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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남겨진 것들의 가치’…리이, 27 SS 서울패션위크 첫 문을 열다

디자이너 브랜드 리이(RE RHEE)가 2027 S/S 서울패션위크의 오프닝을 맡았다. 9월 1일 오전 11시 30분 DDP 아트홀 1관, 이준복·주현정 대표가 이끄는 리이가 시즌의 첫 무대에서 꺼내 든 주제는 ‘남겨진 것들의 가치’다. 시간이 지나며 흐릿해지고 낡아가는 것들 속에서 오히려 또렷해지는 아름다움을 컬렉션에 담았다.

쇼는 무용으로 서막을 올렸다. 현대무용을 기반으로 모델·배우까지 영역을 넓혀온 퍼포머 김동우가 3분간의 솔로 무대로 문을 열었고, 춤선을 따라 유연하게 흐르는 실루엣이 함께 움직이며 초반 몰입감을 극대화했다. 무대 곳곳에는 리이를 상징하는 오브제와 그림이 놓여 런웨이가 시작되기 전부터 기대감을 끌어올렸다.

무대 중앙에 세워진 고전 건축의 기둥 오브제는 세월을 견뎌온 구조물이라는 이번 컬렉션의 출발점을 시각적으로 압축했고, 배경 스크린은 몽환적인 핑크와 퍼플의 그라데이션에서 차분한 블루로 옮겨가며 쇼의 무드를 이끌었다.

리이가 이번 시즌 시선을 둔 곳은 정제된 새것이 아니었다. 세월을 견디며 형태를 지켜온 건축물, 시간이 쌓이며 깊어진 표면, 시대가 바뀌어도 사라지지 않는 태도와 감각. 매끈한 완성보다 흔적이 자연스럽게 얹힌 자리, 그 지점에서 리이는 새것 너머의 미감을 찾는다.

구조적인 재킷과 셔츠, 정제된 실루엣 위에 티셔츠와 니트 같은 일상의 요소를 겹쳐, 성격이 다른 아이템을 한 화면 안에서 조화시키는 방식이다.

컬렉션의 핵심 모티브 중 하나인 스티커 역시 ‘흔적’이라는 주제를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요소다. 도시의 벽과 사물 위에 붙여진 스티커는 시간이 지나면서 겹쳐지고, 바래고, 찢어지거나 떨어져 나가지만 빛바랜 색과 접착 흔적, 찢어진 가장자리 등을 통해 이전에 무언가 존재했음을 보여준다. 이번 무대에서는 이러한 스티커가 모델의 몸 곳곳에 붙은 채 런웨이에 올라, 주제를 한층 직접적으로 드러냈다.

리이에게 스티커는 단순한 장식을 넘어 시간과 기억, 역할과 경험이 축적된 ‘Life Archive(일상의 기록)’를 의미한다. 붙여지고, 겹쳐지고, 떨어져 나간 뒤에도 흔적을 남기는 스티커의 특성을 통해, 지나온 시간이 현재의 모습에 남긴 의미를 컬렉션 전반에 담아냈다.

디테일은 스티커에 그치지 않았다. 펜과 노트, 서류봉투처럼 기록과 흔적에 닿아 있는 도구를 지닌 채 모델들이 런웨이를 나섰고, 곳곳에 박힌 스터드, 은은하게 배어 나오는 프린팅이 룩 사이를 채웠다.

2PM 황찬성이 리이의 런웨이에 올라 컬렉션 룩을 선보이고 있다.

빛바랜 색과 낡은 텍스처를 연상시키는 프린팅은 오래 손을 탄 물건처럼 보였고, 유기적으로 흐르며 자연스럽게 주름진 실루엣은 리이만의 강점을 돋보이게 했다. 단추와 겹쳐 입기를 활용한 레이어링, 흐트러진 셔츠와 걷어 올린 소매까지. 빈틈없이 갖춰 입은 모습보다 하루를 살아낸 뒤 옷에 남은 일상의 흔적에서 아름다움을 길어 올렸다.

이 감각은 서로 다른 두 복식 언어가 만나는 지점에서 형태를 얻는다. 한국 전통 복식 쾌자(快子)의 곧게 떨어지는 선과 여백, 겹쳐 입는 구조에 1970년대 서양 테일러링의 길고 유연한 실루엣, 넓어진 비례와 구조적인 재단이 포개졌다. 과거와 현재, 동양과 서양, 남성과 여성. 어느 한쪽으로 기울지 않고 그 사이의 균형과 긴장을 붙드는 태도는 리이가 그간 이어온 방식으로, 이번 시즌에도 뚜렷했다.

런웨이에는 2PM 황찬성과 보이그룹 크래비티(CRAVITY) 민희가 직접 모델로 올라 리이의 룩을 소화하며 무대에 무게를 더했다. 최근 ‘사냥개들’로 연기 변신을 알린 황찬성은 흔적의 서사가 밴 룩을 차분하게 걸어냈다.

리이 이준복 대표가 피날레 무대에서 가족과 함께 인사를 전하고 있다.

리이 이준복·주현정 대표는 “이번 시즌은 시간이 지나며 자연스럽게 남겨진 흔적과 그 안에 축적된 기억에 주목한 컬렉션”이라며 “과거의 형태와 태도를 그대로 재현하기보다 현재의 시선으로 다시 바라보고, 서로 다른 시대와 문화가 교차하는 지점에서 리이만의 새로운 균형을 보여주고자 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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