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12일, 서울시(시장 오세훈)의 하이서울쇼룸(대표 홍재희)이 서울 동대문 DDP에서 개최한 특별 세미나에서 ‘디지털 제품 여권(Digital Product Passport, DPP)’이 한국 패션 산업의 미래 경쟁력을 좌우할 핵심 요소로 부상했다.
행사에는 정혜연 한국뉴욕주립대 교수, 김현승 퓨처센스 기술이사, 박용수 아바타메이드 이사가 발표자로 나서 DPP의 현황과 필요성, 그리고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를 제시했다. 현장에는 패션 브랜드 운영자, 생산업체, 패션테크 종사자, 디자이너, 전문지 기자 등 50여 명이 참석해 높은 관심을 보였다.
소비자 가치관 변화와 EU의 강력한 규제
정혜연 교수는 DPP를 ‘제품의 여권’에 비유했다. 기존 케어라벨이 원산지·제조사·세탁법 등 제한된 정보만 제공했다면, DPP는 원재료 생산부터 유통, 폐기까지 제품 전 과정의 데이터를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이는 가치소비·윤리적 소비 확산으로 ‘제품이 어떤 과정을 거쳐 만들어졌는가’가 브랜드 선택의 핵심 기준이 되었기 때문이다.
EU는 2026년부터 DPP 도입을 의무화하고, 2027년에는 환경 데이터, 2030년에는 공급망 정보와 순환경제 지표까지 포함한 완전 DPP를 요구한다. 적용 범위는 섬유·패션뿐 아니라 전자제품, 배터리 등 전 산업군이다.
DPP는 QR코드에 제품 전 생애주기 정보를 담아, 소비자가 스캔 한 번으로 원재료, 생산지, 재활용 방법, 탄소 배출량 등을 확인할 수 있도록 설계된다. 한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80%가 DPP 부착 제품 구매 의향을 밝혔으며, 친환경 생산 여부와 소재, 재활용 가능성, 탄소 배출량이 주요 관심사로 꼽혔다.
정 교수는 “DPP는 브랜드 스토리와 제작 철학을 한 번에 전달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며 “준비만 잘하면 패션 업계에 새로운 성장 모멘텀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수출 경쟁력 위한 기술적 대응과 과제
김현승 퓨처센스 기술이사는 “DPP는 단순 규제가 아니라 수출 경쟁력의 분수령”이라며, 블록체인·AI 기반 이력 추적 시스템을 활용한 국제 표준(ESPR, ISO 14067) 대응 솔루션을 소개했다.
그는 한국 패션 업계가 직면한 현실적 과제로 EU 규제 대비 부족, 낮은 디지털 전환 인식, 공급망 데이터 단절, 규제 미준수 시 시장 진입 차단, 데이터 유출 위험 등을 지적했다.
특히 EU가 의무화한 탄소 발자국(PCF) 데이터는 생산·운송·판매·폐기 전 과정의 탄소 배출량을 정량적으로 기록·제출해야 한다.
김 이사는 “SaaS 형태의 원스톱 지원 체계를 통해 업계가 DPP에 효율적으로 대응하도록 돕고, 블록체인으로 데이터 위변조를 방지해 기업이 생산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웹3·크립토 커머스, 차세대 성장 동력
박용수 아바타메이드 이사는 DPP 이후의 패션 산업 흐름으로 웹3(Web3)와 크립토 커머스를 제시했다. 웹3는 ‘내 데이터는 내 것’이라는 개념을 기반으로, 소비자가 데이터 소유권과 보상을 직접 갖는 구조다.
기존에는 대형 판매 플랫폼이 대부분의 권한과 수익을 가져갔지만, 블록체인 기반 분산형 플랫폼에서는 디자이너·생산자·인플루언서 등 모든 기여자가 공정하게 수익을 배분받는다.
아바타메이드는 이미 자체 코인을 발행했으며, 내년부터 국내외 아티스트와의 협업 프로젝트를 진행할 계획이다.
규제가 아닌 전략적 기회
DPP는 EU 수출을 위한 ‘통과의례’가 아니라, 변화하는 소비자 요구에 부응하고 지속가능성을 강화하면서 브랜드 신뢰와 글로벌 확장 기회를 동시에 제공하는 전략적 수단이다.
이날 세미나 참석자들은 “DPP는 글로벌 시장 진출을 위해 반드시 이해하고 준비해야 할 제도”라며, “하이서울쇼룸가 마련한 이번 세미나는 향후 대응 방향과 준비 과제를 확인할 수 있는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고 입을 모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