 이름을 사용하기 시작한 곳도 자신들이라고 설명했다. 오랜 기간 한자리에서 영업하며 국내 방송에 여러 차례 소개됐고, 일본 매체에서도 취재를 위해 찾아와 잡지에 실리기도 했다. 안 사장은 현재 외국인 손님이 전체 고객의 약 30~40%를 차지한다고 설명했다.
오랜 시간 지켜온 맛의 기본은 상차림에 오르는 음식을 모두 직접 만드는 데 있다. 육수를 직접 끓이고 김치도 옛 방식 그대로 매장에서 담근다. 이곳의 김치는 젓갈을 넣지 않고 소금과 마늘을 사용해 깔끔한 맛이 특징이다. 닭과 곁들이는 소스 역시 오랜 시간 연구해 만든 수제 소스를 사용한다. 채소에 겨자를 두른 뒤 특제 소스를 넣어 버무려 닭과 함께 먹는 방식이다. 닭을 먹은 뒤에는 칼국수를 넣고, 마지막에 밥을 추가해 볶음밥까지 먹으면 한 끼 든든한 식사가 된다.

수십 년 동안 같은 음식을 만들어왔지만 안 사장은 맛에 대한 연구를 멈춰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매장을 늘리기보다 자신이 직접 장사할 수 있는 곳에서 음식과 손님을 꾸준히 챙기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그는 “한 가지 음식이라도 쉽게 생각하면 안 된다”며 좋은 재료로 맛있는 음식을 내는 것은 기본이고, 손님들의 맛에 대한 기준이 높아지는 만큼 계속 연구하며 손님의 입맛을 맞춰야 한다고 말했다.
반평생 넘게 가게를 지켜온 그에게 장사는 이미 일상의 일부가 됐다. 안 사장은 이제는 일을 하는 것이 몸에 배어 오히려 일을 해야 몸이 편하다고 말할 정도로 오랜 시간을 이곳에 쏟아왔다. 그 시간 동안 쌓인 단골손님과 지금의 맛을 지키며 계속 장사를 이어가고 싶다고 했다.

안 사장은 자신의 가게뿐 아니라 닭한마리 골목 전체가 함께 잘되는 것도 중요하다고 본다. 한 가게가 알려지면 이를 통해 주변 가게도 함께 알려지고, 다른 가게가 잘되면 다시 자신의 가게에도 손님이 찾아오는 만큼 결국 골목에서 함께 장사하며 살아가는 관계라는 생각이다. 그는 “잘되는 골목은 여러 집이 함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닭한마리 칼국수를 모르는 한국인에게 외국인 손님이 음식을 소개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안 사장에게 닭한마리는 ‘같이 먹는 음식’이다. 그는 경기가 어려워지면서 여러 사람이 한자리에 모여 식사하는 일이 줄어든 점을 아쉬워했다. 어려웠던 어린 시절 한 냄비를 가운데 두고 닭을 끓여 식구들과 나눠 먹었던 음식인 만큼, 사람들이 다시 함께 둘러앉아 음식을 먹으며 정을 나눴으면 좋겠다는 것이 그의 바람이다.

◇ ‘순희네 빈대떡 닭한마리’, 광장시장의 결을 품은 한 상
동대문 닭한마리 골목 한편에는 광장시장의 결을 함께 즐길 수 있는 매장이 자리한다. ‘순희네 빈대떡 닭한마리(사장 추재성)’다. 이곳을 이끄는 추재성 사장은 광장시장 대표 빈대떡 맛집 ‘순희네’를 일궈온 6남매 집안의 일원으로, 남대문에서는 순희네 빈대떡을, 동대문에서는 닭한마리를 이어오고 있다. 광장시장에서 걸어 5분 남짓, 두 상권의 매력이 자연스레 포개지는 자리인 셈이다.
문을 연 지는 3년 남짓한 신생 매장이지만, 뿌리에 밴 순희네의 내공만큼은 골목 어느 노포에도 밀리지 않는다. 이 매장의 진짜 무기는 다른 닭한마리집에서 좀처럼 만나기 어려운 상차림에 있다. 뜨끈한 닭한마리에 순희네만의 비법으로 부쳐낸 바삭한 빈대떡, 여기에 싱싱한 육회나 탕탕이까지 곁들이는 한 상은 광장시장 계열이기에 가능한 조합이다.

빈대떡에 육회까지 한 상에 올리는 구성은 여느 닭한마리집에서는 엄두 내기 어려운, 순희네이기에 가능한 조합이다. 덕분에 국내 손님은 물론 일본·대만·동남아에서 찾아온 관광객까지 남녀노소 누구나 K-푸드의 진가를 체감하는 대목이다.
즐기는 방식도 손님 결에 맞춘다. 점심에는 닭한마리 한 그릇으로 단출하게 배를 채우고, 저녁에는 A·B 세트로 상을 푸짐하게 펼쳐 주류를 곁들이기 좋다. 닭은 반 마리 단위로도 주문할 수 있어, 혼자 가볍게 들르든 여럿이 배부르게 먹든 원하는 만큼 맞춰 먹을 수 있다. 닭 두 마리를 시켜도 6만 원대에 그칠 만큼 가격대 역시 합리적이다.

맛의 중심에는 직접 우려낸 육수가 있다. 엄나무를 오래 달여 기본 베이스로 삼고, 삼계탕처럼 은은한 삼 향을 입혔다. 안 해본 음식이라 자리를 잡기까지 꼬박 1년을 시행착오에 매달렸고, 지금은 다녀간 손님마다 다른 집보다 낫다는 평을 남길 만큼 국물의 완성도를 끌어올렸다.
빈대떡은 두말할 것도 없다. 광장시장에서 이미 이름을 알린 순희네의 간판 메뉴인 만큼, 외부 문화·예술 행사마다 빠짐없이 초청받는 검증된 실력이다. 쾌적하고 널찍한 규모는 이곳을 회식 명소로도 각인시킨다. 2층에만 120석 안팎을 확보해 전체 200석에 가까운 공간을 갖췄다. 닭한마리를 찾는 40~50명 이상 대규모 단체가 한자리에 앉을 수 있는 곳은 이 골목에서 사실상 이곳뿐이다.

여행 단체부터 기업 회식까지 거뜬히 소화하며, 동대문 일대 직장인들의 회식 코스로 제격이라는 평가가 이어진다. 물론 순항만 이어진 건 아니다. 경기가 얼어붙은 시기에 문을 연 탓에 자리를 잡기까지 적잖은 고비를 넘겨야 했고, 이름난 ‘순희네’ 간판이 닭한마리 골목에서는 되레 낯설게 읽히는 아이러니와도 마주했다.
그럼에도 추 사장은 순희네에서 이어받은 손맛과 자신만의 뚝심으로 한 걸음씩 골목에 뿌리를 내리는 중이다. 닭한마리를 찾아 이 골목에 들어선 이들이 하나 둘 이곳의 진가를 알아가는 순희네 빈대떡 닭한마리, 광장시장의 결을 품은 한 상은 동대문 골목에 또 하나의 단단한 이정표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 포장마차 거리에서 시작해 50년… 좋은 재료와 단골로 이어온 ‘더우리곱창’
동대문 곱창골목에서 오랜 시간 자리를 지켜온 더우리곱창은 김인태·방권순 사장 부부가 운영하는 곱창 전문점이다. 1975년 무렵 문을 열어 약 50년의 시간을 이어온 이곳은 현재 딸이 본점 맞은편 분점을 맡으며 가족이 함께 가게를 운영하고 있다. 방 사장이 가게 문을 열던 당시에는 동대문극장 앞 사거리 주변으로 곱창을 파는 포장마차 거리가 형성돼 있었다.
지금은 포장마차가 사라지고 점포들이 들어섰지만, 더우리곱창이 자리한 곳 역시 당시에는 포장마차를 세워두거나 보관하던 공간으로 쓰였다고 한다. 이후 일대에 건물이 들어서면서 포장마차들이 하나둘 점포를 마련했고, 지금의 곱창골목이 형성됐다는 설명이다.

이곳의 대표 메뉴는 야채곱창이다. 방 사장은 고기와 채소를 함께 먹는 것이 균형 있는 식사에 도움이 된다고 보고 야채곱창을 주력 메뉴로 내세우고 있다. 채소를 선호하지 않는 손님에게는 양을 조절하되, 고기와 함께 조금이라도 채소를 곁들여 먹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재료를 아끼지 않는 것도 오랫동안 지켜온 원칙이다. 고춧가루 역시 단가보다 맛을 우선해 좋은 재료를 사용하고, 지금도 직접 음식을 먹어보며 맛을 확인한다. 송화버섯을 말린 뒤 푹 끓여 육수를 만들고, 이를 곱창을 볶을 때 사용한다. 고기가 타는 것을 줄이면서 맛을 더하기 위해서다.
직접 기른 채소도 계절에 맞춰 손님에게 내고 있다. 시골 밭에서 채소를 재배해 사용하는데, 최근에는 직접 키운 돌미나리를 야채곱창에 넣어 선보였다. 곱창에 미나리를 더하자 향과 맛에 대한 손님 반응도 좋았다. 겨울에는 제주 유채를 쌈으로 내는 등 계절 채소를 곁들이고 있다. 김치도 직접 담근다. 매년 약 1000포기를 김장해 가게에서 사용한다. 방 사장은 “재료값을 아끼려고 하면 손님이 먼저 맛의 차이를 알아챈다”며 좋은 재료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어 “손님에게 진실하게 대하고 재료를 아끼지 않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방 사장은 손님이 점차 늘어나자 10여 년 전 2층 공간을 공사해 50석 이상의 좌석을 마련했다. 넓어진 공간에서는 단체 손님을 비롯해 가족 단위 손님 등을 여유 있게 받고 있다. 오랜 세월 골목을 지켜온 만큼 가게를 꾸준히 찾는 단골도 많다. 50~60명가량의 단골들은 방 사장의 넉넉한 인심과 오랫동안 이어온 맛을 기억하며 가게를 찾고 있다.
한 가족이 3대째 방문하는 경우도 있고, 어린 시절 부모와 함께 왔던 손님이 성인이 된 뒤 연인과 다시 찾아오기도 한다. 방 사장은 오랜 시간 장사를 이어왔지만 “고생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재미있어서 한다”며 웃었다.방 사장은 오래된 손님들과 관계를 이어가는 것도 장사의 즐거움이라고 말했다. 살다 보면 가족이 있어도 문득 외롭거나 울적할 때가 있는데, 그럴 때 오랜 단골이 찾아와 안부를 물으면 스트레스가 풀린다는 것이다. 자주 오던 손님이 한동안 보이지 않으면 안부가 궁금해질 정도로 오랜 관계를 이어왔다.

방 사장은 많은 식당 가운데 자신의 가게를 찾아 주는 손님들에게 늘 고마운 마음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가게에 오신 손님들이 맛있게 식사하고 기분 좋게 돌아가셨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좋은 음식을 내는 것뿐 아니라 찾아온 손님을 반갑게 맞고, 편안하게 식사를 마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방 사장이 50년 가까이 지켜온 방식이다.

◇ 연탄불에 구운 ‘불꼬지’로 40년… 단골과 함께 나이 든 ‘송정식당’
동대문 골목에서 약 40년간 자리를 지켜온 송정식당은 유동순 사장 부부가 함께 운영하는 백반집이다. 송정식당의 대표 메뉴는 연탄불에 구운 돼지고기를 내는 ‘불꼬지 백반’이다. 처음에는 양념한 고기를 대나무 꼬치에 끼워 연탄불에 구워 내면서 ‘불꼬지’라는 이름이 붙었다.
꼬치 형태로 판매할 당시부터 꾸준히 찾는 손님이 많았고, 지금까지 송정식당을 대표하는 메뉴로 이어지고 있다. 과거에는 동대문종합시장 상인들을 대상으로 배달도 했지만 현재는 매장을 찾는 손님을 중심으로 장사하고 있다.

송정식당은 재료의 당일 소진을 원칙으로 한다. 신선도를 중요하게 생각해 고기는 그날 사용할 만큼만 들여와 재고를 남기지 않는다. 양념한 고기를 볶아서 내는 방식이 아니라 연탄불에 직접 구워 내는 것도 특징이다. 연탄불에 구운 고기의 맛을 찾아 다시 오는 단골도 많다.
불꼬지 외에도 생선구이와 각종 찌개를 함께 낸다. 불꼬지 2인분에 고등어구이나 찌개 등을 더해 한 상을 차려 먹는 손님도 많다. 불꼬지를 주문한 손님에게는 바지락으로 육수를 낸 순두부찌개를 서비스로 내놓는다. 유 사장은 손님들이 여러 메뉴를 함께 먹고 든든하게 식사를 마치고 가는 모습을 볼 때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젊은 시절부터 이곳에서 식사해온 손님들이 시간이 지나 다시 찾아오는 경우도 적지 않다. 오랜만에 찾아온 단골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그동안의 이야기를 주고받는 것도 이곳에서는 익숙한 풍경이다. 유 사장은 바로 전날에도 오랜만에 가게를 찾은 단골이 있었다며 웃었다.

가게 안 계단을 올라가면 작은 다락방이 나온다. 이곳은 단골들에게는 오붓하게 식사하는 아지트가 되고, 가족과 함께 온 아이들에게는 잠시 뛰어놀 수 있는 공간이 되기도 한다. 오랜 단골뿐 아니라 젊은 손님들도 꾸준히 찾고 있다.
해외에서 찾아오는 손님도 있다. 유 사장은 “일본인 손님 가운데 한국에 올 때마다 들러주는 분들도 있다”라며 “최근에는 대만에서 오신 분이 사흘 연속 가게에 와주셨다”고 말했다. 방송에서도 여러 차례 소개됐지만 유 사장은 작은 가게가 감당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지금의 방식대로 장사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40년 가까이 함께 가게를 지켜온 부부는 역할을 나눠 맡고 있다. 유 사장이 부엌에서 요리를 맡고, 남편은 식당 앞 연탄불에서 고기를 굽는다. 유 사장은 손님들이 식사를 마친 뒤 “오랜만에 집밥 먹고 간다”고 말할 때 가장 뿌듯하다고 했다. 화려한 메뉴를 늘리기보다 그날 들여온 재료로 불꼬지와 찌개, 생선구이를 내며 40년 가까이 같은 방식으로 손님을 맞아왔다. 젊은 시절 찾았던 손님이 자녀와 함께 다시 찾아오는 것도 그렇게 쌓인 시간 덕분이다.

◇ 동대문 쌍화거리의 시초 ‘K-쌍화’…전통 한 잔의 세계화를 선언하다
닭한마리 골목을 따라 몇 걸음 옮기면, 화려한 간판과 쌍화차 향기가 발걸음을 사로잡는다. 손님들이 자연스레 ‘쌍화거리’라 부르기 시작해 서울시 공식 특화거리이자 한국관광공사 관광코스로까지 지정된 이 일대의 중심에는 전통 한방차 카페 ‘더쌍화(K-쌍화)’가 있다.
궁중 의녀 대장금을 본뜬 복식의 직원들이 다례 격식에 맞춰 한 상을 내오는 풍경이 눈길을 끈다. 1967년 개원한 종로강남한의원의 노하우를 이어, 한방 현장에서 30여 년을 보낸 김득수 대표가 식품사업부를 통해 선보인 공간으로, 뿌리는 철저히 전통에 닿아 있다. 그 시작은 1998년으로 거슬러 오른다. 쌍화차로 손님을 맞아야 할 자리에서 박카스 한 병이 건네지는 광경을 본 김 대표는, 그길로 전통 한방차 연구에 뛰어들었다.

재래식 약탕기에 직접 불을 지펴 스무 시간 넘게 달이는 방식을 고집하며 매달린 끝에, 2016년 특허를 출원해 5년 만인 2021년 마침내 취득했다. 그 20여 년 여정의 결실이 특허받은 13종을 비롯한 스무 가지 남짓의 한방차다.
오랜 시간 진하게 달여낸 이곳 쌍화차는 시판 제품과 농도부터 다르고, 약재를 꿀에 볶아 성질을 다스리는 ‘법제’를 거쳐 속에 부담이 적다. 1만 원짜리 ‘전통 황실쌍화’ 한 상만 봐도 그렇다. 진한 쌍화차 한 잔에 수삼과 은행, 위장을 돕는환, 떡과 제철 과일이 가지런히 오른다.

곁들임 하나에도 까닭이 있다. 팥으로 빚은 오메기떡은 동의보감이 꼽은 몸에 이로운 재료에서, 두 알씩 내는 용안육은 불면과 심신 안정을 돕는 열대 약재다. 여기에 헛개쌍화와 홍삼쌍화, 총명차까지 스무 가지가 넘는 한방차를 갖췄으니, 커피 한 잔으로 끝나는 여느 카페에서는 만나기 힘든 한 상이다. 약재를 산지와 직거래해 원가를 낮춘 덕에, 홍삼이 넉넉히 든 2만 원대 구성을 1만 원 안팎에 내놓는 대중적 가격도 가능해졌다.
전통을 지키되 입맛의 변화에는 유연하다. 쓴맛을 덜고 부드럽게 다려낸 증류형 ‘K-쌍화’를 필두로 쌍화 스무디와 카푸치노, 아인슈페너, 라떼까지 현대적 변주가 이어진다. 여름 한정 쌍화빙수 역시 반응이 뜨겁다. 이런 변화에 힘입어, 증류형 라인을 선보인 뒤로는 노년층의 보양 음료라는 통념을 넘어 2030 세대와 외국인 관광객이 부쩍 늘었다. 면세점을 낀 상권이라 외국인 단골도 두텁고, 해외 방송 매체·가이드·유튜버의 방문이 이어지며 ‘한국 차 문화 필수 코스’로 입소문을 탔다.

흥미로운 건 이곳이 카페이자 여전히 한의원이라는 점이다. 매장 안쪽에 진료실이 따로 있어, 예약한 손님은 사상체질 진단을 무료로 받아볼 수 있다. 제 몸이 소양인인지 소음인인지 알고나면, 체질에 맞는 차를 고르는 재미가 더해진다. 마시는 데 그치지 않고 저마다의 몸에 맞춰 즐기는 경험은 젊은 세대와 외국인 손님에게 색다른 볼거리로 통한다.
김득수 대표의 시선은 이미 국경 밖을 향한다. 한방차에 한옥·한복·웰니스 체험을 결합한 ‘K-쌍화거리’를 서울의 전통차 관광 거점으로 키우겠다는 구상 아래, 해외 진출에도 속도를 내는 중이다. K-팝과 K-푸드가 그랬듯 전통차 역시 현대적 제품과 서비스를 갖추면 또 하나의 K-콘텐츠가 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김득수 대표는 “가장 한국적인 게 가장 세계적인 거잖아요. K-팝도 K-무비도, K-푸드도 다 떴는데 이제 우리 쌍화차가 뜰 때예요. 우리 전통 그대로 살려서 전 세계에 알리는 게 제 사명이죠”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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