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경은 단순한 상품이 아닙니다. 눈을 뜨면 써서 잠들 때가 되어서야 벗게 되는, 우리 몸의 일부이자 ‘또 하나의 눈’이죠”
김종석 전 대한안경사협회장이 안경을 설명할 때 가장 먼저 꺼내는 말이다. 그가 안경업계에서 걸어온 40여 년의 길 역시, 그 말 한마디를 지키기 위한 시간이었다. 1984년 안경 유통업으로 입문해 서울시안경사회장을 거쳐 제20·21대 대한안경사협회장을 지낸 그를 만났다.

◇ 유통 청년에서 협회장까지, 삭발도 마다하지 않은 40년
김 전 회장의 시작은 198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집안 어른의 권유로 안경테와 렌즈를 수입해 안경원에 공급하는 유통 회사에 들어간 것이 계기였다. 이후 그는 서울시안경사회에서 홍보이사와 사업이사, 부회장을 거쳐 서울시안경사회장으로 3년을 일했고, 더 큰 역할을 하고 싶다는 의욕에 중앙회장에 도전했다.
서울부터 제주까지 한 달여 안에 두세 번을 돌아야 하는 전쟁 같은 선거전을 치르고, 그는 제20·21대 협회장을 연임하며, 5만여 명에 이르는 안경사들을 대표했다.
다만, 6년에 이르는 임기는 긴장감을 늦출 수 없는 전쟁 같은 일의 연속이었다. 대표적으로 정부가 플랫폼 기업과 함께 도수 안경의 온라인 판매를 허용하려 하자, 김 전 회장은 이를 국민 눈 건강의 문제로 봤고, 삭발 투쟁까지 하며 회원들과 함께 싸웠다.

그는 “안경은 정확한 검사와 개인에게 맞춘 가공, 피팅을 거쳐야 비로소 완성되는 의료기기입니다. 그런데 이런 과정을 생략한 채 화면만 보고 도수 안경을 사고판다면, 자기 눈에 맞지 않는 안경으로 시력을 해칠 수밖에 없어요”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국가가 국민의 눈을 보호하기 위해 안경사 제도를 만들어 놓았는데, 그 제도를 무시하고 눈을 상업적 논리로만 접근하려는 것을 결코 묵과할 수 없었습니다”라고 강조했다.
기재부와 청와대, 국회를 상대로 대응을 이어간 끝에 판매를 막아냈고, 그는 이를 “안경사의 승리가 아니라 국민의 눈 건강을 지켜낸 승리”라고 표현했다. 제도 정비도 뒤따랐다. 김 전 회장은 당선 직후 보건복지부 차관과 독대해, 검사 장비를 갖춰야만 안경원을 개설할 수 있도록 디지털 검안 장비를 의무화했다.
법정 보수교육 이수와 무관하게 개설이 가능하던 관행도 바로잡아, 개설 시 보수교육·면허 신고 확인서를 의무 서류로 만들었다. 서대문 제1안경사회관을 지키면서 영등포에 제2회관을 마련한 것도 그의 재임 중 성과다.
다만 그는 공을 자신에게 돌리지 않았다. 김 전 회장은 “선대 회장님들이 희생하며 이뤄온 토대 위에서 제 과제를 성실히 수행했을 뿐, 저 혼자 힘으로 된 일은 없어요”라고 힘줘 말했다.

◇ 안경, 액세서리 이전에 우리 눈을 지키는 의료기기
그가 이토록 업권 수호에 매달린 이유는, 안경을 바라보는 관점에 있다. 김 전 회장은 안경을 ‘또 하나의 눈’, 곧 신체의 일부로 규정한다. 그는 “안경은 눈을 뜨면 써서 잘 때가 되어야 벗습니다. 사람을 마주할 때도 서로 눈을 먼저 보죠. 눈을 본다는 건 곧 안경을 보는 겁니다”라고 설명했다.
특히 정보화 시대에는 정보의 대부분을 눈으로 얻는 만큼, 정확히 검사·가공된 안경으로 정보를 빠르게 받아들이는 것이 곧 경쟁력이라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그래서 그는 안경을 액세서리나 패션으로만 취급해서는 안 되는, 큰 가치를 지닌 의료기기라고 강조했다.
안경이 패션 도구로 훌륭하다는 점은 그도 인정한다. 다만 김 전 회장은 “패션용으로 착용할 때와 시력을 보정하는 경우의 본질은 분리해서 봐야 합니다. 안경의 기본은 잘 보이지 않는 눈을 잘 보이게 해 주는 의료기기예요”라고 선을 그었다.

근거는 직군의 성격이다. 그는 “의료기사 여덟 직역 중 대부분은 의사의 처방이나 지도를 받지만, 안경사는 의사 처방 없이 독자적으로 시력검사 후 안경을 맞추는 직군”이라며 “잘 안 보이던 사람을 잘 보이게 하는 건, 아픈 데를 고치는 의사의 행위와 다름없이 국민의 신체를 다루는 일”이라고 말했다.
우리나라에서 ‘안경점’이 아니라 ‘안경원’으로 불리는 이유도 여기 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병원처럼 보건의료인이 국민의 신체를 다루는 곳이라는 의미다.
안경값에 대한 인식도 마찬가지다. 김 전 회장은 한 국회의원에게서 “왜 이렇게 비싸냐”는 물음을 받았던 일화를 꺼냈다. 그는 “안경은 제 몸의 일부이고, 사람들은 하루 종일 나와 대화하며 제 눈에 끼는 안경을 봅니다. 평생 얼굴에 끼는 안경을 비싸다 하시면, 스스로 본인의 가치를 그만큼 낮추는 겁니다”라고 답한 일을 전했다.
과시가 아니라 자기 존중의 문제라는 것이다. 그는 “10만 원짜리를 끼면 상대에게 10만 원짜리 얼굴을, 100만 원짜리를 끼면 그만한 가치를 내는 셈”이라고 덧붙였다.
그래서 그는 어디서 어떤 안경을 사든 마지막엔 안경원에서 상담과 피팅을 받아야 한다고 당부한다. 테가 예뻐서 고르기 쉽지만, 정작 중요한 건 그 테가 눈 사이 거리와 시력, 얼굴 형태까지 감안해 자신에게 맞는지이기 때문이다.

◇ 가격이 아니라 전문성, 국민의 눈을 지킨다는 자부심
이런 관점은 업계 전체를 향한 시선으로 이어진다. 그는 우리나라 안경 시스템의 우수성을 자부심으로 꼽았다. 김 전 회장은 “선진국에서는 검안사에게 눈 검사를 받고 30여만 원을 내고 처방전을 받은 뒤, 판매점에서 안경을 맞추면 일주일 이상 걸립니다”라며 “우리나라는 안경원 한 곳에서 검사부터 가공·피팅까지 원스톱으로 처리됩니다”라고 말했다.
그가 ‘K-글라스’를 이야기하는 것도 그래서다. 그는 “K-팝, K-푸드처럼 우리 안경의 우수성을 알리고 관광 자원으로 활용한다면, 국가적으로도 의미 있는 발전이 될 것입니다”라고 제안했다. 이 시스템의 뿌리에는 제도화 투쟁이 있었다. 첫 국가시험을 거부하는 투쟁 끝에 안경사 제도는 국회에서 만장일치로 통과됐고, 현재 전국 42개 대학에서 매년 1,300~1,400여 명이 배출돼 5만여 명이 면허를 소지하고 있다.
과포화된 시장에서 가격 경쟁의 유혹이 커지지만, 그가 제시하는 해법은 정반대다. 김 전 회장은 “싸게 파는 경쟁은 시장도, 소비자가 받는 서비스의 질도 떨어뜨릴 뿐입니다. 누가 더 정밀하게 검사하고, 더 좋은 제품과 서비스를 갖췄느냐로 경쟁하는 시대로 가야죠”라고 말했다. 직업인으로서의 품위도 당부했다.
그는 “‘몸이 천 냥이면 눈이 구백 냥’이라잖아요. 그 소중한 눈을 다루는 사람이 상업적인 부분만 좇아선 안 됩니다. 단정한 모습으로 응대하는 것이 곧 고객에 대한 예의이자 본인의 품격입니다”라고 강조했다.

후배 안경사를 향한 당부에는 힘이 실렸다. 김 전 회장은 “전문직 자영업이라 정년이 없고, 무엇보다 사람의 신체를 다룬다는 사명감을 가질 수 있는 직업”이라며 “국민의 가장 소중한 눈을 지킨다는 자부심, 그것만으로도 훌륭한 직업이 될 겁니다”라고 말을 맺었다.
안경업계와의 인연은 지금도 이어진다. 큰아들이 운영하는 서초구 하늘안경원에 들르며 업계의 흐름에 대한 감을 유지한다. 협회는 내년 새 회장을 뽑는 선거를 앞두고 있고, 업계 안팎의 발걸음도 그만큼 분주해지는 시기다.
전면에 다시 나설 생각은 없다면서도, 그는 업계가 한 단계 더 나아가는 데 힘을 보태는 일만큼은 놓지 않겠다고 했다. 못다 이룬 ‘K-글라스’처럼 안경사의 위상을 국가적으로 끌어올리는 과제는 결국 다음 세대의 몫이라고 봤다. 김 전 회장은 “제가 직접 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우리 업계가 더 발전하도록 옆에서 돕는 일은 얼마든지 할 수 있죠. 그게 곧 국민 눈 건강으로 이어지는 거니까요”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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