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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화점·다이소 역대급 호황 ‘K자형 소비 양극화’

‘중간’이 사라진 유통 지도…‘중간 계층’ 위축 방증

‘K자형 소비 현상’이 한국 유통산업을 뒤흔들고 있다. ‘K자형 소비 현상’이란 소득 분배의 불평등과 자산 양극화가 심화되면서 나타나는 소비 패턴의 양극화 구조를 뜻한다. 명품이나 초고가 상품을 소비하는 하이엔드 시장과 극단적 가성비를 추구하는 초저가 시장만 살아남고, 그 중간 영역은 급격히 붕괴하는 것이 특징이다. 고물가 장기화로 가계 실질소득이 제자리걸음을 걸으면서 적당한 가격과 적당한 품질을 무기로 삼던 중간 소비 시장이 무너지고 있는 셈이다.

현재 한국 유통 시장을 지배하는 건 백화점 중심의 명품과 다이소 중심의 1000원짜리 초저가 제품이다. 백화점과 다이소가 나란히 사상 최대 실적 폭죽을 터트리는 동안, 그 사이에 낀 애매한 중간 시장은 소리 없이 침식당하는 중이다. K자형 소비 현상이 유통 패러다임의 뉴노멀로 자리매김하게 된 배경에는 소득 양극화라는 차가운 경제적 현실이 자리 잡고 있다.

실제로 국가데이터처 가계금융복지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소득 상위 10% 가구의 연평균 소득은 전년보다 1304만 원 늘어난 2억 1051만 원을 기록하며 사상 처음으로 2억 원의 벽을 깨뜨렸다. 반면 소득 하위 10% 가구의 연평균 소득은 1019만 원으로 고작 65만 원 증가하는 데 그쳤다.

다이소몰 앱 월간 활성 사용자 수 추이. 2026년 2월 516만명으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사진 와이즈앱·리테일)

두 집단의 소득 격차는 2억 32만 원까지 벌어졌는데, 이는 2017년 관련 통계를 집계한 이래 최대치다. 대기업의 억대 성과급 잔치와 고소득층의 이자·배당 등 재산소득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사이 저소득층의 지갑은 갈수록 얇아지면서, 유통 시장을 양극단으로 찢어놓는 거대한 구조적 장벽을 만들어낸 셈이다.

소득 계층을 좀 더 촘촘하게 나누어 들여다보면 양극화의 민낯은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지난해 4분기 소득 4분위(상위 21~40%)와 5분위(상위 20%)의 소득은 직전 분기보다 각각 3%, 6.1% 증가한 반면, 3분위(상위 41~60%)와 2분위(하위 21~40%)는 각각 1.7%, 1.3% 늘어나는 데 머물렀다.

균등화 처분가능소득 기준 소득 5분위 배율은 5.59배로, 2021년(5.71배) 이후 4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배율이 높아졌다는 건 상·하위 소득 격차가 커져 분배가 악화했다는 의미다.

서울 중구 신세계백화점 본점 전경. 백화점 빅3는 올해 1분기 일제히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사진 신세계백화점)

집과 주식 가격이 급등하면서 자산 쏠림 현상도 심화됐다. 한국은행·금융감독원의 가계금융복지조사 결과 지난해 자산 최상위층의 순자산 점유율은 46.1%에 달해 2012년 통계 작성 이후 최고치를 찍었다. 소득뿐 아니라 자산 측면에서도 부가 한쪽으로 급격히 쏠리고 있다는 얘기다. 재계 관계자는 “중산층 이하 고객은 최저가 판매처로 몰리거나 소비 자체를 줄이면서 전형적인 K자형 소비 양극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은행 소비자동향조사에서도 이 간극은 뚜렷하다. 지난달 기준 소비지출전망CSI는 월 소득 100만 원 이하 가구에서 95를 기록했지만, 월 소득 500만 원 이상 가구에서는 111을 나타냈다. 기준선 100을 넘으면 향후 지출을 늘리겠다는 응답이 우세하다는 의미다.

쉽게 말해 저소득층은 지갑을 닫고, 고소득층만 지갑을 열고 있다는 얘기다. 이 수치는 단순한 심리 지표가 아니라 유통 채널의 흥망을 가르는 실질적 수요 신호이기도 하다. 올해 1분기 가계동향조사에서도 소득 양극화 격차는 6년 만에 가장 큰 폭으로 확대된 것으로 집계됐다. 4분기 소득 2분위와 3분위의 소비 지출은 각각 전년 동기 대비 -0.1%, 0.7%로 다른 분위보다 지출이 부진했다. 중간 소득 계층의 소비 여력이 실질적으로 위축되고 있다는 방증이다. 양극화는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점점 구조화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신세계백화점은 올해 1분기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55% 급증했다. (사진 신세계백화점)

◇ 백화점 ‘빅3’의 사상 최대 실적…롯데 47.1% 현대 39.7%, 신세계 30.7% 늘어
소득 상위층의 소비 여력 확대는 백화점 실적에 즉각 반영됐다. 국내 백화점 빅3는 올해 1분기 일제히 사상 최대 매출을 기록했다. 롯데백화점의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47.1% 증가했고, 현대백화점은 39.7%, 신세계백화점은 30.7% 늘었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올해 1~4월 백화점 누계 매출 증가율은 17.4%에 달했으며, 특히 4월 매출은 전년 대비 21.7% 증가하며 오프라인 유통 채널 가운데 가장 높은 성장률을 기록했다. 백화점의 점포당 매출은 26.1% 늘었고 구매 건수도 11.4% 증가했다. 매장을 찾는 고객 수와 객단가가 동시에 상승했다는 의미다.

백화점업계는 이 같은 실적의 배경으로 ‘부의 효과(Wealth Effect)’를 꼽는다. 코스피가 올해 들어 가파른 상승세를 이어가며 8700선을 넘어서는 등 증시 랠리가 이어지면서 주식 평가이익이 불어났고, 차익 실현에 나선 개인 투자자들의 소비 여력도 함께 확대됐다는 분석이다.

롯데백화점이 개최한 K-디저트 페어 행사장.백화점들은 체험형 콘텐츠로 고객 유입을 늘리고 있다. (사진 롯데백화점)

기업 실적 개선이 성과급과 임금 인상으로 이어지고, 이것이 다시 소비 확대로 연결되는 선순환 구조도 백화점 쪽에는 호재로 작용했다. 여기에 원화 약세와 중동 정세 불안에 따른 항공 유류할증료 부담 증가가 해외여행 수요를 위축시키면서, 그 소비가 국내 쇼핑 쪽으로 일부 이동한 것도 영향을 미쳤다. 소비 품목에도 변화가 감지된다. 코로나19 시기에 보상 소비의 상징이 명품 가방이었다면, 최근에는 고급 시계와 주얼리 수요가 두드러지게 늘고 있다.

국내 3대 백화점의 3월 하이주얼리 매출은 전년 동기보다 평균 59.6% 상승했다. 수백만 원에서 수억 원에 이르는 제품들이 일부 브랜드에서는 구매 대기가 생길 정도다. 업계에서는 워치·주얼리가 단순 소비재를 넘어 자산 성격을 지닌 상품으로 인식되고 있다고 본다. 가격 인상 가능성이 높고 중고 거래 시장도 활성화돼 있어, 투자 가치까지 고려하는 소비자들이 늘고 있다는 설명이다.

백화점 실적을 견인한 명품 브랜드들의 성적표를 들여다보면, 더 놀랍다. 세실 카바니스 루이비통모에헤네시(LVMH) CFO는 최근 1분기 컨퍼런스콜에서 “중동 전쟁과 경기 침체로 유럽과 일본을 비롯한 다른 아시아 국가의 매출이 감소했지만 한국 매출만은 유일하게 증가했다”고 밝혔다.

현대백화점이 선보인 프리미엄 쇼핑 앱 ‘HiHi’. 백화점업계는 온·오프라인을 연계한 고급 소비 경험 강화에 나서고 있다. (사진 현대백화점)

연 매출 800억 원 이상인 주요 명품 브랜드 한국법인 14곳의 지난해 총 매출도 9조 2700억 원으로 2024년(8조 5719억 원)보다 8.1% 늘었다. 전 세계적으로 명품 수요가 위축되는 추세와는 정반대의 흐름이다. 경기 불황과는 무관하게 사치재에 지갑을 여는 이른바 ‘베블런 효과(과시 욕구로 인해 가격이 비쌀수록 수요가 늘어나는 현상)’가 한국 시장에서 특히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백화점들은 이 기세를 이어가기 위해 명품 유치와 매장 대형화에 공격적으로 투자하고 있다. 롯데백화점 잠실점은 국내 최대 명품관 에비뉴엘을 중심으로 2년 연속 3조원 매출을 돌파했다. 롯데월드몰은 지난해만 60여 개 매장을 재편하고 연간 400회 팝업을 유치하며 젊은 세대의 ‘팝업 성지’로 자리 잡았다.

신세계 본점은 대대적인 리뉴얼을 단행한 뒤 1분기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55% 뛰었다. 지난해 4월부터 11월까지 본관의 70% 공간을 영업 중단한 채 리뉴얼을 진행했음에도 이 같은 성과를 냈다. 더 현대 서울은 오픈 이후 지난해까지 182개국 고객이 방문하며 서울 관광의 필수 코스로 정착했다. 쇼핑 이상의 K-컬처 체험 공간으로 포지셔닝에 성공했다는 평가다.

증권가에서는 이 호실적이 2분기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한 증권가 애널리스트는 “내수 소비경기 호조, 방한 외국인 증가 등에 힘입어 국내 백화점 중심의 실적 개선이 지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서울 명동역 인근 다이소 매장. 다이소는 지난해 매출 4조 5363억 원을 기록하며 4조원 클럽에 입성했다. (사진 다이소)

◇ 다이소·편의점 PB, 초저가 시장 팽창…다이소 지난해 매출 4조 5363억
이처럼 백화점 시장이 사치재로 달아오르는 사이, 일상 소비의 영역은 무조건 싼 것만 찾는 불황형 초저가 생태계로 급격히 재편되는 중이다. 다이소는 지난해 매출 4조 5363억 원, 영업이익 4424억 원을 기록하며 전년 대비 각각 14.3%, 19.2% 성장했다.

2023년 매출 3조원을 돌파한 지 불과 2년 만에 4조원 벽을 허문 것이다. 1997년 서울 강동구 천호동 1호점에서 출발한 다이소 매장은 현재 전국 1600여 개로 늘었다. 다이소 측은 “고물가로 인한 소비 양극화가 심화되는 가운데 가성비 중심의 합리적 소비가 확산된 것이 주효했다”고 설명했다.

다이소의 성장을 견인하는 진짜 무기는 5000원 이하의 가격표를 달고 쏟아지는 트렌디한 품절 상품들의 흥행이다. 5000원짜리 ‘리들샷’, 저소음 블루투스 키보드, 바람막이 등이 SNS를 통해 입소문을 타며 출시 직후 동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신상품을 온라인몰에 먼저 공개하는 전략을 구사하는데, ‘일시품절’ 소식이 알려지면서 소비자들을 온·오프라인으로 동시에 끌어들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신상품이 매월 600종 이상 쏟아지는 데다 오프라인 매장에서 경험한 ‘저렴하고 쓸만한 제품’이라는 신뢰가 만들어낸 결과”라고 분석했다. 다이소몰 앱의 월간활성사용자수는 2026년 2월 516만명으로 전년 동기 362만명 대비 42% 증가하며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부산 프리미엄 아울렛에 입점한 다이소 매장. 다이소는 고급 상권으로도 출점을 확대하고 있다. (사진 다이소)

특히 건강기능식품과 화장품을 소용량·초저가로 선보이면서 유통업계 전반에 파장을 일으켰다. 그간 식품 위주로 판매하던 편의점들도 이후 가성비를 앞세운 건강기능식품과 화장품을 주력 제품으로 선보이기 시작했고, 패션 플랫폼 무신사도 5000원 안팎의 초저가 뷰티 라인을 내놨다.

이마트도 상품 대부분을 5000원 이하로 구성한 ‘5K PRICE(오케이 프라이스)’를 출시했다. 다이소 한 곳의 행보가 유통업계 전체의 가격 전략을 재정렬하는 기준점이 되고 있다는 점에서 그 영향력은 매출 규모 이상이다.

올해 1분기 다이소의 화장품과 의류용품 구매액은 전년 동기 대비 각각 30%, 180% 증가했다. 단순한 ‘생활용품점’의 영역을 벗어나 패션·뷰티·헬스케어를 아우르는 생활 종합 플랫폼으로 진화하고 있다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과거 초저가 전략은 일회성 단순 가격 인하에 머물렀지만, 지금은 고물가 시대 소비를 자극하는 전략적 사업 모델”이라고 분석했다.

GS25가 출시한 프리미엄 아이스크림 신제품. 편의점에서도 초저가 PB와 고가 디저트가 동시에 잘 팔리는 양극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사진 GS리테일)

상황이 이렇다 보니 오프라인 대형 유통사들도 자존심을 버리고 ‘다이소식 초저가 균일가’ 모델을 필사적으로 이식하고 있다. 대량 구매로 단가를 극단적으로 낮춘 창고형 할인점과 가성비 전문점이 먼저 불황의 반사이익을 톡톡히 누린 건 이 때문이다. 이마트의 창고형 할인점 트레이더스는 올해 1분기 사상 처음으로 분기 매출 1조 원의 벽을 깨뜨렸고, 영업이익도 전년 동기 대비 12% 늘어난 478억 원을 거두었다. 초저가의 대명사인 노브랜드 역시 같은 기간 영업이익이 10% 증가하며 순항 중이다.

편의점 매대 역시 불황형 초저가 소비의 최전선으로 꼽힌다. 고물가 여파가 본격화된 올해, 주요 편의점의 가성비 상품 매출은 일제히 수직 상승했다. 흥미로운 점은 편의점이 초저가와 프리미엄을 동시에 끌어올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GS25의 프리미엄 아이스크림 매출은 수직 상승했다. 1000원짜리 과자와 고가 디저트가 같은 냉장 진열대 안에서 동시에 잘 팔리는 구조다. 필수 소비재 시장마저 저가와 고가 중심으로 양분되고 있다는 뜻이다.

GS25가 출시한 초저가 막걸리. 편의점 1000원 이하 PB 상품 매출은 올 들어 급증했다. (사진 GS리테일)

SPA 브랜드 시장도 초저가 트렌드의 수혜를 입었다. 지난해 주요 SPA 브랜드인 유니클로(1조 3500억 원), 탑텐(9000억 원), 스파오(6000억 원), 무신사스탠다드(4700억 원), 에잇세컨즈(3000억 원)의 합산 매출액은 3조원을 돌파했다. 디자인과 트렌드 반영 속도에서는 중간 가격대 브랜드와 경쟁하면서도, 가격에서는 압도적 우위를 점하는 구조가 굳혀지고 있다.

CJ올리브영도 초저가와 트렌드 소비의 교차점에서 독자적인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지난해 별도 기준 매출은 5조 8335억 원으로 전년보다 21.8% 증가했다. 영업이익도 7447억 원으로 22.5% 늘었다. 2021년 2조원에서 4년 만에 6조원에 육박하는 폭발적 성장이다.

외국인 관광객 수요 급증이 성장의 핵심이었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지난해 1월~11월 방한 외국인 구매 금액이 1조 원을 넘어섰으며, 외국인 고객이 전체 오프라인 매출의 28%를 차지했다. K-뷰티 열풍을 타고 중소·인디 브랜드의 유통 창구 역할까지 겸하면서, 올리브영은 단순 드럭스토어를 넘어 K-뷰티 생태계의 허브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서울 명동 유니클로 매장. 지난해 주요 SPA브랜드 합산 매출은 3조원을 돌파했다. (사진 유니클로)

◇ 반면 대형마트·홈쇼핑, 중간 시장의 붕괴…구조적 위기 직면
백화점과 다이소·편의점이 양 극단에서 성장하는 동안, 중간 가격대를 주력으로 삼아온 유통 채널은 구조적 위기에 직면해 있다. 대형마트가 대표적이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대형마트의 업태별 매출 비중은 지난해 9.8%로 사상 처음으로 10% 아래로 내려앉았다. 2021년 15.1%였던 비중이 4년 새 5%포인트 이상 쪼그라든 것이다. 올해 3월 기준으로는 이 수치가 8.1%까지 내려갔다. 반면 온라인 부문의 매출 비중은 2021년 52.1%에서 지난해 59%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3월 기준 온라인 비중은 60.6%에 달했다. 온라인 쇼핑이 급격히 늘어나면서 대형마트의 고객 트래픽이 이탈하고 있는 것이다.

점포 수 감소도 이 흐름을 가속화한다. 한국체인스토어협회에 따르면 이마트·롯데마트·홈플러스 등 대형마트 3사의 총 점포 수는 2020년 412개에서 지난해 386개로 5년 새 6.3% 감소했다. 문을 닫는 점포가 늘어나는 동시에 남은 점포에서도 고객을 잡아두기 어려워졌다.

이마트 왕십리점 내 초저가 편집숍 ‘와우샵’. 1000원부터 시작하는 균일가 전략으로 다이소 모델을 벤치마킹했다. (사진 이마트)

이에 대형마트들은 아예 매대 전체를 가성비 무기로 무장한 자체 브랜드(PB)로 채우며 전면전에 나섰다. 이마트는 1000원 단위 생활용품 ‘와우샵’과 5000원 이하 식품으로 구성한 ‘5K 프라이스(오케이 프라이스)’를 선보였다. 와우샵이란 명칭에는 ‘와우(WOW)’하고 놀랄 만한 가격의 상품을 선보인다는 의미가 담겼다.

롯데마트는 가성비를 극대화한 PB 브랜드 ‘오늘좋은’과 ‘요리하다’를 전면에 내세워 균일가 전략을 펴고 있다. 고물가에 타격이 큰 우유, 물티슈, 소스류 등 필수 소비재를 다이소급 가격대에 맞춰 내놓자 지갑이 얇아진 주부들의 선택이 쏟아졌다. 홈플러스 또한 초저가 PB인 ‘심플러스’를 앞세워 1000원대 스낵과 냉동식품, 음료, 위생용품을 파상 공세하듯 쏟아내고 있다. 마트 간판만 달았을 뿐, 사실상 골목마다 들어선 다이소의 가격 파괴 전략을 그대로 벤치마킹해 생존을 도모하고 있는 셈이다.

이처럼 겨우 버티고 있지만, 트래픽 자체의 감소라는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기엔 역부족이다. 대형마트의 위기는 단순히 경쟁 채널에 고객을 빼앗기는 차원을 넘어, 중간 가격대 쇼핑 행위 자체가 소비자 일상에서 사라지고 있다는 신호로 읽힌다.

GS25가 출시한 초저가 막걸리. 편의점 1000원 이하 PB 상품 매출은 올 들어 급증했다. (사진 GS리테일)

TV홈쇼핑도 중간 소비 붕괴의 직격탄을 맞고 있다. 중간 가격대 의류·생활용품을 주력으로 삼아온 홈쇼핑은 정작 그 카테고리의 고객들이 온라인 최저가 플랫폼이나 다이소로 옮겨가면서 취급고와 시청률이 동반 하락하는 악순환에 빠져들고 있다.

채널 자체를 보는 인구가 줄어드는 데다, 쿠팡·네이버쇼핑·티몬 등 온라인 플랫폼이 24시간 최저가 경쟁을 벌이고 있어 ‘방송 시간에 맞춰 구매 결정을 내려야 하는’ 홈쇼핑 특유의 긴박감도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40~50대 중산층 소비자를 핵심 고객으로 삼아왔던 홈쇼핑 모델이 K자형 소비 구조에서는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는 셈이다.

패션과 잡화, 그리고 준대형 유통 채널이 몰려 있는 중간 지대의 몰락은 훨씬 더 노골적이다. 마트 내 패션 매장이나 국내 중견 의류 브랜드들은 위아래로 동시에 얻어맞는 샌드위치 신세가 됐다. 일상적으로 입는 기본 의류는 가격 파괴를 앞세운 다이소나 SPA 브랜드로 향하고, 특별한 날을 위한 소비는 백화점 럭셔리 브랜드로 쏠리면서 이들의 설 자리가 완전히 사라진 것이다.

올리브영 광장마켓점 내부. CJ올리브영은 지난해 매출 5조 8335억원으로 K-뷰티 생태계의 핵심 허브로 자리매김했다. (사진 CJ올리브영)

가격 경쟁력도 없고 브랜드 프리미엄도 애매한, 이른바 중간 지향적 브랜드들은 매출과 고객 1인당 평균 구매액이 동시에 곤두박질치며 시장에서 빠르게 퇴출당하고 있다. 이 같은 고립 현상은 기업형 슈퍼마켓(SSM) 시장에서도 고스란히 재현된다. GS더프레시나 롯데슈퍼 같은 준대형 슈퍼마켓들은 대형마트와 골목 편의점 사이에서 완전히 길을 잃었다.

신선식품이나 대용량 제품을 살 때는 구색이 다양한 대형마트나 창고형 할인점으로 가고, 당장 필요한 생필품을 살 때는 집 앞 편의점의 초저가 자체 브랜드 상품을 찾기 때문이다. 규모의 경제를 앞세운 마트에도 밀리고 접근성을 무기로 삼은 편의점에도 치이면서, 어설픈 중간 규모의 유통 채널들은 포지셔닝의 한계에 부딪혀 고사 위기에 처해 있다.

유통 시장의 지형은 이미 바뀌었다. 백화점 3사는 명품을 앞세워 역대 최대 실적을 경신하고 있고, 다이소는 4조원 클럽에 입성하며 생활 전반으로 영역을 넓히고 있다. 그 사이에서 고객을 잃어가는 채널들은 지금 각자의 방식으로 생존 전략을 모색 중이다. 하지만 소비자들의 지갑이 두 방향으로 쪼개진 이상, ‘중간’이 돌아올 자리는 좁아졌다. ‘적당한 가격에 적당한 품질’의 시대는 저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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