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 렌즈가 전부이던 시절, 도수가 조금만 높아도 렌즈는 두꺼웠고, 안경은 안과의 처방을 받아야 비로소 만들어졌어요. 그 척박한 시절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40여 년이 흘렀습니다. 그사이 유리 렌즈는 자취를 감췄고, 안경사는 의사의 처방 없이 국민의 눈을 직접 다루는 유일한 전문 직군이 되어, 한국의 안경은 세계가 부러워하는 시스템 위에 올라섰죠.
그 변화의 길목마다, 제도와 맞서 싸운 사람이 있어요. 제20·21대 대한안경사협회장을 지낸 김종석. 그는 안경을 ‘제3의 눈’이라 부르며, 누구보다 안경업 발전에 힘써온 인물이에요. 40여 년을 안경과 함께 걸어오며 국민의 눈 건강을 책임졌던 그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에게 안경이란 무엇이냐고.

Q. 회장직을 내려놓으신 지도 이제 몇 해가 됐어요. 요즘은 어떻게 지내세요?
서울시회장 포함 9년이라는 짧지 않은 회장의 임기를 끝내고 나서 한동안은 힘들었어요. 협회장직을 마무리한 후 여러 이유로 인해서 건강이 좀 나빠져서 몸무게가 8kg 이상이나 빠졌습니다. 대내외적 만남 요청이나 업계 관련지 등의 인터뷰 요청에도 일절 응하지를 않았죠. 그러나 이제는 마음의 평온은 물론, 몸무게도 5~6kg 정도 많이 회복했습니다.
요즘은 업계 원로님들과 만나 인사도 드리고 고견도 청취하며, 큰아들이 운영하는 서초구 하늘안경원에 방문도 하며 안경업계의 시대적 변화와 흐름에도 감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평생 안경이라는 테두리 속에서만 지내다가 현직에서 내려와서 보니 그동안 보지 못했던 것들도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많이 있더군요. 매일 입던 정장도 오늘 이렇게 갖춰 입고 인터뷰를 오는 것도 새롭네요. 회장 시절에는 수많은 행사로 인한 사진이며 영상이 넘쳐났는데 그때는 으레 진행되는 일상이어서 소중하게 생각하지 못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Q. 평생을 안경과 함께 보내셨다고 하셨는데, 그 시작이 궁금해요. 어떻게 이 길에 들어서신 건가요?
1984년이었어요. 그 시절에는 직업 선택의 폭이 넓지가 않았습니다. 마침 집안 어른 한 분이 안경업계에 종사를 하고 계셨는데, 저에게 잘 맞을 것 같은 분야인 것 같다며 권유하셨어요. 그렇게 해서 안경테와 안경 렌즈를 수입해서 안경원에 공급하는 유통 회사로 입문하게 됐습니다. 대외적으로 많은 사람을 만나는 일이라 제 성격에 잘 맞았습니다. 그 후 서울시안경사회에서 홍보이사, 사업이사를 맡으며 협회 일을 시작했고, 부회장을 거쳐 서울시안경사회장으로 3년을 일했어요.
그러면서 안경계의 발전을 위해 좀 더 큰 역할을 해 보고 싶다는 의욕이 자연스럽게 생겼고, 서울회장 임기 후 중앙회장에 도전을 하게 됐습니다. 어찌 보면 일개 단체의 선거였지만 제 입장에서는 전쟁 같은 치열한 선거전이었죠. 전국 대의원 선거라 서울부터 제주도까지 한 달여 안에 두세 번을 돌며 대의원들께 소신과 업계 발전의 비전을 알려야 했습니다. 그렇게 치열한 선거에서 이긴 후 제20·21대 대한안경사협회장을 연임으로 수행을 했습니다.
Q. 그렇게 40여 년을 안경과 함께해 오셨네요. 안경은 항상 어떤 물건으로 존재했나요?
저는 안경은 또 하나의 눈이라고 생각합니다. 옷이나 가방은 매일 바꾸어 입고 들고 하지만 안경은 눈을 뜨면 써서 잘 때가 되어서야 벗게 되는, 우리 몸의 일부와 마찬가지죠. 우리는 사람을 만나 마주할 때 서로가 눈을 먼저 보게 됩니다. 눈을 본다는 건 곧 안경을 보는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첫인상이 기억에 남고 그 첫인상이 오래 가니, 그래서 안경의 선택은 매우 중요해요.
더구나 요즘 같은 디지털 정보화 시대에는 정보의 취득이 곧 경쟁력이잖아요. 그러한 정보의 대부분을 우리는 눈을 통해서 얻습니다. 정확한 검사를 통해 가공된 렌즈, 피팅이 잘 된 안경을 통해 수많은 정보를 빠르게 받아들인다는 것은 곧 개인의 경쟁력을 높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만큼 안경은 액세서리이거나 패션으로 취급이 되어서는 안 되는 매우 큰 가치를 가진 의료기기인 것이죠.
Q. 그런데 요즘은 그 안경이 시력 보정용보다 패션으로 더 많이 소비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러한 시대적 흐름을 어떻게 보세요?
물론 안경은 패션 도구로도 훌륭해요. 안경 하나로 이미지를 세련되게 만들고, 주름의 커버나 낮은 코 등 본인의 얼굴이 가진 약점들도 상당 부분 커버할 수가 있고 의상의 콘셉트에 따라서 더 세련되게 코디를 할 수가 있는 좋은 도구이기도 합니다.
다만 패션용으로 착용할 때와 시력을 보정하는 경우의 안경은 본질을 분리해서 봐야 합니다. 안경의 기본은 패션의 포지션을 훨씬 넘어서 우리 신체의 소중한 부분인 잘 보이지 않는 눈을 잘 보이게 해 주는 소중한 의료기기라는 겁니다. 그래서 저시력으로 인해서 도수가 필요한 사람이라면 안경 착용 시 전문가를 통하지 않고 시중에서 취급되는 것을 쉽게 구매해서 착용해서는 눈 건강에 위험을 초래할 수도 있다는 인식을 해야 합니다.

Q. 안경은 의료기기라는 말씀, 좀 더 설명해 주신다면요.
우선 안경사는 우리나라에서 좀 특별한 독자적 직군이에요. 보건의료인으로서의 역할과 선글라스 등을 통해 패션을 코디해 주는 경우가 함께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의료기사 여덟 직역 중 대부분은 의사의 처방이나 지도를 받아서 업무를 수행합니다. 그러나 안경사는 의사 처방 없이 독자적으로 시력(굴절) 검사 후 안경과 콘택트렌즈를 맞춰 줍니다.
우리나라는 안경원에서 검사와 처방과 가공 그리고 피팅을 모두 할 수가 있습니다. 잘 안 보이던 사람을 잘 보이게 해 주는 건 아픈 데를 고치는 의사의 행위와 다름없이 소중한 국민의 신체를 다루는 분야로서 우리 사회에서 매우 그 가치가 높은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는 겁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안경점’이 아니라 ‘안경원’이라 칭하는 것이 국어사전에도 명기된 명확한 표현인 것입니다. 즉, 병원처럼 보건의료인으로서 국민의 신체를 다루는 곳이라는 뜻입니다.
Q. 안경을 패션으로 소비한다 하더라도 ‘액세서리’로만 부르기엔 훨씬 더 큰 가치가 있는 물건이네요.
그렇습니다. 안경은 사람을 대할 때 가장 먼저 마주 보는 눈에 얹히는 도구잖아요. 즉 얼굴이자 눈이라는 것이죠. 그런데 사람들은 옷이나 가방 같은 것은 수백만 원짜리도 쉽게 입고 들면서 안경은 싸구려를 써도 된다고 생각을 많이 합니다. 너무나 잘못된 인식입니다. 안경 10만 원짜리를 끼면 상대에게 10만 원짜리 내 얼굴을 내미는 거고, 100만 원짜리를 끼면 그만큼의 가치를 내미는 것입니다. 물론, 돈으로 사람의 척도를 나타낼 수 있다는 것이 아니라, 그만큼 자기 가치를 안경을 통해서도 스스로 존중하고 높일 필요가 있다는 뜻입니다.
Q. 그와 관련해 잊지 못할 일화도 있다고요.
한번은 어느 국회의원과 식사 자리에서 본인의 안경을 칭하며 “김 회장님 안경이 왜 이렇게 비싼 겁니까” 하고 물으시더라고요. 그래서 “의원님, 안경은 내 몸의 일부이며 하루 종일 사람들은 나와 대화 시 내 눈인 안경을 보며 대화하지 않습니까? 안경은 고가의 옷이나 가방 같은 액세서리나 장식품이 아니고 곧 의원님의 눈입니다. 그런데 비싸다니요. 평생 얼굴에 끼는 안경을 비싸다 하시면, 의원님 스스로 본인의 가치가 그만큼밖에 안 된다고 낮추는 것이 되는 겁니다.”
그렇게 설명을 드렸더니 자기가 생각을 잘못했다고 하시더군요. 사실 지금 우리나라는 전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눈 관리 시스템을 갖춘 안경원에서 가장 싼 값에 좋은 안경을 구매할 수 있는 나라입니다. 그러니 ‘안경은 비싸다’는 인식부터 바꿔야 합니다. 안경은 돈 그 이상의 가치를 하는 것으로서 그것은 곧 자기 자신에 대한 존중입니다.
Q. 그래서 어디서 어떤 안경을 사든, 마지막엔 안경사를 거쳐야 한다는 소신이 있으시다고요.
그렇습니다. 매우 중요한 질문입니다. 도수 없는 선글라스도 빛이 눈에 안전하게 투과가 될 수 있는 제대로 된 광학적으로 적합한 렌즈인지가 중요해요. 길거리에서 싸구려로 파는 것들은 그냥 플라스틱에 색만 입힌 경우가 많아 눈에 매우 악영향을 줄 수가 있습니다. 돋보기 같은 경우에는 말할 것도 없습니다. 돋보기도 안경원에서 꼭 눈 검사를 받은 후 맞춰서 착용해야 합니다.
사람들은 보통 테가 예쁘면 고르는데, 정작 중요한 건 그 테가 광학적으로 내 얼굴에 맞느냐예요. 눈 사이 거리, 눈 크기, 시력의 정도, 얼굴의 전체적 형태까지 감안해서 안경테를 선택해야 합니다. 그래서 어디서 구입을 했든 마지막엔 꼭 안경원에서 상담 후 피팅을 받아야 하죠. 그래야 비로소 자기한테 꼭 맞는 안경이 되니까요.

Q. 40여 년간 쌓아온 안경에 대한 철학이 고스란히 느껴집니다. 지금 우리나라 안경 기술은 세계적이라지만, 그 출발점은 정반대였다고요.
지금 생각하면 상상도 못 할 만큼 열악한 환경에서 시작했어요. 제도적으로 안경원이 안과의 종속 변수 같은 형태였죠. 제도가 확립되기 이전에는 안과에서 눈을 검사 후 내어주는 처방전을 통해서만 안경을 만드는 구조였습니다. 렌즈도 지금처럼 플라스틱(CR39) 소재가 아니라 유리로 된 것이 전부였어요. 유리 렌즈는 도수가 조금만 들어가도 무거웠고, 고도수는 두께 때문에 더 무겁고 파손 시 위험도도 높았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기술의 발달로 굴절률을 통해 고도수라고 하더라도 렌즈가 아주 많이 얇아지는 시대가 됐어요. 상품의 발전보다도 국가가 국민 눈 건강 보호와 국민 편의를 위해 제도화를 시킨 안경사 제도가 자리 잡으면서, 검사부터 가공·피팅까지 안경원 한 곳에서 원스톱으로 처리가 되는 시스템의 정착이 가장 중요한 변화라고도 할 수가 있습니다.
Q. 그 변화의 한가운데에 제도화 투쟁도 있었다고요.
1980년대 후반에 안경사 제도가 마련됐는데, 정부에서 처음엔 제도화 이전처럼 안과 처방을 받아야만 안경원을 운영할 수 있게 그대로 제도화하려고 했습니다. 우리 안경인들로서는 절대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진료와 수술은 안과 의사가 하되, 안경과 콘택트렌즈로 국민 시력을 보정하는 행위는 안경사가 단독으로 하는 것이 국민에게는 편의를 제공하는 것이고 해당 분야의 발전을 가져오기 때문이죠.
당시 이해 당사자들끼리 첨예한 갈등과 대립이 있었습니다. 첫 국가시험을 거부하기까지 하면서 투쟁한 결과 결국 국회에서 만장일치로 안경사 제도가 통과되어서 현재 42개 대학을 통해서 매년 1천 3~4백여 명의 안경사가 배출되고 있고 총 5만여 명의 안경사가 면허증을 소지하고 그 면허를 통해서 국민들의 눈 건강을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Q. 그렇다면 해외와 비교했을 때 우리나라 안경 기술과 시스템은 실제로 어느 정도 수준인가요?
미국이나 유럽 등 많은 선진국에서는 안경을 맞추기 위해서는 검안사를 통해서 눈 검사 후 처방전을 약 200불(한화 30여만 원) 정도를 지불하고 받아야 합니다. 그러고 안경 판매점에 가서 안경을 맞춘 후 일주일 이상의 기간을 거쳐야만 안경을 착용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훌륭한 제도적 환경 속에서 안경원 한 곳에서 검사부터 가공·피팅까지 원스톱으로 아주 신속하게 처리가 됩니다. 해외에서 검안 한 번 하는 금액으로 우리는 안경까지 다 맞출 수도 있습니다.
유학생들의 경우에 안경을 여러 개 맞춰서 출국을 하곤 한답니다. 그래서 저는 대한민국 정부에 건의합니다. 현재 K팝, K푸드처럼 대한민국의 우수한 부분을 정부가 글로벌 홍보와 지원을 통해서 국가의 위상을 높이는 것처럼 ‘K-글라스’도 우수성을 홍보를 통해 세계적으로 알리고 관광 자원으로 활용한다면 국가적으로도 매우 의미 있는 발전적인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합니다.

Q. 사실 지금 우리가 누리는 이 시스템은, 회장님이 싸워서 지켜낸 결과 아닌가요?
그건 아닙니다. 선대 회장님들께서 많은 것들을 희생하며 이루어 오신 토대 위에서 제가 회장을 할 때 주어진 과제를 성실히 수행했을 뿐입니다. 당시에 제가 회장이었지만 저 혼자의 힘으로 된 일들은 없다고 생각해요. 제가 회장직을 수행하며 수많은 일이 있었지만, 그중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정부가 플랫폼 기업과 함께 도수 안경의 온라인 판매를 허용하고자 할 때 그것을 혼신을 다해서 막은 일입니다. 그때 저는 삭발 투쟁까지 하며 회원들과 함께 치열하게 싸웠습니다.
국민의 소중한 신체인 눈과 관련된 부분을 단순히 상업적 논리로 접근하고자 할 때 위기감을 넘어서 분노를 금할 수가 없었습니다. 국가가 국민의 눈 보호를 위해서 만들어 놓은 훌륭한 제도를 무시하는 행태를 절대 묵과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담당 부처인 기재부와 청와대 그리고 국회를 통해 설득하고 싸우고 또 싸워서 결국은 막아냈습니다. 이는 우리 안경사의 승리가 아니라 우리 국민들의 소중한 눈 건강을 지켜낸 승리였습니다.
Q. 그 외에도 지금의 안경원이 있기까지 만든 제도적 변화가 있었습니까?
중요한 내용이 있죠. 안경원의 개설 시 검사를 할 수 있는 장비가 의무화가 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이는 부실한 안경원의 개설이 될 수 있고 곧 부정확한 검사가 될 수가 있었죠. 그것은 국민들에게 피해가 갈 수 있는 일이 될 것이라고 판단하고 당선되자마자 이후 장관까지 역임하신 보건복지부 차관과 독대해 디지털 검안 장비들을 갖춰야만 개설할 수 있도록 의무화를 시켰습니다. 또 하나는 안경사는 법정 보수교육을 의무적으로 매년 이수를 해야 합니다.
그런데 보수교육 이수 여부와 무관하게 미이수자도 안경원 개설 등록이 가능했습니다. 그 역시 보건의료 분야의 면허 소지자로서 그 책임과 의무를 다하지 않은 사람이 안경원을 개설한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이 보게 되는 거였죠. 이 부분에 대해서도 안경원 개설 시 법정 보수교육과 면허 신고 확인서를 의무 서류화했습니다. 이러한 부분들이 안경사 회원들에게는 반발적 요인이 될 수도 있겠지만 국민의 눈 건강 보호라는 대의적 명분을 거스를 수는 없었습니다.
또 하나는 서대문에 있는 제1 안경사회관을 매각하지 않고 영등포에 제2회관을 마련하였습니다. 이는 안경사들의 자긍심을 크게 높여주는 공간으로 후세들에게 잘 물려줘서 국민 눈 건강의 요람으로 잘 활용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Q. 제도를 강화하다 보면, 당연히 안경사들의 반발도 있었을 것 같은데요.
맞습니다. 안경원 개설 시 의무 장비 비용의 부담이나 보수교육과 관련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국가 면허를 가진 전문가로서 그 책임과 의무를 다할 때 비로소 자긍심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Q. 그럼 시대가 바뀌어도 안경사가 갖춰야 할 본질은 무엇이라고 보세요?
‘몸이 천 냥이면 눈이 구백 냥’이라고 하잖아요. 그 소중한 눈을 다루는 안경사가 상업적인 부분만 추구하는 모양으로 전락해선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첫째도 둘째도 국민의 신체를 다룬다는 자부심을 갖고 실력을 키우며 자신의 경쟁력을 높여가는 것이 맞습니다. 저급한 제품을 가지고 단순히 싸게 파는 가격 경쟁은 시장도 망치고 소비자가 받는 서비스의 질도 떨어뜨릴 뿐입니다.
누가 더 정밀하게 검사하는 실력을 갖추었는가? 누가 더 좋은 제품과 서비스를 갖추었는가? 등 자신만의 우수성으로 경쟁하는 시대로 가야죠. 품위도 중요해요. 담배를 피운 후 손님을 맞이한다거나 슬리퍼를 신거나 하며 깔끔하지 못한 복장으로 고객을 응대해서는 안 됩니다. 이러한 것들은 고객에 대한 예의이자 본인의 품격을 높이는 모습이 될 것입니다. 아울러 더 높은 부가가치를 가져다주는 바탕이 될 것입니다.
Q. 마지막으로, 후배 안경사와 안경사를 꿈꾸는 이들에게 한 말씀 해주신다면요.
안경사 참 괜찮은 직업이에요. 전문직 자영업이라 정년이 없고, 매우 깨끗한 업무이고, 무엇보다 사람의 신체를 다룬다는 사명감을 가질 수 있어요. 대한민국의 관심 있는 젊은이라면 미래의 직업으로 한 번쯤 고려해볼 만하다고 추천합니다. 안경사란 국민의 가장 소중한 눈을 지키는 일을 한다는 자부심, 그것만으로도 훌륭한 직업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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