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2월 8일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펼치는 ‘2026 FW 서울패션위크’ 컬렉션 패션쇼를 앞두고, 한국 남성복의 상징적 존재인 장광효 디자이너를 1월 21일 만났다. 1987년 브랜드 카루소(CARUSO)를 론칭한 이후 약 40여 년간 한국 남성복의 흐름을 이끌어온 그는, 이번 시즌에도 트렌드를 관통하면서도 상징성이 강한 주제를 선택했다. 컬렉션의 제목은 ‘나폴레옹의 귀환’이다.
이번 테마에는 단순한 표면적 차용을 넘어, 남성복의 기본과 현재, 그리고 미래의 방향성까지 담겨 있다. 장광효는 이번 컬렉션을 통해 남성복의 출발점이라 할 수 있는 밀리터리 룩을 다시 꺼내들며, 오늘날 남성복이 어떤 태도와 실루엣을 가져야 하는지를 제시한다.

(2026 SS 서울패션위크 컬렉션)
“남성복의 기본이 되는 밀리터리를 제 나름의 시각으로 한 번쯤은 꼭 정리해보고 싶었어요. 그래서 지난해 가을 컬렉션을 마치자마자 밀리터리를 주제로 디자인 기획에 들어갔죠. 이후 공교롭게도 올해 1월 글로벌 트렌드 정보지를 살펴보니 밀리터리가 핵심 키워드로 떠 있더군요. 디자이너로서의 직관이 맞아떨어진 셈입니다.”
그의 이번 컬렉션은 과거 군복을 단순 재현하거나 복고적으로 해석하는 데 머무르지 않는다. 오히려 밀리터리라는 구조적 언어를 통해 ‘권위·리더십·남성성’이라는 개념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 밀리터리 룩, 권위의 상징에서 스타일의 언어로
‘나폴레옹’은 역사적으로 권력과 리더십, 그리고 남성적 카리스마를 상징하는 인물이다. 장광효는 이러한 상징성을 밀리터리 룩의 조형미와 결합해, 오늘날의 트렌드를 반영한 남성복으로 풀어낸다. 견고한 재킷 구조, 강조된 어깨 라인, 장식적 디테일은 군복에서 출발했지만, 전체적인 실루엣과 스타일링은 현대적 감각에 맞게 재정렬됐다.
“과거의 군복을 그대로 옮기고 싶지는 않았어요. 오히려 요즘 아이돌 그룹의 무대 의상처럼 세련되고 날렵한 이미지를 주고 싶었습니다. 전통적인 밀리터리가 가진 무게감 위에 현대적 감각을 더해, 감각적으로 ‘입을 수 있는 권위’를 제안하려 합니다.”

이번 컬렉션 쇼 역시 그가 꾸준히 강조해온 ‘단계별 구조’를 바탕으로 치밀하게 구성됐다. 첫 번째 장에서는 카루소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클래식 테일러드 수트로 쇼의 서두를 열며 브랜드의 근간을 분명히 드러낸다. 두 번째 장에서는 이번 시즌의 핵심인 밀리터리 룩을 집중적으로 전개해 테마를 선명하게 각인시킨다. 세 번째 장에서는 최신 트렌드를 반영한 실험적 룩으로 전환하며 관객의 시야를 확장하고, 마지막 장에서는 앞선 요소들을 종합하는 엔딩으로 쇼를 마무리한다.
“쇼에는 순서와 흐름이 있어야 합니다. 관객이 자연스럽게 따라오지 않으면 메시지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거든요.” 수십 년간 수많은 컬렉션을 선보여온 디자이너다운 설명이다. 테마보다 완성도를, 아이디어보다 구조를 중시하는 그의 태도는 이번 시즌에도 고스란히 반영됐다.

◇ ‘정석’을 밟아온 디자이너의 시간
장광효 디자이너의 커리어는 흔히 ‘정석(Full Manual)’이라는 표현으로 요약된다. 국민대학교 조형대학에서 시각디자인을 전공하고 의상디자인을 부전공하며 기초를 다졌고, 홍익대학교 산업미술대학원에서 직물디자인학 석사 학위를 취득해 소재와 구조에 대한 이해를 심화했다.
이후 프랑스로 건너가 퐁텐블로예술학교(School of Fontainebleau)에서 수학하며 글로벌 패션 교육 시스템을 경험했고, 귀국 후에는 캠브리지, 제일모직, 논노 등 국내외 주요 패션 기업에서 실무 경험을 쌓으면서 산업 전반의 흐름을 체득했다.
학문, 해외 경험, 기업 현장이라는 세 가지 정석 코스를 모두 거친 그는, 단순한 감각에 의존하는 디자이너가 아니라 패션 산업 전반을 이해하는 기본기 탄탄한 ‘창의적 디자이너’로 평가받는다.
특히 과거 이명박 정부 시절 국방부에 군복 디자인 개선을 건의해, 이른바 ‘개구리복’에서 디지털 무늬 군복으로 전환하는 데 기여한 이력은 그에게 밀리터리 룩이 단순한 패션 코드가 아닌 사회적 시스템이자 기능적 미학임을 보여준다.

(2026 SS 서울패션위크 컬렉션)
◇ “멈추면 감각도 멈춘다”…한국 패션 산업을 향한 직언
40년 가까운 시간 동안 단 한 시즌도 거르지 않고 컬렉션을 이어온 이유를 묻자, 그는 단호하게 답했다.
“단 한 번이라도 쉬면 템포가 늦어지고, 소중한 열정마저 식어버릴까 봐 매번 도전하게 됩니다. 저에게 패션은 여전히 매일이 새로운 호기심의 대상입니다.”
그는 현재도 20대 직원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하며, 자신의 감각이 ‘올드해지지 않도록’ 끊임없이 경계하고 있다. 특히 최근처럼 패션 시장이 어려운 시기일수록 선배로서의 책임감을 더욱 크게 느낀다고 말했다.
“이럴 때일수록 제가 더 열심히 해야 후배들에게 용기를 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후배 디자이너들에게는 경쟁보다 연대와 배려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패션 산업이 개인의 성공을 넘어 구조적으로 건강해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국내 패션 산업 전반을 향한 그의 시선 역시 여전히 날카롭다. 서울패션위크에 대해서는 “디자이너를 보다 전문가적인 시각에서 이해해야 시행착오를 줄이고, 세계적인 무대로 성장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유통 구조에 대해서도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백화점이 당장의 수수료 수익에만 급급해서는 안 됩니다. 국내 디자이너 브랜드를 진정으로 육성하고 설 자리를 마련해줘야 진정한 패션 강국으로 거듭날 수 있습니다. 우리 디자이너들이 해외 명품 브랜드에 밀려 구석으로 내몰리는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장광효 디자이너는 앞으로 약 10년간 더 현역으로 활동할 계획이다.

“제가 만든 옷을 입은 젊은 친구들을 볼 때, 그들이 그 옷 안에서 멋지고 섹시하게 빛날 때 가장 큰 행복을 느낍니다. 그 기쁨이 저를 계속 움직이게 하죠.”
그는 브랜드 카루소를 다음 세대로 어떻게 자연스럽게 이어갈지에 대해서도 고민하고 있다. 이는 은퇴를 준비하는 단계가 아니라, 또 다른 전성기를 설계하는 과정에 가깝다.
이번 컬렉션 ‘나폴레옹의 귀환’은 단순한 트렌드의 회귀가 아니다. 남성복의 원형을 다시 강조하며,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장광효의 귀환’을 선언하는 무대에 가깝다.
2026년 2월 8일 DDP에서 펼쳐질 이번 ‘2026 FW 서울패션위크’ 컬렉션은 한국 남성복의 역사를 만들어온 디자이너가 여전히 현재 진행형임을 증명하는 장면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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