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7 SS 서울패션위크가 DDP와 잠실을 잇는 이원화 전략을 통해 글로벌 비즈니스와 대중 접점을 함께 넓히며 막을 내렸다. DDP에서는 K-패션의 해외 판로를 연결하는 트레이드쇼를 강화하고, 잠실에서는 브랜드 런웨이와 K-팝 협업, 유통 연계 콘텐츠를 전개했다. 전문 패션행사에 머물던 서울패션위크가 도시의 상업·문화 공간을 활용한 산업 플랫폼으로 외연을 확장한 시즌이었다.

행사는 9월 1일부터 6일까지 DDP와 롯데월드타워 월드파크를 중심으로 열렸다. DDP에서는 디자이너 패션쇼와 프레젠테이션, 트레이드쇼가 진행됐고, 잠실에서는 김해김을 시작으로 그리디어스, 던스트, 이비엠·제너럴아이디어·마하그리드 등이 참여한 런웨이와 시민 참여 프로그램이 이어졌다. DDP는 창작과 수주를, 잠실은 시민·관광객과의 접점을 맡았다.

DDP 무대에서는 세대와 장르를 넘나드는 컬렉션이 이어졌다. 개막 쇼를 맡은 리이는 ‘남겨진 것들의 가치’를 주제로 시간과 기억의 흔적을 옷에 담았다. 무용으로 문을 연 쇼는 고전 건축물과 스티커라는 오브제를 통해 ‘Life Archive’의 메시지를 시각화했다. 이상봉과 카루소 등 오랜 시간 한국 패션을 이끈 브랜드부터 신진 디자이너까지 한 무대에 섰다는 점도 이번 시즌의 특징이다.

한나신은 휴머노이드 로봇과 AI 멀티센서리 웨어러블 기기를 런웨이에 접목했다. 소리를 촉각과 빛의 반응으로 바꾸는 장치를 통해 의복을 신체와 외부 환경이 반응하는 감각적 매개체로 제안했다. 키모우이는 스마트글래스를 런웨이에 활용했고, 얼킨과 곽현주컬렉션은 라이브 음악과 공연을 결합했다. 컬렉션을 보여주는 방식 자체가 기술과 공연, 디지털 경험으로 넓어진 것이다.
디자이너별 창작 방향도 뚜렷했다. 데일리미러는 ‘SUIT:ABLE’ 컬렉션에서 기존 테일러링에 아웃도어·스포츠웨어의 기능적 장치를 더했다. 슈트 재킷을 아노락처럼, 셔츠를 유틸리티 아우터처럼 변주하고, 재킷과 스커트·미니드레스를 넘나드는 스타일링을 통해 슈트를 고정된 포멀웨어가 아니라 변화 가능한 옷의 시스템으로 해석했다. 도심과 아웃도어, 포멀과 캐주얼, 남성과 여성의 구분을 유연하게 넘나든 무대는 서울패션위크가 품은 컨템포러리 디자인의 한 단면이었다.

카루소의 장광효 디자이너는 ‘There Are No New Trends’를 내세워 유행의 속도보다 브랜드가 축적해온 본질에 시선을 뒀다. 정교한 봉제와 소재의 질감, 몸을 따라 흐르는 실루엣을 중심에 놓되 클래식 슈트와 트렌치코트, 셔츠와 타이의 문법을 데님·시스루·강렬한 색채·플랫폼 슈즈와 결합했다. 한국 남성복의 시간을 이끌어온 디자이너가 자신의 언어를 현재의 감각으로 다시 조립한 무대로, 전통과 동시대성이 교차하는 장면을 만들었다.

까이에는 ‘생트로페의 황금 시간’을 주제로 1980년대 남프랑스 휴양지의 글래머러스한 여름을 현대적으로 해석했다. 넓은 어깨와 잘록한 허리, 볼륨감 있는 실루엣의 구조는 유지하면서도 시폰·리넨·실크·코튼 포플린 등 가벼운 소재를 사용해 무게감을 덜었다. 러플과 드레이핑, 육각형 버클, 샌드·버터 옐로·모브·인디고로 이어지는 색채는 몸을 압박하지 않으면서 곡선을 살리는 여성복의 방향을 드러냈다.

◇ DDP, 해외 판로를 잇는 K-패션 비즈니스 허브
행사 프로그램은 총 19개 디자이너 브랜드 패션쇼와 8개 프레젠테이션, 4개 컨템포러리 런웨이로 짜였다. 각 프로그램은 단순히 신작을 발표하는 데 그치지 않고 브랜드별 디자인 언어와 시장성을 보여주는 자리로 기능했다.
이준복·주현정 디자이너 브랜드 ‘리이’의 시간과 기억, 신한나 디자이너 브랜드 ‘한나신’의 테크 쿠튀르, 김주한 디자이너 브랜드 ‘데일리미러’의 기능성 테일러링, 장광효 디자이너 브랜드 ‘카루소’의 남성복 미학, 김아영 디자이너 브랜드 ‘까이에’의 현대적 여성복은 서로 다른 방향을 제시했지만 서울패션위크가 다양한 세대와 장르의 K-패션을 한데 보여주는 장이라는 점에서는 맞닿아 있었다.

이번 시즌 DDP 트레이드쇼에는 국내 K-패션 브랜드 106개사와 20개국 98명의 해외 바이어가 참가했다. 1차 집계 기준 수주상담액은 757만 달러다. 프랑스 프랭탕과 사마리텐, 일본 레스티어, 홍콩 클럽21 등 해외 유통사와 편집숍 바이어가 현장을 찾아 국내 브랜드와 상담을 진행했다.
서울시는 트레이드쇼를 성수·한남 일대 쇼룸 투어와 연계했다. 해외 바이어가 브랜드 컬렉션과 실제 쇼룸 환경, 유통 가능성을 함께 살피도록 구성했다. 프랑스 프랭탕 바이어 빅토르 폴센은 새로운 실루엣과 감성을 찾기 위해 서울패션위크를 방문했다며 한국 브랜드와의 지속적인 파트너십 확대 기대를 전했다.
패션쇼와 프레젠테이션의 구성도 비즈니스 현장의 체류 경험을 넓혔다. 8개 프레젠테이션은 DDP 서울온, 이간수문 전시장, 브랜드 쇼룸 등에서 열려 관람객이 의상과 소재, 디테일을 가까이 살필 수 있도록 했다. 서울라이트와 디자인 마이애미 등 동시 개최된 문화·전시 콘텐츠는 DDP에 패션 관계자 외 방문객을 끌어들이며, 디자인과 패션의 접점을 넓혔다.

◇ 잠실, 런웨이를 소비와 K-컬처로 확장하다
잠실은 이번 서울패션위크의 대중 확장을 상징한 공간이다. 김해김은 롯데월드타워에서 브랜드 10주년 기념 국내 첫 단독 패션쇼를 열고 아디다스와 협업한 스탠스미스 컬렉션을 세계 최초로 공개했다. 이어진 컨템포러리 런웨이는 던스트 단독쇼와 이비엠·제너럴아이디어·마하그리드 연합쇼로 구성됐다. 글로벌 무대에서 성장한 브랜드와 동시대 소비자에게 친숙한 브랜드를 함께 배치해, 디자이너 브랜드 중심이던 무대의 폭을 넓혔다.
런웨이 출품작 일부를 롯데백화점 온라인몰과 연결한 ‘씨나우 바이나우’도 눈길을 끌었다. 관람객이 쇼 직후 제품을 구매할 수 있도록 한 방식으로, 패션쇼와 유통을 직접 연결했다. 아디다스와의 협업 콘텐츠 역시 컬렉션 발표를 넘어 브랜드, 유통, 콘텐츠가 결합하는 산업 플랫폼의 방향을 보여줬다.

NCT 데뷔 10주년 협업은 패션위크와 글로벌 팬덤의 거리를 좁혔다. 월드파크에서는 NCT가 실제 무대에서 착용한 의상을 선보이는 전시가 열렸고, 의상과 애장품 플리마켓 수익금은 여성·청소년·문화 분야 지원을 위해 기부될 예정이다. 마지막 날 큐레이티드 런웨이에서는 NCT의 히트곡에 맞춰 지난 10년간의 무대 의상을 소개해 1만 명 이상의 방문객을 모았다. 석촌호수에는 서울패션위크의 키 컬러인 푸른빛 조명과 16m 규모의 NCT 협업 아트벌룬이 설치돼, 패션 행사의 분위기를 도시 야경 속 공공 미술로 확장했다.
잠실 월드파크 일대 유입 인원은 행사 일정 나흘간 약 17만6000명으로, 전년 동기 11만9000명보다 45% 증가했다. 일평균 유입 인원도 2만9000명에서 4만4000명으로 늘었다. 패션 관계자가 아닌 일반 시민과 관광객이 행사 현장에 자연스럽게 유입될 수 있는 환경을 만든 결과다. DDP의 ‘SFW X K-라이프스타일 스트리트’에도 K-푸드 10개, K-뷰티 2개, K-웰니스 4개 브랜드가 참여해 패션을 일상 소비와 연결했다.
잠실로의 무대 확장은 공간 자체를 콘텐츠로 활용한 사례이기도 하다. 롯데월드타워와 석촌호수는 쇼장 밖에서도 시민과 관광객이 자연스럽게 행사를 마주하는 배경이 됐다. 런웨이, 전시, 플리마켓, 조명 연출이 한 동선 안에서 이어지면서 패션쇼 관람객과 일반 방문객의 경계도 낮아졌다. 이는 패션산업의 전문성을 유지하면서도 대중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행사 구조를 만들려는 시도로 읽힌다.
온라인 확산 성과도 뚜렷했다. 서울패션위크는 공식 SNS와 유튜브 라이브를 통해 주요 런웨이와 현장 프로그램을 실시간으로 전했다. 행사 기간 발행한 공식 SNS 콘텐츠는 2178건, 누적 조회수는 1500만 회 이상을 기록했다. 현장의 쇼와 전시, 협업 콘텐츠가 숏폼 등 디지털 형식으로 재생산되면서 행사 이후에도 국내외 패션 팬과의 접점이 이어졌다.
서울시는 이번 성과를 바탕으로 패션과 K-컬처, 유통, 기술을 연결해 K-패션 브랜드의 글로벌 비즈니스 기회를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이번 서울패션위크의 성과는 단순히 방문객 수나 수주상담액에만 있지 않다. DDP에서는 디자이너의 창작 역량과 해외 비즈니스를 연결하고, 잠실에서는 유통과 K-팝, 시민 참여를 결합했다.
기술을 런웨이 언어로 끌어들이고, 서울의 랜드마크를 패션 무대로 바꾸고, 컬렉션을 실제 구매와 이어 붙였다. 서울패션위크는 이번 시즌을 통해 K-패션이 글로벌 시장으로 나아가는 관문이자 도시 문화와 소비를 함께 움직이는 플랫폼으로 한 단계 확장됐음을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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