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 및 식음료(F&B) 업계의 수험생 마케팅이 연말 대목의 시작점에서 사업적 체질을 바꾸고 있다. 과거 대학수학능력시험 시즌은 합격을 기원하는 엿이나 찹쌀떡, 포크와 두루마리 휴지 형태의 언어유희형 기획 상품을 쏟아낸 뒤 시험 당일이 지나면 남은 재고를 대규모 할인으로 털어내야 했던 고위험 단기 특수 상권이었다.
그러나 최근 고물가 기조와 실용성을 중시하는 소비 성향이 맞물리면서, 수능 마케팅의 무게중심이 시험 당일 소비되고 사라지는 일회성 소모품에서 일상에서도 지속적으로 활용 가능한 라이프스타일 생활용품과 프리미엄 디저트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 기업들은 수능이라는 강력한 구매 계기를 신제품의 상품성을 검증하는 테스트베드로 활용하며, 시즌 종료 후에도 정규 매출을 창출하는 선순환 구조를 구축하고 있다.
재고 부담 줄인 실용 소비… 수능 선물이 바꾼 매대 풍경
수험생 선물 시장의 지형이 바뀐 배경에는 선물을 주고받는 소비자들의 실리적 태도 변화가 자리한다. 시험 합격을 바라는 상징적 의미에만 치중한 제품은 정작 수험생 본인에게 실질적인 효용을 주지 못한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수험 생활이 끝난 뒤에도 평소 학업이나 일상에서 쓸 수 있는 보온 도시락, 파우치, 텀블러 같은 생활용품에 대한 수요가 가파르게 늘어났다.
제과와 베이커리 영역 역시 지나치게 단맛 위주의 사탕이나 전통 엿 대신 원재료의 품질을 높이고 식감을 다변화한 퓨전 찰떡이나 프리미엄 초콜릿이 대세로 자리 잡았다. 시험 당일의 간식을 넘어 평소 커피나 차와 함께 곁들일 수 있는 범용성을 갖춘 제품만이 소비자의 선택을 받고 있는 셈이다.
유통 채널의 중심축이 오프라인 진열대에서 모바일 선물하기와 이커머스로 이동한 점도 상품 기획의 기준을 바꿨다. 매장 매대에서 포장의 부피로 시선을 끌던 방식은 포장 폐기물과 보관 비용을 늘려 유통 효율을 떨어뜨렸다. 반면 모바일 메신저를 통한 비대면 선물 소비는 제품의 실제 품질, 배송 편의성, 브랜드 신뢰도를 우선시한다.
이에 따라 유통사와 식음 브랜드들은 특정 기념일 문구에만 얽매인 전용 패키지를 줄이고, 사계절 판매가 가능한 완성형 상품을 시즌 초입에 전진 배치해 재고 폐기 위험을 낮추고 마케팅 회수율을 끌어올리고 있다.

이러한 전략적 전환은 대형 커피 프랜차이즈와 온라인 플랫폼의 실제 판매 데이터에서 명확히 입증된다. 스타벅스 코리아가 선보인 수능 기프트 시리즈는 전통 떡과 서양식 디저트를 결합한 퓨전 푸드와 일상용 생활 굿즈를 전면에 내세웠다. 특히 이번 시즌 기프트 푸드 5종 중 판매량 1위를 달리고 있는 인절미 찰떡파이는 지난해 수능 시즌에 첫선을 보였던 피넛초코 찰떡파이의 성공에 힘입어 개발된 후속 제품이다.
찰떡 속에 헤이즐넛 크림을 채우고 땅콩과 초콜릿을 코팅했던 피넛초코 찰떡파이는 시즌 한정 제품으로 출시됐으나 높은 호응을 얻으며 상시 판매로 전환됐고, 2026년 9월 말 기준 누적 판매량 80만 개를 넘어서며 외국인 관광객이 즐겨 찾는 대표 디저트로 안착했다.
스타벅스는 이번에도 쫀득 마롱 찰떡 세트와 네잎클로버 틴 초콜릿 등 디저트 라인업을 강화하는 한편, 스테인리스 밥·반찬 용기를 갖춘 보온 도시락과 다용도 파우치, 베어리스타 키링 등 실용적인 베스트오브럭 굿즈를 대거 투입했다. 전국 오프라인 매장은 물론 자사 앱 온라인 스토어, 카카오톡 선물하기, 무신사 등 외부 채널로 유통망을 넓혀 모바일 선물 수요를 흡수하고 있다.
대형 이커머스 채널 역시 수능 수요를 11월 전체 기념일과 연계하는 플랫폼 전략을 펼치고 있다. 쿠팡은 11월 18일까지 수험생 간식부터 기념일 먹거리 1만 5,000여 개를 모은 스위트샵 기획전을 운영하며 대규모 온라인 집객을 유도했다.

롯데웰푸드 빼빼로와 마즈, 고디바, 켈로그, 카카오리퍼블릭 등 국내외 핵심 제과 브랜드를 집결시키고, 수능 응원 간식관을 비롯해 대표특가와 1일 특가, 홈파티 테마관을 유기적으로 연결했다. 빼빼로 캐릭터 협업 패키지부터 고디바 프리미엄 컬렉션까지 아우르는 상품 배치는 수능 선물 수요를 자연스럽게 11월 중순의 연인 선물과 연말 모임 수요로 확장시키는 플랫폼 락인 효과를 거두고 있다.
수능 선물 시장에서 나타난 실용 굿즈와 프리미엄 디저트의 부상은 유통업계의 시즌 상품 기획 방식이 단기 매출 회수에서 지속 가능한 지식재산권(IP) 및 스테디셀러 육성으로 진화했음을 보여준다. 시즌 한정이라는 화제성으로 초기 진입 장벽을 낮춘 뒤 검증된 제품을 정규 라인업으로 안착시키는 방식은 신제품 출시에 수반되는 초기 연구개발 및 마케팅 비용을 크게 줄여준다.
온·오프라인 옴니채널을 통해 유입된 선물 구매 고객이 브랜드 자사 앱과 플랫폼에 락인되며 비수기에도 활동하는 충성 고객으로 전환되는 효과도 누릴 수 있다.
향후 수험생 및 시즌 선물 시장에서는 일회성 포장재나 유행성 콘셉트에만 기댄 제품은 설 자리를 잃을 것으로 보인다. 시즌이 끝난 후에도 소비자가 일상에서 꾸준히 찾을 수 있는 완성도 높은 원재료와 실용적인 기능을 제품 기획 단계부터 반영해야만 재고 위험을 통제하고 매장과 플랫폼의 단위 생산성을 높일 수 있다.
브랜드 운영사와 유통 채널은 수능 특수를 단발성 이벤트가 아닌 장기 베스트셀러를 길러내는 전략적 인큐베이팅 무대로 재정의하고, 모바일과 오프라인을 잇는 유통망을 보다 정밀하게 설계해 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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