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패션 플랫폼의 전성시대다. 지난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업계 전체가 침체기를 겪었지만, 패션 플랫폼은 예외였다. 집 밖에 나가지 않는 게 가장 안전한 코로나19 예방수칙이 된 만큼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옮겨가던 패션시장의 무게추가 온라인으로 더 급작스럽게 기울었기 때문이다.
앱을 통해 손쉽게 상품 파악이 가능하고 구매 결제까지 이어지는 방식의 쇼핑은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빠르게 퍼졌다. 특히 MZ세대는 디지털 친화적인 세대로 온라인 플랫폼을 통한 상품 구매가 일상이 됐다.
반면 여성 패션 플랫폼으로 시작해 최근 남성과 코스메틱, 키즈 시장까지 확대에 나선 플랫폼 3사가 치열한 경쟁 중이다. 바로 지그재그와 브랜디, 에이블리의 각축전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이들 3사엔 동대문 도매시장에서 발품을 팔아 물건을 확보한 온라인 셀러(소매판매자)가 밀집해 있다.
1세대 온라인 패션몰의 성공 이후 중소형 쇼핑몰과 인디 브랜드가 우후죽순 생겨나자 여러 사이트의 제품을 한 공간에 놓고 비교해 쇼핑할 수 있는 앱 환경을 구축해 선보였다.
매월 사용자 수 340만명, 앱 누적 다운로드 수는 3000만회가 넘는다. 10대가 가장 많이 사용한 쇼핑앱으로 꼽히고 있다. 브랜디 역시 승승장구하고 있다. 지난해 연간 거래액 3000억원, 누적 거래액 6000억원을 돌파했고, 앱 다운로드 수 1000만건, 월간 사용자 수 340만명, 셀러 1만2000명 입점 등 숫자로 경쟁력을 입증했다.
이런 눈부신 성과 속에 기업가치도 치솟았다. 지난 6월 카카오에 인수된 지그재그의 경우 1조원의 기업 가치를 인정받았다. 브랜디 역시 지난해 9월과 올 4월 네이버와 산업은행으로부터 각각 100억원의 투자를 받았고, 지난 8월엔 네이버가 추가로 200억원을 쐈다. 투자 과정에서 브랜디는 약 6000억원의 기업가치를 인정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에이블리는 지난 5월 시리즈B 브릿지 투자를 유치했다. 스마일게이트 인베스트먼트, SV인베스트먼트 등 총 7개사로부터 총 620억원 규모의 투자다. 이 플랫폼은 지난해 진행된 370억원 규모의 시리즈B를 합치면 총 990억원의 투자금을 확보했다. 지난 2019년 진행된 70억원 규모의 시리즈A 투자까지 합치면 누적 투자 금액은 1060억원에 이른다. 에이블리의 투자 후 기업 가치는 4000억원 수준이 거론됐다.
하지만 승승장구하는 이들에게도 넘어야 할 장애물은 있다. 특정 플랫폼이 아직 시장을 완전히 장악하진 못한 상태인 만큼, 차별화가 필요해졌기 때문이다. 사실 3개 플랫폼이 미묘하게 다른 마케팅을 내세우곤 있지만,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온라인 쇼핑몰과 인디 브랜드를 한데 모아 제공하는 서비스를 시작했다는 점에서 차별화가 절실한 상황이다. 모바일 앱 중심으로 사업을 전개하고 있고, 소비자의 구매 이력을 분석해 제공하는 점도 비슷하다.
패션업계는 전쟁터로 불릴 만큼 경기변동에 매우 민감하다. 하루가 다르게 트렌드가 바뀌고 지갑을 여는 세대도 바뀐다. 언제까지 2030 세대가 열어주는 지갑만 기대할 순 없는 노릇이다.
포스트코로나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할 비대면 쇼핑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무엇을 판매할지가 아닌 어떻게 판매할지, 차별화 콘텐츠는 무엇으로 할지를 고민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결국 이들의 전략적 목표는 ‘새 손님 모으기’로 요약된다. 온라인에서 물건을 사는 것이 익숙해진 MZ세대 외에도 다양한 세대의 고객을 끌어 모아야 매출을 더 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 브랜드 입점에 적극 나서 디자이너, 스트리트, 캐주얼 부분 입점
수 천억원의 몸값을 갖췄는데도 3사의 최근 움직임이 분주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3사는 올해 들어 잇달아 브랜드 카테고리를 오픈했다. 지난 3월 지그재그가 먼저 신호탄을 쐈다. 브랜드 상품만 모아 선보이는 ‘브랜드관’을 별도 탭으로 제공했다. 의류부터 가방, 신발, 액세서리까지 120개 이상의 스트리트 브랜드, 디자이너 브랜드별 컬렉션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게 했다. 브랜디 역시 지난 4월 브랜디 앱 내 독립적인 미니앱을 여럿 오픈했다. 플랫폼 내 팬시·명품·리빙·스포츠 등 다양한 브랜드의 입점을 꾀했다.
에이블리 역시 최근 디자이너 및 스트리트·캐주얼 브랜드 상품만 모아 놓은 전용관을 오픈했다. 입점한 주요 디자이너 브랜드로 라이·보울룬·프롬웨얼·누트·르마스크·시티브리즈·얼뮤트·문수권세컨 등이 있다. 아울러 디키즈·밀레클래식·꼼파뇨·네스티팬시클럽·아메스 월드와이드· 메인부스· 론론 등의 스트리트·캐주얼 브랜드도 만나볼 수 있다.
에이블리는 브랜드관 오픈 기념으로 파격적인 마케팅을 실시하기도 했다. 다양한 브랜드에서 상품을 구매해도 배송비 부담이 없도록 365일 전상품 무료배송을 실시한 것이다. 9월 한 달간 부담 없이 쇼핑을 즐길 수 있도록 반품비 지원 이벤트도 실시했다. 최소 금액과 횟수 제약 없이 원하는 경우 제품을 반품하고 반품 비용은 에이블리 상품권 형태로 지급하는 형식이다. 에이블리는 지난 9월 ‘나이키 팝업스토어’를 운영하기도 했다. 운동화·의류·가방·모자 등 나이키 인기 상품을 최대 60% 할인가에 선보이는 이벤트였다.
에이블리 관계자는 “차별화된 영역에서 브랜드만의 정체성을 보여주고 유저들에게 편리한 쇼핑 경험을 제공하고자 브랜드관을 리뉴얼했다”며 “앞으로도 검색 기능 고도화, 큐레이션 강화 등 기능적 개선을 통한 고객 만족뿐 아니라 브랜드 성장 지원을 위해 앞장서는 스타일 커머스 플랫폼이 되겠다”고 설명했다.
◇ 다양한 브랜드와 카테고리 입점이 차별화 전략의 핵심
중장년층이 반드시 백화점에서 입어보고 사야 한다는 쇼핑 원칙을 깨고 온라인에서 지갑을 열기 시작하면 패션 플랫폼의 판도가 뒤바뀔 수 있을 거란 기대 때문이다. 포스티를 통해 올리비아로렌·온앤온·이엔씨·마리끌레르·BCBG 등의 패션 브랜드와 블랙야크·헤리토리골프 등 아웃도어·골프 브랜드까지 총 60여 브랜드 본사와 직접 입점 계약을 마쳤다.
에이블리 역시 제품 브랜드 카테고리를 늘리는데 주력하고 있다. 패션 중심에서 홈데코·핸드메이드·코스메틱까지 브랜드 카테고리를 확장해 ‘라이프 스타일’ 전반으로 영역을 넓혔다. 스타일과 관련된 보다 많은 제품을 에이블리를 통해 만나볼 수 있게 하겠다는 전략이다.
현재 롬앤·셀리맥스·클리오·키르시 블렌딩·페리페라 등 MZ세대에서 주목받고 있는 브랜드가 입점해 인기를 끌고 있다. 다양한 신규 브랜드를 추가 입점해 뷰티 라인을 강화할 예정이다. 제품군도 색조 화장품을 시작으로 기초·스킨케어까지 확장할 계획이다.
강석훈 에이블리코퍼레이션 대표는 “화장품도 소비자의 취향과 스타일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에 이번 코스메틱 카테고리를 런칭했다”며 “한층 더 고도화된 개인화 추천 알고리즘을 기반으로 유저 취향 맞춤형 상품을 연결하는 스타일 커머스 플랫폼 대표 주자로 자리매김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브랜디는 마미 외에도 여러 앱 서비스를 운영 중이다. 2018년 11월 출시한 남성 쇼핑 플랫폼 하이버는 지난 7월 누적 거래액 1200억원, 누적 앱 다운로드 수 500만회를 달성했다.
다만 패션 플랫폼들의 이런 전략이 순조롭게 진행될 지는 미지수다. 이들 플랫폼과 거래하는 것이 브랜드 이미지, 기존 유통과 차별화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과연 유리한가를 고민하는 브랜드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브랜드 입장에선 자칫 ‘동대문 패션’과 같은 결로 보일 수 있다는 위험도 있고, 브랜드 정체성이 흔들려 기존 고객 이탈도 우려되는 상황이다.
이들 3사 플랫폼이 브랜드 유치에 공격적으로 나서고 있지만, 좀처럼 유명 브랜드 입점 소식이 더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사실 플랫폼 입장에선 브랜드의 높은 콧대 때문에 관계를 맺고 유지하는 게 쉽지 않다. 잘 나가는 브랜드 대부분은 자체적으로 모바일이나 온라인숍을 운영하고 있는 데다, 굳이 기존 플랫폼으로 충분한데 추가로 플랫폼에 입점할 경우 비용 대비 효율이 날지 꼼꼼하게 따져보고 결정하는 등 보수적 입장을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마치 백화점 업계가 ‘에·루·샤(에르메스·루이비통·샤넬)’로 불리는 초고가 명품브랜드를 유치하는 데 목을 메다시피 하는 것처럼, 이들 패션 플랫폼들도 앞다퉈 프리미엄 쇼핑 경험을 주기 위해 유명 브랜드를 입점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면서 “앞으론 어떤 브랜드를 유치했는지에 따라 이들 플랫폼의 위상이 달라지는 시기가 오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