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수진 디자이너가 이끄는 여성복 브랜드 켈리신(KELLY SHIN)이 9월 3일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아트홀 1관에서 열린 2027 S/S 서울패션위크에서 ‘INTO A NEW PRESENCE(새로운 존재감)’ 컬렉션을 공개했다. 이번 컬렉션에서 신수진 디자이너가 집중한 것은 화려한 장식 그 자체가 아니라 ‘존재만으로 공간을 장악하는 여성’이다. 깊은 심연의 고요함에서 출발해 점차 힘을 얻고 공간 전체로 확장되는 여성의 존재감을 실루엣과 소재, 빛의 변화로 풀어냈다.
특히 런웨이를 ‘SILENCE(침묵)’, ‘CONTROL(통제)’, ‘EXPANSION(확장)’, ‘AURA(아우라)’의 4단계로 구성했다. 절제된 블랙과 그레이에서 출발한 컬렉션은 실루엣이 커지고 소재의 광택과 장식성이 강해질수록 존재감 역시 증폭됐다. 후반으로 갈수록 런웨이를 채우는 반짝임과 유려한 드레이핑은 컬렉션의 주제인 ‘아우라’를 시각적으로 완성했다.

날카로운 숄더와 잘록한 허리…강한 여성의 실루엣
이번 시즌 가장 선명하게 드러난 특징은 어깨와 허리의 대비다. 숄더 라인을 직선적이고 과감하게 확장하는 대신 허리는 몸에 밀착시켜 여성의 신체를 하나의 건축적인 구조처럼 표현했다. 깊게 파인 V네크라인의 네이비 롱드레스는 이러한 방향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룩이다.
양옆으로 크게 뻗은 캡 형태의 숄더와 잘록하게 잡힌 허리, 다리를 과감하게 드러내는 프런트 슬릿이 강렬한 비례를 만들었다. 바닥까지 길게 이어지는 헴라인은 모델이 움직일 때마다 뒤로 흘러 런웨이 위에 긴 잔상을 남겼다.

비즈와 메탈릭한 장식을 어깨 전체에 촘촘하게 적용한 블랙 드레스 역시 같은 문법을 따랐다. 어깨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프린지 형태의 장식이 워킹에 따라 흔들리면서 정적인 블랙 드레스에 움직임을 만들었다. 깊은 V라인과 비대칭 스커트는 무거워질 수 있는 룩에 긴장감을 더했다.
반대로 하이넥의 블랙 롱드레스는 몸을 거의 드러내지 않았다. 날카롭게 솟은 파워 숄더와 발목까지 떨어지는 슬림한 실루엣 위를 수많은 스팽글이 뒤덮었다. 모델이 조명 아래를 지날 때마다 표면의 작은 빛들이 연속적으로 반사되면서 옷의 형태보다 빛으로 존재감을 확장하는 장면을 만들었다.

시어 소재와 드레이핑, ‘고요함’을 움직임으로 바꾸다
강한 테일러링과 대조되는 유동적인 실루엣도 중요한 축을 이뤘다. 블랙과 그레이가 물감처럼 번지는 시어 블라우스는 몸을 직접 조이지 않고 넓은 소매와 풍성한 볼륨으로 상체를 감쌌다. 여기에 몸에 밀착되는 블랙 팬츠를 매치해 상·하의의 볼륨 차이를 극대화했다. 반투명 소재 사이로 피부가 비치고 프린트가 겹쳐지면서 마치 물결이나 연기가 움직이는 듯한 효과를 냈다.
블루 그레이와 스모키 그레이가 겹쳐진 홀터 드레스는 또 다른 방식으로 여성성을 표현했다. 가슴과 허리 부분을 부드럽게 묶어낸 뒤 여러 겹의 원단을 바닥까지 길게 떨어뜨렸다. 모델의 보폭에 따라 서로 다른 톤의 패브릭이 열리고 닫히면서 컬러가 계속 달라 보였다. 몸을 감싸는 드레스와 노출된 다리, 길게 끌리는 패브릭의 대비가 관능성과 움직임을 동시에 만들었다. 이 같은 룩들은 신체를 단순히 강조하기보다는 감싸고, 드러내고, 다시 확장하는 방식으로 여성의 존재감을 표현했다는 점에서 이번 컬렉션의 주제와 맞닿았다.

블랙에서 아이보리로…빛이 더해지며 확장되는 ‘AURA’
컬러는 블랙과 차콜, 그레이, 깊은 네이비가 컬렉션의 중심을 잡았다. 여기에 아이보리와 크림, 블루 그레이 등이 더해져 무거운 분위기를 환기했다. 특히 아이보리 룩은 어두운 런웨이에서 강한 대비를 만들었다. 오버사이즈 라펠을 적용한 아이보리 미니 아우터는 소매와 몸판에 넉넉한 볼륨을 주고 허리를 가느다란 벨트로 묶었다. 가장자리에는 어두운 컬러의 장식선을 둘러 구조를 또렷하게 드러냈다.
반면 크림 컬러의 재킷형 미니드레스는 날카로운 파워 숄더와 허리를 따라 들어가는 실루엣으로 보다 도시적인 이미지를 만들었다. 소재 자체에 은은한 광택을 넣어 움직일 때마다 빛이 표면을 타고 흘렀다. 컬렉션 후반으로 갈수록 이러한 ‘빛’은 더욱 적극적인 디자인 요소로 등장했다. 스팽글과 비즈, 글리터, 메탈릭한 조직감이 블랙 위에 겹쳐지면서 어둠 속에서 빛이 번져 나가는 듯한 장면을 연출했다. 보도자료에서 제시한 ‘SILENCE’에서 ‘AURA’로 향하는 과정이 컬러보다 소재의 반사와 움직임을 통해 더욱 선명하게 읽혔다.

코르셋·시스루·롱드레스…관능성도 절제된 방식으로
후반부에는 몸의 곡선을 보다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룩들이 등장했다. 광택 있는 블랙 코르셋 톱에 성글게 짜인 스파클링 시스루 롱스커트를 매치한 룩은 이번 시즌의 관능성을 압축해 보여줬다. 단단하게 몸을 잡아주는 상의와 피부가 그대로 비치는 가벼운 하의가 서로 상반된 질감을 형성했다.
켈리신이 표현한 섹시함은 단순한 노출보다는 구조와 소재의 대비에서 발생했다. 깊은 V네크라인, 하이 슬릿, 시스루, 코르셋 등 과감한 요소가 등장하지만 파워 숄더와 긴 기장, 절제된 블랙 컬러가 이를 통제했다. ‘CONTROL’이라는 컬렉션의 키워드가 착장에서도 읽히는 대목이다.

슈즈와 주얼리까지 블랙·실버로 연결
스타일링 역시 의상의 흐름을 방해하지 않도록 비교적 절제했다. 슈즈는 블랙 포인티드 펌프스와 스트랩 힐, 롱부츠 등이 중심을 이뤘다. 네이비와 블랙의 롱드레스에는 발끝이 날렵한 펌프스를 매치해 실루엣을 길게 연결했고, 드레이핑 드레스에는 스트랩 슈즈를 더해 가벼움을 살렸다.
아이보리 미니 룩에 매치한 블랙 롱부츠는 특히 강한 대비를 만들었다. 부츠 위를 감싸는 체인 형태의 장식이 움직임에 따라 흔들리면서 의상의 테두리 디테일과 연결됐다. 액세서리는 실버와 다크 메탈 계열이 주를 이뤘다. 길게 늘어진 드롭 이어링과 볼드한 이어링, 손가락을 덮을 정도의 스테이트먼트 링 등이 등장했다. 의상에 사용된 스팽글과 비즈 장식이 주얼리의 반짝임과 이어지면서 룩 전체에 통일감을 줬다.

‘침묵’으로 시작해 ‘아우라’로 끝난 켈리신
무대 연출 역시 컬렉션의 서사를 강화했다. 깊은 블루와 그레이가 뒤섞인 영상과 어두운 런웨이는 심연을 연상시켰고, 그 공간을 가로지르는 모델들의 실루엣과 반짝이는 소재가 점차 강하게 부각됐다. 피날레에서는 블랙과 그레이, 실버, 아이보리, 네이비 계열의 모델들이 한꺼번에 무대를 채웠다. 개별적으로 존재하던 룩들이 하나의 장면으로 모이면서 이번 시즌이 말하고자 한 ‘EXPANSION’과 ‘AURA’가 완성됐다.

켈리신의 2027 S/S는 미니멀리즘과 글래머러스한 이브닝웨어라는 상반된 요소를 하나의 흐름 안에 배치한 컬렉션이었다. 파워 숄더와 잘록한 허리, 깊은 네크라인과 슬릿으로 실루엣을 구축하고 시어 소재와 드레이핑으로 이를 풀어냈으며, 마지막에는 스팽글과 비즈, 광택 소재로 빛을 끌어들였다.
결국 신수진 디자이너가 이번 무대에서 보여준 ‘새로운 존재감’은 옷을 크게 만들거나 장식을 더하는 데 머물지 않았다. 침묵하듯 절제된 여성에서 시작해 스스로 힘을 통제하고, 공간으로 확장된 끝에 주변의 시선을 끌어당기는 ‘아우라’를 가진 여성으로 변화하는 과정. 그 흐름 자체가 이번 켈리신 컬렉션을 관통하는 가장 선명한 메시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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