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일, 8월 19, 2025
HomeExclusive유통업계 경영진 ‘주주행동주의’에 충돌 불가피 ‘초긴장’

유통업계 경영진 ‘주주행동주의’에 충돌 불가피 ‘초긴장’

현대백, KT&G, sM 등 소수 목소리에 미래 경영 전략 수정

‘주주행동주의’가 리테일 산업의 미래 경영에 큰 변수로 자리잡았다. 주주행동주의란 주주가 회사의 경영 관행이나 전략을 바꾸기 위해 다양한 권리를 주장하는 것을 의미한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과거 소액주주란 이유로 무시 받을 때와는 달리 이젠 소액주주이더라도 오너나 경영진의 선택을 수용하지 않고 그들을 감독하면서 적극적으로 행동에 나서고 있다”면서 “그래야만 회사와 주주의 가치가 동시에 끌어올릴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주주행동주의를 더 쉽게 설명하면, 기업의 지배구조를 ‘주주 중심’으로 설정한다는 의미다. 이런 주주행동주의를 지향하는 금융세력을 특별히 ‘행동주의 펀드’로 분류되기도 한다. 행동주의 펀드는 여러 투자자로부터 자금을 끌어 모아 해당 기업의 지분을 취득해 일정한 의결권을 확보한 후, 기업의 지배주주나 경영진을 향해 자산 매각이나 배당 확대, 자사주 매입 등 기업가치를 끌어올릴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제안한다.

실제로 최근 소액주주와 행동주의 펀드가 이런 방식으로 기업을 견제하는 건 상당히 활발해졌다. 주주총회 자리에서도 소액주주가 이사회에 의견을 피력하는 데 거침이 없다. 오히려 기업들이 주주들을 달래기 위해 진땀을 빼고 있는 상황이다.

주주가 적극적으로 기업 경영에 개입하는 주주행동주의는 ‘행동주의 펀드’로도 확대돼 유통산업 곳곳에서 의결권을 행사하는 등 그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최근 주주행동주의에 의해 기업의 정책 변화를 맞은현대백화점그룹(사진 01), KT&G(사진 02), SM엔터테인먼트(사진 03))

주주가 적극적으로 기업 경영에 개입하는 주주행동주의는 유통산업 곳곳에서도 관찰되고 있다. 이중 가장 곤혹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 기업은 현대백화점이다.

롯데·신세계와 함께 유통업계 ‘빅3’로 분류되는 현대백화점은 지난해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하고도 뜻밖의 암초를 만났다. 현대백화점그룹은 지배구조를 재편해 미래 사업을 도모할 계획이었는데, 이게 주주들의 반대로 무산됐기 때문이다.

현대백화점은 지난해 11월 현대백화점홀딩스(가칭)를 신설법인으로, 현대백화점(사업회사)을 존속법인으로 나누는 인적분할 계획을 발표했다. 지주사 현대백화점홀딩스는 현대백화점과 한무쇼핑을 자회사로 두고, 현대백화점은 면세점, 지누스를 거느리는 형태다. 이를 통해 백화점업의 성장성 한계를 극복하고, 기업 및 주주 가치를 끌어올리겠다는 포석이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현대백화점의 지배구조 재편은 별다른 걸림돌 없이 순순히 진행될 것처럼 보였다. 기업 분할 방식도 여론의 저항감이 적은‘인적분할’이었다.

현대백화점그룹의 지배구조 재편이 임시 주주총회가 열린 결과 무산됐다. 기관투자가와 소액주주가 반대표를 행사한 것으로 보고 있다.

기업을 나누는 방법엔 크게 물적분할과 인적분할, 두가지가 있는데 이중 물적분할은 회사가 특정 사업의 자산과 부채를 따로 떼어 자회사를 설립하는 방식이다. 기존 회사(모회사)가 신설회사(자회사) 지분을 100% 소유하게 돼 기존 회사 주주는 신설회사 주식을 받을 수 없는 수직적 분리다. 기존 모회사의 핵심사업이 떨어져 나가기 때문에 기존 주주 권리를 침해한다는 비판이 적지 않았다.

특히 2020~2021년 사이 분할 신설회사를 주식시장에 재상장하는 ‘쪼개기 상장’이 빈번해지면서 물적분할을 둘러싼 여론이 험악해졌다. 왜 주주가 가져야 할 투자자산의 미래 가치를 아무런 대가도 주지 않고 뺏어가느냐는 지적이었다.

반면 인적분할은 물적분학과 비교해 주주가치 훼손 우려가 상대적으로 적다. 회사를 나눈 뒤 기존 주주들이 신설회사의 주식을 일정 비율대로 나눠 갖기 때문이다. 이론상으로는 주주가치가 훼손되지 않는다. 신사업을 분할 상장해 기업 가치가 재고되는 장점도 있다. 현대백화점이 인적분할을 택한 것 역시 이런 여론의 반발을 잠재우기 위해서였을 가능성이 크다.

더구나 현대백화점은 올해 초 인적분할 이후 자사주 소각 및 확대된 배당 정책을 포함한 주주환원정책 추진 계획을 밝히기도 했다.

◇ 현대백화점홀딩스 지주사 설립,소액주주 반대로 무산

현대백화점의 우량 자회사인 한무쇼핑을 지주사 아래에 두는 것은 결국 대주주에겐 유리하고 소액주주에겐 불리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진 한무쇼핑은 현대백화점 무역센터점 외에 남양주 현대아울렛(사진 04)과 김포 현대아울렛(사진 05)등 다수의 지점을 운영하고 있다.)

인적분할 후 현대백화점홀딩스가 갖게 될 자사주를 소각하고, 향후 배당금 총액(240억원)을 보장하겠단 이른바 ‘당근’이었다. 자사주 소각은 주가 부양을 위한 대표적인 정책으로 평가받는다. 소각하는 자사주만큼 유통주식 수가 줄어들기 때문에 주당 가치는 상승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막상 이 개편안을 상정한 현대백화점의 임시 주주총회가 열린 2월 10일, 결과는 예상과는 정반대로 나왔다. 해당 안건이 특별결의 요건(찬성률 66.7%)에 약 1.7%에 미달하며 통과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현대백화점이 최대주주를 비롯한 특수관계인 지분율이 36%로 높다는 점을 고려하면 상당수의 기관투자가와 소액주주가 반대표를 행사했다는 뜻이다. 현대백화점 지분 8%를 보유한 국민연금공단 역시 반대표를 행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백화점이 야심차게 모색한 지배구조 개편계획을 왜 주주들이 무너뜨린걸까. 인적분할을 통한 지주사 전환은 현대백화점의 중요한 미래전략이었다. 지주사 전환을 통해 얻을 수 있는 효과가 뚜렷했기 때문이다.

지주사의 의미는 다른 회사 주식을 소유해 사업활동을 지배하는 회사다. 사업 규모가 크지 않을 땐 회사 내에 여러 사업부를 둬도 문제가 없지만, 사업 범위가 넓어지면 사업 간 독립성이 중요해진다. 이렇게 분리된 회사가 각자 사업에 맞는 경영활동을 벌이면서 살아남는다. 이 회사들을 모아 전체적으로 관리하는 회사가 바로 지주사다. 이렇듯 지주사 체제로 전환하면 전략적 경영 기능과 사업 기능을 확실하게 분리할 수 있다.

현대백화점의 계획도 그랬다. 지주사인 현대백화점홀딩스에 사업회사인 현대백화점과 한무쇼핑을 편입해 경영 효율화를 추구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런데도 소액주주들이 반발했던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먼저 현대백화점 인적분할 과정에서 현대백화점의 핵심 자회사 한무쇼핑이 지주사인 현대백화점홀딩스 산하로 편입되는 시나리오가 문제였다.

현재 현대백화점이 지분 54.87%를 보유한 한무쇼핑은 매년 2000억원 가량의 현금을 벌어다주는 알짜 캐시카우 기업이다. 당연히 한무쇼핑을 지주사 아래에 배치하는 것에 대한 주주들의 반대 목소리가 컸다. 한무쇼핑은 현대백화점과 한국무역협회의 합작법인이다. 현대백화점 무역점, 킨텍스점, 충청점, 목동점, 남양주아울렛, 김포아울렛 등의 핵심 점포를 운영하면서 현대백화점의 여러 계열사 중 이익 창출력이 가장 높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정지선 현대백화점그룹 회장은 현대백화점의 최대주주이다.

◇ 소액주주, 대주주 지배력 강화에 유리한 것으로 판단
인적분할을 하게 되면 일반 주주들은 사업회사인 현대백화점의 지분을 더 많은 비율로 갖게 되는데, 사업회사는 한무쇼핑의 수혜를 입지 못하게 되기 때문이다.

지주사 체제 전환에 대한 정당성이 부족하단 평가도 적지 않았다. 오히려 중장기적으로 주주들의 이익보다 대주주 지배력 강화에 유리한 전략으로 사용될 수 있다는 이유다.

명목상으로 현대백화점이 밝힌 지주사 전환은 기업 및 주주가치 제고에 초점이 맞춰져 있지만, 실제로 그렇지 않다는 분석이 있다. 증권업계에 선 체제를 전환하는 진짜 이유로 ‘오너일가의 지배력 강화’를 꼽았다. 현재 정지선 현대백화점 회장의 지분은 17.09% 수준으로 높지 않다.

인적분할 이후 오너일가가 사업회사(현대백화점)의 주식 전량을 현물출자해 지주회사(현대백화점홀딩스)의 지분을 취득한다면 지배력 강화의 효과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캐시카우인 한무쇼핑을 지주사 아래에 위치시키는 것도 결국 대주주에게 가장 유리한 구조라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금융투자 업계 관계자는 “인적분할 안건에 소액주주들의 반대로 제동이 걸린 건 국내 상장사 중에선 드문 사례”라면서 “캐시카우인 한무쇼핑을 지주회사에 두면 현대백화점이 가졌던 배당 이익이 줄어들 것이란 우려가 나오면서 주주들의 이익을 침해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적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결국 현대백화점그룹은 “현대백화점은 이번 임시 주총 결과를 겸허히 수용하며, 그간 추진해왔던 인적분할을 통한 지주회사 체제 전환을 중단하기로 결정했다”며 “특히 시장의 우려를 고려해 신중하게 추진했던 분할 계획과 주주환원정책이 주주들께 충분히 공감 받지 못한 점에 대해 심심한 사과의 말씀을 올린다”고 고개를 숙여야했다. 현대백화점의 미래 경영 전략 역시 기약없이 미뤄지게 됐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오너일가인 정지선 회장과 정교선 부회장 형제가 그룹 경영에 모두 참여하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인적분할은 궁극적으로 형제경영에서 탈피하고 계열분리를 단행하기 위해 포석을 쌓기 위한 첫 번째 단계였는데 이게 무산이 되면서 많이 곤혹스러운 상황에 놓이게 됐다”면서 “똑똑해진 주주들의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선 기업들이 보다 세밀한 주주환원책을 마련하고, 이를 바탕으로 한 설득 작업이 수반돼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행동주의 펀드 KT&G 주주 제안, 정관장 분리 상장 요구

행동주의 펀드는 주주 제안을 통해 한국인삼공사(KGC) 분리 상장, 비핵심사업 정리,잉여현금 주주환원, 사외이사 선임 등을 주요 골자로 KT&G 경영에 끊임없이 관여하고 있다.

글로벌 시장에서 담배와 인삼·홍삼 등을 판매하는 KT&G 역시 지난해 10월부터 행동주의 펀드의 맹공을 받고 있다. 안다자산운용(안다)과 플래쉬라이트캐피탈파트너스(FCP) 등 행동주의펀드 2곳이 KT&G에 다양한 주주제안을 제기하고 있는데, KT&G 이사회는 못마땅한 표정을 짓고 있다.

이들 펀드는 KT&G 이사회에 궐련형 전자담배 ‘릴’의 글로벌 전략 수립, 한국인삼공사(KGC) 분리 상장, 비핵심사업 정리, 잉여현금 주주환원, 사외이사 선임 등을 골자로 한 주주제안을 보냈다. KT&G의 주가가 큰 반등 없이 몇 년간 정체돼 있자 이 문제를 타개할 방법을 적극적으로 제안한 것이다. 실제로 KT&G는 지난 10년간 주가가 9만원대 박스권에 갇혀 있다.

행동주의펀드들의 제안 중 KT&G를 가장 곤혹스럽게 하는 건 ‘KGC의 분리 상장’이다. KGC는 KT&G의 전신인 담배인삼공사가 1999년 인삼 사업부를 분리해 설립했다. 홍삼, 홍삼제품 및 건강기능식품을 판매하고 있으며 대중들에게는 홍삼제품 브랜드 ‘정관장’으로 유명하다. 한국인삼공사는 KT&G가 국내 흡연인구수 감소 및 규제 강화로 어려움을 겪는 동안 알짜 자회사로서 튼튼한 캐시카우 역할을 담당했다.

펀드들의 제안은 KT&G에서 담배사업을 인삼 담배사업회사와 인삼지주회사로 분할하고, 분할 전의 인삼공사를 인삼지주 밑으로 보내는 걸 골자로 한다. 이후 필요시 두 회사를 합병해서 상장하는 방식이다.

KT&G의 행동주의 펀드가 요구하는 대표적인 주주제안 중에는 정관장을 운영하는 알짜기업인 한국인삼공사(KGC)의 분리 상장 요구이다.

행동주의펀드가 KGC인삼공사의 분리 상장을 주장하는 건 인삼이 팬데믹이 터지기 직전인 2012~2019년 5년간 연간 12%씩 성장했던 ‘고성장 산업’이기 때문이다. 담배회사에서 분리해 인삼회사로 상장시키면, KGC인삼공사의 기업가치가 4조원을 인정받을 것이란 주장이다.

담배와 인삼 사업의 성격이 달라 두 모자기업이 시장에서 제대로 된 기업가치를 인정받기 어려우니 인삼공사를 별도 상장해야 한다는 논리다.

한 증권사 연구원은 “해외 기관투자자들 입장에서도 담배 때문에 섣불리 KT&G에 투자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KGC를 따로 분리하게 되면 이를 해소해줄 수 있는 좋은 해결책”이라면서 “최근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이 강화되면서 투자 기준이 엄격해지면서 담배를 취급하는 KT&G의 투자 매력도가 떨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들의 갈등은 소송으로도 이어졌다. 지난 3월 9일 안다자산운용이 KT&G 정기 주주총회 때 한국인삼공사 인적분할 안건을 상정해달라는 가처분 신청을 냈기 때문이다. 법원이 “인삼사업 부문 인적분할의 건은 법률에 위반되거나 회사가 실현할 수 없는 사항으로 이를 의안으로 상정하는 것을 거부한 것은 정당하다고 판단된다”며 관련 가처분 신청을 기각하면서 이슈가 종료되긴 했지만, 관련 논의는 계속될 가능성이 크다.

KT&G 입장에선 행동주의 펀드가 회사 경영권을 흔드는 게 익숙하다. 2006년에도 KT&G는 미국에서 행동주의 펀드를 운영하는 투자자 칼아이칸으로부터 비슷한 주주제안을 받았기 때문이다. 아이칸은 주주 연합을 꾸려 KT&G의 지분율 6.6%를 보유한 뒤 KGC인삼공사 상장, 주주 환원책 강화 등을 요구했다. 그러나 주주가치 제고를 주장했던 아이칸은 1년여 만에 KT&G가 제시한 ‘마스터플랜’에 합의했고, 보유지분을 분산 매각해 1500억원가량의 차익을 얻은 뒤 한국을 떠났다.

◇ 1% 행동주의 펀드, SM엔터 경영권 분쟁 촉발
올해 1분기 국내 증시에서 가장 뜨거운 관심을 받은 종목은 SM엔터터테인먼트(이하 SM)였다. SM의 경영권을 갖기 위한 하이브와 카카오 간 공방전이 치열해지면서 주가가 치솟았다. 올해 초만 해도 8만원을 밑돌던 이 회사 주가는 한때 15만원에 육박할 만큼 인기가 높았다.

현재 SM의 경영권 분쟁은 카카오의 승리로 끝이 난 상황이다. ‘승자의 저주’를 우려한 하이브가 플랫폼 협력으로 실익을 챙기는 대신 경영권은 카카오에 넘기는 식으로 분쟁을 끝내기로 했기 때문이다. 카카오는 공개매수를 통해 SM 지분 총 39.91%를 확보하게 되면서 최대주주 지위에 올라서게 됐다. 그런데 카카오를 이 다툼의 승자로만 보긴 어렵다. 경영권 분쟁이 폭로전 양상으로 흐르며 진흙탕 싸움을 벌여오는 사이 분쟁에 참여했던 많은 이들이 상처를 입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분쟁의 불씨를 붙인 건 흥미롭게도 SM엔터 보유지분 1% 안팎에 불과한 행동주의 펀드인 얼라인파트너스였다. 얼라인은 지난해 2월 SM 측을 상대로 이런 내용의 주주제안서를 발송했다. “SM은 K팝 산업의 선구자로 전세계 한류 열풍을 이끌며 뛰어난 사업성과를 창출하고 있지만 지배구조 측면에서 주식시장에서 가치를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다.”

카카오가 행동주의 펀드의 공세에 시달리던 SM엔터테인먼트의 새로운 주인이 됐다. (코엑스 SM타운과 SM 소속 에스파)

실제로 당시 SM은 엔터테인먼트 업계 1위로 꼽히는 업체임에도 기업가치는 변변치 않았다. 얼라인이 주주제안서를 보낼 때 SM엔터의 시가총액은 1조원 안팎이었는데, 정작 엔터테인먼트 업계 대장주 타이틀은 시총이 11조원에 육박하던 하이브가 꿰차고 있었기 때문이다. 매출과 이익은 SM엔터가 훨씬 더 높은데도 시총은 훨씬 못미쳤다. 오히려 연간 매출 규모가 절반에도 못 미치는 JYP엔터테인먼트와 시총이 비슷했다.

얼라인은 “전문성 있는 감사 선임이 저평가 현상 해소에 도움이 될 것”이라면서 새 감사 후보를 추천했다. 글로벌 사모펀드 콜버그크래비스 로버츠(KKR) 오비맥주 자금팀에 영입되어 성공적인 투자 성과를 창출한 전문가로 꼽히는 곽준호 감사후보였다. 실제로 곽 감사후보는 지난해 3월 열린 SM엔터 주총에서 감사로 선임됐다. 당시 주주총회 표 대결에서 얼라인 측이 승리한 결과였다.

이후 얼라인은 압박의 수위를 높였다. 특히 SM엔터의 주가 리스크로 꼽히던 이수만 전 SM엔터테인먼트 총괄 프로듀서의 ‘라이크기획’을 끈질기게 물고 늘어졌다. SM엔터는 1990년대 후반부터 라이크기획이란 회사에 프로듀싱 자문용역계약을 맺고 매출의 일부분을 떼 주고 있었다. 매출액의 최대 6%였다. 그 규모도 매년 수백억원에 달했다. 문제는 이 라이크기획이 이수만 전 총괄의 개인회사라는 점이었다. SM이 그간이 전 총괄의 주머니를 채우느라 제대로 성장하지 못했다는 게 얼라인의 비판이었다.

결국 SM은 백기를 들었다. 지난해 9월 이 회사는 “이수만 총괄 프로듀서와의 프로듀싱 계약에 관해 다각도의 검토와 논의를 진행해 왔으며 총괄 프로듀서가 프로듀싱 계약을 올해 말에 조기 종료하고 싶다는 의사를 당사에 전해왔다”고 밝혔다. 2022년 말 계약을 조기에 종료하겠다는 것이었다.

이때부터 이성수·탁영준 대표가 주도하는 SM 이사회는 적으로 간주됐던 얼라인과 손을 잡은 뒤, 이수만 전 총괄 측의 사내 영향력을 축소시켜왔다. 올해 초 SM이 발표한 ‘SM 3.0’이라는 새로운 경영전략이 대표적인 결과였다. SM 3.0의 주요 내용은 멀티 프로듀싱 도입과 이사회 개편이다. 라이크기획과의 계약 종료도 선언했다. 그간 SM의 프로듀싱을 도맡았던 이수만 전 총괄의 회사 내 영향력이 대폭 축소되는 상황이 만들어진 것이다.

여기서 ‘SM 이사회가 이수만 전 총괄에 등을 돌렸다’라는 해석이 나오면서 경영권 분쟁이 촉발됐다. SM 이사회가 ‘SM 3.0’을 전개할 파트너로 카카오를 낙점했고, 이수만 전 총괄은 백기사로 하이브를 끌어들이면서 분쟁이 벌어지게 됐기 때문이다.

얼라인 측은 SM의 경영권 분쟁이 카카오의 승리로 완료된 이후에도 입장문을 통해 “SM 경영진이 SM 3.0 전략을 계획대로 실행할 수 있다”면 “3년 내 의미 있는 기업가치 제고가 가능할 것이라 믿고, SM 콘텐츠가 카카오의 플랫폼 및 기술과 결합해 지금보다 더 높은 기업가치가 달성될 수 있을 것으로 본다”면서 카카오의 SM 인수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얼라인 측은 “SM 현 경영진과 임직원이 지난 수십 년간 존재해온 대주주 관련 거버넌스(지배구조) 문제들을 개혁하고 선진적이고 독립적인 이사회를 만들기로 했기 때문”이라며 “SM 거버넌스 이슈는 현 경영진에 의해 사실상 이미 모두 해결됐다고 본다”고도 덧붙였다.

지분율이 높지도 않은 얼라인이 SM에 던진 돌의 파장은 컸다. SM은 새 주인을 맞게 됐고, 경영 전략도 다시 짜게 됐다. 주가 수준도 끌어올렸으니 얼라인 입장에선 큰 이득을 얻게 된 셈이다.

◇ 앞으로 더 활발해질 주주행동주의

이수만 SM엔터테인먼트 전 총괄 프로듀서는 행동주의 펀드의 공격에 쓸쓸히 퇴장했다.

과거엔 이런 주주행동주의나 행동주의 펀드를 향한 시장의 시선이 싸늘했다. “기업 지분을 사들인 후 자사주 매입, 배당 확대, M&A, 재무구조 개선, 지배구조 개편 등을 적극적으로 요구해 주식 가치를 끌어올리는 탐욕적인 헤지펀드”라는 이미지가 짙었기 때문이다.

행동주의 펀드가 처음 국내에 들어온 때엔 실제로 그런 경향이 강했다. 한국에 행동주의 펀드가 등장한 건 1997년 IMF 외환위기를 겪은 직후다. 자본시장을 외국에 개방하는 과정에서 국내 기업의 경영권을 노린 글로벌 행동주의 펀드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1999년 미국계 헤지펀드 타이거펀드와 SK텔레콤의 경영권 분쟁이다.

그해 4월 SK텔레콤의 지분을 보유한 타이거펀드는 SK그룹의 부당한 내부거래 문제를 꼬집었다. 지금으로 치면 주주행동주의를 표방했던 셈이다. 타이거펀드의 위협을 막기 위해 SK그룹은 계열사인 SK와 SK글로벌을 통해 타이거펀드가 갖고 있던 SK텔레콤 지분을 비싼 가격에 사들였다(1999년 8월). 그 결과, 타이거펀드는 1년여만에 6000억원이 넘는 시세차익을 올리고 한국 증시를 유유히 떠났다.

이후로도 글로벌 펀드들은 계속해서 주주행동주의 활동을 펼쳤다. 앞서 언급했던 ‘칼 아이칸대 KT&G’, ‘엘리엇 대 삼성물산’, ‘엘리엇 대 현대차’ 등이 대표적이다.

이렇게 분쟁을 벌일 때만 해도 한국 증시는 이들 행동주의 펀드를 반기지 않았다. 애초에 이들 펀드의 본질은 ‘고수익 추구’였기 때문이다. 단기 성과에 급급한 ‘사모펀드식 경영 폐해’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과도한 현금배당, 인적 구조조정 등이 대표적이었다.

기업의 중장기 성장 전략이 어떻든 투자자들에게 약속한 수익률을 맞추는 게 이들의 지상과제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요즘 등장하는 행동주의 펀드는 다르다. 단기 주가 부양책뿐만 아니라 중장기 성장 전략도 함께 제시하고 있다. 그러면서 소액주주들이 이들을 두팔 벌려 환영하고 있다. 행동주의 펀드의 손을 타면 주가가 오른다는 소문이 자주 돌기 때문이다. 기업 주가는 이들이 제시하는 ‘기업가치 제고 및 배당 확대’ 기대감에 오르기 마련이다.

행동주의 펀드의 활동 반경도 많이 늘어났다. 기업지배구조 조사업체 인사이티아(Insightia)에 따르면 2018년 16곳을 기록했던 국내 행동주의펀드 대상 기업은 2021년 27곳으로 증가했고, 지난해엔 47곳으로 늘었다. 4년 사이에 3배 가까이 증가한 셈이다. 투자은행(IB) 관계자는 “행동주의 펀드의 궁극적인 목적은 결국 엑시트
(투자금 회수)인데, 기업가치를 엉망으로 만들면 새로운 인수 후보가 나타날 수 없다”면서 “다양한 경영 전략으로 기업가치를 높이는 게 이들의 생존전략”이라고 밝혔다.

이런 경향은 ‘주주가치’를 추구하는 소액주주가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는 예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주주가 시세차익만을 추구하진 않는다는 점도 시사한다. 이른바 ‘주주행동주의’의 성향이 보다 다양하고 짙어진 셈이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이전과 달리 경영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소액주주가 늘어난 것은 사실”이라며 “기업에 배당 확대, 경영 효율화 등 주주친화정책을 요구하는 실력행사가 증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주주행동주의가 더 활약할 수 있게끔 법과 제도가 정비된 측면도 있다. 주주행동주의를 단단하게 만든 대표적 시스템은 2020년 상법 개정안 때 도입된 ‘다중대표소송’ 제도다. 골자는 상장기업 지분의 0.01%(비상장인 경우 1%) 이상 소유한 주주는 해당 기업이 지분 50% 이상 보유한 자회사에 경영책임을 물을 수 있다는 것이다.

같은 해 도입된 ‘감사위원 분리선출제’ 역시 주주행동주의에 힘을 실어줬다. 기존엔 기업이 선임한 이사 중에서 감사위원(이사의 업무집행과 회계를 감시하는 역할)을 선출했기 때문에 감사 위원 선임 과정에 기업의 입김이 들어가는 일이 숱했다. 하지만 감사위원 분리선출제는 다르다. 1명 이상의 감사위원을 이사 외 인물로 선임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적어도 감사위원 1명은 주주들의 의사를 반영해 뽑을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린 셈이다.

주주행동주의가 강해진 배경은 이뿐만이 아니다. 인터넷, SNS 등 IT 플랫폼이 진화한 것도 영향을 미쳤다. 주주들이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기업 이슈를 빠르게 접하고 의견을 공유하면서 “소액주주도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됐기 때문이다.

주주행동주의가 강화된 건 기업 경영진 입장에선 반가운 일이 아니다. 현대백화점의 사례처럼 지배력 강화를 위해 짠 경영 전략이 주주들의 반대로 무산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B2C 사업을 전개하는 리테일 업계는 대중의 관심도가 높은 만큼 기업 경영에 관심을 갖는 투자자가 적지 않다. 현대백화점의 인적분할 실패 사례처럼 향후 사업 전략 수정이 불가피한 상황에 놓이는 기업들이 점점 늘어나게 될 것이란 전망이 커지고 있다.

RELATED ARTICLES

LEAVE A REPLY

Please enter your comment!
Please enter your name here

Popular New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