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즘 레트로 열풍에 힘입어 뉴트로(New+retro), 영트로(Young+retro), 힙트로(Hip+retro), 빈트로(Vintage+retro))라는 신조어까지 생겨났다.
먼저 레트로란 무엇인가? 과거의 모양, 정치, 사상, 제도, 풍습 따위로 돌아가거나 그것을 본보기로 삼아 그대로 좇아 하려는 것을 통틀어 이르는 말이라고 국어사전은 정의하고 있다.
3040세대들에게는 옛것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고 1020세대들에게는 경험해 보지 못한 옛것에 대한 새로운 즐거움을 안겨주는 레트로. 그 열풍은 도대체 어디서부터 와 어디로 가는 것일까?
2022년 대표적인 레트로 아이템으로 성공을 거둔 것은 포켓몬빵이다. 많은 사람들은 띠부띠부씰을 구하기 위해 편의점을 사냥하듯 찾아 나섰고 수요와 공급의 원칙에 따라 띠부띠부씰은 빵값보다 비싼 몸값을 자랑했다. 또한 올해 초 개봉한 ‘더 퍼스트 슬램덩크’와 ‘타이타닉’이 극장가를 강타하며 거센 레트로의 인기를 증명했다.
잊혀진 줄 알았던 마니아들의 전유물이라 생각했던 LP시장에 대한 수요도 최근 들어 살아났다. 우스갯소리로 턴테이블이 없어도 LP는산다는 말이 나왔다. 기성 가수들도 한정판 LP를 비롯해 다양한 기념음반으로 LP를 제작하고 있다.
1987년 이후 처음으로 LP판매량이 CD판매량을 넘어섰다고 한다. 이렇듯 레트로 열풍은 단순히 기업의 마케팅용으로 쓰이는 것뿐 아니라 레트로라는 커다란 문화 콘텐츠를 만들어내며 우리 사회 전반에 걸쳐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 거센 열풍이 어디까지 이어져 있는지 찾아가 보자.
핼매니얼 입맛을 사로잡은 이웃집통통이
‘약겟팅’이라는 단어를 들어보았다면 당신을 MZ세대라고 명명하겠다. 무슨 이야기인가 하면 바로 약과 이야기이다. 인기 있는 콘서트 티켓만큼 약과를 구하기 힘들다고 해서 약겟팅(약과+티켓팅)이라는 단어까지 만들어졌다. 어르신들의 간식이라 여겨졌던 약과의 눈부신 도약이다.
최근 ‘핼미니얼(할머니+밀레니얼) 디저트’가 인기 검색어로 떠올랐는데 그 중심에 약과가 있다. 약과를 주 재료로 약과쿠키, 약과도넛, 약과마카롱 등 다양한 디저트 메뉴가 나오며 뉴트로의 대세주자로 등극했다.
지난 3월 CU는 압구정에 위치하고 있는 베이커리카페 이웃집통통이와 손을 잡고 ‘이웃집 통통이 약과쿠키’를 출시했다. 10만 개의 약과쿠키를 한 달 물량으로 준비했는데 단 5일만에 초도 물량이 동이나 버렸다. 인기가 있을 거라 예상은 했지만 예상치를 훨씬 웃도는 결과였다. 이에 약과를 구하기 위해 강원도 산골짜기까지 찾아 나서게 되었다. 상상이나 했던일인가?
이웃집통통이의 박현정 대표는 올해 초 설을 맞아 매장 내 약과쿠키를 처음으로 출시했다고 한다. 기존 쿠키 반죽에 약과를 얹었는데 그게 너무 맛있었고 불티나게 팔려나가기 시작해 시즌 메뉴가 아니라 고정 메뉴로까지 이어졌다. 그러던 중 CU 쪽에서 약과쿠키 협업 제안을 받고 대박을 터뜨렸다.
이웃집통통이가 처음 문을 연 건 2017년도이다. 시작은 온라인 택배였다. 단순히 마카롱을 많이 먹고 싶었던 박현정 대표는 베이킹 클래스를 통해 우연히 베이킹을 시작했다고 한다.
베이킹 클래스마다 별다를 바 없이 비슷비슷한 레시피를 가르쳐주길래 직접 외국 서적을 찾아 뒤져보며 다양한 시도를 했던 것이 이웃집통통이가 성공할 수 있었던 요인이었다고 밝혔다. 현재 매장에선 소금빵과 구움과자들 또한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다. 바삭한 피낭시에가 가장 인기 있는 품목이다.
4월 말엔 해태와 협업해 구운감자슬림을 출시할 예정이다. 이웃집통통이의 시그니처 메뉴인 명란소금빵의 맛을 입혀 통통이랑 대비되는 이미지로 가져가는 것이 또 하나의 재미이다.
적당함의 미학, 적당

소위 옛날 간식이라고 불리던 양갱, 모나카 등을 고급스럽게 재해석해 메인 디저트로 사랑 받고 있는 곳, 을지로 카페 적당을 찾았다.
빌딩 안 1층 로비, 아치형 입구를 따라 들어가면 고즈넉한 분위기에 적당을 만날 수 있다. 카페 한가운데 자리 잡은 긴 테이블에선 작은 물줄기가 졸졸 물소리를 내며 감성을 더해주고 있다. 을지로에 있는 핫한 카페들이 다소 소란스러운 분위기인 반면 카페 적당은 차분하면서도 모던한 인테리어에 적당한 소음이 편안한 분위기를 만들고 있었다.

“적당은 팥 전문 브랜드로 을지로에 위치해 수많은 사람들에게 적당만의 힐링을 주는 곳이다. 달근한 팥을 쑤고, 따스한 찻물을 우려 적당한 찰나를 빚는 곳. 전통적인 동양의 다과류를 서양의 디저트처럼 식후 또는 차와 곁들이는 간식으로 즐길 수 있게 만들었다.”고 적당의 김태형 대표는 소개한다.

또 현재의 핼미니얼 트랜드에 대해 “기존에 유행했던 도넛이나 케이크, 베이글 등 디저트 자체가 주목 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흐름으로 자리 잡고 있는 분위기라 생각된다. 그래서 금방 끓어오르고 식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이어 나가는 분위기 같아서 적당도 함께 영향을 받고 있다는 같다. 적당이 그 흐름을 유도하고 이끌고 나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표이다.”

현재 적당은 2호점을 기획하고 있으며 형태는 조금 다르지만 더 깊고 좋은, 브랜드적으로 다양한 모습을 보일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대표 메뉴로는 밤양갱과 적당 모나카, 팥차, 팥라떼가 있다. 이 밖에도 약과 모나카, 백설기 앙버터, 보늬밤 등 적당에서만 만날 수 있는 다양한 디저트들과 시즌 메뉴들을 선보이고 있다.
힙지로의 대표적인 와인바 평균율

을지로는 여전히 뒷골목 같은 이미지이다. 흥했던 시절의 흔적은 세월을 따라 초라하게 변모했고 뭔가 우범지대 같은 느낌마저 든다. 그런 을지로가 이제 복고 하면 빠질 수 없는 레트로의 성지로 거듭났다. 번듯한 간판도 없는 카페와 맛집들을 찾아오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시간이 멈춘 듯한 공간에서 보물찾기를 하는 매력이 있기 때문이다.
평균율 역시 마찬가지다. 을지로의 어느 골목 3층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철문 하나를 만나게 된다. 그 철문을 조심스럽게 열고 들어가면 LP들이 한쪽 벽면에 가득 들어차 있고 공간을 채우고 있는 음악 사이로 나지막이 들리는 지지직 소리가 LP바임을 직감하게 한다.

2018년 4월 문을 연 평균율은 오후 5시부터 영업을 시작한다. Bar인 걸 감안하면 조금 천천히 손님이 들어오지 않을까 생각하지만 오산이다. 오픈과 동시에 사람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들어온다. 그만큼 인기가 높은 곳이다.

특히 3층에서 바라보는 창밖 풍경이 평균율의 킬 포인트다. 창문 너머 들어오는 채광과 초록빛의 나무가 주는 운치는 평균율만이 가질 수 있는 분위기다. 레트로의 인기로 많은 LP바가 생겨나고 있지만 역시 을지로가 가지고 있는 감성에 비할 바는 못 되는 거 같다. 듣고 싶은 곡을 신청하고 와인 한잔을 기울이며 즐길 수 있는 음악이 있는 곳. 이 곳이 무릉도원이다.
Micooksik 느낌 폴폴 나는 미국식

신당동 하면 생각 나는 건 떡볶이타운 정도였다. 그런 신당동이 최근 ‘힙당동’이라는 애칭과 함께 주목받는 상권으로 변모했다. 차를 타고 신당동 도로를 지나치며 누군가 이야기한다.
“어머, 저 집은 옥상에서 삼겹살을 구워 먹는 거야? 캠핑 온 기분 나겠다.” 그렇게 곳곳에 힙한 식당과 카페들이 몇 년 사이 차곡차곡 들어차며 새로운 상권을 만들어가고 있는 신당동. 그 중에서도 버거 맛집이라고 꼽을 수 있는 미국식’을 찾았다.
미국식(味國食)은 Bust라는 단일메뉴로만 판매하고 있으며 버거와 토스트(쿠바 샌드위치 같은)의 합성어이다. 기존 버거와 차별점이 있다면 천연 발효종으로 구워 고소하고 바삭한 식감을 자랑한다. 번 속에 듬뿍 들어간 토시살 스테이크는 72시간 숙성시켜 부드러우면서도 담백한 맛이 일품이다.
기본으로 제공되는 트러플 마요소스와 사우어크라우트를 버거에 듬뿍 넣어 먹는 걸 추천하고 있다. 매콤한 맛을 원한다면 매장 내 구비된 스리라차 칠리소스도 추가해 입맛에 맞게 즐길 수 있다.

외부와 내부 인테리어는 이국적이면서도 미국식 레트로한 감성을 가득 담아 마치 미국 버거집에 방문한 느낌까지 안겨줘 맛이면 맛, 감성이면 감성 둘 다 만끽할 수 있는 곳이다.
솔직히 토시살 스테이크보단 바삭한 번의 맛에 다시 한번 방문해 보고 싶은 곳이다. 먹고 온 당일날 또 생각날 만큼 말이다. 미국식은 현재 방배점에 이어 신당점, 제주점, 압구정점까지 4개의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도구편집숍 정음철물

오래된 동네 골목길에 이질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간판의 정음전자. 간판만 보고 지나친다면 단순히 전파사겠거니 생각할 수 있지만 조금만 더 관심 있게 들여다보면 유리창 너머 보이는 힙한 공간을 발견할 수 있다. 바로 정음철물이다.
정음철물은 1988년 정음전파사라는 이름으로 처음 연남동에 문을 열었다. 철물도 팔고 오디오 수리도 하는 말 그대로 동네 전파사였다. 이후 2019년 철물편집숍으로 리뉴얼 오픈을 하고 현재는 도시재생을 하는 이승민 대표가 이어받아 건축자재를 판매하는 도구편집숍으로 운영되고 있다.
과거의 뼈대는 그대로 살려놓은 채 내부만 변화를 주는 방법으로 과거와 현재의 적절한 조화를 통해 레트로한 느낌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이승민 대표는 정음철물의 장점으로 ‘동네다움과 시간의 겹’을 꼽았다. “카피가 너무 쉬운 세상이다. 카피할 수 없는 것의 가치가 굉장히 크다고 생각된다. 누구도 따라 할 수 없는 게 시간이다. 시간을 카피할 수는 없다. 어쨌든 여기는 정음전자라는 간판을 달고 한 자리에서 30년을 운영해왔다. 그건 복제할 수 없다. 연남동에서 동네 분위기에 맞게 시간의 겹을 쌓아온 것이 정음철물이 가진 차별화라고 생각한다.”
“이 곳을 찾는 많은 사람들이 공간을 귀여워하고 따뜻한 공간으로 인식해 준다. 특히 남자 손님 같은 경우는 왜 이런 제품이 여기에서 판매되고 있지?라는 말과 함께 엄청 눈이 돌아간다. 서적도 판매를 하고 있는데 서적 큐레이션이 로컬 쪽에 집중돼 있다. 그런 점에서 다른 서점과 차별화가 돼 있다고 생각해 관심 있게 바라봐 주고 있다.”고 최한솔 매니저가 덧붙였다.

“정음에서는 일상을 변화시키는 도구를 제안합니다. 오늘은 어떤 도구를 사용해 볼까요?”라는 내부 글귀처럼 정음철물은 다양한 도구들로 가득하다. 독일정원용품 가데나를 수입해서 판매하고 있고, 서적과 문구류, 철물, 외부 수입제품도 있지만 동네에 있는 지역 크리에이터 분들의 상품을 전시하고 판매하기도 한다. 동네 꽃집의 식물도 판매하고 있다.
사소한 도구 하나가 기분전환이 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도구 하나하나를 선별했다. 터프한 철물점에 친절한 도구가 아닐 수 없다.
대중음악박물관 카페 음악다방

빠르게 변해가고 있는 세상, 매일 아침 일어나면 세상은 또 변화되고 새로운 정보들이 밀물처럼 밀려온다. 어디를 가나 모두가 스마트폰만을 응시한 채 바쁘게 살아간다. 모든 편의시설은 더 나아졌지만 과거보다 정신적으로 각박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현대인, 그런 현대인들에게 추억을 회상하는 낭만과 여유를 선사하고 싶다는 대중음악박물관 카페, ‘음악다방’.

음악다방은 “음악과 커피라는 매개체를 통해 추억과 여유를 더욱 풍성하고 소중하게 만들어주기 위해 대중음악박물관과 여러 브랜드들이 다양한 방면으로 고심하여 복합문화공간 음악다방을 기획했다.”고 밝힌다.
대중음악박물관의 시작은 경주 보문단지에서부터이다. 유충희 관장이 30년간 대중음악에 빠져 수집해온 다양한 음반과 음악자료, 진귀한 음향 기기를 가지고 경주에 첫 문을 열었다.

경주점에 이어 잠실 롯데월드몰점은 2호점으로 롯데월드몰 5층 복고거리 서울서울3080 쪽에 위치해 복잡한 도심 속에서 잠시 쉬어갈 수 있는 음악쉼터가 되고자 하는 바람이다.
외관에서부터 느껴지는 레트로한 분위기와 벽장 가득 진열된 레코드 테이프와 LP는 마치 영화 세트장 같은 이미지에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카페 내부에는 CDP를 설치해 개별적으로 음악 감상을 하며 커피를 즐길 수 있게 마련해 놓았다. 또 정기적인 한국대중음악사 기획전시와 함께 전 세계 유일의 웨스턴 일렉트릭 스피커를 통해 대중음악 감상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도시 속 바쁜 일상에 지친 이들에게 음악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추억여행으로 초대하고 있는 음악다방, 대중음악박물관. 그곳으로 추억의 음악과 함께 타임머신을 타고 떠나보지 않으련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