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대문구 연희동에 발을 들이면 낯선 감각이 온 몸에 퍼진다. 가장 가까운 지하철역에서 도보로 15분 이상 걸어야 닿는 이곳은 홍대나 연남동처럼 출구 앞부터 인파가 밀려드는 상권과는 결이 다르다. 좁은 골목을 따라 한참을 걷다 보면, 붉은 벽돌 건물 하나가 눈에 들어오고, 그 옆으로 간판조차 소박한 카페가 모습을 드러낸다.
접근성은 다소 떨어진다. 그러나 묘하게, 그 불편함이 이 동네의 정체성을 형성한다. 이 역설이 오늘날 연희동을 이해하는 핵심이다. 접근성의 부재가 오히려 이 동네만의 고요하고 밀도 높은 분위기를 지켜주는 방어막이 됐다. 인파가 쏟아지지 않으니 뜨내기 손님도 없다. 연희동을 찾는 이들의 목적은 분명하다.
한 번쯤 들어봤던 카페의 커피를 마시기 위해, 혹은 좋아하는 작가의 소규모 전시를 보기 위해 의도적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상권은 유동 인구의 양이 아닌 방문객의 ‘목적의 밀도’로 살아 숨 쉰다.

연희동은 본래 ‘궁뜰’이라는 별칭으로 불리던 전통적 부촌이다. 전직 대통령과 정·재계 인사들이 거주하던 고급 주택가로, 높은 담장과 보안이 일상화된 폐쇄적 주거지 이미지가 강했다. 화교 학교를 축으로 형성된 중식 문화권 역시 동네의 또 다른 축이었다. 외부 유입보다는 내부 거주 중심의 동네에 가까웠다.
변화의 계기는 젊은 크리에이터들의 유입이었다. 홍대·합정 등 인근 지역과 비교했을 때 상대적으로 합리적인 임대료와 단독주택을 개조할 수 있는 물리적 여건이 결합되면서, 개성 있는 공간 실험이 가능해졌다.

자신만의 개성을 담은 바리스타와 셰프, 아티스트들의 매장이 골목 안쪽에 자리 잡았고, 홍대·연남동에서 활동하던 1세대 브랜드들이 이곳에 정착해 로스터리 카페와 베이커리, 갤러리 등을 구축했다. 이들이 만든 ‘취향 기반 공간’은 팬덤을 형성했고, 목적형 방문객을 지속적으로 끌어들이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었다.
폐쇄적 부촌이던 연희동은 그렇게 천천히, 그리고 구조적으로 변모했다. 담장 중심의 주거지에서 취향 중심의 골목 상권으로. 오늘날 연희동은 접근성의 불리함을 감수하고서라도 찾을 가치가 있는 동네로 재정의되고 있다.

◇ 골목 끝에서 피어난 취향들, ‘공간이 곧 브랜드’
지금 연희동 골목을 걷다 보면 ‘공간이 곧 상품’이라는 감각을 자연스럽게 체감하게 된다. 매장들은 상업 공간이라기보다 누군가의 거실이나 서재에 초대받은 느낌을 준다. 낡은 상가 건물 2층, 간판조차 소박한 매뉴팩트 커피에 들어서면 이른 아침부터 커피 잔 부딪히는 소리가 정겹다. 이 작은 로스터리는 연희동이 ‘커피 성지’로 불리게 된 시발점이다. 좁은 공간임에도 커피 맛 하나로 사람들을 줄 세우는 본질에 충실한 태도가, 이곳이 추구하는 가치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바로 근처 앤트러사이트 연희는 다른 결의 감각을 전한다. 어둡고 광활한 공간, 긴 바 형태의 테이블, 창밖으로 보이는 연희동의 계절감. 마치 갤러리에 온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이 공간에서 커피는 음료가 아니라 하나의 경험이 된다.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을 따라 푸어링아웃에 들어서면 분위기는 또 달라진다. LP 음악이 흐르고, 손님들은 메모지에 신청곡을 적어 낸다. 디지털 시대에 역설적으로 더 강렬하게 다가오는 아날로그의 감성이다.

금옥당은 연희동의 ‘재발견’이 무엇인지를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공간이다. 붉은 벽돌 건물과 세련된 패키징으로 무장한 이 수제 양갱 전문점은, 누군가에게 올드하고 촌스러운 간식이었던 양갱을 ‘고급스러운 선물’로 재정의했다. 전통을 거부하는 것도, 전통에 갇히는 것도 아닌, 전통을 현대적 취향의 언어로 번역하는 방식이다.
연희동의 진가는 이런 새로운 공간들만이 아니라 오래된 것들이 함께 살아있다는 데 있다. 1978년부터 자리를 지킨 피터팬1978 앞에는 언제나 줄이 늘어선다. 백발의 노신사와 힙한 차림의 대학생이 나란히 서서 ‘아기궁둥이빵’을 기다리는 풍경은, 연희동이 단순한 핫플레이스가 아니라 살아있는 동네라는 사실을 증명한다.
폴앤폴리나의 치아바타와 바게트는 화려한 토핑 없이 밀가루와 효모 본연의 풍미만으로 주식(主食)으로서 빵의 가치를 증명하고, 시오의 정갈한 일본 가정식은 골목 안 식사의 퀄리티를 책임진다. 화교 문화의 유산인 중식당들은 여전히 연희동의 뿌리를 묵묵히 지탱하고 있다.

방문객의 구성 역시 이 다양성을 반영한다. 취향 소비를 즐기는 2030 세대, 인근 대학의 학생들, 수십 년째 이 동네에 터를 잡고 살아온 노년층과 화교 가족이 같은 골목을 공유한다.
쿠움 파트너스 김종석 대표는 이를 구조적으로 뒷받침하는 요소로 배후 수요의 안정성을 꼽는다. 연희동 상권은 주거 인구와 오피스 인구의 비율이 7 대 3으로 구성돼 있어, 날씨나 경기 변동에 민감하게 흔들리지 않는 버팀목이 형성돼 있다는 분석이다.
또한 시야를 가리지 않는 낮은 층수의 건물과 골목 곳곳에 남아 있는 녹지 공간과 결합된 건축적 아름다움이 여성 및 젊은 층에게 매력적으로 작용한다는 점도 연희동만의 강점으로 꼽힌다.

◇ 보이지 않는 손들, 연희동을 ‘로컬 플랫폼’으로 설계하다
그러나 연희동의 감성은 스스로의 힘으로만 구축해온 것은 아니다. 상권 뒤에는 치밀한 기획자들이 있었다. 공간을 만들고 채우는 두 핵심 플레이어, ‘쿠움파트너스’와 ‘어반플레이’는 연희동을 단순한 소비 공간이 아닌 건축적 아름다움과 창의적 콘텐츠가 공존하는 ‘로컬 플랫폼’으로 정의한다.
쿠움파트너스 김종석 대표는 주로 상권의 하드웨어를 설계했다. 연희동에서만 80개 이상의 공간을 개발해온 이 회사의 전략은 일반적인 부동산 개발 방식과 다르다. 대형 공간을 통으로 임대하기보다 10~15평 규모의 작은 공간들로 쪼개어 임대료 부담을 낮추는 방식을 취한다.
이를 통해 감각적인 소상공인들이 한 건물 안에 공존할 수 있는 구조를 여러 곳에 만들면서 상권의 전반적인 정체성을 형성했고, 17년 동안 임대료를 거의 올리지 않는 원칙으로 젠트리피케이션을 방지하며 공실 없는 상권을 유지했다.
쿠움파트너스 김종석 대표는 “마을 자체가 콘텐츠가 되어야 합니다. 건축적 변화를 통해 이웃과 조화를 이루는 마을형 플랫폼을 만드는 것, 그것이 우리가 연희동에서 해온 일입니다.” 라고 강조했다.

지난해 11월 쿠움파트너스가 선보인 ‘연희정음’은 김종석 대표가 강조하는 ‘건축적 변화’의 대표적인 공간이다. 한국 근현대 건축의 거장 김중업 건축가의 말년작인 이 복합문화공간은 기존 상업 공간으로 운영되면서 훼손됐던 건물이다. 김종석 대표는 훼손된 건물을 복원하는 데 그치지 않고, 건축 자체를 이야기로 만들어 상권 전체의 가치까지 끌어올렸다. 현재 연희정음에서는 김중업 X 르 코르뷔지에 건축 사진전이 개최되고 있다.
어반플레이는 그 하드웨어에 소프트웨어를 채워 넣는 역할을 맡았다. ‘도시에도 OS(운영체제)가 필요하다’는 슬로건 아래, 이 회사는 공간 기획과 커뮤니티 디벨로퍼 역할에 집중한다. 대표적 공간인 ‘파크먼트 연희’는 단독 주택 4채를 유기적으로 연결해 라이프스타일 콘텐츠를 담아낸 복합문화공간이다.
눈에 띄는 것은 공간의 30~40%를 의도적으로 비워두는 방식이다. 빈 공간에는 주기적인 전시와 마켓을 열어 방문객의 재방문을 유도하고, 크리에이터들에게 기회를 제공한다. 이처럼 어반플레이의 파크먼트는 여백을 전략으로 삼는 운영을 통해 지역 활성화에 기여하고 있다.

‘연희걷다’와’ 같은 지역 축제와 ‘플레이모빌 50주년’ 타운 전시를 통해 개별 로드숍들을 하나의 네트워크로 묶는 캠페인도 어반플레이의 몫이다. ‘연희회관’, ‘연남방앗간’ 등 지역 거점 공간을 운영하며 지역 소상공인들을 연결하고, 온·오프라인 플랫폼을 통해 연희동의 이야기를 콘텐츠로 만들어 외부에 전달한다.
임동길 어반플레이 부대표는 “크리에이터들이 건강하게 지속 가능성을 확보할 수 있는 생태계를 만드는 것이 핵심입니다. 동네 곳곳의 유효 공간을 활용해 새로운 경험을 제공하는 데 주력하고 있습니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연희동을 ‘자신만의 스토리를 가진 플레이어들이 활동하는 동네’로 평가한다.
어반플레이가 지향하는 것은 단순한 공간 운영이 아니라, 크리에이터들이 지속 가능하게 뿌리내릴 수 있는 생태계의 조성이다. 연희동 상권의 콘텐츠 가치를 스스로 높여 파이 전체를 키우는 방식, 이것이 어반플레이가 ‘로컬 크리에이터 기획사’로 불리는 이유다.

◇ ‘느린 밀도’가 만드는 지속 가능한 상권의 미래
두 조직의 협업이 만들어낸 구조는 연희동이 한국 로컬 상권의 고질적 병폐인 젠트리피케이션에 맞서는 방식과도 직결된다. 특정 동네가 유명해지면 임대료가 오르고,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한 원주민과 소상공인이 밀려나며, 동네의 색깔이 흐려진다. 이태원을 무너뜨렸고, 경리단길과 삼청동의 활기를 빼앗아간 그 악순환이다.
연희동은 아직 그 위협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않다. 그러나 쿠움파트너스가 닦아놓은 건축적 토대 위에 어반플레이의 기획력이 더해지며, 연희동은 단순한 핫플레이스를 넘어 지속 가능한 로컬 브랜드들의 성지로서 그 입지를 공고히 하고 있다.
연희동은 빠르게 변하지 않는다. 대신 깊어진다. 이 느린 밀도가 역설적으로 연희동의 가장 강력한 경쟁력이다. 대형 자본의 프랜차이즈가 흉내 낼 수 없는 것, 알고리즘이 복제할 수 없는 것이 이 골목에 있다.

취향을 가진 상인과 그 취향을 소비하러 온 방문객, 공간을 설계하는 기획자와 동네를 오래 지켜온 주민들이 서로를 존중하며 만들어가는 느슨한 연대. 연희동의 미래는 이 연대가 얼마나 오래, 얼마나 깊게 지속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오늘도 연희동 골목에는 커피 향이 흐르고, 노포의 빵 굽는 냄새가 번진다. 누군가는 지하에서 LP판을 뒤지고, 누군가는 양갱 하나를 선물로 포장한다. 이곳을 걷는 일은 단순히 밥을 먹고 차를 마시는 행위가 아니다. 그것은 누군가의 진심 어린 취향을 여행하는 일이다.
아래에 연희동 상권에서 ‘연희다운’ 색깔을 입고, 지역을 더욱 세련되고, 감성 넘치는 곳으로 변화시키고 있는 ‘파크먼트’, ‘연희정음’, ‘연희단팥죽’, ‘폴앤폴리나’ 4곳을 소개한다. 참고로 연희동 상권은 신지혜 작가의 [핫플레이스를 만드는 플레이어들]에서 더욱 맛깔 나게 소개되고 있는 대표적인 서울 명소이기도 하다.

◇ 어반플레이의 ‘파크먼트’, 네 채의 단독주택이 만든 공원형 복합문화공간
서울 연희동 주택가 안쪽, 네 채의 단독주택을 하나의 동선으로 체험할 수 있는 특별한 공간이 있다. 도시 콘텐츠 전문기업 어반플레이(대표 홍주석)의 ‘파크먼트(PARKMENT)’가 연희동 내 필수 방문 코스로 떠오르며 감도 높은 콘텐츠와 MD구성으로 주목받고 있다.
‘커뮤니티 광장’을 뜻하는 ‘PARK’와 경험의 순간을 의미하는 ‘MOMENT’를 결합한 파크먼트(PARKMENT)는 공간의 성격과 방문객 특성에 맞춘 라이프스타일 콘텐츠를 담아내는 공원형 복합문화공간이다.
2023년 3월 완성된 파크먼트 연희는 과거 ‘연희 대공원’이라는 이름으로 반려동물·반려식물 콘텐츠를 운영하던 공간에서 출발했다. 현재의 D동에서 출발해, C, B동을 차례로 연결지어 완공했다. 이곳 공간의 가장 큰 특징은 서로 다른 단독주택을 연결해 형성한 구조와 정원을 중심으로 한 커뮤니티, 그리고 어반플레이만의 운영 방식에 있다.

파크먼트 공간을 둘러보면 앤티크한 인테리어와 원목 마감재, 유럽식 계단 등 구옥의 흔적이 여전히 남아있다. 건물 증축 시에도 구옥과 신축 건물의 경계를 일부러 남겨놓거나 구옥 지붕의 형태를 그대로 유지하는 등 방문객들이 보존된 영역을 찾는 재미로도 이어진다. 공간 곳곳에서 발견되는 부자연스러운 형태의 연결 지점은 이곳 공간의 정체성을 더 돋보이게 만들었다.
이처럼 독특한 공간 구조 위에 어반플레이만의 콘텐츠 기획력과 운영 전략이 더해지면서 파크먼트는 연희동 방문객들 사이에서 빠르게 입소문을 타며 필수 방문 코스로 주목받고 있다.
‘파크먼트’는 총 4개의 동으로 A동만 분리돼 있고 B·C·D동을 하나로 연결되게 설계했다. 접근성이 가장 좋은 지점에 D동을 배치해 방문객이 자연스럽게 전 동을 순환하도록 동선을 설계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어반플레이 임동길 부대표는 “파크먼트는 전체 700평 규모 가운데 30~40% 정도를 일부러 비워두고 있다”라며, “그곳에 주기적으로 새로운 콘텐츠를 기획해 방문객들에게 다양한 경험을 제공하고, 자연스럽게 재방문까지 이어지도록 운영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현재 파크먼트에는 연희동 내에서도 트렌디한 브랜드들이 입점해 있다. 가구 브랜드 잭슨카멜레온, 카페 로우키, 카페 마 그리고 최근 이효리의 ‘아난다 요가’가 들어서면서 SNS를 중심으로 공간이 재조명되고 있고, 빈 공간에는 전시·마켓 등 크리에이터들과 협업해 각종 콘텐츠를 선보이고 있다.
각 입점 브랜드는 단독주택 구조 안에서 독립성을 유지하면서도, 정원을 매개로 하나의 커뮤니티를 형성한다. 방문객은 자연스럽게 공간에 머물며 자신의 취향에 따라 탐색하는 경험을 하게 된다.
분리된 파크먼트 A동에는 버추얼 보이그룹 ‘플레이브’의 플리(팬덤명)를 위한 전용 공간이 들어섰다. 앨범과 굿즈, 한정 디저트와 음료를 선보이는 카페가 결합된 형태로, 젊은 층의 방문이 이어지고 있다. 특정 팬덤을 중심으로 한 공간 기획은 ‘취향 기반 집객’이라는 파크먼트의 방향성을 보여주는 사례다.

어반플레이는 건축적 완성도보다 창작자 생태계 구축에 우선 집중한다. 캠페인성 프로젝트를 통해 지역 크리에이터의 팬덤을 묶고, 브랜드의 정체성과 스토리를 기반으로 한 콘텐츠를 기획한다. 크리에이터들의 ‘지속 가능한 운영 구조’를 구축하는 것이 자연스레 ‘지역 활성화’로 이어진다는 설명이다.
파크먼트의 단독주택과 정원을 오가며 방문객은 브랜드를 소비하는 동시에 자신의 취향을 탐색한다. 지속적인 변화 가능성을 내장한 복합공간. 파크먼트가 연희동에서 만들어내는 가치는 무궁무진하다.

◇ 김종석 대표가 보존한 김중업의 말년작, ‘연희정음’으로 재탄생
연희동 연희맛로 일대에는 붉은 벽돌 외관으로 시선을 사로잡는 건물이 있다. 복합문화공간 ‘연희정음’이다. 한국 1세대 건축가 김중업이 1984년 말년에 설계한 건축으로, 쿠움파트너스 김종석 대표가 증축·복원 과정을 맡아 지난해 11월 ‘연희정음’으로 재개관해 운영 중이다.
연희동과 연남동, 합정 일대에서 100여 개의 건물을 리모델링하며 지역의 공간 구조를 재편해온 김종석 대표는 ‘증축하고 쪼개는’ 방식의 리모델링을 통해 소상공인과 창작자들이 안착할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왔다. 2012년 연희동 카페 거리 조성 프로젝트 역시 그의 작업에서 출발했다. 교통 접근성이 뛰어나지 않음에도 사람들이 일부러 찾아오는 동네로 변모한 배경에는, 오래된 주택의 감성을 보존하면서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온 일련의 건축적 변화가 자리한다.
그 연장선에 놓인 공간이 바로 ‘연희정음’이다. 이 건물은 2010년대 지하 증축과 함께 1~3층이 카페 등 상업시설로 사용됐는데, 이 과정에서 붉은 벽돌과 삼각 전타일이 손상되는 등 점차 훼손되기 시작했다.

이에 2024년 김종석 대표는 ‘가능한 한 김중업의 언어를 되살린다’는 원칙 아래 증축 및 보수·복원 작업에 착수했다. 특히 외벽 복원은 장인의 수작업으로 진행됐고, 동일 제품 수급이 어려웠던 삼각 전타일 지붕과 입면 벽돌은 삼각 모듈로 절단·재가공하는 방식으로 복원했다.
내부 복원 역시 기존 주거 공간의 정체성을 유지하는 방향으로 이뤄져 원형 계단은 원위치와 형상을 그대로 살리는 등 옛 것의 흔적을 그대로 보존했다. 현재 1·2층은 전시 공간으로, 3층 옥탑 공간은 방수·단열·흡음 성능을 보강해 현재 세미나와 강연 공간 등으로 활용되고 있다.

‘연희정음’의 특징 중 하나는 지하 공간 구성이다. 기존 하나의 공간을 분할해 카페, 소품숍, 작업실 등 네 개의 공간으로 운영하고 있고, 김중업 건축가가 즐겨 사용한 ‘원’의 모티프를 적용한 중정으로 이를 연결했다. 이 구조는 입점 소상공인 간 자연스러운 교류를 유도하는 장치로 기능하고 있다.
이처럼 김종석 대표의 손길을 거친 ‘연희정음’은 ‘재주꾼들의 마당’을 지향한다. 연희동 내 실력있는 소상공인과 작가, 아티스트, 디자이너들이 자신의 역량을 펼칠 수 있는 무대를 제공하는 구조를 지속 설계하는 중이다. 현재 공간에서는 한국·프랑스 수교 140주년을 기념해 르 코르뷔지에와 김중업 건축가의 만남과 합작의 의미를 조명하는 이번 사진전이 진행 중이다.

해당 전시는 당초 일정보다 3월까지 연장됐고, 누적 방문객은 약 2만 명을 상회할 정도로 화제성을 불러모았다. 주중과 주말 구분 없이 발길이 이어지는 ‘연희정음’은 연희동의 새로운 랜드마크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쿠움파트너스 김종석 대표의 오래된 건물의 아날로그적 감성을 보존하면서도 상권의 감성에 맞게 재구성하는 방식은 연희정음을 포함한 그의 프로젝트 전반에 적용되고 있다. 연희정음은 단순한 전시 공간을 넘어, 보존과 재해석이 공존하는 연희동 복합문화공간 사례로 주목받고 있다.

◇ 10년째 한 자리를 지킨 연희단팥죽, ‘눈칫밥’으로 완성한 최적의 한 그릇
서울 연희동 골목 한쪽, ‘연희단팥죽(사장 김원석)’이 따스한 온기로 전 세대의 발길을 멈춰 세우고 있다. 가게 앞을 지나가면 단팥 특유의 구수하고 달큰한 향이 코끝을 감싸 자연스레 발길을 매장 안으로 이끈다.
2016년 문을 연 이곳은 올해로 10년째를 맞았다. 가게는 본래 주거 공간으로 쓰던 곳을 개조해 아늑하게 꾸려졌다. 김원석 사장은 “평소 단팥 요리를 유독 좋아하시던 어머니의 영향으로 단팥죽 가게를 열게 됐다”고 설명했다. 지금까지도 이곳은 연희동에서 유일한 단팥죽 가게다. 김 사장은 “정통 팥 요리는 오래 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있었다”며 “연희동에 다른 단팥죽 집이 없다는 것도 큰 메리트였다”고 말했다.
초기 창업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김 사장이 홀로 레시피의 완성도를 구축하는 데만 2~3년의 세월을 쏟았다. 이 과정에서 김 대표는 오고 가는 손님의 피드백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며 단맛과 짠맛의 비율을 수없이 조율했다. 김 사장은 “우리 팥죽은 이른바 손님들의 눈칫밥을 먹고 자란 맛”이라고 표현하며 그간의 치열했던 과정을 설명했다. 이러한 정성이 빛을 발하며 현재는 1세대부터 3세대까지 온 가족이 함께 찾는 연희동의 명소로 거듭났다.

김 사장은 “가장 평범하고 정통적인 맛이 결국 이기는 맛이라고 강조하며, 특별한 비법이 있는 건 아니지만, 기본 재료인 소금과 설탕만큼은 최고급만을 사용한다”고 밝혔다. 특히 소금은 “맛의 완성도와 직결되는 만큼 품질 좋은 제품을 엄선해서, 손님이 그 존재를 의식하지 못할 정도로 맛 속에 자연스럽게 녹여내려고 했다”고 덧붙였다. ‘눈은 속일 수 있어도 입은 속일 수 없다’는 김 사장의 말에서 10년간 맛을 갈고닦아온 장인의 태도가 고스란히 묻어난다.
메뉴 구성의 변화도 눈에 띈다. 오픈 초기 단팥죽과 인절미 단팥죽으로 시작해, 이후 찐빵과 빙수에 이어 동지팥죽까지 더하며 메뉴 구성을 확장했고, 이를 통해 사계절 찾아가는 가게로서의 경쟁력을 확보했다. ‘맛만 있다면 계절과 상관없이 사랑받을 것’이라는 김 사장의 확신이 적중하며, 현재 빙수는 전체 매출의 70%를 차지하는 간판 메뉴가 됐다.
겨울철 매출도 해마다 경신하며 시즌의 한계를 넘어섰다. 빙수에 커피를 곁들이는 세트 메뉴는 손님들이 자연스럽게 만들어준 조합이 공식 메뉴로 자리 잡은 케이스로, 소스처럼 기호에 따라 곁들이는 콩가루도 단골들이 즐겨 찾는 옵션이다.

운영 면에서도 김 사장만의 노하우가 돋보인다. 팥이 쉽게 상하는 특성이 있어 품질 관리가 까다롭기에 팥을 급속 냉동했다가 필요할 때마다 해동해 사용하는 방식을 도입했다. 이 방법은 맛의 손실 없이 안정적인 품질을 유지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일정한 풍미를 사계절 내내 변함없이 지킬 수 있다는 점에서 큰 효과를 낸다.
향후 계획에 대해 김 사장은 “사골을 우리듯 오래, 꾸준히 끓여낼 수 있는 가게로 남고 싶다”고 답했다. 10년이라는 세월 동안 연희동 상권의 한 자리를 굳건히 지켜온 연희단팥죽. 김원석 사장은 오늘도 따뜻한 미소로 골목을 찾는 손님을 맞이하며 연희동 골목에 온기를 더한다.

◇ 연희동 폴앤폴리나, 긴 발효의 기다림으로 완성한 ‘소화 편한 식사빵’
서울 연희동 골목 어귀, 소박한 간판 아래 따뜻한 빵 냄새가 흘러나오는 곳이 자리한다. 2008년 첫 문을 연 ‘폴앤폴리나(대표 최종성)’가 그 주인공이다. 이곳이 2008년 홍대에서 시작해 연희동으로 터를 옮겼고, 이어 2011년 여의도에 2호점을 냈다. 브랜드명인 ‘폴앤폴리나’는 대표의 철학을 담아 동네 어귀의 친근한 빵집을 꿈꾸며 지은 ‘철수와 영희’의 프랑스 버전이다.
폴앤폴리나는 일상적인 재료로 만든 건강한 빵이 ‘디저트가 아니라 햇반처럼’ 한국인의 식탁에 오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폴앤폴리나가 처음 문을 열었을 당시만 해도 국내 제빵 시장에서 유럽식 식사빵의 개념은 생소했다. 이에 폴앤폴리나는 밀가루 소화를 불편해하는 한국인들도 속 편히 빵을 즐길 수 있도록, ‘발효’에서 그 해답을 찾으며 첫발을 내디뎠다.
폴앤폴리나 관계자는 “단 8가지 메뉴로 시작한 이 빵집이 내건 원칙은 단순하고도 명확했다”라며 “빵 본연에 집중해 소화가 잘되는 빵을 만드는 데 주력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이들은 매일 먹어도 속이 편안한 빵을 완성하기 위해 계량제 사용을 최소화하고, 소량의 발효종만으로 자연스러운 발효를 유도하고 있다. 인위적인 과정을 배제하다 보니 빵이 완성되기까지 일반 빵보다 두세 배의 시간이 더 걸린다. 직원들이 새벽 5~6시에 출근해도 오전 11시 무렵에야 모든 빵이 진열될 정도다. 이마저도 정확한 빵 나오는 시간을 정해두지 않는다. 그날의 온도와 습도, 반죽의 수분 함유량에 맞춰 발효 시간을 예민하게 조절하다 보니, 매일 빵이 완성되는 시간 역시 조금씩 달라질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메뉴 구성에도 이 철학이 고스란히 담겼다. 깜빠뉴나 식빵에 다양한 부재료를 넣는 것이 대세인 시장에서도 폴앤폴리나가 빵 본연의 맛을 고집한다. 요리나 스프레드를 곁들였을 때 비로소 빛을 발하는 ‘캔버스 같은 빵’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고객이 주식(主食)처럼 편하게 즐길 수 있도록 합리적인 가격대를 유지하는 것도 큰 특징이다. 작은 빵이 3000원대, 깜빠뉴가 1만 원, 식빵이 1만 5000원 선으로 누구나 일상에서 부담 없이 즐길 수 있게 구성했다. 또한 시그니처 메뉴인 깜빠뉴와 치아바타를 비롯해 모든 제품이 ‘당일 생산, 당일 판매’ 원칙을 철저히 지킨다.
이곳의 빵은 뛰어난 맛과 품질을 인정받아 ‘블루레시피’, ‘요소쿠야리나’, ‘푸어링 아웃’ 등 연희동 일대 여러 레스토랑과 카페의 선택을 받았다. 주 고객층이 소화가 편한 빵을 찾는 40~60대 중심이지만, 최근 건강빵에 관심 있는 젊은 층과 해외 거주 경험자 및 외국인 방문객까지 더해지며 수요층이 빠르게 확장되고 있다.

20년 가까이 변함없는 맛으로 사랑받아 온 폴앤폴리나가 그간 축적된 기술력을 바탕으로 ‘소화가 편해야 한다’는 철칙 아래 주재료의 변주를 통한 다채로운 메뉴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특히 천연 발효종 연구에 매진하며 “밀가루를 부담스러워하는 분들을 위해 100% 통밀이나 고대밀 등을 활용해, 더욱 다양한 고객층의 입맛을 만족시킬 수 있도록 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자본이 아닌 ‘취향’이 쌓아 올린 마을,
연희동의 지속 가능한 매력 [박스 인터뷰]

‘[핫플레이스를 만드는 플레이어들]’를
출간한 신지혜 작가가 밝힌
연희동 상권은 어떤 곳일까?

저자는 연희동을 대형 자본이 판을 뒤집은 화려한 상권이 아니라, 오랜 주거지의 리듬 속에 취향 기반의 공간들이 점진적으로 스며들어 만들어진 ‘마을형 상권’으로 정의한다. 높은 담장의 단독주택과 사러가쇼핑센터로 상징되던 정적인 동네가 어떻게 서울의 대표적인 핫플레이스로 진화했는지 그 내면을 들여다봤다.
신 작가는 책에서 연희동 상권의 진화 중심에는 쿠움파트너스 김종석 대표가 있다고 소개한다. 책에서 그는 공간을 단순한 임대 면적이 아닌 ‘지역 정서의 해석’으로 접근했다. 연희동의 변화가 여타 핫플레이스와 다른 점은 과도한 상업화 대신 기존 골목의 스케일과 분위기를 존중하며 콘텐츠를 얹었다는 데 있다. 폭발적인 유동 인구를 끌어당기는 앵커 시설 하나에 의존하기보다, 소규모 카페와 레스토랑이 완만한 밀도를 형성하며 생활과 취향이 겹치는 구조를 만들어낸 것이다.
◇ 임대인과 임차인의 상생, ‘책임임대차’의 마법
연희동 사례에서 주목할 지점은 단기 수익보다 지속가능성을 택한 ‘책임임대차’ 전략이다. 이는 임대인과 임차인이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상권을 함께 만들어가는 구조다. 공간 운영자의 철학을 고려해 테넌트를 유치함으로써 상권의 뼈대를 튼튼히 한 것이다.
김종석 대표가 관여한 80개 이상의 프로젝트는 이러한 태도를 증명한다. 연희동 카페거리 조성부터 최근 김중업 건축가의 유작을 리모델링해 재해석한 ‘연희정음’에 이르기까지, 이들의 작업은 지역의 시간성과 취향을 담아낸 복합 공간으로 평가받는다. 전통을 과장하지 않으면서도 현대적 감각으로 풀어낸 공간들이 연희동의 독보적인 정체성을 형성했다.
연희동 상권의 또 다른 핵심 플레이어는 로컬 매니지먼트 기업 ‘어반플레이’다. 이들의 프로젝트인 ‘파크먼트 연희’는 주거와 상업, 생활과 취향이 공존하는 구조를 실험하는 플랫폼이다. 일상과 문화가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이 공간의 진정성은 건강한 아름다움의 상징인 가수 이효리가 이곳에 요가원을 연 사례에서도 잘 드러난다. 문화와 라이프스타일이 공간에 어떻게 구현되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이다.
결국 연희동은 급격한 변신 대신 골목의 온도를 유지하며 천천히 축적된 변화의 결과물이다. 자본 중심의 재편이 아닌, 구조와 관계 중심의 설계가 만들어낸 이 마을형 상권은 우리에게 상권 활성화의 새로운 대안을 제시한다. 신지혜 작가는 연희동을 이해하기 위해선 ‘어디가 유명한가’보다 ‘어떤 사람들이 어떤 태도로 이곳을 설계했는가’를 봐야 한다고 강조한다. 낮은 담장 너머로 이웃과 취향이 공존하는 동네, 연희동은 오늘도 그들만의 속도로 가장 ‘핫한’ 일상을 기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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