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이 자사 결제서비스인 ‘쿠페이’를 담당하고 있는 핀테크 사업부문을 분사한다고 지난 3월 31일 밝혔다.
핀테크 자회사 ‘쿠팡페이’는 4월 1일 설립돼 올해 상반기 중 본격 사업에 돌입할 계획이다. 신설 법인 대표는 핀테크 사업부 기술총괄을 맡고 있는 경인태 시니어 디렉터가 맡았다. 경 신임 대표는 2014년부터 쿠팡 간편결제 시스템의 기술 총괄을 지내고 있다.
쿠팡의 핀테크 서비스인 쿠페이는 사용 등록 인원이 1000만명을 돌파했으며 거래액 규모로 이미 국내 3위에 이르는 대표적인 간편결제 서비스다. 특히 비밀번호를 입력하거나 지문인식을 통하지 않고도 자체 개발한 부정거래 감지 시스템을 활용해 ‘구매’ 버튼 한 번만 누르면 결제가 완료되는 ‘원터치 결제’ 시스템으로 고객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한편, 쿠팡의 분사 발표는 자사 내에서도 놀랄만큼 깜짝 발표이기도 했다. 일반 유통기업의 핀테크 관련 사업부문은 따로 두는 것보다는 기업 내 부문으로 남겨두고 관리하는 경우가 많기에 관련 업계에서도 상당히 높은 관심을 보였다.

쿠팡의 계획 발표 후 업계에서는 다양한 분석이 이어지고 있다. 무엇보다 이러한 결정에 대해 쿠팡 측은 국내 이커머스 업계 1위를 달리고 있는 쿠팡의 페이 사업부문이 규모가 커져 이제는 전문적으로 관리될 때라고 밝혔다.
하지만, 쿠팡의 분사를 놓고 업계에서는 굳이 분사까지 할 필요가 있느냐고 반문한다. 현재 국내 간편결제 시스템에서 거래액 기준으로는 이베이코리아의 스마일페이가 1위, 네이버의 네이버페이가 2위, 쿠팡의 쿠팡페이가 3위를 달리고 있다.
1위를 달리고 있는 스마일페이는 분사 없이 자체 내 부문으로 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또 최근 쿠팡과 경쟁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신세계 SSG닷컴의 SSG페이는 신세계I&C에서 운영하다 오히려 SSG닷컴으로 운영권을 양도했다. 페이사업 분사가 전문성 확보라는 쿠팡의 주장이 설득력을 잃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번 분사에 대해 전문성 확보라는 쿠팡 측의 발표보다는 ‘재무 건전성’, ‘투자 유치’ 등을 고려한 결정이라는 이유와 더 나아가 글로벌 상장까지 노리는 전략이 담겼다는 것이 업계의 중론이다. 쿠팡은 과거에도 자회사를 통해 재무건전성을 확보한 이력이 있다. 바로 ‘쿠팡 풀필먼트 서비스(이하 CFS)’를 통해서다. 쿠팡의 100% 자회사인 CFS는 아마존의 ‘풀필먼트 바이 아마존’을 벤치마킹 한 것으로 제품 주문에 따라 선별, 포장, 배송 및 사후처리까지 일괄처리해 주는 서비스다.

CFS는 내부거래로 실적이 상계처리된다. 직매입 비용 부담은 쿠팡이 지고, 수익은 CFS가 가져가는 구조다. 즉, 적자는 본사가 안고 이익은 CFS가 가져가면서 재무건전성을 확보했다. CFS는 쿠팡에서 유일하게 흑자를 내는 사업으로 향후 쿠팡의 적자 기조를 탈피시킬 창구로 지목되는 곳이다. 이번 쿠팡페이 분사건 역시 기존 금융 리스크를 본사가 담당하고 이익만 가져가는 재무건전성 확보 차원 아니냐는 분석에 힘이 실리는 이유다.
또 하나는 추가 투자유치 목적이다. 간편결제 사업을 하는 글로벌 기업들은 분사를 통해 ICT기업 및 금융사들과 손잡고 시장 공략에 나서고 있다. 실제 알리바바는 간편결제 서비스 알리페이를 서비스하면서 온라인 대출, 자산관리 사업도 함께 하고 있다. 페이스북도 메신저페이와 온라인 대출 서비스를 선보였으며, 아마존도 보험가격비교 사이트를 설립했다. 모두 관련 ICT기업과 손잡으면서 시작된 서비스다.
쿠팡페이는 관련 기업들과 제휴를 통해 규모를 키우고, 추가적인 투자로 이어지는 청사진을 그리는 것으로 보인다. 현재 글로벌 페이사업자들은 지분투자 및 인수합병이 활발하다. 알리바바의 금융 자회사 ‘앤트 파이낸셜’은 실버레이크파트너스 등으로 부터 140억달러(약16조5000억원)의 투자를 받기도 했다.
쿠팡은 2년전 소프트뱅크로부터 20억달러 추가 투자를 받았지만 현재 거의 소진한 것으로 알려졌다. 소프트뱅크에게 추가적인 투자가 어려울 것으로 예상돼 쿠팡페이를 통해 추가 투자처를 발굴할 것으로 전망된다.
결국 쿠팡의 이러한 행보는 상장으로 모인다. 쿠팡 상장설은 꾸준히 흘러나오고 있다. 최근 외신에서 쿠팡의 나스닥 상장이 조만간 진행된다는 기사가 나왔을 때 쿠팡은 장기적으로 상장을 준비 중이지만 지금은 아니라고 해명했다. 이후 바로 나온 것이 ‘쿠팡페이’다.

지난해 9월 금융감독원은 쿠팡에 경영유의 조치를 내렸다. 금감원은 “쿠팡이 지난해 3월 계획한 유상증자를 이행하지 않으면서 자기자본과 미상환 잔액 대비 자기자본 비율이 경영 지도기준 20%를 충족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고정비용 등을 포함한 경영개선 계획을 마련하고 주기적으로 이행 실적을 금감원에 보고하도록 했다.
금감원의 조치는 자본잠식 해소 방법을 강구하라는 것이다. 쿠팡은 지난해 미국 법인이 보유한 기존 투자금을 활용해 세번의 유상증자를 단행한 바 있다. 이는 국내 법인은 유상증자를 할 여력이 없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업계 관계자는 “현재 쿠팡의 재무상황 탈피를 위해서는 상장과 추가투자 두 가지 방안이 요구된다”며 “쿠팡페이는 이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는 대안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 유통가 너도나도 오픈뱅킹 도입 추진…고객 ‘빅데이터’ 구축
쿠팡페이의 분사 발표 이후 유통가의 전자결제시스템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단순히 구매한 제품을 결제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닌 고객들의 구매패턴과 결제데이터 등 ‘빅데이터’를 구축할 수 있는 기회가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에 다르면 국내 간편결제시장 규모는 2016년 1조7810억원에서 2018년 8조1453억원으로 7배 이상 급성장했다. 국내 간편결제는 포털사업자인 네이버와 카카오, 대기업인 삼성, 이커머스 기업 이베이코리아 등이 대표적으로 운영해왔다. 특히 유통업체들은 결제는 기본이고, 출금·이체, 송금까지 지원하는 오픈뱅킹을 도입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종합 금융 플랫폼’으로 변화를 도모한다.
신세계의 SSG페이는 지난 3월 오픈뱅킹을 도입하고 ‘송금’ 메뉴를 신설하고 본격적으로 은행 계좌조회와 송금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SSG페이 애플리케이션 하나로 고객이 가진 모든 은행의 계좌를 조회하고 출금, 이체까지 할 수 있다.

SSG닷컴은 또한 통합으로 자체 마일리지 ‘S머니’, ‘S포켓’을 SSG페이 선불 결제 수단인 ‘쓱머니’로 일원화했다. ‘SSG머니’는 SSG닷컴을 비롯해 전국 이마트, 신세계백화점, 스타벅스 등 1만여 개의 온·오프라인 가맹점에서 현금처럼 사용할 수 있다.
SSG닷컴은 이번 SSG머니 통합으로 비용 절감효과도 누릴 것으로 전망된다. 기존 SSG페이 마케팅 비용으로 130억원의 적자를 내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번 통합은 일석이조의 효과란 분석이다.
이베이코리아의 스마일페이도 오픈뱅킹 도입을 준비 중인 것이다. 스마일페이는 쇼핑에 특화된 간편결제 시스템으로 이베이코리아가 운영하는 G마켓·옥션·G9뿐만 아니라 마트, 외식, 패션,뷰티, 레저, 교통 등 폭넓은 온·오프라인 가맹점 등에서 사용할 수 있게 구성할 예정이다. 롯데그룹의 간편결제 서비스 시스템인 ‘엘페이’도 현재 오픈뱅킹 도입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쿠팡페이는 무엇보다 가입자가 많다는 점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현재 쿠팡페이 가입자는 약 1500만명이다. 단순히 쇼핑 사업에 국한되는 것이 아닌 핀테크 사업으로의 확장을 기대해 볼 수 있는 부분이다.

쿠팡페이는 분사 이후 새로운 서비스를 선보이기 위해 준비하는 단계로 올해 말쯤 정확한 모습을 드러낼 것으로 전망된다. 쿠팡페이는 쿠팡에서만 쓸 수 있는 간편결제 플랫폼을 일반 가맹점으로 확대하고 송금, 대출, 카드, 제휴계좌 등 금융 영역에도 진출한다는 계획이다. 유통업계가 간편결제 시스템에 공을 들이고 있는 이유 중에는 이미 거론한 ‘빅데이터’ 수집과도 연관이 있다.
간편결제 서비스를 통해 확보된 데이터로 금융사업을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는 것이다. 실제로 글로벌 전자상거래업체인 아마존도 방대한 고객 데이터를 기반으로 페이먼트 사업 뿐 아니라 뱅크오브아메리카 메릴린치, 골드만삭스와 손잡고 중소 판매업자에 대한 대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 “공정한 거래 원한다”, 카드사들은 속앓이
하지만, 유통업계의 오픈뱅킹 사업 참여로 인해 정작 카드사들은 속앓이를 하고 있다. 간편결제시장에 유통가들이 뛰어들면서 정작 카드사들이 역차별을 겪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기 때문이다.

최근 네이버는 앱에서 신분증만으로도 통장을 개설할 수 있는 네이버통장을 출시했다. 이 통장은 네이버페이와 연동해 결제 등에 활용할 수 있다. 금융권의 체크카드와 크게 다를 것이 없는 형태다. 특히 금융위원회는 전자금융업법 개정안을 통해 체크카드 한도를 일 최대 200만원에서 300~500만원으로 상향할 뜻을 비췄다. 법이 개정될 경우 네이버페이, 쿠팡페이 등은 날개를 달 전망이다. 단순히 해당 유통채널에서 결제기능만 가진 금융권 카드사와 각종 이벤트, 캐시백 등을 갖춘 유통업계 선불카드와는 이미 경쟁력에서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또, 금융위가 간편결제 업체에 후불결제를 도입할 것도 검토하고 있어 카드사들이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는 상황이다. 후불결제 시스템을 도입할 경우 카드사의 서비스와 크게 다를 바 없는 상황이어서 자칫 카드사 전체의 수익률 악화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정부의 최근 정책이 핀테크 사업을 육성하는 기조여서 카드사들의 긴장감을 배가되고 있는 실정이다.
◇ 유통업계 핀테크 사업 영역 확장 가속화 전망
정부의 정책 추진 등이 뒷받침되면서 유통가의 핀테크 사업 영역 확장은 더욱 가속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그동안 유통업계는 결제할 때마다 지출되는 카드 수수료에 적지 않은 관심을 두고 있었다”며 “핀테크 사업을 통해 수수료에 대한 부담을 지우는 것도 기업 수익률 향상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유통가를 비롯한 IT기업들의 핀테크 사업 진출은 이미 거론한대로 다양한 수익구조를 만들 수 있다. 이에 기업들은 차별화된 고객 편의적 시스템 구축을 위해 적극적인 투자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쿠팡과 SSG닷컴이 배송 경쟁을 위해 출혈을 지속하고 있는 것처럼 ‘페이’ 경쟁을 위해 또 다른 출혈을 야기하는 것은 아닌가하는 업계의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