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역 일대의 간판이 바뀌고 있다. 대형 패션 매장과 로드숍이 채우던 강남대로변이 최근 1~2년 사이 글로벌·대기업 외식 브랜드의 ‘첫 매장’과 전략 매장으로 빠르게 메워지고 있다.
미국 멕시칸 패스트 캐주얼 브랜드 치폴레(Chipotle)가 9월 1일 강남역 인근에 아시아 1호점을 열었다. 앞서 4월에는 중국 프리미엄 티 브랜드 차지(CHAGEE)가 강남 플래그십을 비롯한 국내 3개 매장(강남점, 용산 아이파크몰점, 신촌점)을 동시에 열며 ‘오픈런’ 행렬을 만들었다.
이 흐름은 단순한 진출을 넘어 ‘집결’에 가깝다. 쉐이크쉑과 파이브가이즈가 국내 1호점을 강남에 내고 시장 반응을 살피던 시절만 해도, 강남은 어디까지나 성패를 가늠하는 ‘실험실’에 가까웠다. 그러나 지금은 해외 브랜드가 한국 데뷔 무대로 이곳을 사실상 기본값처럼 택한다. 한동안 ‘패션 상권’으로 불리던 강남대로가 외식 브랜드의 주무대로 재편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 유동인구·SNS·관광 수요… 강남역이 ‘검증 상권’이 된 이유
브랜드들이 높은 임차료를 감수하고 강남역으로 몰리는 1차적 이유는 압도적인 유동인구다. 강남역은 지하철 2호선 기준 하루 이용객이 약 15만 명에 이르고, 신분당선까지 더하면 20만 명에 육박하는 서울 최상위권 역세권이다. 직장인과 2030세대, 외국인 관광객에 서울 외곽 방문객까지 겹치면서 매장 하나가 마주하는 소비층의 폭이 다른 상권과 견주기 어려울 만큼 넓다.
이 상권의 성격을 먼저 증명한 것은 버거 브랜드들이었다. 2016년 강남대로에 국내 1호점을 낸 쉐이크쉑이 전국 20여 개 매장으로 자리를 넓혔고, 2023년 6월 문을 연 파이브가이즈 강남점은 개점 초기 하루 평균 1,800~2,000명을 끌어모으며 현재 4호점까지 늘었다. ‘줄 서서 먹는 브랜드’라는 이미지가 강남에서 만들어져 전국으로 퍼지는 공식이 이때 자리를 잡았다.
관건은 매출보다 화제성이다. 강남역은 소비 그 자체보다 ‘오픈런’과 ‘인증샷’, ‘후기 콘텐츠’가 SNS를 타고 빠르게 번지는 공간으로, 브랜드에는 단기간에 인지도를 끌어올리는 ‘쇼윈도’가 된다.

실제 차지는 오픈 직후 일부 매장에서 하루 1,500잔 이상 주문이 몰려 앱 주문을 일시 중단했고, 지난 8월 4일 문을 연 bhc 강남 플래그십 스토어는 방문객의 약 30%가 외국인 관광객으로 집계됐다. 한국 소비자의 빠른 수용 속도와 까다로운 눈높이 덕에, 글로벌 브랜드에는 이곳의 흥행 여부가 아시아 확장을 가늠하는 기준점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물론 강남에 깃발을 꽂았다고 성공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미국 브런치 브랜드 버터핑거 팬케이크나 샌드위치 브랜드 에그슬럿처럼 화제 속에 진입했다가 한국 사업을 접은 전례도 있다. 에그슬럿은 파인다이닝을 표방한 프리미엄 에그 샌드위치였고 버터핑거 팬케이크는 주말 브런치였는데, 둘 다 매일 찾는 끼니보다는 특별한 날에 어울리는 메뉴에 가깝다. 수입 식자재 의존도가 높은 탓에 환율과 원가에 취약했고, 가격은 본토보다 높게 매겨진 반면 맛은 현지의 기대를 채우지 못했다는 지적도 따랐다.
개점 초기의 관심이 재방문으로 이어지지 못한 사이, 비슷한 프리미엄 브랜드가 늘면서 신선함마저 옅어졌다. 반대로 자리를 지킨 브랜드는 버거나 치킨, 커피처럼 일상적으로 반복되는 카테고리에 높은 임차료를 회전율과 재방문으로 감당한 경우가 많았다. 결국 강남에서의 관건은 첫 달의 화제가 아니라, 그 이후에 다시 찾을 이유를 넘기느냐에 있다.

◇ 치맥 넘어 ‘올데이 치킨’으로…bhc 첫 플래그십 스토어
다이닝브랜즈그룹(대표 송호섭)이 운영하는 bhc가 브랜드 첫 플래그십 스토어 ‘강남역점’을 통해 치킨 소비의 시간대를 넓히는 시도에 나섰다. 약 3년의 준비를 거쳐 지난 8월 4일 문을 연 강남역점은, 저녁 ‘치맥’ 중심이던 치킨 소비 시간대를 점심부터 밤까지 넓힌 ‘올데이 치킨’을 전면에 내세운 매장이다.
첫 무대로 강남역을 택한 배경에는 상권의 성격이 자리한다. 평일 낮에는 직장인, 저녁에는 모임, 주말에는 쇼핑·여가 방문객과 외국인 관광객까지 시간대마다 다른 고객층이 유입되는 자리인 만큼, 새로운 메뉴와 공간, 서비스를 검증하기에 적합한 입지라는 판단이다.

이런 맥락에서 강남역점은 단순한 매장을 넘어 ‘bhc의 테스트베드’로 규정됐다. 다이닝브랜즈그룹 관계자는 “플래그십은 기존 가맹사업을 대체하는 공간이 아니라 새로운 메뉴와 서비스, 운영 방식을 먼저 검증하는 자리”라며 “여기서 얻은 경험을 가맹점의 매출과 운영 경쟁력을 높이는 방향으로 연결하는 것이 목표”라고 설명했다.
이곳 매장의 핵심 정체성인 ‘올데이 치킨’은 달라진 치킨 소비 흐름과 맞닿아 있다. 치킨은 이미 저녁·야식을 넘어 점심 한 끼와 간식, 혼밥까지 파고들었지만 매장 경험은 여전히 저녁과 배달에 머물러 있었고, bhc는 바로 그 간극에 주목했다.

bhc가 치킨을 한 마리 단위에서 버거라이스·샐러드·조각치킨으로 세분화한 것도 낮 시간대 식사 수요를 겨냥한 선택이다. 실제 개점 이후 점심에는 직장인 식사, 저녁에는 모임·주류로 이용 목적이 뚜렷하게 갈리며, 하나의 매장이 시간대별로 다른 수요를 채우고 있다.
공간은 이 흐름을 층별로 나눠 담았다. 1층은 자동 튀김 로봇 ‘튀봇’이 조리 과정을 보여주는 공간이자, 박스 메뉴와 포장, 전용 굿즈(MD)를 다루는 빠른 회전 공간이다. 2층은 부위와 맛, 후라이드 스타일, 시즈닝, 디핑 소스를 고객이 직접 조합하는 커스터마이징 치킨 ‘크리스픽(PICK)’을 앞세운 캐주얼 다이닝으로 채웠다.

3층은 플래터에 국물떡볶이·어묵탕·골뱅이무침 등 K-푸드와 주류를 더해 단체·외국인 모임을 겨냥한 공간이다. 여기에 1960년대 ‘별 하나 치킨’의 레트로 무드를 입혀, 치킨을 먹는 곳을 넘어 브랜드를 경험하는 공간으로 완성했다.
확장을 서두르지 않는 것도 테스트베드라는 정의와 맞닿아 있다. bhc는 시간대별 방문 고객과 메뉴 판매 비중, 재구매와 선호도, 조리 시간과 운영 효율 등 실측 데이터를 우선 축적한다는 방침이다.
다이닝브랜즈그룹 관계자는 “bhc만의 메뉴 개발력과 브랜드 경쟁력을 바탕으로, 치킨을 즐기는 시간과 방식의 경계를 넓혀 일상 속 다양한 순간에 자연스럽게 선택되는 브랜드로 성장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 강남에 옮겨온 ‘이탈리아의 뒤뜰’… 올리페페, 4호점으로 미식 경험 넓힌다
CJ푸드빌(대표 이건일)이 운영하는 이탈리안 비스트로 ‘올리페페(Olipepe)’가 지난 7월 16일 광화문·여의도·판교에 이어 강남에 네 번째 매장을 오픈하며 글로벌 외식 브랜드가 몰리는 격전지 한복판에서 정통 이탈리안 다이닝을 앞세웠다.
강남 출점은 앞선 세 개 매장에서 확인된 브랜드 경쟁력을 발판으로 삼았다. 평일 직장인 수요에 모임과 데이트, 주말 외식까지 방문 목적이 폭넓게 겹치는 상권인 만큼, 그동안 쌓아온 메뉴와 공간, 서비스를 집약한 강남점은 새로운 고객층과의 접점을 넓히는 동시에 브랜드의 다음 성장 방향을 확인하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올리페페는 매장마다 서로 다른 콘셉트를 입혀, 방문할 때마다 새로운 이탈리아의 풍경을 경험하도록 설계한 것이 특징인데, 강남점은 ‘뒤뜰에서의 식사(Convivio nel Cortile)’를 콘셉트로 삼았다.
이탈리아의 뒤뜰은 가족이 모이고 이웃이 들르며 음식과 와인을 나누는 생활의 중심 공간으로, 강남점은 그 정서를 옮겨 현지 가정에 초대된 듯한 분위기를 구현한 것이다.
실제 이탈리아 주택에서 쓰는 노출 목재 보를 들이고 곳곳에 레몬 나무를 배치했으며, 강남대로가 내려다보이는 창가에는 아치형 구조를 세워 개방감과 프라이빗함을 함께 담았다. 창가석과 부스석, 단체룸까지 갖춘 120석 규모라 가벼운 식사부터 여럿이 즐기는 모임까지 목적에 따라 나눠 쓸 수 있다.

메뉴는 아페리티보(식전주)로 시작해 안티파스티와 피자·파스타, 와인, 돌체와 에스프레소로 이어지는 이탈리아 식문화를 그대로 따른다. 여럿이 둘러앉아 여러 접시를 나누는 방식이 핵심이다. 강남점은 여기에 스테이크 라인업을 새로 강화했다. 피렌체식 스테이크 ‘비스테카 알라 피오렌티나’가 대표 격으로, 엄선한 소고기를 시어링한 뒤 구운 레몬과 이탈리안 허브를 곁들여 와인 페어링을 살렸다.
간판인 화덕피자는 이탈리아산 카푸토 밀가루로 매일 도우를 직접 만들어 구워내는데, 시그니처 ‘올리 올리베’는 피자 판매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하고 파스타에서는 ‘카치오 올리페페’가 1위를 지키고 있다.

이렇게 공간부터 메뉴까지 브랜드 경험을 촘촘하게 설계한 결과는 성과로 이어졌다. 지난해 12월 광화문 첫 매장 이후 누적 방문객은 12만 명을 넘어섰고, 네 개 매장의 사전 예약에만 합산 1만 명 이상이 몰렸다.
전 매장에서 2030 고객 비중이 55%를 웃도는 가운데 강남점은 그 비율이 가장 높아, 트렌드에 민감한 젊은 층의 호응을 확인했다. 강남점은 특히 올리페페 매장 중 와인 매출 비중이 가장 높고, 새로 강화한 스테이크와 디저트 주문이 기존 대비 약 두 배로 늘며 초반 흐름을 탔다. 올리페페는 강남점을 미식 콘텐츠를 실험하고 새로운 트렌드를 발신하는 거점으로 키운다는 구상이다.
CJ푸드빌 관계자는 “서로 다른 상권에서 축적한 운영 경험을 바탕으로 브랜드 경험을 한층 정교하게 구현했다”며 “다양한 외식 브랜드가 경쟁하는 강남에서 올리페페만의 경쟁력을 본격적으로 선보이겠다”고 말했다.

◇ 노란 트럭에서 강남으로… ‘밴 루엔’, 뉴욕 스쿱숍을 통째로 옮기다
투썸플레이스(대표 문영주)가 미국 뉴욕 슈퍼 프리미엄 아이스크림 ‘밴루엔(Van Leeuwen)’을 앞세워 강남에 진출했다. 지난 7월 3일 강남대로 372, 지하철 2호선과 신분당선이 겹치는 강남역 초근접 자리에 국내 1호점을 열었다.
올해 초 밴루엔과 마스터 프랜차이즈 계약을 맺고 국내 사업을 총괄하게 된 투썸이, 커피와 케이크에 머물던 디저트 포트폴리오에 아이스크림 전문 브랜드를 더한 첫 결과물이다.
밴루엔은 2008년 미국 뉴욕 브루클린에서 이베이(eBay)로 산 노란색 아이스크림 트럭 한 대로 출발한 브랜드다. 벤 밴루엔·피트 밴루엔 형제로라 오늘 세 사람이 세운 뒤 미국 전역 100여 개 직영 매장으로 성장했고, 50개 주 1만여 개 유통채널에도 제품을 들이며 대중적 인지도를 쌓았다. 여기에 카일리 제너와 사브리나 카펜터, 에드 시런 등 셀럽이 즐겨 찾으며 ‘뉴욕에서 가장 힙한 아이스크림’이라는 수식까지 얻었다.

강남점은 이 헤리티지를 시각적으로 옮기는 데 초점을 맞췄다. 시그니처인 바닐라를 주제로 매장 안팎을 연한 노란색으로 채우고, 계산대와 벽면 냉동고는 창업 초기의 트럭에서 따온 형태로 꾸며 뉴욕 스쿱숍의 분위기를 재현했다.
맛의 축은 프렌치 스타일이다. 밴루엔의 클래식 아이스크림은 달걀노른자를 일반 제품보다 두 배 이상 넣어 풍미를 진하게 끌어올린 것이 특징으로, 마다가스카르산 6번 바닐라빈을 쓴 ‘바닐라 빈’, 시칠리아산 원물을 넣은 ‘시칠리안 피스타치오’, 베르가못 향의 ‘얼그레이 티’ 등이 대표 플레이버다.

국내 매장에서 선보이는 플레이버는 총 24종으로, 이 중 4종은 오트·코코넛·캐슈넛을 활용한 비건으로 채웠다. 여기에 토핑과 소스를 올린 미국식 ‘선데이’와 아이스크림·우유만으로 만든 밀크셰이크까지 더해, 뉴욕 아이스크림 전문점의 경험을 그대로 담았다.
밴루엔은 강남역점을 시작으로 신세계백화점 강남점과 신논현역 인근까지 국내 1~3호점을 모두 강남권에 배치했다. 유동 인구가 몰리는 핵심 상권에서 밴루엔의 철학과 브랜드 경험을 처음 알리기 적합한 위치로 풀이된다. 투썸플레이스 관계자는 “강남역점은 단순히 아이스크림을 파는 공간이 아니라 뉴욕 현지 스쿱숍 문화를 경험하는 공간”이라며 “좋은 재료가 좋은 아이스크림을 만든다는 밴루엔의 철학까지 함께 전하겠다”고 말했다.

◇ 커피·디저트·베이커리 한 공간에…’폴 바셋’의 강남 전략 매장
매일유업 관계사 엠즈씨드가 운영하는 스페셜티 커피 브랜드 ‘폴 바셋’이 외식 격전지 강남에 전략 매장을 오픈했다.
지난 7월 3일 신논현역 6번 출구 인근 한국자산관리공사 건물 1~2층에 문을 연 강남점은, 프리미엄 커피와 아이스크림, 밀도 베이커리 등 그간 사랑받아온 시그니처 콘텐츠를 한 공간에 모은 매장이다. 커피 한 잔에 머물지 않고 디저트와 베이커리까지 하나로 큐레이션한 새로운 전략 모델을 처음 적용했다.
강남을 무대로 삼은 데는 상권의 성격이 작용했다. 젊은 고객층이 몰리고 여러 카페 브랜드가 밀집한 자리인 만큼, 브랜드 강점을 한데 모아 폭넓은 소비 수요를 공략하기에 적합한 입지다. 폴 바셋은 커피 전문점이라는 정체성을 지키면서도, 한 매장 안에서 커피부터 디저트, 베이커리까지 이어지는 경험을 제안하며 소비자 접점을 넓혔다.

차별화의 핵심은 강남점에서만 맛볼 수 있는 한정 메뉴다. 프랜차이즈 커피 브랜드에서 접하기 어려운 게이샤 원두를 시그니처인 룽고와 라떼에 사용한 ‘게이샤 G 블렌드 룽고’와 ‘게이샤 G 블렌드 카페라떼’, 오리지널 누텔라로 헤이즐넛과 초콜릿 풍미를 살린 ‘누텔라 아이스크림’이 대표적이다. 게이샤는 생산량이 적고 향미가 화사해 스페셜티 시장에서 고급 원두로 꼽히는 품종으로, 커피 본연의 경쟁력을 앞세우려는 폴 바셋의 색깔이 묻어나는 선택이다.
메뉴는 커피에 그치지 않는다. 아이스크림에 다양한 토핑을 더한 디저트 컵과 밀도 베이커리, 케이크 등으로 디저트 라인업을 넓혀 커피 이후로 이어지는 선택지를 촘촘히 채웠다. 프리미엄 커피와 아이스크림, 베이커리라는 세 갈래를 한 공간에서 매끄럽게 잇는 구성이 이번 전략 매장의 뼈대다.

폴 바셋은 강남점을 브랜드의 강점을 응축한 거점으로 삼아 핵심 상권에서 소비자 접점을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폴 바셋 관계자는 “젊은 고객층이 모이는 상권인 만큼 다양하고 감각적인 메뉴를 구성했다”며 “폴 바셋의 시그니처 콘텐츠와 한정 메뉴로 색다른 브랜드 경험을 선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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