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피 지수가 9000선을 향해 질주하고 있다. 올해 초인 1월 2일 4214포인트로 출발한 지수는 6월 17일 현재 8864포인트를 기록했다. 등락률로 환산하면 110.34%. 반년 만에 두 배 이상 올랐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앞세운 반도체 슈퍼사이클이 국내 증시를 통째로 끌어올린 구도다. 이튿날엔 사상 처음으로 9000선의 새로운 고지에 올라서기도 했다.
문제는 이 축제의 장에서 한국 리테일 업종이 소외됐다는 점이다. 테넌트뉴스가 국내 유통·패션·뷰티·식품 주요 상장사 87곳을 전수 분석한 결과, 연초 대비 주가가 오른 종목은 30개에 그쳤다. 나머지 57개는 오히려 뒷걸음질 쳤다. 그렇다면 주가가 오른 기업과 그렇지 않은 기업의 차이는 무엇이었을까.

먼저 코스피 지수보다 높은 상승률을 보인 종목부터 살펴보자. 바로 신세계다. 신세계는 올해 1월 2일 시가 24만 7000원에서 출발해 6월 17일 종가 75만 3000원으로 마감했다. 등락률 204.86%. 코스피 상승률의 거의 두 배를 기록했다. 롯데쇼핑도 같은 기간 7만 2500원에서 20만 3500원으로 180.69% 뛰었다. 현대백화점은 8만 8600원에서 20만 7000원으로 133.63% 올랐다. 백화점 ‘빅3’가 나란히 역대급 상승장을 보인 코스피를 압도한 셈이다.
무엇이 이 세 회사를 동반 급등시켰을까. 우선 실적이다. 코스피 상승이 만들어낸 ‘자산 효과’가 명품 소비로 직결됐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주가가 폭등하고 반도체 업계 성과급이 쏟아지면서, 그 돈이 백화점 명품 매장으로 흘러들었다. 신세계는 올 1분기 백화점 영업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30% 이상 늘어 역대 최대 실적을 갈아치웠고, 전국 점포 명품 매출은 29.8% 증가했다. 롯데쇼핑도 1분기 국내 백화점 기존점 성장률 8%, 외국인 매출은 37%나 늘었다.

증시 활황에 따른 소비 자신감 회복이 고가품 소비로 이어진 것은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다. 증권가에서는 이른바 ‘역자산 효과의 해소’라고 표현한다. 수년간 부동산·주식 자산가치 하락에 짓눌려 있던 소비 심리가 증시 급등을 계기로 한꺼번에 풀렸다는 분석이다. 중국인 관광객 회복이라는 변수도 힘을 보탰다. 한중 관계 개선 기류 속에 면세 및 백화점 외국인 매출이 가파르게 반등하면서, 백화점 3사 모두 외국인 소비 증가를 1분기 실적 호조의 핵심 요인으로 꼽았다.
여기에 부동산 개발 기대감이 겹쳤다. 신세계의 경우 자회사 신세계센트럴시티가 보유한 서울 반포동 고속버스터미널 부지의 복합개발 계획이 가시화되면서 주가 재평가가 이뤄졌다. 지하철 3·7·9호선이 교차하는 서울 강남의 관문에 60층 이상 빌딩 6개 동을 올리는 ‘미래형 융합 교류거점’ 계획이다.
시장은 신세계의 기업가치 평가 기준을 백화점 본업 실적에서 부동산 잠재력으로 교체했다. 이마트는 매출 기준으로 신세계보다 4배 이상 크지만, ㈜신세계에 시가총액 1위 자리를 내준 것도 이 같은 흐름의 결과다. 이마트 역시 자회사 신세계프라퍼티가 주도하는 동서울터미널 개발과 화성 국제테마파크(총사업비 10조원) 프로젝트가 향후 주가 재평가의 근거로 거론된다.

◇ 애경산업, 성장 모멘텀을 보여주지 못하며 증시 활황서 소외
뷰티 업종의 희비 갈림은 더욱 극적이다. 단순히 ‘오른 곳과 떨어진 곳’을 구분할 일이 아니다. 사업 모델의 구조 자체가 주가의 운명을 갈랐다. 일단 승자는 K-뷰티 수출 호황의 최대 수혜를 입은 ODM(제조자 개발 생산) 기업들이다. 코스맥스엔비티가 올해 초와 비교해 주가가 94.0% 급등했고, 한국콜마(42.35%), 코스맥스비티아이(32.72%)가 뒤를 이었다.
에이피알 역시 자체 브랜드 ‘메디큐브’를 앞세워 미국, 일본, 동남아 등 글로벌 직진출에 성공하며 76.84% 뛰었다. 글로벌 시장 공략에 성공한 이들이 호실적을 내놓으며 기업가치를 끌어올렸다. 단순 임가공 단계를 넘어 자체 IP(지식재산)와 독자적인 유통 채널을 확보한 기업에 자금이 몰리는 흐름이다.
반면 K-뷰티 전통의 양대 산맥 아모레퍼시픽(-8.03%)과 LG생활건강(-7.35%)의 주가 흐름은 고전을 면치 못했다. 아모레퍼시픽홀딩스(아모레G)는 -10.61%로 하락 폭이 더 컸다. 코스피가 두 배 이상 오르는 상승장 속에서 두 거두의 주가는 거꾸로 달린 셈이다. 중국 의존 구조에서 벗어나는 속도가 더딘 데다, 채널 재편 과정에서도 ODM 중심의 신흥 강자들에게 주도권을 내줬다는 시장의 냉정한 평가가 작용했다.

중소 뷰티 브랜드의 추락도 가팔랐다. 클리오(-18.27%), 토니모리(-33.13%), 코리아나(-34.89%) 등이 올해 초와 비교해 주가가 급락했다. 글로벌 확장 속도가 상대적으로 더딘 기업들은 시장의 외면을 받는다는 사실을 수치로 증명했다.
에이블씨엔씨(+3.82%), 코스맥스(+3.62%), 코스메카코리아(+5.26%) 등이 그나마 플러스 수익률을 유지했으나 지수 상승률과 견줘 보면 사실상 제자리걸음이나 마찬가지였다. 태광그룹에서 새 출발한 애경산업(-6.77%) 역시 성장 모멘텀을 보여주지 못하며 증시 활황에서 소외됐다.
패션 업종으로 시선을 돌려도 양극화의 골이 깊다. 코오롱인더(58.53%), 신세계인터내셔날(40.55%), 한섬(36.88%), LF(30.48%), F&F(21.17%) 등은 선방했다. 코오롱인더는 화학 소재 부문 성장이 복합적으로 작용했고, LF는 자사 브랜드 포트폴리오 강화와 온라인 채널 재편이 효과를 냈다.

한섬은 ‘더한섬닷컴’을 중심으로 한 디지털 전환과 함께 백화점 후광 효과를 흡수했다. 백화점 명품 소비 증가라는 순풍이 프리미엄 패션 브랜드로 이어진 결과다. F&F는 MLB와 디스커버리 등 브랜드의 아시아 확장이 주가를 지탱했다. 신세계인터내셔날 역시 럭셔리 시장의 성장 기대감으로 주가가 40.55% 상승했다.
반면 주가가 하락한 종목도 있었다. 수출 중심 OEM 기업인 영원무역(-2.44%)과 영원무역홀딩스(-3.50%)는 글로벌 수요 둔화와 환율 변수에 발목이 잡혀 소폭 하락했고, 신원은 -24.74%로 미끄러졌다.
진짜 타격은 중저가 내수 패션 기업들이 입었다. 좋은사람들(-44.52%), 형지글로벌(-54.89%), 형지엘리트(-58.66%), 형지I&C(-63.60%)의 성적표는 처참했다. 형지그룹 계열 3사의 주가가 일제히 반토막 이하로 추락한 건 소비 양극화가 심화된 탓이 크다.

◇ GS리테일, BGF리테일, 이마트…한 자릿수에서 20% 안팎 상승에 그쳐
편의점과 마트 계열은 실적 개선에도 불구하고 시장의 냉담한 시선을 받았다. GS리테일(+18.91%), BGF리테일(+14.50%), 이마트(+9.35%), BGF(+8.42%) 등은 한 자릿수에서 20% 안팎의 상승에 그쳤다. GS리테일의 1분기 영업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39.4% 늘어나는 등 실적 자체는 나쁘지 않았으나, ‘적당히 괜찮은 실적’ 수준으로는 AI와 반도체로 쏠린 자금을 유인하기에 역부족이었다.
오프라인 가전 유통의 구조적 침체를 겪는 롯데하이마트(-10.60%)와 물류 산업 경쟁이 치열해진 CJ대한통운(-10.47%) 역시 하락세를 면치 못했다. 확실한 성장 스토리가 없으면 투자자들로부터 주목받기 어렵다는 유통 업계의 방증이다.
반면 홈쇼핑과 면세점은 뜻밖의 선전을 펼쳤다. 현대홈쇼핑이 51.45% 급등한 것은 이번 분석에서 가장 의외의 결과 중 하나다. TV 시청자 감소와 송출 수수료 압박으로 사양 업종 취급을 받아왔으나, T커머스 전환과 디지털 채널 확장으로 ‘최악은 지났다’는 인식이 퍼지며 저평가된 주가를 끌어올렸다. 호텔신라(+29.60%) 역시 중국인 관광객 회복에 따른 면세 매출 반등이 주가를 받쳤다. 다만 고환율 기조로 면세 가격 메리트가 줄어들면서 코스피 상승률과 비교하면 여전히 뒤처진 성적을 남겼다.

식품 업종은 리테일 섹터 중에서도 대체로 부진한 흐름을 보였다. 코스피가 연초 대비 110% 오르는 동안 분석 대상 45개 식품 상장사 중 플러스를 기록한 곳은 오리온홀딩스(+27.85%), 오리온(+27.81%), 이지바이오(+13.25%), 현대그린푸드(+12.04%), 하림지주(+4.33%), 농심홀딩스(+3.76%) 등 단 6곳에 불과했다.
나머지 39개 종목은 모두 하락하며 코스닥지수 연간 상승률(11.51%)에도 미치지 못했다. 식품 업종 최상위에 오른 오리온은 중국, 베트남, 러시아 등 해외 비중이 큰 수출 기반 구조 덕에 내수 침체의 충격을 비껴갔다. 반면 내수 의존도가 높았던 크라운해태홀딩스(-12.35%)와 해태제과식품(-12.39%)은 두 자릿수 하락을 기록했다.
라면 업종의 명암도 엇갈려 삼양식품(-6.99%)과 농심(-14.91%)은 동반 하락했다. 삼양식품은 지난해 급등에 따른 숨 고르기 국면에 들어갔고, 농심은 해외 사업 속도가 시장 기대치를 밑돌며 낙폭이 더 깊었다. 대형 식품 종합 기업들의 성적표에도 일제히 빨간불이 켜졌다. CJ제일제당(-5.14%), 대상(-12.40%), 오뚜기(-14.03%), 삼양사(-8.23%), 풀무원(-22.87%), 롯데웰푸드(-8.46%) 등 업종 선두주자들이 예외 없이 무너졌다.
이번 분석을 관통하는 핵심은 자산 가치와 해외 시장을 품은 ‘선택받은 소수 종목’만이 시장의 시선을 붙잡았을 뿐, 내수와 중간 지대에 갇힌 대다수 기업은 철저히 외면받았다는 점이다. 코스피 1만 시대를 향한 질주가 계속될수록 이 격차는 더 벌어질 가능성이 크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리테일 업종 전반에 온기가 돌기 위해서는 단순한 지수의 상승을 넘어, 소비 현장의 공기가 달라지는 실질적인 내수 회복이 선행돼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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