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유통사와 이커머스 플랫폼이 전통시장을 지원하는 방식이 근본적으로 변하고 있다. 과거 인테리어 교체나 일회성 시설 현대화 보조금 지급 같은 단발성 시혜에 머물던 상생 모델은 이제 시장 전체의 체류 시간과 방문 유인을 끌어올리는 공간 기획, 그리고 배달망과 밀키트화를 이식하는 디지털 솔루션 제공 형태로 진화했다.
소상공인 개별 점포의 환경 개선만으로는 상권 전체의 고령화와 신규 고객 유입 정체를 극복하기 어렵다는 한계가 명확해졌기 때문이다. 대형 리테일 기업들은 자사가 가진 공간 개발 노하우와 유통 인프라를 활용해 전통시장 내에 확실한 집객 거점을 구축하고, 이를 시장 전체로 확산시키는 상생 기획을 선보이고 있다.
전통시장이 마주한 가장 큰 과제는 소비층의 고령화와 이에 따른 신규 유동 인구의 이탈이다. 단순한 친절 교육이나 노후 간판 교체 수준의 간선 지원으로는 대형 쇼핑몰과 온라인 커머스에 익숙해진 젊은 소비자들을 전통시장으로 불러들이기에 역부족이었다. 개별 상점이 일시적으로 매출을 올리더라도 상권 전체의 앵커 콘텐츠가 부재하면 방문객이 시장에 머무는 시간은 늘어나지 않는다.
유통업계와 플랫폼 기업들은 시장이라는 공간 자체를 하나의 독자적인 플랫폼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방문객이 일부러 찾아올 유인을 만드는 앵커 스토어 육성, 공실을 활용한 시그니처 매장 조성, 그리고 장보기의 경계를 넘어서는 온라인 배달망 결합이 골목상권 체질 개선의 새로운 수단으로 부상한 이유다.

최근 추진되는 상생 사업들은 전통시장의 체류 가치를 높이는 오프라인 공간 재편과 판로를 전국으로 넓히는 온라인 시스템 이식이라는 두 축으로 전개된다. 오프라인에서는 전통시장 본연의 레트로한 분위기를 유지하면서도 젊은 직장인과 외지 방문객이 부담 없이 찾을 수 있는 식음료(F&B) 공간을 기획해 상권 전체의 거점 역할을 맡긴다.
동시에 온·오프라인 동선을 연결하기 위해 전문 셰프의 메뉴 컨설팅과 정밀한 원가 관리 체계를 도입해 개별 점포의 상품성을 극대화한다. 온라인 영역에서는 디지털 환경에 서튼 고령 상인들을 대상으로 일대일 컨설팅을 제공하고, 개별 상점의 시그니처 메뉴를 밀키트 형태로 상품화해 배달 앱 인프라와 결합시키는 작업이 동시 다발적으로 이뤄진다.
이러한 유통업계의 전략 변화는 실제 오프라인 현장과 온라인 플랫폼의 성과 데이터로 확인된다. 신세계프라퍼티는 스타필드 안성을 중심으로 안성맞춤시장과 손잡고 시장 전체의 자생력을 높이는 두 번째 상생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지난 2021년 9개 점포에 대한 맞춤 지원을 진행했던 신세계프라퍼티는 이번에 시장 전체의 집객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핵심 점포 4 곳을 앵커 스토어로 지정해 시설과 브랜딩을 재정비했다.
선지해장국집 안성집과 베이커리 나의오후의 대면 환경을 개선하고, 곰탕집 백돈당과 일식집 아오츠키에는 전문 셰프를 투입해 주·야간 사이드 메뉴를 개발하고 원가 구조를 개선했다.
나아가 시장 내 공실을 활용해 전통시장 감성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컨셉스토어 안성전기를 오픈했다. 안성전기는 낮에는 우거지 닭개장, 밤에는 전기구이 통닭 플레이트를 운영하는 이원화 메뉴 전략을 취하며 직장인과 젊은 층을 끌어들이는 집객 거점으로 가동되고 있으며, 내부에는 야시장 상인들을 위한 상생 공용주방까지 갖췄다.

온라인 플랫폼 측면에서는 쿠팡과 쿠팡이츠가 전통시장 디지털 점프업 동행 프로그램을 가동해 상인들의 온라인 배달 경쟁력을 끌어올리고 있다. 전국 5대 재래시장 중 하나인 청주 육거리종합시장을 시작으로 거제 등으로 확대를 추진 중인 이 프로그램은 온라인 판매전략 컨설팅, 상품 사진 촬영, 대학 연계 산학협력 마케팅, 시그니처 메뉴의 밀키트 상품화를 종합적으로 지원한다.
앞서 올해 상반기 청량리시장에서 진행된 동일 프로그램의 경우, 온라인 판로 컨설팅과 포장재 지원 및 경희대 산학협력이 결합되며 참여 상인들의 상반기 쿠팡이츠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약 40% 증가하는 명확한 성과를 거뒀다. 대형 유통사의 오프라인 공간 기획과 이커머스 기업의 온라인 시스템 이식이 전통시장의 실질적인 결제 건수 상승으로 연결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전통시장과 대형 유통업계의 협력은 단발성 기부나 일회성 이벤트를 지나, 자생적인 리테일 생태계를 구축하는 자산화 전략으로 안착하고 있다. 전통시장이 보유한 고유한 서사와 특색 있는 먹거리는 대형 플랫폼의 차별화된 콘텐츠가 되고, 유통 기업의 유통망과 공간 기획력은 전통시장의 상권 수명을 연장해 준다.
향후 리테일 시장에서 전통시장 상생은 개별 점포의 일시적 지원을 넘어, 확실한 앵커 스토어를 중심으로 인근 상점 전체로 고객 동선을 확산시키는 공간 설계 능력과 온라인 배달 및 밀키트를 아우르는 온·오프라인 융합 역량에 의해 성패가 갈릴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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