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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이에 김아영, 2027 SS 서울패션위크… 생트로페의 황금빛을 입다

가벼운 시폰·리넨에 러플과 드레이핑, 허리선 강조… 샌드부터 모브·딥 레드·인디고까지 빛의 변화 담아

김아영 디자이너의 하이엔드 여성복 ‘까이에(CAHIERS)’가 9월 4일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열린 2027 S/S 서울패션위크에서 ‘생트로페의 황금 시간(L’Heure Dorée)’ 컬렉션을 공개했다. 1980년대 남프랑스 휴양지 생트로페의 자유롭고 우아한 여름을 모티브로, 당시의 글래머러스한 여성복을 오늘의 가벼운 소재와 입체적인 실루엣으로 다시 풀어냈다.

런웨이 뒤편을 가득 채운 대형 스크린에는 해 질 녘 보랏빛으로 물든 하늘과 짙푸른 바다가 펼쳐졌다. 그 앞을 걷는 옷들은 바람을 머금은 듯 흔들렸다. 몸을 감싸고, 허리를 조이고, 어깨와 소매를 부풀렸지만 무겁지 않았다. 이번 시즌 까이에를 가장 정확하게 설명하는 것은 바로 ‘구조는 남기고 무게는 덜어낸 여성복’이었다.

까이에 2027 SS 서울패션위크
까이에의 2027 S/S 서울패션위크 ‘생트로페의 황금 시간’ 컬렉션.

강한 어깨 대신 부드러운 볼륨…1980년대 글래머의 재해석
출발점은 1980년대다. 당시 여성복을 상징했던 강한 어깨와 잘록한 허리, 풍성한 볼륨을 가져왔지만 김아영은 이를 그대로 복원하지 않았다. 단단한 패드와 강한 심지를 덜어내고 크링클 시폰과 리넨, 실크, 코튼 포플린 등 가벼운 소재로 구조를 다시 만들었다.

까이에 2027 SS 서울패션위크
까이에의 2027 S/S 서울패션위크 ‘생트로페의 황금 시간’ 컬렉션.

그 차이는 런웨이에서 선명하게 드러났다. 차콜 그레이의 슬리브리스 베스트는 어깨를 좌우로 넓게 뻗어 상체에 건축적인 형태를 만들었다. 하지만 아래에는 단단한 테일러드 팬츠 대신 옅은 세이지 컬러의 가볍고 풍성한 팬츠를 매치했다. 상체의 직선과 하체의 유연한 볼륨이 충돌하면서 힘과 여유가 동시에 살아났다. 네이비 계열의 재킷 역시 넓게 펼쳐진 숄더와 깊은 V라인으로 상체를 강조했다. 허리에는 커다란 육각형 버클을 배치하고, 아래쪽은 드레이핑으로 감싼 듯한 비대칭 스커트로 연결했다.

어깨는 넓게, 허리는 분명하게, 하의는 흐르듯 풀어내는 방식이 여러 룩을 관통했다. 1980년대의 파워드레싱에서 ‘파워’만 가져온 것이 아니라 그 시대가 여성의 몸을 표현했던 방법을 훨씬 부드럽게 다시 해석한 셈이다.

까이에 2027 SS 서울패션위크
까이에의 2027 S/S 서울패션위크 ‘생트로페의 황금 시간’ 컬렉션.

러플이 바람을 만나자 옷의 형태가 달라졌다
이번 컬렉션에서 가장 아름답게 움직인 것은 러플이었다. 아이보리 블라우스는 네크라인에서 시작한 여러 겹의 러플이 가슴과 어깨를 지나 소매까지 흘러내렸다. 얇은 소재가 겹쳐지면서 불투명한 부분과 비치는 부분이 자연스럽게 나뉘었다.

까이에 2027 SS 서울패션위크
까이에의 2027 S/S 서울패션위크 ‘생트로페의 황금 시간’ 컬렉션.

여기에 같은 아이보리 계열의 팬츠를 연결하고 허리에 버터 옐로 벨트를 둘렀다. 팬츠 역시 무릎 주변에 슬릿을 넣고 발목을 가볍게 조여, 모델이 걸을 때마다 원단이 다리를 따라 움직였다. 이 룩은 까이에가 이번 시즌 말하는 ‘여성의 곡선’을 가장 직접적으로 보여준다. 몸에 꽉 붙여 선을 만드는 대신 원단이 몸 주변에서 움직이며 새로운 곡선을 만들어냈다.

김아영 디자이너가 이번 컬렉션에서 강조한 것도 신체를 압박하지 않으면서 여성의 곡선을 살리는 방식이다. 그는 사전 공개 자료에서 과거의 구조적인 형태를 유지하되 무게를 덜어 현대 여성이 편안하게 입을 수 있는 글래머룩을 제안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케이프형 아우터에서도 같은 접근이 이어졌다. 토프와 그레이 사이의 차분한 컬러 아우터는 어깨에서 여러 겹의 패널이 물결처럼 떨어진다. 안쪽에는 크림 컬러 러플 톱을 넣고, 아래에는 블랙 드레이프 스커트를 매치했다.

까이에 2027 SS 서울패션위크
까이에의 2027 S/S 서울패션위크 ‘생트로페의 황금 시간’ 컬렉션.

또 다른 룩에서는 같은 계열의 케이프 아우터 안에 옅은 라일락 톱과 팬츠를 톤온톤으로 배치했다. 풍성한 포켓과 주름이 하체에 볼륨을 만들지만 소재 자체가 가벼워 실루엣은 무겁게 가라앉지 않는다. 까이에가 말한 ‘감싸고, 조이고, 부풀리는’ 조형 방식이 실제 옷으로 구현된 대목이다.

허리를 다시 드러내다…‘몸을 의식하는 디자인’
이번 컬렉션에서 특히 눈에 띄는 것은 허리다. 최근 몇 시즌 동안 이어진 오버사이즈와 박시한 실루엣이 몸과 옷 사이의 공간을 크게 확장했다면, 까이에는 다시 몸의 중심으로 시선을 돌렸다. 딥 로즈 컬러의 슬리브리스 드레스는 V네크라인에서 허리까지 자연스럽게 감싼 뒤 육각형 버클 벨트로 중심을 잡았다. 허리 아래에는 풍성한 원단을 모아 앞뒤 길이가 다른 비대칭 스커트로 풀었다.

까이에 2027 SS 서울패션위크
까이에의 2027 S/S 서울패션위크 ‘생트로페의 황금 시간’ 컬렉션.

가만히 서 있을 때는 조형적인 드레스지만 걷기 시작하면 앞쪽으로 드러난 다리와 뒤로 길게 움직이는 스커트가 전혀 다른 인상을 만든다. 블랙 미니 랩 드레스도 같은 방식이다. 깊은 V네크라인과 허리의 육각 버클, 양옆으로 만들어진 볼륨이 몸의 굴곡을 강조한다.

여기에 길게 늘어지는 퍼플 니트 액세서리를 한쪽 팔에 들려 블랙의 절제를 깨뜨렸다. 김아영이 제안한 것은 노출을 통한 여성성이 아니다. 어깨와 허리, 골반이라는 신체의 위치를 옷 속에서 다시 분명하게 만드는 여성성에 더 가깝다. 사전 공개 당시 까이에는 이를 ‘몸을 의식하는 디자인’으로 설명했다. 오버사이즈와 유니섹스 룩 속에 감춰졌던 신체 라인을 다시 디자인의 중심으로 가져오겠다는 의도였다.

샌드에서 모브, 그리고 인디고…생트로페의 하루를 컬러로
컬러는 이번 쇼의 또 다른 축이었다. 생트로페의 해 질 녘에서 밤까지 이어지는 빛의 변화를 따라 샌드와 버터 컬러에서 모브, 세이지, 코랄과 딥 레드로 이동하고, 이후 블랙과 인디고 계열로 깊어지는 팔레트가 설계됐다. 실제 런웨이에서도 이 컬러들은 단순한 장식 이상의 역할을 했다. 아이보리와 버터 컬러는 얇은 소재와 만나 햇빛에 바랜 듯 부드럽게 표현됐고, 세이지 그린은 차콜 아우터와 만나 현대적인 대비를 만들었다.

까이에 2027 SS 서울패션위크
까이에의 2027 S/S 서울패션위크 ‘생트로페의 황금 시간’ 컬렉션.

특히 여러 룩에 등장한 모브와 딥 로즈 계열은 이번 시즌 까이에를 기억하게 만드는 색이다. 선명한 로즈 컬러 드레스부터 같은 계열의 스커트, 케이프형 재킷까지 색의 농도를 달리해 반복했다. 블랙과 함께 사용하면 강렬해졌고 아이보리와 만나면 한층 부드러워졌다.

옅은 라일락과 그레이, 버터 옐로가 섞인 원형 패턴 드레스에서는 또 다른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허리를 드레이핑해 몸의 중심을 잡은 뒤 양쪽 소매를 느슨하게 떨어뜨려, 프린트와 실루엣이 함께 움직이도록 했다. 배경을 채운 보랏빛 석양과 짙푸른 바다까지 더해지면서 런웨이 전체가 컬렉션 제목인 ‘황금 시간’을 시각화했다.

육각 버클·컬러 이어링·선글라스…디테일이 만든 1980년대의 흔적
액세서리도 옷의 시대적 배경을 설명했다. 여러 룩의 허리에 반복적으로 등장한 육각형 버클은 이번 컬렉션의 가장 명확한 시그니처 디테일이었다. 벨트가 허리를 조이는 기능에 머물지 않고 시선을 몸의 중심으로 끌어들이는 장치가 됐다. 귀에는 컬러 스톤을 길게 연결한 드롭 이어링을 사용했고, 손목에는 두꺼운 뱅글을 여러 개 겹쳐 착용했다. 특히 얼굴을 크게 덮는 오버사이즈 선글라스는 1980년대 휴양지의 글래머러스한 분위기를 직접적으로 환기했다.

반면 신발은 비교적 일관됐다. 대부분의 룩에 얇은 스트랩과 에스파드리유를 연상시키는 솔을 결합한 샌들을 매치해 옷의 구조적 긴장을 풀었다. 딥 로즈와 블랙, 브라운 등 의상에 따라 스트랩 컬러를 바꾸면서도 전체적인 휴양지의 감각은 유지했다.

까이에 2027 SS 서울패션위크
까이에의 2027 S/S 서울패션위크 ‘생트로페의 황금 시간’ 컬렉션.

‘섬세함’과 ‘강인함’ 사이에서 찾은 까이에의 여성성
이번 2027 S/S 컬렉션에서 김아영은 과거의 여성복을 그대로 불러내지 않았다. 1980년대의 넓은 어깨와 잘록한 허리, 풍성한 볼륨이라는 문법은 가져왔지만 무겁고 단단한 구조를 버렸다. 그 자리에 시폰과 리넨, 실크처럼 바람과 움직임에 반응하는 소재를 넣었다. 실제 컬렉션 역시 1980년대 생트로페의 감성을 가벼운 소재로 재해석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그래서 이번 쇼에는 서로 반대되는 두 가지 힘이 공존했다. 넓은 어깨와 잘록한 허리는 강하지만 러플은 부드럽다. 케이프는 크게 부풀지만 소재는 가볍다. 블랙은 단호하지만 모브와 버터 옐로는 섬세하다. 몸의 곡선을 강조하면서도 몸을 조이지 않는다.

까이에 2027 SS 서울패션위크
까이에의 2027 S/S 서울패션위크 ‘생트로페의 황금 시간’ 컬렉션.

바로 그 긴장 사이에서 까이에가 생각하는 현재의 여성성이 만들어졌다. 쇼가 끝나자 김아영 디자이너가 직접 런웨이에 모습을 드러냈다. 뒤편 스크린에는 보랏빛과 핑크빛으로 물든 바다 위로 ‘CAHIERS’라는 이름이 크게 떠올랐다. 김 디자이너가 관객에게 인사를 전하며 이날 컬렉션은 막을 내렸다.

생트로페의 ‘황금 시간’은 해가 지기 직전 아주 짧은 순간이다. 빛은 가장 아름답지만 동시에 빠르게 사라진다. 김아영은 그 찰나의 빛을 그대로 붙잡으려 하지 않았다. 대신 빛에 따라 달라지고, 바람에 따라 흔들리며, 사람이 걸을 때 비로소 형태를 완성하는 옷으로 바꿔 런웨이에 올렸다.

까이에의 2027 S/S는 결국 1980년대를 재현한 복고 컬렉션이 아니었다. 과거 여성복이 지녔던 아름다운 곡선과 조형성을 되찾되 무게를 덜어내고 움직임을 더한 것. ‘강한 여성복’이 반드시 단단하고 무거울 필요는 없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 이번 시즌 김아영의 가장 분명한 메시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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