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8월 17,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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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학·건설 부진…유통마저 흔들리는 ‘위기의 롯데’

최대 규모 구조조정, 반등 이끌 마지막 열쇠될까

국내 재계 서열 6위 롯데그룹이 ‘창사 이래 최대 위기’에 놓였다. 롯데그룹은 지난해 11월 중순 회사가 유동성 위기에 처했다는 지라시가 시장에 돌면서 흔들리기 시작했다.

한 지라시에서는 2024년 12월 초 모라토리엄(지급유예) 선언설, 롯데건설 미분양으로 계열사 간 연대보증 치명타, 전체 직원 50% 이상 감원 예상 등 충격적인 내용이 담겼다. 롯데그룹이 빌린 돈을 제대로 갚지 못해 결국 부도 위기에 처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결과적으로 이들 모두 거짓으로 드러났지만, 지라시가 유포된 이튿날인 2024년 11월 18일 롯데지주와 롯데케미칼의 주가는 각각 6.6%, 10.2% 급락했다.

그렇다고 해서 롯데그룹이 순탄한 경영을 이어나가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룹의 유동성에 문제가 있는 건 어느 정도 사실이었다. 문제의 핵심은 롯데케미칼이었다. 지라시가 시장을 흔든 다음달인 12월 21일, 롯데케미칼은 2조500억원 규모의 롯데케미칼 회사채가 사채관리계약 조항 내 재무특약을 미준수하면서 ‘기한이익상실(EOD)’ 원인 사유가 발생했다고 공시했다.

롯데그룹의 유동성 위기를 촉발한 건 롯데케미칼이다.

EOD는 특정 상황 시 채권자가 만기일 전 대출금을 회수할 수 있는 권리를 뜻한다. 롯데케미칼은 사채의 원리금을 갚기 전까지 일정 재무비율을 유지하도록 하는 조건이 달려 있었다. 3개년 평균 이자비용 대비 상각전영업이익(EBITDA) 5배 이상, 연결재무제표 기준 부채비율 200% 이하 유지가 재무 특약이다.

문제는 최근 업황 악화로 이 조건을 지키지 못하면서 발생했다. 연간 1조원이 넘는 영업이익을 내며 그룹의 캐시카우 역할을 하던 롯데케미칼은 최근 몇 년간 골칫덩이로 전락했다.

중국의 대규모 석유화학 공장 건설로 인해 롯데케미칼의 주요 석유화학 제품 가격이 급격히 추락하며 실적 악화 위기를 겪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중동 전쟁 등 지정학적 문제까지 터지면서 원유 가격이 급등했다. 결국 롯데케미칼은 2022년과 2023년 각각 7626억원, 3477억원의 영업 적자를 냈고, 2024년에도 3분기까지 적자를 기록했다.

롯데케미칼 회사채에 기한이익상실(EOD)선언 사유가 발생했다.

롯데그룹은 특단의 카드를 꺼냈다. 롯데케미칼 회사채의 조기상환 우려를 해소하기 위해 핵심자산인 ‘롯데월드타워’를 담보로 내놨다. 롯데월드타워는 롯데물산이 소유중인 국내 대표 랜드마크다. 롯데그룹을 상징하는 건축물이기도 하다. 건축비만 4조 2000억원이 투입됐다.

현재 가치는 6조원이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EOD 발생 회사채 규모(2조원)를 한참 웃돈다. 롯데월드타워를 담보로 은행 보증을 받아 회사채 신용도를 보강한다는 방안이다. 또 다른 그룹의 핵심 계열사인 롯데건설의 부동산 PF(Project Financing) 문제도 현재진행형이다.

지난해 롯데케미칼 등 롯데의 주요 계열사는 레고랜드 사태 등으로 롯데건설 PF의 차환이 어려워지자 약 1조5000억원의 자금을 투입했는데, 여전히 개발사업 중 착공을 시작하지 못한 현장이 있다. 롯데건설의 2024년 9월 말 기준 PF 보증 규모는 4조3113억원에 달한다. 직전 분기(4조8652억원) 대비 5000억원가량 감소하긴 했지만, 아직도 과중한 수준이다.

롯데건설의 재무 상황도 좋지 않다.

화학·건설이 촉발한 그룹 위기…그룹 전체 임원 22% 퇴임
롯데그룹은 유동성 위기를 먼저 ‘인사’로 돌파하고자 했다. 롯데가 2025년 정기 임원인사에서 최고경영자(CEO) 21명(36%)을 교체하는 등 역대 최대 규모의 임원인사를 지난 11월 단행했다. 이번 인사에서 그룹 전체 임원 22%가 퇴임하고 전체 임원 규모가 13%나 줄었다.

신동빈 회장의 장남인 신유열 롯데지주 미래성장실장 전무는 부사장으로 승진해 경영 전면에 나선다. 롯데는 “대내외 격변하는 경영환경 속에서 고강도 쇄신을 통해 경영 체질을 본질적으로 혁신하고 구조조정을 가속화하겠다는 단호한 의지를 반영했다”고 설명했다.

롯데는 최근 렌터카업체 롯데렌탈을 1조6000억원에 홍콩계 사모펀드 어피너티에쿼티파트너스에 넘기기로 했다. 롯데렌탈은 차량 등 렌탈사업과 중고차 매매업을 하고 있다. 지난 2023년 연결기준 매출 2조7522억원, 영업이익 3051억원을 기록했다.

매년 실적이 성장하고 안정적으로 현금을 창출한 터라 일찌감치 다수의 사모펀드들이 매물로 노리던 회사였다. 이 밖에도 그룹이 가진 알짜 부동산 매물과 금융 계열사인 롯데캐피탈도 매각 대상으로 거론되고 있다.

신유열 미래성장실장이 부사장으로 승진해 경영 전면에 나선다.

롯데그룹이 이런 위기에 놓이게 된 배경으론 무리한 인수·합병과 몸집 불리기가 꼽힌다. 롯데는 본래 유통업이 주력이었다. 201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명실상부한 유통·레저 기업의 대명사였다. 신동빈 회장이 종합그룹을 꿈꾸며 016년 3조원을 투입해 화학부문을 그룹의 핵심 축으로 육성했다.

잇따른 M&A와 설비확장으로 이 전략은 먹혀 들어가는 듯 보였다. 2020년에 처음으로 롯데케미칼의 매출이 롯데쇼핑을 앞지르기도 했다. 롯데의 중심축이 유통에서 화학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지난 2021년 그룹에서 화학군 매출 비중이 32.6%로 유통군(27.7%)을 넘어서며 그룹의 중심 축으로 올라섰다.

화학군 또한 공급과잉에 따른 업황 악화가 문제였다. 중국 기업들이 공급을 쏟아냈다. 롯데케미칼의 최대 수출 시장이었는데 중국이 ‘화학 굴기’ 정책을 펼치면서 생산능력이 대폭 커졌다. 조만간 중국 내 석유화학 제품 자급률이 100%를 넘을 거란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중국 업체는 제품 가격을 한참 낮춰 직접 수출에도 나섰다.

국내 렌터카 업계 1위인 롯데렌탈이 홍콩계 사모펀드(PEF) 운용사 어피너티에쿼티파트너스에 매각된다.

이러한 위기의 시기, 원래 롯데그룹을 떠받치던 유통부문이 활약해야 한다. 그런데 문제는 유통부문마저 여력이 많지 않다는 점이다. 우선 유통부문의 핵심 계열사인 롯데쇼핑의 상황부터 보자. 이 회사 1~3분기 누계 매출액은 10조5095억원으로 전년 대비 3.8% 감소했다. 영업이익(3259억원)이 늘긴 했지만 6.5%로 소폭에 그쳤다.

특히 핵심 사업인 백화점이 눈에 띄는 성장을 못하고 있다. 롯데쇼핑은 최근 롯데백화점 센텀시티점 매각 자문사로 최근 쿠시먼앤드웨이크필드를 선정했다. 지난 2007년 부산 해운대구 벡스코 인근에 문을 연 롯데백화점 센텀시티점은 개점 2년 만에 10m 옆에 세계 최대 규모 백화점인 신세계 센텀시티점이 들어서며 고전해왔다.

한때 3000억원대 매출을 올렸지만 지난 2023년에는 1334억원까지 매출이 줄었다. 롯데백화점이 운영하는 32개 점포 중에선 매출 순위가 29위로, 꼴찌 수준이다. 매출 전국 꼴찌를 기록하던 마산점은 이미 2024년 6월 폐점을 결정했다. 롯데쇼핑은 이밖에도 관악점·상인점·분당점·일산점·대구점 등 매출 하위권 점포의 매각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롯데의 유통 부문도 그룹의 위기를 가중하고 있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국내에서 가장 많은 점포를 확보하고도 매출과 이익 측면에서 제대로 성장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 아쉽다”면서 “신세계와 현대백화점이 나름의 콘셉트를 갖추고 돌파구를 찾아가는 사이, 롯데만의 뚜렷한 특징을 구축하지 못했단 평가가 많다”고 지적했다.

그나마 백화점의 상황은 나은 편이다. 롯데쇼핑의 이커머스 부문인 롯데온의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롯데온은 희망퇴직 프로그램을 시행한다고 사내 공지했다고 밝혔다.

엎친데 덮친…그룹의 한 축‘유통 상황’도 문제로 부각
2020년 롯데그룹 유통사업군의 통합 온라인몰로 출범한 롯데온은 매년 1000억원 안팎의 손실을 냈다. 지난 2024년 1~3분기 누적 영업손실도 615억원에 달한다. 2023년도 같은 기간과 비교해 4.7% 줄어든 수준이긴 하지만, 여전히 적자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롯데온은 비용을 줄이기 위해 지난 2024년 7월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를 나와 강남구 테헤란로로 본사를 옮기기도 했다. 이렇게 사업 정상화에 안감힘을 쓰고 있지만 쿠팡과 네이버가 지배한 이커머스 시장에서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다.

롯데백화점은 신세계, 현대백화점과 견줘 뚜렷한 실적을 내지 못하고 있다.

편의점(세븐일레븐) 사업을 이끄는 코리아세븐도 지난 10월 36년 만에 처음으로 희망퇴직 신청을 받았다. 대상은 만 45세 이상 사원 또는 현직급 10년 이상 재직 사원이다. 대상자에게는 18개월치 급여와 취업 지원금, 자녀 학자금 등을 지급한다.

코리아세븐은 2022년 3133억원을 들여 편의점 미니스톱을 인수했지만, 효과가 미미했다.2022년 48억원, 2023년 551억원 등 2년 연속 연간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2024년 상반기에도 441억원의 영업적자를 냈다. 매출액도 2조6698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5.4% 줄었다. 세븐일레븐이 적자의 늪에 빠지면서 국내 편의점 업계 양강 구도가 점점 더 확고해지는 결과로 이어졌다.

그룹 지배구조의 정점에 놓여 있는 호텔롯데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2024년 3분기 호텔롯데의 누적 영업이익은 -285억원으로 전년 대비 적자 전환했다. 호텔사업은 그럭저럭 괜찮았지만, 핵심 사업인 면세점이 5분기째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지난 8월엔 롯데면세점도 희망퇴직을 단행할 만큼 상황이 안 좋다. 엔데믹 이후 하늘길만 열리면 모든 게 회복될 줄 알았지만,면세산업은 현재 극심한 침체에 빠져 있다.

그간 ‘큰 손’으로 여겨지던 중국인 단체 관광객(유커)모시기에 총력을 다했지만, 이제 단체 관광객은 한국을 찾지 않고 있다. 대신 개별 관광객 중심의 한국 여행 트렌드가 이어지고 있는 상황인데,이들은 지갑을 활짝 열지 않는다. 당분간 뚜렷한 호재도 없는 롯데면세점은 이익이 나지 않는 해외 면세점을 철수하는 점포 효율화 작업에 들어갈 거란 소문이 돌고 있다.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의 건물, 여기에 지난해 2조7000억원을 들여 인수한 동박 제조사인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도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회사는 적자로 돌아섰는데, 그룹의 위기를 지원하느라 재무 부담만 커지고 있다. 지난해에는 롯데건설 유동화 SPC에 대한 후순위대출(1500억원)과 선순위대출(9000억원)의 이자에 대한 자금 보충 등의 지원에 나섰다. 호텔롯데는 롯데건설 지분 43.3%를 보유한 2대 주주다. 그간 유상증자와 회사채 발행 등으로 롯데건설에 유동성을 공급해 왔다.

야심 차게 주력 사업으로 밀었던 화학·건설은 ‘천덕꾸러기’ 신세로 전락했고, 기존의 믿는 도끼인 유통은 반등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유동성 위기를 겪는 롯데그룹의 현주소다. 다만 롯데그룹에 이번 위기는 도전과제이자 기회로 작용할 수 있다. 롯데는 위기설을 부인하며 재무 안정성을 강조하고 있지만, 이번 사태를 계기로 그룹 전반의 구조적 개선과 시장 신뢰 회복에 집중해야 할 필요성이 있기 때문이다.

투자업계 관계자는 “바이오나 전기차 같은 롯데그룹이 미래로 내다본 사업들의 전망까지 어두운 건 아니다”면서 “만약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통해 효율화에 성공하면 두번째 스텝업을 기대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향후 롯데가 어떤 방식으로 현재의 위기를 극복하고 지속 가능한 성장을 이끌어낼지에 대한 시장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번 사건은 단순히한 기업의 문제가 아니라, 대기업의 재무 관리와 경제 환경 변화에 대한 적응 능력을 평가하는 중요한 사례로 기록될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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