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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이탈리아 관계 격상…‘Made in Italy’와 ‘K-트렌드’가 함께 그리는 미래

에밀리아 가토 주한 대사·페르디난도 구엘리 무역관장·석용배 CD 3인 인터뷰

이탈리아와 한국, 142년 수교 역사 위에 길이 남을 한 점이 찍혔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6월 11일 이탈리아 로마에서 세르지오 마타렐라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고, 양국 관계를 8년 만에 ‘특별 전략적 동반자 관계(Special Strategic Partnership)’로 격상했다. 한국 정상이 국빈 자격으로 이 나라를 찾은 것은 26년 만이었다.

두 나라는 이 자리에서 ‘2026~2030 한이탈리아 전략적 행동계획’을 채택하고, 중소기업·과학기술ict협력·사회연대경제·개발협력 등 총 4건의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조르자 멜로니 총리와의 회담에서는 인공지능과 양자기술, 첨단 바이오 등 미래 전략산업으로 협력의 폭을 넓혔다.

26년 만의 국빈 방문이자, 이 대통령의 첫 유럽 순방인 점에서 정상과 정상의 만남은 좀처럼 보기 드문 이례적인 자리라는 걸 알 수 있다. 그러나 두 나라는 이미 오래전부터 촘촘히 연결되어 있었다. 장인정신과 헤리티지, 소재와 제조의 완성도, 나아가 식문화와 외식업까지. 이탈리아의 뿌리 깊은 전통은 한국인의 일상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있다.

2025년 9월 5일 열린 ‘한-이탈리아 비즈니스 포럼 2025’에서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페르디난도 구엘리 이탈리아무역공사 관장, 박종원 산업통상자원부 통상차관보, 에밀리아 가토 주한 이탈리아 대사, 발렌티노 발렌티니 이탈리아 기업·산업부 차관.

숫자가 이를 증명한다. 한국은 아시아에서 1인당 ‘메이드 인 이탈리아(Made In Italy)’ 제품을 가장 많이 소비하는 나라다. 이탈리아의 대한국 수출액은 일본 수출의 90%에 이르는데, 일본 인구가 한국의 두 배를 넘는다는 점을 감안하면 1인당 구매력은 오히려 한국이 앞선다. 그만큼 한국은 이탈리아에 있어 아시아 최고의 시장 중 하나인 셈이다.

특히 패션은 두 나라를 잇는 가장 굵은 축이다. 프라다와 구찌, 보테가 베네타 같은 럭셔리 하우스부터 브루넬로 쿠치넬리, 로로피아나 같은 헤리티지 브랜드에 이르기까지, 한국 소비자는 이름값만이 아니라 그 이면에 축적된 가치와 이야기에 반응한다.

실제로 얼마 전까지 이탈리아의 한국 수출 가운데 약 60%가 패션 제품이었을 만큼, 두 나라의 교역은 패션을 중심으로 두텁게 쌓여 왔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테넌트뉴스가 에밀리아 가토 주한 이탈리아 대사와 페르디난도 구엘리 주한 이탈리아무역공사(ITA) 서울 무역관장, 그리고 두 나라를 잇는 디자이너로 꼽히는 토즈(Tod’s) 남성화 수석 디자이너 석용배 크리에이티브 디렉터(CD)를 직접 만났다. 이탈리아와 한국, 두 나라는 서로에게 어떤 이끌림을 느껴 왔으며, 이제 어떤 지향점을 함께 바라보고 있을까.

에밀리아 가토 주한 이탈리아 대사

◇ ‘에밀리아 가토’ 대사…한·이탈리아는 ‘상호보완적인 훌륭한 관계’
두 나라의 관계를 한 문장으로 표현해 달라는 질문에, 에밀리아 가토 대사는 망설임 없이 “훌륭한 관계”라고 답했다. “한국과 이탈리아, 두 나라 사람들은 서로에게 반해 있습니다. 서로에게 이끌림과 매력을 느끼고 있어요” 그는 이 이끌림을 두 방향으로 나눠 설명했다. 한국인이 이탈리아에 매료되는 이유, 그리고 이탈리아인이 한국에 매료되는 이유다.

먼저 한국인이 이탈리아에 매료되는 이유로, 가토 대사는 역설적이게도 한국인이 지닌 ‘타고난 세련됨’을 꼽았다. 가토 대사는 “한국인은 우아함이 내재돼 있어요. 마치 DNA에 새겨진 것처럼 자연스럽게 배어 있죠. 과하지 않고, 심플한 옷을 입어도 절제된 아름다움을 표현합니다” 이런 감각을 지닌 한국 소비자는 브랜드의 이름보다 이면에 있는 가치를 알아본다는 점에서 이탈리아만의 장인정신, 전통 등 본질적인 것에 이끌린다는 설명이다.

가토 대사는 최근 리테일 시장의 변화를 짚으며 이 지점을 분명히 했다. “소비자는 점점 더 브랜드보다 경험에 집중하고 있고, 이는 제품을 진열하고 마케팅하는 방식까지 바꾸고 있습니다” 이어 “이탈리아 브랜드는 이런 흐름에서 오히려 더 큰 이점을 얻을 수 있습니다”라며 “매력적인 브랜드 스토리와 고급 소재, 창의성, 제조 전문성을 결합해 가장 진정성 있고 독창적인 경험을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죠”라고 말했다.

헤리티지의 가치를 알아보는 한국 소비자와, 그 가치를 경험으로 풀어낼 수 있는 이탈리아 브랜드가 만나는 지점에 기회가 있다는 뜻이다.

에밀리아 가토 주한 이탈리아 대사가 제10회 이탈리아 디자인의 날에서 발언하고 있다.

◇ 닮은 정서, 다른 강점… ‘상호보완’이 근거가 되다
반대로 이탈리아인이 한국에 매료되는 이유를 설명하며, 가토 대사는 개인적인 일화 하나를 꺼내 들었다. “저희 할머니는 방이 너무 어질러져 있으면 그 방에 들어서면서 ‘여기가 왜 이래, 여기 한국이야?’라고 하셨어요. 그 시절 이탈리아 사람들에게 한국은 뉴스 속 전쟁의 이미지가 전부였으니까요. 폐허가 된 서울과 우는 아이들, 그게 우리가 알던 한국이었어요”

전쟁을 치른 직뛰어나, 폐허가 된 한국을 바라보는 이탈리아의 시선은 한 세대 만에 완전히 뒤바뀌었다. 가토 대사는 과거 현대·기아차가 이탈리아에 처음 진출했을 때는 저가 자동차라는 인식이 강했으나, 현재는 가치와 위상이 완전히 달라졌다고 평가하며, 이제 한국 브랜드는 곧 신뢰와 미래지향성을 의미한다고 밝혔다.

보통 몇 세대에 걸쳐 일어날 변화를 한국이 단 한 세대 만에 이뤄낸 것에 대해 현지 이탈리아인들 역시 깊은 경외심과 존경심을 느끼고 있다는 설명이다.

세계 이탈리아 음식주간을 맞아 2025년 11월 19일 진행된 메이드 인 이탈리아 치즈 프로모션 캠페인 ‘포르마지아모(FORMAGGIAMO)’에서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페르디난도 구엘리 이탈리아무역공사 관장, 파브리치오 페라리 셰프, 에밀리아 가토 주한 이탈리아 대사.

두 나라가 통하는 지점은 정서적 뿌리, 특히 가족과 식문화의 닮음까지 이어진다. 가토 대사는 “저희 할머니는 늘 부엌에 계셨어요. 파스타 면을 직접 손으로 만드시고, 가족이 모이면 온종일 요리를 하셨죠”라며 “이탈리아 사람들은 한국 사람들처럼 식사 자리에서 늘 ‘많이 드세요, 많이 드세요’ 하며 자꾸 권하며 가족이 둘러앉아 먹고 나누는 정(情)이 두 나라가 참 많이 닮아 있어요”라고 말했다.

이처럼 닮은 정서 위에서, 서로의 강점이 다른 것을 가토 대사는 오히려 협력의 근거라고 설명한다. “이탈리아 패션은 오랜 세월 축적한 장인정신과 소재, 완성도에 강점이 있고, 한국 패션은 빠른 감각과 콘텐츠 확산 역량, 젊은 소비자와의 소통에 뛰어나요. 이런 두 시장이 서로를 단순히 수입과 수출의 파트너로만 보지 않고, 디자인과 생산, 콘텐츠, 유통을 함께 다루는 협업파트너로서 만난다면 훨씬 더 흥미로운 결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겁니다”라고 강조했다.

협업의 방식도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잘 알려진 브랜드를 위해 ‘캡슐 컬렉션’을 함께 디자인하거나, 콘텐츠와 노하우를 결합해 특별한 무언가를 만드는 공동 프로젝트가 모두에게 이로운 기회를 열어줄 수 있다는 설명이다. 서로 다른 자리에서 출발해 비슷한 가치를 품고, 다른 강점으로 서로를 채운다. 대사가 두 나라를 ‘상호보완적’이라 표현한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주한 이탈리아무역공사(ITA) 페르디난도 구엘리 서울무역관장

◇ ITA 페르디난도 구엘리 관장… ‘미래 성장 가능성을 추구하는 관계’
관계의 의미를 대사가 짚었다면, 그것을 사업의 언어로 옮기는 것은 실질적인 교역·투자 진흥을 담당하는 ‘페르디난도 구엘리’ 주한 이탈리아무역공사(ITA) 서울 무역관장의 몫이다.

구엘리 관장은 한이탈리아 관계를 ‘미래의 성장 가능성을 함께 추구하는 관계’로 규정하면서, 두 나라 경제 모델의 구조적 차이가 오히려 협력의 근거가 된다고 본다. 한국은 “대기업 중심으로 성장하고 혁신을 이뤘습니다. 엄청난 투자로 혁신을 만들어냈죠. 반면 이탈리아는 풀뿌리처럼 아래에서 위로 이뤄졌어요”라고 설명했다.

이탈리아는 대기업보다 중소기업이 산업의 척추를 이루고, 거대 그룹에 속하지 않은 독립 기업들이 저마다 움직인다는 설명이다. 이같은 작은 기업들은 부담 없이 도전적인 시도를 할 수 있고, 그중 하나가 성공하면 그 방식이 다른 독립 기업으로 번지며 함께 발전하는 선순환이 이뤄진다.

페르디난도 구엘리 이탈리아무역공사 관장이 2026년 3월 10일 열린 제10회 이탈리아 디자인의 날에서 발언하고 있다.

이 작은 기업들이야말로 이탈리아 제조의 저력인 셈이다. 그는 대를 이어 노하우와 전통을 축적한 가족 기반의 강소기업이야말로 이탈리아의 자산이라고 봤다. 이탈리아에서 ‘에첼렌차(Eccellenza·우수함)’로 불리는, 세계 시장에 널리 알려지지 않았어도 특정 분야에서 완성도를 만들어내는 ‘히든젬(Hidden gem·숨은 보석)’ 같은 기업이 그만큼 많다는 것이다.

구엘리 관장은 이러한 이탈리아의 저력이 한국과 만났을 때 시너지를 낸다고 봤다. 그는 “잘 조직된 대기업 기반의 한국과 축적된 노하우를 지닌 중소기업 기반의 이탈리아가 만나면 양자 도약(퀀텀 점프)의 기회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라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이탈리아 화장품협회와 공동으로 주최한 ‘이탈리안 뷰티 데이즈 2026’ 현장 사진

◇ ‘전통과 혁신의 결합’… 현장에서 실현되고 있는 상호 교류
두 나라의 협력은 선언에 머물지 않고 이미 제품으로 구현되고 있다. 전통과 혁신이 실제로 결합하는 현장이 그 증거다. 석용배 크리에이티브 디렉터(CD)가 진행 중인 프로젝트가 대표적이다. 그는 국내 가구 브랜드 시디즈(SIDIZ)와 이탈리아의 테크니컬 패브릭 업체를 연결해, 새롭게 개발한 신소재를 의자에 접목한 제품을 오는 12월 선보인다.

교육 현장에서도 결합은 진행 중이다. 수원대학교 학생들은 이탈리아 전통 소재를 활용해 한복 의상을 제작하고, 졸업 작품과 패션쇼 컬렉션에도 이탈리아 소재를 접목했다. 이렇게 산업과 교육 양쪽에서, 전통과 혁신의 결합은 이미 활발하게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협력은 개별 프로젝트를 넘어 상시적인 접점으로도 이어진다. 주한 이탈리아무역공사(ITA)가 이탈리아패션협회(EMI)와 함께 주최한 B2B 트레이드 페어 ‘이탈리안 패션 데이즈’, 이탈리아 화장품협회와 공동으로 주최한 ‘이탈리안 뷰티 데이즈 2026’ 등 B2B 무역 박람회부터 업계 종사자를 대상으로 한 B2B 워크숍과 패션쇼를 정기적으로 열고 있다.

이탈리아 화장품협회와 공동으로 주최한 ‘이탈리안 뷰티 데이즈 2026’ 현장 사진 2

반대로 피티(Pitti)·미캄(Micam)·리네아펠레(Lineapelle) 등 이탈리아 현지 주요 전시회에 한국 바이어(대표단을 파견하는 사업도 병행하고 있다. 이외에도 쿠팡 ‘이탈리안 마켓’, CJ온스타일 ‘비바 이탈리아’ 등 디지털 커머스로도 접점을 넓히고 있는 추세다.

서울 가로수길에는 F&B와 화장품, 패션, 라이프스타일을 아우르는 이탈리아 상설 홍보관 ‘하이 스트리트 이탈리아(High Street Italia)’를 운영 중이며, 유통 채널을 가진 기업이라면 이러한 자리를 통해 이탈리아 브랜드와 직접 만날 수 있다.

이는 두 나라의 교역 품목이 넓어지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구엘리 관장은 “이탈리아의 한국 수출은 패션이 약 60%를 차지했지만, 최근 그 비중이 다양해지는 추세예요”라며 “정밀 기계와 자동 포장기계 같은 하이테크 분야, 제약, 그리고 화장품이 새로운 축으로 떠오르고 있습니다”라고 덧붙였다.

화장품의 경우 매년 이탈리아 볼로냐에서 열리는 세계 최대 화장품 박람회 코스모프로프(Cosmoprof)에서 이탈리아 다음으로 국가관 규모가 큰 곳이 한국이라는 것이 구엘리 관장의 설명이다.

에밀리아 가토 주한 이탈리아 대사가 2025년 11월 15일 열린 제2회 ‘스터디 인 이태리(Sii! Study in Italy)’ 이탈리아 유학박람회에서 인사말을 전하고 있다.

◇ 국가와 업계를 넘어, 사람과 사람을 잇다
가토 대사와 구엘리 관장 두 사람 모두 협력의 핵심으로 결국 ‘사람’을 가리켰다. 이탈리아와 한국 모두 석유 한 방울 나지 않는 환경에서 사람의 지혜와 노력으로 성장을 이뤄냈다. 특히 6.25전쟁, 2차 세계대전을 겪으며 폐허를 딛고 나라를 다시 세운 경험이 이 두 국가 간의 끈끈한 유대감을 형성했다.

가토 대사는 “한국은 석유 한 방울 안 나는 나라잖아요. 투자할 때라곤 인적 자원밖에 없었죠. 그런데 바로 그 사람이, 손과 머리로 오늘의 한국을 만들어냈어요. 무에서 오늘날과 같은 소프트 파워 강국이 됐다는 점을 정말 높이 삽니다”라고 말했다.

이처럼 천연자원 대신 인적 자원을 바탕으로 오늘날을 만들어왔다는 점이 양국을 가깝게 이어주는 계기가 되고 있는 것이다. 다만 같은 ‘인적 자원’이라 해도, 두 나라가 사람에 투자해 온 방식은 결이 조금 다르다.

가토 대사는 “물론 이탈리아의 인적 자원 투자는 한국과는 의미가 조금 다릅니다. 정확히 말하면, 이탈리아는 장인들에게 투자해 왔다고 하는 편이 옳죠. 그리고 양국이 각자의 분야에서 우수성을 인정받은 지금, 이탈리아는 기술과 혁신에, 한국은 장인에 대한 투자를 늘리려 노력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에밀리아 가토 주한 이탈리아 대사가 2026년 2월 24일 열린 제2회 소외된 희귀질환 관심 기울이기 교육 행사에 참석하고 있다.

이러한 인식은 구엘리 관장도 다르지 않았다. 그는 두 나라의 협력 역시 결국 사람의 교류에서 출발한다고 봤다. 그는 “한국을 찾는 이탈리아인, 또 이탈리아를 찾는 한국인이 많아져야 해요. 그렇게 인적 교류가 늘어야 양국을 잇는 교두보 역할을 할 사람도 많아지거든요”라고 설명했다.

이러한 인식은 실제 사업으로 이어지고 있다. 주한 이탈리아 대사관은 2년 전부터 이탈리아 유학 박람회 ‘SII! 스터디 인 이탈리아(SII! Study in Italy)’를 개최하고 있다. 한국에도 유학 박람회는 많지만 이탈리아에 특화된 행사는 없었던 만큼, 이탈리아 유수의 대학들이 참가해 이탈리아 유학에 관심 있는 학생들과 상담을 잇는 자리다.

올해로 3회차를 맞아 10월 30일 개최를 앞두고 있다. 이와 함께 이탈리아를 사랑하는 20~39세 청년들의 네트워킹 행사 ‘하이 제너레이션(Hi-Generation)’도 운영하며, 미래 세대가 두 나라를 잇는 접점을 꾸준히 넓혀가고 있다.

결국 이 모든 결합과 접점을 실제 성과로 이어 가려면, 두 나라를 동시에 이해하는 사람이 필요하다. 구엘리 관장은 “전통과 혁신을 바탕으로 성장한 두 나라가 협업할 때는, 양국의 특성과 서로의 니즈를 아는 사람이 중요합니다. 그런 사람이 중간에서 방향을 잡고,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게 이끌어야 하죠”라며 연결하는 사람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앞서 소개한 시디즈 협업을 이끄는 석용배 크리에이티브 디렉터(CD)가 바로 그런 인물이다.

석용배 크리에이티브 디렉터(CD)

◇ 이탈리아와 한국을 잇는 석용배 CD… ‘협업의 핵심은 좋은 제품’
관계의 의미를 대사가, 사업의 판을 관장이 짚었다면, 그 협력이 실제 제품으로 구현되는 현장에는 디자이너 석용배 크리에이티브 디렉터(CD)가 있다.

그는 돌체앤가바나(Dolce&Gabbana), 발리(Bally) 등 글로벌 브랜드를 거쳐 이탈리아 럭셔리 브랜드 토즈(Tod’s)의 남성 슈즈 수석 디자이너를 지낸 인물로, 지난 6월 로마 퀴리날레궁 국빈만찬에 초청된 유일한 한국 디자이너였다. 이탈리아 럭셔리 산업의 중심에서 경력을 쌓아온 그는, 두 나라 리테일 협력을 가장 구체적인 형태로 보여주는 인물이다.

석용배 CD는 이탈리아 브랜드가 한국 시장에 안착하기 위한 조건으로 시장에 대한 이해, 좋은 파트너, 그리고 시간 세 가지를 꼽았다. 그는 “한국 소비자는 굉장히 빠르고 수준이 높습니다. 이탈리아에서 잘되는 방식을 그대로 가져오는 것만으로는 부족하죠”라며 “현지 소비자가 무엇을 원하는지에 대해 먼저 이해하는 게 중요합니다”라고 강조했다.

여기에 브랜드의 정체성과 한국 시장을 함께 아는 파트너, 그리고 이탈리아 브랜드의 역사와 장점을 소비자에게 천천히 이해시키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트렌드가 빠르게 소비되는 한국에서 이탈리아의 장인정신과 헤리티지가 일회성 유행으로 소모되지 않겠느냐는 우려에는 오히려 반대로 답했다. 한국 소비자는 트렌드에 빠르면서도, 좋은 소재와 완성도, 제품에 담긴 이야기를 이해하는 수준이 상당히 높다는 것이다. 관건은 표현 방식이다.

그는 “100년, 200년의 역사를 그저 이야기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안의 장인정신과 기술이 지금의 제품에서도 실제로 느껴지게 해야 합니다”라며 “전통의 본질은 지키되, 그것을 표현하는 방식과 제품은 새로운 세대가 공감할 수 있도록 계속 발전해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협업을 대하는 원칙도 분명했다. 석용배 CD는 “두 브랜드의 로고를 붙이는 것만으로는 협업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라며 제품 그 자체를 가장 먼저 본다고 말했다. 각 브랜드가 가진 좋은 요소가 하나의 제품 안에서 자연스럽게 만나는 지점을 찾는다는 것이다. 대중성과 스토리는 그다음이다. 그는 “스토리가 제품보다 앞서면 안 됩니다. 좋은 이야기는 결국 좋은 제품에서 시작되니까요”라고 강조했다.

그가 그리는 다음 장면은 명확하다. 두 나라 사이의 실질적인 ‘가교(bridge)’다. 그는 “한국 기업이 원하는 것과 이탈리아 기업이 가진 기술이나 장점을 정확히 이해하고, 그 둘이 만났을 때 어떤 새로운 것이 나올 수 있는지를 찾고 싶습니다”라며 “단순히 연결하는 데 그치지 않고, 제가 직접 디자인에 참여해서 두 나라가 혼자서는 만들기 어려운 것을 만들어내는 것, 그게 제가 앞으로 가장 해보고 싶은 의미 있는 역할입니다”라고 말했다.

이탈리아와 한국의 가교 역할을 하는 석용배 CD, 그리고 누구보다 앞장서 이탈리아를 알리는 가토 대사와 구엘리 관장. 이들과 마주한 이번 인터뷰에서는 두 나라가 나아갈 방향과 함께, 앞으로 만들어낼 수많은 협력의 장을 그려볼 수 있었다. 이탈리아의 전통과 한국의 혁신이 빚어낼 ‘제3의 장르’가 전 세계로 퍼져나갈 날이 머지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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