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나이키를 둘러싼 분위기가 흉흉하다. 얼마 전엔 한국 공정거래위원회에 국내 한 기업이 미국 나이키 본사를 불공정 거래기업으로 신고했다. 신고자는 지난해 10월 미국 나이키 본사로부터 거래 해지 통보를 받은 한 국내 중소기업이었다.
이 업체는 그간 나이키 신발에 들어가는 특수자재를 납품해왔다. 그런데 중간에 거래 대행사를 끼워 넣는 방식을 일삼는 복잡하고 불합리한 납품 구조에 항의를 하다가, 나이키 본사의 눈 밖에 나면서 거래가 중단됐다는 게 이 중소기업의 주장이다. 매출의 대부분을 나이키관련 제품으로 만들어 왔던 이 회사는 도산 위기에 몰리면서 결국 공정위에 신고서를 제출한 것이다.
나이키의 부도덕한 행태에 사람들은 충격을 받았다. 나이키는 그간 세계를 대상으로 부조리한 관행과 사회 통념을 비판하는 다양한 캠페인을 벌여 사람들로부터 대표적인 정의롭고 공정한 기업으로 신뢰를 받아왔기 때문이다. 나이키는 페어플레이라는 정정당당히 겨루는 스포츠 정신을 바탕으로 성장한 글로벌 브랜드다. 이런 글로벌 기업이 ‘하청기업에 대한 원청업체의 횡포’라는 부도덕한 기업의 갑질 문화를 답습한다는 건 충분히 국민적 분노를 일으킬 만한 일이다.
하지만 뜨거워지는 여론과 달리 관련 국내 슈즈 업계는 의외로 나이키의 공정위 고발 사건을 담담하게 바라봤다. 오히려 ‘언젠간 터질 게 터졌다’란 반응이다.

이에 대해 업계 관계자는 “한국 슈즈 업계에서 나이키는 압도적인 시장 지배력을 무기 삼아 무소불위의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이번에 불거진 생산 파트에 대한 불합리한 관행도 문제지만, 한국에선 유통 관련 문제가 더 심각하다. 특히 나이키의 제품을 유통하는 벤더 및 편집숍 등의 채널들을 파트너로 동등하게 인정해 주질 않는다. 비즈니스상 손해를 볼 수밖에 없는 무리한 요구를 할 때가 적지 않다. 그럼에도 항의하기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항의했다가 블랙리스트에라도 오르면 자칫 나이키와의 단절로 이어져 앞으로 생존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라며 나이키의 절대적 강자 지위로 인한 문제점을 지적했다.
나이키가 국내 슈즈 산업을 어떤 방식으로 옥죄고 있는지를 보기 위해선 나이키와 나이키 거래선과의 관계를 이해해야 한다. 현재 나이키는 국내 및 글로벌 슈즈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나이키의 강세 속에 뉴발란스·아디다스·휠라 등의 브랜드가 그 뒤를 이어 서로 경쟁하며 남은 파이를 나눠 가지는 형국이다.

◇ 글로벌 시장 장악한 나이키, D2C 전략에 타격 입는 파트너사들
나이키의 지배력을 숫자로 확인하긴 어렵다. 한국에서 나이키 사업을 전개하는 나이키코리아는 유한회사란 이유로 매출 등 관련 정보를 공개하고 있지 않다. 하지만 리테일 가격 기준 1~2조원 단위의 막대한 매출을 내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여러 신발 브랜드를 편집해서 판매하는 슈즈멀티숍의 경우, 절반 가까운 매출이 나이키 제품에서 창출된다. 시장조사업체 유로모니터의 집계에 따르면 국내 신발시장 규모는 지난해 기준 5조원을 훌쩍 넘는다. 슈즈업계 관계자들은 “나이키 단일 브랜드로만 국내 점유율은 적어도 전체의 1/3이 넘을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그렇다면 나이키는 어떤 방식으로 국내 슈즈 시장을 점유하고 있을까. 나이키의 국내 유통망은 크게 리테일 파트너과 홀세일 파트너, 온라인으로 구분된다. 리테일 파트너는 나이키 제품을 전문으로 취급하는 단독 오프라인 소매점이다. 서울 주요 상권에서 나이키의 간판을 달고 영업하는 단독 매장을 떠올리면 쉽다. 홀세일 유통은 대부분 슈즈멀티숍이 거래선이다. ABC마트, 에스마켓, 슈마커, JD스포츠, 풋마트, 폴더, 풋락커 등이 대표적이다.
온라인은 나이키 홈페이지나 앱을 통해 판매하는 유통 채널이다. 최근 나이키가 가장 주력하는 유통채널이기도 하다. 현재 글로벌 나이키 본사는 소비자에게 직접 판매하는 D2C 전략을 가속화하고 있다. D2C 전략의 핵심은 나이키가 직접 제품을 소비자에게 판매한다는 것으로 작은 중소 도시 매장이나, 규모가 작은 파트너사들은 줄이고, 자사 온라인몰과 빅(Big) 파트너사들을 통한 핵심 도시(Key City에 대형 매장만을 운영하겠다는 전략이다.
이에 따라 나이키는 2019년 11월부터 아마존에서도 철수하는 등 중간 유통채널을 거치지 않는 직접 판매에 집중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온라인을 집중 육성해 ‘중간 마진’을 줄이는 전략을 강화해 나가고 있다. 또한 나이키코리아는 극히 일부 오프라인 매장만을 직접 운영하고 빅(Big)파트너사들을 통해 서울과 수도권에 대형 매장 오픈을 추진하고 있다. 나이키코리아는 서울 강남역과 명동 매장이 유일한 직영점으로 알려졌고, 그리고 시즌이 지난 이월 재고 상품을 판매하는 국내 백화점의 프리미엄 아울렛 매장이 직영으로 운영하는 곳이다.
나이키가 직접 소비자에게 판매하는D2C 전략은 작은 규모의 파트너사를 줄이거나 아니면 물량을 줄이는 방향으로 나아가 이미 국내의 여러 파트너들이 곤욕을 치른 바 있다. 대표적으로 금강제화 계열사 갈라인터내셔널이 운영하는 슈즈멀티숍 레스모아가 있다. 이 슈즈멀티숍 브랜드는 2019년까지만 해도 120여개의 오프라인 매장을 운영하며 1000억원대 매출을 유지했지만, 지난해 6월을 기점으로 오프라인 매장을 모두 철수하고 중단했다.
레스모아 매출의 상당부분을 차지하던 나이키가 공급 계약 중단을 운운하면서 일찌감치 불안감을 조성해 온 것이다. 결국 레스모아의 사업중단은 전체 매출의 40%를 차지하던 나이키 제품을 구성하지 못할 경우 슈즈멀티숍의 사업은 사실상 운영이 불가능하다는 판단 하에 내린 결정이다. 이는 나이키 없이는 슈즈멀티숍 사업이 중단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 사례로 꼽힌다. 그만큼 한국에서 나이키의 파워는 생각보다 크다. D2C 채널이 아닌 나이키로부터 제품을 납품받는 비즈니스 관계에 놓인 업체는 철저히 을의 입장이 될 수밖에 없다.

◇ 나이키, 슈즈멀티숍 수주회 시에 등급별로 제품 선택권 제한
슈즈멀티숍들은 나이키 의존도가 절대적이다. 나이키 제품에 목을 맬 수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나이키가 있으면 매출이 나오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매출이 현저하게 떨어진다는 것이다. 간단하게 표현하자면 손님을 매장 안으로 끌어들이고 매출을 높이기 위해선 어찌됐든 간판 역할을 할 나이키 신발이 진열돼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만큼 국내엔 나이키 슈즈를 사는 충성 고객이 넘쳐난다. 조던 시리즈 등 한정판 운동화를 사고 파는 리셀시장이 따로 있을 정도다. 인기가 높은 한정판 나이키 제품의 경우, 중고시장에서 정가보다 수십 배, 백배 비싼 값에 거래된다.
나이키가 비즈니스 관계의 페어플레이를 외면하는 건 거래 곳곳에서 나타난다. 인기가 높은 나이키 신발을 많이 팔면 파트너도 이익을 내야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다른 브랜드와 비교해 기본적으로 나이키 제품의 마진이 높지 않기 때문이다. 통상 나이키 제품의 납품받는 금액의 원가율은 45~50% 안팎이다. 임대료, 인건비, 재고, 할인 등의 각종 변수를 빼고 나면 사실상 남는 게 많지 않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파트너 업체가 나이키에 ‘공급가를 낮춰 달라’고 요구하는 건 언감생심이다. 대신 나이키의 ‘입맛대로’ 움직인다면 약간의 혜택을 누릴 순 있다. 기본적으로 수주물량, 즉 오더 금액이 많으면 공급원가를 조금 내려준다. 그리고 결재를 빨리하면 일명 얼리페이먼트 시에 추가 인센티브를 통해 공급원가를 낮춰 주고 있다.
하지만 이는 파트너 회사 입장에선 꽤 부담스러운 경영 결정이다. 자칫 수주물량을 늘렸다가 재고로 남는 불상사로 번질 수 있기 때문이다. 시즌에 앞선 제품을 사들이는 것이기 때문에 얼마나 손님이 몰릴지 정확히 예측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결제를 미리 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몸집이 작은 업체일수록 현금 유동성이 부족하기 마련이다.

따라서 슈즈업계 관계자는 “나이키로 고객의 발길을 모은 후 마진이 높은 타 브랜드 제품 또는 PB(Private Brand) 제품을 판매하려고 하는 게 요즘 슈즈멀티숍 브랜드의 전략”이라면서 “나이키가 없으면 고객과 외형 매출이 줄어 사업에 타격을 입는다. 이익은 되지 않아도 집객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제품이다. 이런 이유로 업체들은 나이키와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 숙명을 안고 지내고 있다”고 설명했다.
나이키가 유통채널을 옥죄는 방법은 높은 시장 지배력에만 있는 게 아니다. 나이키는 제품으로도 거래처인 수많은 업체들의 희비를 엇갈리게 한다. 사실 나이키도 제품에 따라 인기가 높은 라인과 반대로 안 팔리는 라인이 있다.
문제는 이 인기 라인을 풍족하게 납품받을 수 있는 파트너사가 미리 몇몇 곳으로 정해져 있다는 것이다.나이키는 제품을 납품받는 파트너사들을 등급을 매겨 관리하고 있다. 가령 해외에서 들어온 슈즈멀티숍에 비해 토종 슈즈멀티숍 대부분은 낮은 등급에 속한다. 이들이 선택할 수 있는 인기 제품은 제한적이다. 등급이 높으면 다양한 제품 안에서 선택할 수 있고, 그렇지 않으면 인기가 없는 제품 안에서 선택을 해야 한다. 인기가 없으면 안 팔릴 확률이 높다. 재고로 남을 경우 고스란히 파트너사들이 리스크로 떠안게 되는 것이다.
◇ 나이키, 이미 출고한 제품에 대한 판매가격 통제 계속
더구나 파트너사들은 정상 가격에 팔다 남은 재고 제품도 처리를 마음대로 할 수 없다. 나이키와 파트너사의 계약은 위탁판매가 아닌 ‘사입’ 방식이다. 물건을 도매 가격으로 매입하고 판매 시점에 입고되면 소비자 가격으로 판매해 이익을 남기는 구조다. 제조사인 나이키는 물건을 팔았으면 그 순간 역할이 모두 끝나는 게 맞다. 하지만 나이키의 경우는 남다르다. 슈즈업계 관계자는 “재고로 남은 나이키 제품에 큰 폭의 할인율을 매기면 왜 이렇게 싸게 판매하느냐면서 나이키 측의 컴플레인이 들어온다”면서 “결국 돈 주고 산 시장가격도 나이키가 컨트롤하는 셈”이라고 꼬집었다.
심지어 나이키는 일일이 슈즈멀티숍 매장의 제품 구성과 위치에도 관여한다. 2층짜리 슈즈멀티숍 매장에 나이키가 2층에 들어가는 경우는 거의 없다. 매장 1층, 그것도 가장 잘 보이는 전면 쪽에 나이키 제품을 놓아야 한다. 이런 요구에 불응할 경우 자칫 나이키 제품을 진열하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 나이키는 수 백여개의 국내 슈즈멀티숍 매장 하나하나 나이키 제품 구성 여부를 결정한다. 그리고 구성을 허락 받더라도 제품 진열 위치 또한 나이키가 결정한다.
슈즈멀티숍에 대한 투자는 슈즈멀티숍이 하는데 주인 행세는 나이키가 하는 것과 마찬가지인 셈이다. 하지만 나이키의 요구에 따를 수밖에 없다. 나이키와 거래 여부를 결정짓는 재계약이 때론 1년 단위로 맺어진다. 업체들은 매년 계약해지 불안감을 안고 사업을 유지하고 있고, 순응할 수 밖에 없는 구조 속에 반복되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한 유통 업체 관계자는 “돈을 주고 물건을 사입했으면 제품에 대한 권한이 넘어왔는데도 나이키는 마치 하청업체를 다루듯 제품의 배치까지 일일이 관여하면서 때론 고압적인 스탠스를 보일 때가 많다”면서 “하지만 나이키에 밉보였다가 불이익을 당하게 될까 봐 나이키의 지시에 따르는 수는 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나이키의 이러한 거래 관행은 자칫 불법 논란으로 번질 수도 있다. 업계 관계자는 “특정 채널에만 인기 제품을 공급하고, 나머지엔 납품 기회를 주지 않는 건 공정거래법상 우월적 지위남용에 해당할 수 있다”면서 “유통채널의 자유로운 사업활동을 명백히 제한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하청업체를 다루듯 제품의 위치나 판매가격을 정해주고 그 가격대로 판매하도록 강요하는 것 역시 공정위가 정하는 불법이다. 원천적으로 유통 업체 간 가격할인을 제한하는 것은 경쟁 차단에 따른 소비자이익 침해로 볼 수 있다. 나아가 제조사가 먼저 판매 장소를 정해주고 이외의 곳에서는 영업을 못하게 하는 행위 역시 공정위 과징금 대상이다.
이런 점에 불만을 갖더라도 파트너사들은 제대로 대응하지 않는다. 오히려 다음 번 제품 거래 시에 불이익을 당할 까봐 쉬쉬하는 분위기이다. 나이키 본사와의 릴레이션십이 어떻느냐에 따라 사업의 성패가 결정되는 셈이다. 이처럼 나이키 파트너사들은 ‘그나마 지금 나이키 제품을 받고 있는 것에 감사하자’는 자조 섞인 말만 할 뿐 항변조차 못하는 안타까운 현실에 놓여 있는 것이다.
마지못해 불법과 편법을 아슬아슬하게 줄타기하는 나이키의 행태에 법률적으로 대응을 하는 것도 쉽지 않다. 나이키 뒤에는 김앤장 등 국내 대형 로펌이 자문을 하고 있어 행동으로 옮기기에는 많은 고민을 하게 한다.
◇ 나이키, 슈즈멀티숍 내의 나이키 공간 인테리어와 위치 직접 결정
나이키의 이런 유통 관행은 유독 한국에서만 굳어졌다는 평가다. 우리나라의 나이키 지배력이 유난히 높게 형성된 탓이라는 설명이다. 슈즈업계 관계자는 “미국에선 대형 식료품 가게에서도 나이키 제품을 팔기도 한다”면서 “한국에선 나이키 제품을 팔기 위해선 나이키코리아가 원하는 매장 위치와 인테리어까지 직접 해야 하고, 세일도 맘대로 하지 못한다”고 꼬집었다.

또 다른 슈즈업계 관계자는 “나이키의 한국 사업 번창은 나이키 혼자서 이뤄낸 성과가 아닌 데도 ‘기존 파트너 회사들을 이렇게까지 심하게 해도 되나’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함부로 대하는 경향이 있다”면서 “한국 슈즈 생태계 전체를 고려하지 않는 나이키의 비즈니스가 언젠간 부메랑으로 돌아와 크게 다칠 것”이라고 경고했다.
결국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한국 슈즈시장이 다양성을 갖추는 게 필요하다. 나이키와 경쟁이 가능한 브랜드가 시장에 나타나고, 신규나 토종 국내 브랜드의 성장도 함께 필요하다. 하나의 브랜드가 시장을 리드하는 것이 아닌, 다양한 브랜드가 시장에 안착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야 한다. 당장 나이키 파워가 무너지지는 않겠지만 현재 나이키가 시장 지배력을 갖고 좌지우지하는 불공정 사례를 하나하나 지적하고, 불법적 요소가 있다면 이를 과감하게 고발하는 등 강력한 조치를 취해 나간다면 차츰 공정한 슈즈유통 문화 정착이 이루어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에 한국에서도 올버즈(Allbirds)와 같은 유니콘 슈즈 기업이 탄생하길 바라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올버즈는 수년만에 기능성 소재와 심플한 디자인, 합리적인 가격으로 실리콘밸리를 흔들어 놓은 미국의 친환경 신발 스타트업이다. 단기간에 기업가치 14억 달러(약 1조6000억원)에 달하는 유니콘 기업으로 부상했다.

슈즈업계 관계자는 “나이키가 우월적 지위로 슈즈 유통채널에 횡포를 부리고 있다고 본다. 계속될 경우 국내 슈즈산업 생태계에 더 큰 악영향을 줄 것이 뻔하다”면서 “나이키의 불공정한 행태가 이어진다면 결국 소비자의 외면으로 이어질 것이다. 그렇다고 그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아닌 올버즈처럼 나이키를 대신할 수 있는 브랜드를 탄생시키기 위한 환경 조성에 앞장서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