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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시리즈] Creator Interview – ‘안경을 살리는 사람’ 성빛나 안경사

동묘 한구석엔 누군가 버리고 간 안경이 무덤처럼 쌓인 곳이 있어요. 다들 그 앞을 그냥 지나치는데, 그는 멀찍이 서서 흐린 눈을 하고 한참을 들여다봅니다. 그러다 몇 가지 낡은 안경들을 뭉탱이로 집고서는 사장님께 5천원을 건네죠.

천원짜리 낡은 안경들이지만 그는 닦고 광을 내며 렌즈를 갈아 끼워 안경을 다시 살려내요. 수천만 조회수를 기록한 ‘안경 크리에이터 성빛나 안경사 살리기’는 그렇게 시작됐습니다. 금속과 가죽을 거쳐 안경에 닿았고, 무엇보다 남에게 뭔가 해주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했어요. 인사동에서 수제 나무 안경 브랜드 ‘사가와후지이’ 매장을 운영하는 성빛나 사장님에게 물었어요. 안경을 살린 기분은 어떤지.

Q. 이젠 손님들이 연예인 보듯 하겠어요. 오늘도 알아보신 손님이 있었나요?
기웃기웃하신 분들은 많았던 것 같아요. 아, 저 때문은 아니고요.(웃음) 인터뷰 직전에 먼 지방에서 제 릴스를 보고 찾아오신 모녀분이 계셨어요. 제 콘텐츠를 보고 나무 안경에 빠져서 그 먼 길을 달려오셨더라고요. 이런 맛에 크리에이터도 하고 안경사도 하는 것 같아요. 그러면서 오늘도 ‘뭘 더 서비스로 얹어드리지’ 고민하는 저를 보면서, ‘아, 장사는 글렀다’ 싶기도 했고요. (웃음)

Q. 팔로워가 2.6만이에요. 솔직히 이런 안경사, 본 적이 없거든요.
브랜드를 알리려던 계정이 이렇게 클 줄은 저도 몰랐어요. 결국 꾸준함이 빛을 본 것 같아요. 혼자 웃고 떠들던 1년이 있었는데, 점점 팬분들이 생기고 보고 찾아오시는 분들을 보니까 신기한 거예요. 이렇게 하는 안경사가 없더라고요. ‘왜 다들 이걸 안 하지’ 싶었어요. 사실 저는 크리에이터로 먼저 시작해서,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안경사 자격증까지 따게 됐어요. 정통으로 안경사부터 했으면 오히려 이렇게 못 했을 것 같아요.

Q. 그 수천만 조회수를 만든 ‘안경 살리기’ 콘텐츠는 어떻게 시작된 거예요?
외국 계정 중에 시장에서 안경을 사다가 렌즈를 끼우고 선글라스로 만드는 걸 우연히 봤어요. 너무 재밌게 봤고, ‘이건 나만 할 수 있잖아?, 아 이거다’ 싶었죠. 동묘에 그런 안경 무덤이 있다길래 곧장 가봐야겠다 했고요. 국내에서 이걸 콘텐츠화 시킨 건 제가 처음이었어요. 올리자마자 반응이 여기저기 퍼지는 걸 보면서 ‘제 생각이 들어맞았구나’ 싶었죠.

Q. 1분 남짓한 ‘안경 살리기’ 영상이 남녀노소 안경사들에게 바람을 불러일으켰어요. 해당 콘텐츠가 사랑받을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신선함인 것 같아요. 많은 분들이 안경을 쓰면서도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는 모르시거든요. 그 과정이 일반인 분들 눈엔 너무 새롭게 와닿는 거죠. 안경사인 저조차도 너무 신선했거든요. 거기에 비포 애프터가 확실한 콘텐츠예요.

죽어 있던 안경이 눈앞에서 살아나는 게 보이니까 저도 재밌고 보는 분들도 재밌고요. 다만, 그 1분 뒤엔 반나절이 있어요. 안경 살리는 작업만 한 시간 반, 동묘에서 고르고 편집까지 고려하면 반나절은 걸리거든요. 그리고 공정은 생각보다 지루해서 잘 덜어내고 다듬어서 재밌는 콘텐츠로 남기는 저의 노력도 분명 있답니다.(웃음)

Q. 열심히 만든 콘텐츠의 조회수가 저조하거나, 따라 하는 사람들 때문에 속상할 때도 있을 것 같아요.
처음엔 조회수에 되게 일희일비했어요. 근데 이제는 안 나오면 ‘아 이건 아니구나’ 하고 다른 걸 잘 해보자, 그래요. 따라 하는 분들도 많아졌고요. 똑같이 하니까 팔로워가 좀 나뉘더라고요. 근데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해요. 저도 다른 걸 참고해서 시작한 거고, 한번 올린 이상 그게 온전히 제 것도 아니니까요. 저는 그냥 꾸준함으로 보여주려고요. 결국 오래 남는 사람이 이기는 거잖아요.

Q. ‘죽은 사람이 쓰던 안경이면 어쩌냐’는 댓글도 있었다면서요.
아요. 근데 오히려 그렇게 보시는 분은 소수고, ‘처음엔 좀 그랬는데 깨끗하게 닦고 폴리싱 하는 걸 보니 괜찮네’ 라고 만족하시는 분이 훨씬 많아요. 빈티지 옷도 입는데 빈티지 안경이라고 다를 거 없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지금 유행하는 제품이 아닌, 수십 년 전 그 시절에 유행했던 빈티지 안경이라는 점이 큰 매력 아닐까요?

Q. 크리에이터로 먼저 알려졌지만, 정작 누가 직업을 물으면 안경사라고 하신다고요.
당연히 안경사죠. 저는 아직 배울 게 많은 신입 안경사이기도 하고, 크리에이터로서의 실력은 부족할지 몰라도 안경사라는 타이틀이 훨씬 든든하고 좋아요. 안경사는 안경광학과를 졸업해야 하고 면허도 따야 하거든요. 쉽게 비유하면 운전면허증 같은 거지만, 그보다 훨씬 전문적이고 오래오래 쓸 수 있는 기술직이에요. 나이가 들어도 어느 안경원에서든 일할 수 있으니까, 미래가 보장돼 있는 셈이죠. 다만 아직은 신입이라 배울 게 훨씬 많아요. 특히 검안은 경험이 부족해서, 얼른 더 성장하고 싶다는 생각이에요.

Q. 안경사라는 안정적인 직업이라서가 아니라, 안경 그 자체에 마음이 기운 이유가 있을 것 같아요.
처음엔 그저 손으로 뭔가 만드는 게 좋았어요. 그래서 금속공예를 전공하고 가죽공예에도 발을 들였었는데, 현실적으로 생활을 영위하기에는 수익이 너무 적었어요. 그러다 우연히 수제 안경 만드는 곳을 찾다가 ‘사가와후지이’에 입사했죠. 처음엔 안경 수리를 도맡았는데, 이게 너무 재밌는 거예요. 안경은 우리가 매일 쓰는 도구잖아요.

그걸 제 손으로 만들어 쓴다는 게 새로웠고, 모양도 무궁무진하니까요. 길에서 스쳐 가는 사람들의 안경이, 어쩌면 제 손을 먼저 스쳐 갔을 수도 있는 거고요. 손으로 만드는 걸 좋아하는 것도 있지만, 결국 저를 이곳까지 데려온 건 안경으로 누군가에게 베풀 때의 보람, 그리고 그 안경을 온전히 제 것으로 만드는 재미였어요.

Q. 안경을 접하고 매장을 운영하면서 가장 달라진 자신의 모습은 무엇인가요?
제가 베푸는 걸 엄청 좋아한다는 걸 깨달았어요. 베푸는 방식이야 마음을 쓰거나 선물을 하거나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런 건 누군가에겐 부담이 될 수 있잖아요. 근데 저한텐 안경이 부담 없이 베풀 수 있는 수단이 된 거죠. “안경 고쳐줄게, 내가 이거 하는 일이니까” 하면 되거든요. 그러다 보니 매장에 남는 게 없을 정도예요. 아까 말한 것처럼, 장사는 글렀죠.(웃음)

Q. 그러고 보면 사장님한테 안경은 단순히 파는 물건은 아닌 것 같아요. 지금의 사장님한테 안경은 어떤 존재예요?
제게 안경은 기분과도 같아요. 매일 기분에 따라 안경이 바뀌거든요. 차분하고 싶은 날은 볼드한 뿔테에 어두운 컬러를 쓰고, 좀 띄우고 싶은 날은 밝은 테를 써요. 저는 원래 안경을 썼던 사람이 아님에도 기분에 따라 다양하게 연출할 수 있는 게 안경의 매력이더라고요. 그리고 크리에이터로 활동하면서 자연스럽게 이것저것 써보다 보니까, 안경 하나에 입는 옷도 달라지고 기분도 달라지는 걸 느꼈어요. 어쩌면 저는 안경사지만 안경은 시력 보조를 돕는 도구보단 패션 아이템 쪽에 더 가까운 것 같아요.

Q. 안경도 물론 좋지만 안경사라는 일을 평생 하고 싶다고 느꼈던 뜻깊은 순간도 있었을 것 같아요.
어느날 아버지가 돌아가신 분이 오셨어요. 아버지가 쓰시던 안경을 다시 깨끗하게 쓰고 싶다고요. 폴리싱 하고 얼굴에 맞춰 피팅해 드렸는데, 너무 좋아하시는 거예요. 저는 그냥 낡은 안경 하나라고 생각했는데, 그분한텐 아버지가 남긴 얼굴 같은 거였던 거죠. 그때 알았어요. 안경이 도수만 맞추는 물건이 아니구나. 누군가의 시간과 추억을 대신 살리는 일이기도 하구나, 싶었죠.

Q. 뜻깊은 순간의 연장선으로 안경을 만들거나 수리하면서 가장 짜릿한 순간은 언제예요?
렌즈를 깎을 때요. 프레임에 맞게 너무 많이도, 너무 적게 깎아도 안 되거든요. 그걸 한 번에 딱 맞췄을 때 쾌감이 있어요. 그리고 작은 나사를 단번에 끼워서 조립했을 때? 이럴 때 쾌감을 느끼고 무엇보다 안경이 완성됐을 때 손님이 기뻐하시면 그게 제일 좋죠. 물론 스스로 실망스러웠던 실수도 있었어요. 렌즈를 빼다가 유리 렌즈인 줄 모르고 그냥 깨버린 적이 있거든요. 손도 다치고 배상도 해드리고. 이때도 다른 의미로 짜릿했네요.

Q. 뛰어난 기술도 중요하지만 안경을 보는 안목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동묘 안경 무덤에서 좋은 안경을 골라내는 비결이 있다면 알려주세요.
멀리서 봐야 해요. 가까이서 찾으면 오히려 안 보이고, 멀찍이 흐린 눈을 하고 봐야 좋은 게 떠올라요. 저만의 방법이에요. 그리고 안경을 고를 때 몇 가지 확인하는 요소가 있어요. 뿔테 같은 경우에는 다리에 철심이 박혀 있는지 꼭 확인해요. 있으면 그건 아세테이트라는 고급 소재로 만든 안경이거든요.

그건 광을 내면 예뻐져요. 메탈은 나사랑 코패드가 있는지 보시고, 하금테 같은 경우에는 렌즈가 빠지는 게 아니라 아예 붙어있는 경우가 있어요. 이런 건 리사이클링이 어려워서 꼭 나사를 풀어서 렌즈를 뺄 수 있는지 확인해 보셔야 해요.

Q. 그렇게 리사이클링한 안경들도 매력있지만 수제 나무 안경 브랜드 ‘사가와후지이’의 안경사로서 나무라는 소재가 어떤 매력이 있는지도 소개해 주세요.
일단 가벼워요. 뿔테보다 훨씬요. 그리고 가죽처럼 시간이 지날수록 빈티지한 매력이 돋보이는 것 또한 큰 장점이죠. 쓸수록 나만의 것이 되는 거니까요. 메탈 알러지 있는 분들도 편하게 쓰시고요. 열대지방 하드우드라 튼튼하고, 오일 코팅이 돼서 생활방수도 돼요. 강아지가 물어뜯어도 제가 다리를 갈아드리니까 AS 걱정도 없고요. 인사동에 오시면 제가 잘 골라드려요. 다들 방문하셔서 수제 나무 안경 매력에 빠져보세요!

Q. 안경에 대한 애정뿐 아니라 실력까지 겸비해야 되는 어려운 직업인 것 같아요. 결국 안경사라는 건 본인에게 어떤 일인가요?
저는 지금 정말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어요. 며칠 전에 ‘좋아하는 일은 돈을 안 받고도 할 수 있는지 생각해 보라’는 글을 봤는데, 저는 이 일이 딱 그래요. 돈을 못 벌어도 할 수 있어요. 봉사하는 마음으로요. 그래서 가족처럼 손님을 대하는 마음이 가장 중요하고, 제 매장에 오는 손님이 돈을 낸다는 것도 잊을 만큼 편하게, 가족처럼 느끼게 해드리고 싶고요.

그리고 크리에이터 안경사라는 타이틀을 절대 가볍게 여기지 않고 저를 통해 안경에 대한 새로운 정보를 많은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어요. 누가 뭐라 부르든, 저는 ‘안경을 살리는 사람’이라는 칭호가 가장 마음에 들거든요.

Q. 마지막으로, 크리에이터 혹은 안경사를 꿈꾸는 사람들한테 한마디 부탁드려요.
도전하라고요. 장비가 없어서, 뭐가 안 돼서 못 한다는 건 다 핑계 같아요. 저도 온라인으로 수업 듣고 장학금 받으면서 안경광학과를 졸업했고, 면허는 작년에 땄어요. 늦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이 일은 죽을 때까지 할 것 같거든요. 좋아하는 걸, 지금 할 수 있는 방식으로 하면 되는 거예요. 길은 그렇게 생기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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