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와 가구, 욕실 제품 디자인을 차례로 거쳐 안경에 도착한 디렉터가 있어요. 큰 조직에서 톱니바퀴 같은 작은 디자인을 맡을 때마다 갈증을 느꼈다는 그는, 안경을 ‘얼굴 위에 긋는 선’이라고 부르며, 나만의 아름다운 선을 그릴 때 비로소 자유를 찾았다고 해요. 말은 담담했지만 기준은 분명한 사람이었습니다. 안경사와 디자이너, 같은 물건을 서로 다른 자리에서 바라보는 두 시선 가운데 두 번째 자리에서 그를 만나 지금 안경이 무엇이 되어가고 있는지 물었습니다.

Q. 오늘 쓰고 나오신 안경부터 살펴볼까요? MUUT의 신규 컬렉션이라고 들었어요.
이번에 새로 출시된 ‘ECHO’라는 제품이에요. 위쪽에만 컬러가 들어간 반무테 형태죠. 요즘은 굉장히 가벼워지는 방향으로 가고 있어서 무테나 반무테로 콘셉트가 가는데, 무테가 산소처럼 가벼운 룩이라면 반무테는 캐릭터를 보여줄 수 있는 형태거든요. 림 쪽에 강한 각을 주면 그게 캐릭터를 살려줘요. 그래서 이번 컬렉션의 여러 층위를 준비하면서, 캐릭터가 강한 제품은 이렇게 반무테 라인의 디테일로 풀어냈어요.
Q. 제품 디자인 영역에서 아이웨어로 오기까지, 안경의 어떤 매력에 빠지신 건가요?
저는 자동차 회사도 다녔고 가구, 욕실 제품 디자인도 했어요. 그런데 늘 갈증이 있었어요. 제품 디자인은 기본적으로 굉장히 정제된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과정이에요.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는 전제 안에서 정제해 표현해야 하니까요. 그런 점이 제가 추구하는 방향과 안 맞는다는 생각을 많이 했는데, 안경 디자인을 하면서 많이 해소됐어요. 안경은 주얼리처럼 나를 표현하고 장식을 더 적극적으로 드러낼 수 있는 자유도가 있더라고요. 그래서 안경 업계에 발을 들였죠.
Q. 디렉터님이 생각하는 ‘안경’의 정의를 한번 내려주신다면요.
저는 ‘페이스 주얼리’라고 생각해요. 안경을 디자인한다는 건 결국 얼굴 위에 선을 그리는 일이거든요. 그 선이 이 얼굴을 얼마나 아름답게 돋보이게 해줄 것이냐, 그게 가장 큰 기능이라고 봐요. 즉, 미적인 기능을 하고 있는 거죠. 안경은 필수가 아니잖아요. 렌즈를 끼는 분도 많고, 여성분들 같은 경우는 안경을 오히려 안 쓰려고 하고요.
그런데도 굳이 안경을 쓴다는 건, 내 얼굴 위에 어떤 라인을 얹어서 나를 돋보이게 하겠다는 거예요. 그래서 ‘페이스 주얼리’라는 기준을 가지고 접근했고, 이래야 제 작업이 더 확장성을 가질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Q. ‘미적인 기능’이라는 말에 사로잡히는데요. 안경은 원래 시력 보조 도구로서 역할이 더 강했다고 생각하는데, 패션 아이템이 되면서 기능도 바뀐 걸까요?
기능이 완전히 바뀌었다고 보지 않아요. 안경은 예전에도 똑같이 미적인 부분을 많이 고려했다고 봐요. 앤티크 안경을 모아놓은 책을 보면, 100년 전에도 이미 수많은 종류가 있었거든요. 기능으로만 작용했다면 제일 간단하고 쓰기 좋은 형태로만 만들어졌을 텐데, 그때도 굉장히 다양했어요.
‘이때 이렇게 많이 했는데 지금 우리는 뭘 해야 하지’ 싶을 정도로요. 하나의 트렌드가 없고 로컬마다 경향이 달랐으니 오히려 폭이 더 넓었던 것 같기도 해요. 그러니까 미적인 기능은 그때도 있었어요. 다만 그게 소수의 문화였다면, 지금은 우리나라에서 생겨난 아이웨어 브랜드들 덕분에 더 확산되는 쪽으로 가고 있는 거죠.
Q. 미적인 기능을 하는 안경이 누군가에겐 어울리지 않는 선일 수도 있잖아요. 어떤 식으로 기준을 갖고 아름다운 선을 만드시나요?
저희는 일종의 ‘이상향’을 두고 디자인해요. 맨바닥에서 그리지 않고, 우리가 생각하는 얼굴형과 사이즈, 이목구비를 먼저 만들어두는 거죠. 예전엔 모델 이미지를 찾아서 했는데 이번엔 처음부터 AI로 이미지를 만들었어요.
너무 화려하지도 평범하지도 않은 중간 얼굴을 찾으려고 꽤 애를 썼고요. 너무 예쁜 얼굴이면 어떤 선을 그려도 다 어울리거든요. 그래서 그런 얼굴은 오히려 빼고, 여러 얼굴을 섞어 우리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얼굴을 만들어둬요. 솔직히 저도 저희 제품이 저한테 어울리는 건 아니에요. 만들어놓고 써보면서 ‘나를 위한 안경은 아니구나’ 생각을 많이 합니다.(웃음)

Q. 그 ‘의도를 가진 선’은 결국 밀리미터 단위의 디테일로 완성될 것 같아요. 이번 컬렉션에서 가장 애를 먹은 지점도 거기였다고요.
맞아요, 치수였어요. 앞서 말한 이상적인 얼굴형 문제와 연결되는데, 그동안 제가 가졌던 치수 감각과 이번에 추구한 게 완전히 달라서 도면을 다 갈아엎고 1mm, 0.5mm씩 줄여나갔거든요. 안경은 폭이나 다리 길이 같은 수많은 수치의 영향을 받고, 그 수치가 곧 아이덴티티이자 형태가 돼요. 디테일도 그래요.
이 부분이 그냥 평평한 라운드 같지만 실제로는 안쪽으로 살짝 꺼지게 만들어서, 끝이 라인처럼 빛나 보이거든요. 그런데 이게 제조가 굉장히 어려워서, 100개를 만들면 30개밖에 못 써요. 불량품률이 70%인 셈이죠. 결국 이게 단가에 적용되다 보니 최소 마진만 남기고 판매하는 경우가 많아요.
Q. 그렇게 치수 하나, 디테일 하나까지 파고들려면 결국 바탕에 아이디어가 많이 쌓여 있어야 할 것 같아요. 그 영감은 주로 어디서 얻으세요?
두 갈래예요. 하나는 트렌드나 요즘 유행하는 것들을 보면서 끌어내는 거고, 다른 하나는 아무 생각 없이 있다가 문득 떠오르는 거예요. 그냥 지나치다 ‘재밌다’ 싶었던 것들이요. 그런데 정말 강력한 아이디어는 대부분 후자에서 나오는 것 같아요. 작정하고 찾을 때보다, 무심코 담아뒀던 것에서요.
Q. 보통은 자유로울수록 좋은 디자인이 나온다고 생각하잖아요. 디렉터님 말씀을 들으면 오히려 반대인 것 같아요.
네, 디자인하는 사람들이 그런 말을 많이 해요. 무제한의 자유보다 어느 정도의 제한이 오히려 더 큰 아이디어를 만들어낸다고요. 그 제한을 그대로 이용해서 풀기도 하고, 제한을 다른 방식으로 뛰어넘으려다 보면 거기서 새로운 게 나오기도 하거든요. 저도 막무가내로 시작하는 것보다 주제를 하나 정해두고 들어가는 쪽이 좋아요. 결국 하나의 축이 있다는 것, 그게 제일 중요한 것 같아요. 그 축이 발목을 잡는 게 아니라, 오히려 더 멀리 가게 해주거든요.

Q. 이번 컬렉션의 ‘상처’와 ‘반창고’도 그렇게 문득 떠오른 아이디어였나요?
맞아요. 반창고도 문득 떠오른 거였어요. 다만 ‘MUUT’이 원래 가지고 있는 테마와 무드가 있으니까, 그냥 가져다 쓸 수는 없죠. 떠오른 아이디어와 브랜드가 쌓아온 결을 어떻게 구조적으로 연결하고 풀어낼지, 그 지점을 두고 고민을 많이 했어요. 사실 그게 제일 어려운 작업이었지만 그만큼 만족도도 높은 결과물이 나오기도 했죠.
Q. 디자이너가 건네는 안경은 조금 다를 것 같아요. 디자이너만이 할 수 있는 역할은 뭐라고 보세요?
디자이너는 의도와 미적 기준을 제시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안경사분들도 예쁜 안경, 자연스러운 안경, 그분께 어울리는 안경을 큐레이션해 주시죠. 디자이너는 거기서 한발 더 나아가 ‘제안’을 한다는 점이 달라요. 그리고 그 제안에는 왜 하는지 의도가 있어요.
이 시대에 당신한테 필요한 미적 방향이 무엇인지, 무엇이 당신을 더 가치 있게 만들지를 정확한 의도를 갖고 건네는 거죠. 그게 가장 큰 차이예요. 다만 저도 가장 아래에는 웨어러블함이 기본이라고 생각해요. 피팅 같은 영역은 안경사분들이 더 전문가시고, 저도 그걸 무시하며 디자인하진 않아요. 썼을 때 불편하지 않아야 한다는 건 필요조건이니까요.

Q. 안경을 소비하는 방식도 달라진 것 같아요. 20~30년 전과 지금, 사람들이 안경이라는 물건을 받아들이는 방식엔 어떤 차이가 가장 크게 와닿으세요?
저는 안경을 시력 도구로만 본 적이 없어요. 안경원에 가서도 여러 개 써보고 나한테 어울리는 걸 찾아 쓰잖아요. 기본적으로 취향을 가지고 소비하는 물건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굳이 달라진 걸 하나 꼽자면, 안경 자체는 변하지 않은 것 같아요. 빈티지 마켓에서 본 20~30년 전 안경이 최근 브랜드 안경과 다를 게 없을 때가 있거든요. 구조나 장식이 획기적으로 바뀌는 물건이 아니에요.
정말 달라진 건 그걸 어떻게 소비하게 만드느냐, 그 공간이에요. 근사한 브랜드의 안경을 사든 안경원에서 찾아 사든, 안경을 고른다는 행위 자체는 거의 같거든요. 그런데도 사람들이 멋진 공간을 찾아가는 건, 거기서 사는 경험이 다르기 때문이죠.
Q. 그렇다면 지금, 이 시대의 안경을 뭐라고 부르고 싶으세요?
결국 ‘취향의 도구’로 더 기울어가고 있다고 생각해요. 나를 표현하는 도구로서요. 예전부터 그런 면이 없진 않았지만, 그 영역이 훨씬 넓어졌어요. 필수가 아니라 선택이 된 상황에서, 안경을 고른다는 건 ‘내 취향은 이렇고 나는 이런 사람이야’를 보여주는 일이거든요.
그래서 사람들은 안경이 아니라 사실 브랜드를 사는 거예요. 그 브랜드가 추구하는 미학과 신념을요. ‘여기 안경을 쓰면 멋있어 보일 거야’, ‘안경에 깊이가 있는 사람으로 보일 거야’ 하는 믿음을 사는 거죠. 유명한 브랜드에서 고르든 안경원에서 고르든 행위는 같지만, 브랜드에서 사는 건 그 브랜드가 좋아서, 그 가치를 갖고 싶어서예요. 안경원에서는 그런 브랜드적 가치를 느끼기는 어렵고요.

Q. 향후 수십 년 뒤, 안경은 어느 방향으로 나아갈까요?
점점 더 취향이 세분화되고 있잖아요. 대중문화의 경계가 사라지고 각자의 알고리즘대로 사는 시대고요. 안경도 그런 측면에서 내가 원하는 브랜드, 내가 원하는 디자인을 찾는 사람이 점점 많아질 거예요. 미래엔 그게 극단적으로 가서, 개인에 맞춰 정확하게 만들어 주는 안경 문화로 갈 거라고 봐요.
지금의 커스텀이 내 얼굴형에 맞춰주는 쪽이라면, 20~30년 후엔 내 취향에 맞춰주는 안경, 각자 다 다른 나만의 안경을 갖게 되지 않을까요. 그래서 오히려 수공예로 작업하는 분들이 더 많아지고, 그걸 소비하는 사람도 늘어날 거라고 생각해요. 결국 안경은 나에게만 맞춰진 도구이자 주얼리가 되는 거죠.
Q. 마지막으로 디렉터님의 안경이 어떻게 기억되길 바라세요?
여러 개를 사도 그중에 너무 독특하고 좋아서 버리지 않고 끝까지 갖게 되는 제품 있잖아요. 옷도 신발도 휴대폰도 많이 사지만 끝내 남겨두는 게 있듯이요. 그렇게 남는 안경이면 저는 제일 좋을 것 같아요. 독특한 건 보통 다 자기 취향에서 시작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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