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Exclusive‘팬덤 마케팅’의 혁신, 유통업계 지형을 바꾸다

‘팬덤 마케팅’의 혁신, 유통업계 지형을 바꾸다

오프라인 집객 넘어…자체 생태계로 고객 이끄는 구조

팬덤이 유통업계의 지형을 바꾸고 있다. 좋아하는 아티스트나 캐릭터를 소비하는 방식이 음반과 굿즈를 넘어 편의점 빵, 화장품, 외식 메뉴 같은 일상 소비재로 빠르게 번지면서다. 유통업체도 이를 단순한 협업 마케팅으로 보지 않는다.

팬덤이 매장으로 고객을 불러오고 반복 구매를 만들며 앱 이용과 콘텐츠 확산까지 끌어내는 효과에 주목하고 있다. 최근 이 변화를 가장 뚜렷하게 보여주는 사례가 걸그룹 리센느(RESCENE)다. 리센느는 2026년 가장 뜨거운 아티스트 중 하나로 떠올랐다.

2024년 3월 데뷔한 리센느는 원이·리브·미나미·메이·제나로 구성된 5인조 걸그룹이다. 소속사는 더뮤즈엔터테인먼트다. 대형 기획사의 지원을 받는 팀은 아니었다. 데뷔 이후 2년 가까이 코어 팬덤을 중심으로 이름을 알렸지만 대중적인 인지도는 높지 않았다. 반전을 만든 무대는 음악방송이 아니었다. 유튜브와 쇼츠였다. 올해 2월 멤버 원이가 개인 채널을 열면서 멤버들의 자연스러운 모습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거제 야호’ 밈으로 화제를 모은 리센느가 거제시 홍보대사 위촉장을 들고 있다.(사진=거제시 제공)

특히 미나미가 원이의 고향인 경남 거제를 찾은 콘텐츠에서 외친 “거제 야호”가 쇼츠와 SNS를 타고 밈으로 번졌다. 짧은 유행어 하나가 그룹을 검색하게 만들었고, 그 관심은 다시 음악으로 옮겨갔다. 멜론에서 리센느를 검색한 이용자는 밈 확산 이후 6550% 늘었다. 유튜브 채널 개설 시점과 비교하면 6월 말 스트리밍은 최고 2019%, 청취자는 977% 증가했다. 대중적 화제성도 빠르게 커졌다.

한국기업평판연구소의 걸그룹 브랜드 평판 조사에서는 8월과 9월, 10월까지 3개월 연속 1위를 차지했다. 밈으로 유입된 관심이 음악 소비와 검색량, 브랜드 인지도 상승으로 이어진 셈이다.

CU는 리센느 멤버들의 취향을 반영한 협업 베이커리를 출시했다. 출시 보름여 만에 누적 판매량 60만 개를 넘어섰다.(사진=BGF리테일 제공)

◇ 광고가 제품을 알리는 수단을 넘어…‘팬들이 찾아보는 콘텐츠’로
리센느의 인기를 실제 상품으로 연결한 대표적인 사례가 CU다. BGF리테일은 리센느를 브랜드 모델로 발탁하고, 광고에 그치지 않고 협업 상품과 콘텐츠를 함께 선보였다. 편의점업계가 K팝 걸그룹을 브랜드 모델로 내세운 것은 처음이었다. 이후 멤버별 취향을 반영한 ‘리센느 빵’ 5종을 순차적으로 출시했다. ‘원이의 옥수수 크림빵’, ‘리브의 초코호떡’처럼 멤버의 이름과 취향을 상품에 직접 연결했다.

반응은 빨랐다. 리센느 빵은 출시 보름여 만에 누적 판매량 60만 개를 넘어섰다. 흥행을 이끈 장치는 빵 안에 무작위로 넣은 멤버 포토카드였다. 모두 27종으로 구성했다. 원하는 멤버의 카드를 얻거나 전 종류를 모으려는 팬들이 반복 구매에 나서면서 판매량이 빠르게 늘었다.

구매자 구성도 남달랐다. 편의점 빵과 디저트는 그동안 젊은 여성 고객을 주요 타깃으로 삼아온 상품군이다. 그런데 리센느 빵은 전체 구매자의 69.1%가 남성이었다. 30대 남성이 22.7%로 가장 많았고, 40대 남성이 18.6%, 20대 남성이 15.8%로 뒤를 이었다.

도미노피자는 리센느를 앞세운 브랜드 캠페인을 선보였다. 관련 광고는 공개 4일 만에 누적 조회 수 1700만 회를 넘어섰다.(사진=도미노피자 제공)

기존 상품군의 주된 타깃과는 다른 소비자가 대거 유입된 셈이다. 팬덤이 기존 상품만으로는 확보하기 어려웠던 소비자를 매장으로 불러들인 사례다. 리센느 효과는 CU만 누린 게 아니다. 도미노피자가 리센느와 함께 선보인 ‘무진장 슈림프 스테이크 피자’ 광고는 공개 4일 만에 누적 조회수 1700만 회를 넘어섰다. 멤버별로 제작한 숏폼 영상도 높은 조회 수를 기록했다. 팬들이 광고 영상을 다시 편집하고 공유하면서 2차 콘텐츠도 빠르게 늘었다. 광고가 제품을 알리는 수단을 넘어 팬들이 찾아보는 콘텐츠로 작동한 것이다.

식음료업계의 모델 기용도 이어졌다. 동아오츠카는 리센느를 나랑드사이다의 새 모델로 발탁했고, 할리스는 창사 28년 만에 처음 내세운 브랜드 광고 모델로 리센느를 선택했다. 기업들이본 것은 단순한 인지도만은 아니었다. 팬들이 광고를 보고 끝내지 않고 자발적으로 확산시키고 상품 소비로까지 이어가는 힘이었다. 중요한 것은 리센느 협업 제품이 많이 팔렸다는 사실만이 아니다.

리센느를 향한 관심과 팬덤이 제 구매 행동으로 이어졌다는 점이다. 음원과 공연에 머물던 팬덤 소비가 편의점과 외식, 음료와 카페 같은 일상 소비재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 여주는 사례다.

동아오츠카가 선보인 ‘나랑드사이다 리센느 에디션’. 팬덤 소비가 음료 등 일상 소비재로 빠르게 넓어지고 있다.(사진=동아오츠카 제공)

◇ 과거 팬덤 소비는 굿즈에 집중…지금은 일상으로 스며든 ‘덕질’
최근에는 협업 방식이 달라지고 있다. 예전에는 유명 IP를 상품에 얹어 단기간 판매를 끌어올리는 데 초점을 맞췄다면, 이제는 팬덤을 매장과 앱, 콘텐츠로 끌어들이는 구조까지 함께 설계한다. 상품도 훨씬 다양해졌다. 단순히 캐릭터를 포장지에 넣는 수준에서 벗어나 랜덤 굿즈와 한정판, 멤버별 상품, 시즌 상품을 결합해 반복 구매를 유도한다. 협업이 끝난 뒤에도 고객을 남길 수 있도록 앱 재고 조회와 픽업, 멤버십까지 연결한다.

오프라인에서 시작한 구매가 온라인 활동으로 이어지고, 팬이 만든 SNS 콘텐츠가 다시 매장 방문을 끌어내는 식이다. 이제는 어떤 IP가 인기 있는지만 보지 않는다. 팬이 무엇을 사고 왜 다시 찾는지, 어디에서 구매를 인증하고 어떤 경로로 다른 팬에게 확산하는지까지 들여다본다. 과거 팬덤 마케팅이 ‘인기 있는 얼굴을 빌려오는 것’에 가까웠다면, 지금은 팬덤의 행동 자체를 유통 전략에 활용하는 단계로 넘어가고 있다.

팬덤 소비 자체도 이전과 조금 다르게 움직인다. 이른바 ‘덕질’이 특별한 소비에서 일상의 소비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과거 팬덤 소비가 음반과 공연, 공식 굿즈에 집중됐다면, 지금은 편의점 빵과 음료, 화장품, 외식 메뉴까지 범위를 넓혔다. 좋아하는 아티스트가 모델로 등장한 음료를 사고 캐릭터가 그려진 화장품을 고르는 식이다. 팬은 자신이 좋아하는 IP와 연결된 다양한 상품을 소비 대상으로 받아들인다.

에뛰드가 캐릭터 IP ‘가나디’와 협업해 선보인 제품. IP 협업은 식품을 넘어 뷰티 영역까지 확산하고 있다.(사진=에뛰드 제공)

서울대 소비트렌드분석센터가 설명한 ‘디깅(Digging) 소비’도 이런 흐름과 맞닿아 있다. 자신이 좋아하는 대상이나 분야를 깊게 파고들며 관련 상품과 경험을 적극적으로 소비하는 방식이다. 좋아하는 대상을 중심으로 소비 영역이 넓어지면서 팬덤과 리테일이 만나는 접점도 빠르게 늘고 있다.

실제 협업 범위는 식품을 넘어 뷰티와 스포츠, 주류까지 확대됐다. 아이소이는 캐릭터 IP ‘망그러진곰’과 협업 상품을 내놨고, 에뛰드는 ‘가나디’, 메디큐브는 ‘조앤프렌즈’와 손잡았다. 보해양조는 ‘진격의 거인’과 협업 제품을 선보였다. 두산베어스가 망그러진곰과 만든 굿즈는 단기간에 7억 3000만 원의 매출을 올렸다. 팬덤을 가진 IP가 상품 종류를 가리지 않고 유통 현장으로 들어오고 있는 것이다.

팬의 소비 방식도 달라졌다. 물건을 사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어떤 상품을 샀는지 사진을 찍어 SNS에 올리고 랜덤 포토카드를 공개하거나 다른 팬과 교환한다. 한 번의 구매가 새로운 콘텐츠가 되고, 그 콘텐츠가 다시 다른 팬의 구매를 자극한다. 자신의 취향과 정체성을 소비로 드러내는 ‘미닝 아웃(Meaning Out)’과도 연결된다. 리센느 빵을 구매하는 행동에는 빵을 먹는다는 목적 외에 좋아하는 아티스트를 지지하고 이를 드러내려는 의미도 들어간다.

제품의 기능과 가격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소비가 나타나는 것이다. 결국 최근의 변화는 팬덤 마케팅의 등장이라기 보다 고도화에 가깝다. 기업이 팬에게 일방적으로 광고를 보여주는 데서 벗어나 팬이 직접 콘텐츠를 만들고 확산하는 구조를 활용한다.

GS25가 민음사 책 표지를 활용해 선보인 협업 빵. 랜덤 책갈피를 더하면서 수집형 소비까지 끌어냈다.(사진=GS리테일 제공)

◇ 협업 상품이 매출뿐 아니라…자사 플랫폼으로 고객을 데려오는 역할
이런 전략이 실제 유통 지표까지 움직인 사례도 있다. 공교롭게도 CU의 경쟁사인 GS25가 내놓은 ‘민음사 빵’이다. GS25는 민음사 세계문학전집과 시집 표지를 활용한 빵을 선보였다. 『오만과 편견』과 『사랑에 대하여』, 문정희와 허연의 시집 표지를 패키지에 적용했고, 제품 안에는 책표지를 모티프로 한 랜덤 책갈피를 넣었다. 반응은 빨랐다.

출시 이후 품절과 재입고가 반복됐고, 일부 책갈피는 중고거래 시장에서 빵 가격보다 높은 가격에 거래됐다. 제품 자체뿐 아니라 동봉된 굿즈가 관심을 끌면서 수집형 소비가 나타났다. 차이는 그다음에 있었다. 민음사 빵의 흥행은 GS리테일의 통합 앱 ‘우리동네GS’ 이용 증가로 이어졌다.

당시 우리동네GS의 월간활성이용자 수(MAU)는 469만 5000명을 기록했다. 같은 기간 이마트 앱은 약312만 명이었다. 민음사 빵 출시 이후 일정 기간 우리동네GS의 일간활성이용자 수(DAU)는 전달 같은 기간보다 약 15% 늘었다.

GS25는 오프라인 상품을 ‘우리동네GS’ 앱의 재고 조회와 예약·픽업 서비스로 연결하고 있다.(사진=GS리테일 제공)

품절 상품의 재고를 확인하려는 소비자가 앱으로 몰렸기 때문이다. 민음사 빵 매출 가운데 46%는 앱을 통한 픽업 구매에서 발생했다.이 사례가 중요한 이유는 협업 상품이 판매량만 늘린 게 아니라는 데 있다. 오프라인에서 시작한 관심이 앱의 재고 조회와 픽업 구매로 이어졌다. 다시 앱에서 확인한 재고가 점포 방문을 만들었다.

유통업체가 추진해온 O4O(Online for Offline) 전략에 협업 상품이 연결 고리로 작동한 셈이다. 유통업체 입장에서 앱을 설치하게 만드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쿠폰이나 할인 행사만으로는 소비자가 앱을 자주 열 이유가 부족하다. 반드시 사고 싶은 상품이 생기면 행동이 달라진다. 재고를 확인하기 위해 앱을 열고 픽업을 예약한다. 이 과정에서 멤버십과 결제 서비스까지 접하게 된다. 협업 상품 하나가 신규 고객을 자사 플랫폼으로 끌어들이는 입구가 되는 것이다.

민음사 빵이 보여준 것도 빵의 흥행보다 그 이후의 흐름이다. 상품을 찾던 소비자가 앱에서 재고를 확인하고 픽업을 이용했다. 협업 상품이 오프라인 매출뿐 아니라 자사 플랫폼으로 고객을 데려오는 역할까지 한 것이다.

무신사 ‘포켓몬 포코피아’ 컨셉스토어 방문객.(사진=무신사 제공)

◇ 익숙해진 수집형 소비…아이돌과 출판, 캐릭터 IP로 확장세
팬덤 소비를 반복 구매로 바꾸는 데에는 몇 가지 공통된 장치가 있다. 대표적인 것이 수집과 희소성이다. 원하는 굿즈를 얻기 위해 다시 사고, 빠진 캐릭터를 채우기 위해 추가로 구매하게 만든다. 상품 하나를 사는 행위에 ‘모으는 재미’를 더하는 방식이다.

중국 팝마트(POP MART)의 블라인드 박스가 대표적이다. 소비자는 상자를 열기 전까지 어떤 캐릭터가 들어 있는지 알 수 없다. 제품에 따라 희귀한 ‘시크릿’ 캐릭터도 포함된다. 원하는 캐릭터가 나오지 않으면 다시 구매하고, 중복 제품은 팬들끼리 교환한다. 구매 과정에 일종의 게임 요소를 넣은 셈이다. 앞서 본 리센느 빵의 포토카드와 민음사 빵의 책갈피도 원리는 같다. 포켓몬빵의 띠부씰로 익숙해진 수집형 소비가 아이돌과 출판, 캐릭터 IP로
넓어지고 있다.

팝마트는 이런 구조를 사업의 중심에 놓은 기업이다. 2024년 팝마트 매출에서 오프라인 리테일 스토어가 차지한 비중은 52%였다. 온라인은 32%, 블라인드 박스 자판기인 로보숍은 6%였다. 온라인 쇼핑이 일상화한 상황에서도 오프라인 매장이 가장 큰 판매 채널로 남아 있다. 대표 IP인 라부부(Labubu)가 포함된 ‘더 몬스터즈(The Monsters)’ 시리즈는 같은 해 팝마트 매출의 약 23%를 차지했다.

신세계백화점이 전개한 라부부 특별전.(사진=신세계 제공)

팝마트가 오프라인 매장을 중시하는 배경에는 블라인드 박스 특유의 구매 경험도 있다. 소비자는 직접 상품을 고르고 상자를 연다. 결과를 확인한 뒤 다시 구매할지를 결정한다. 다른 팬들과 구매 후기를 공유하고 중복 제품을 교환하기도 한다. 캐릭터 상품을 사는 것보다 구매 과정 자체를 즐기는 성격이 강하다. 이러한 소비는 매장의 역할도 바꾼다. 소비자는 필요한 물건을 사러 가장 가까운 점포에 가는 대신 원하는 상품을 찾아 특정 매장을 방문한다.

상품을 개봉하고 사진을 찍어 SNS에 올린다. 다른 팬의 후기를 찾아보고 재고 정보도 공유한다. 상품을 파는 공간이 팬덤의 소비 경험이 이뤄지는 공간으로 넓어지는 것이다. 최근 무신사가 성수동에서 연 ‘포켓몬 포코피아’ 콘셉트 스토어도 비슷한 흐름을 보여준다.

포켓몬 30주년을 맞아 마련한 이 공간은 게임 속 조형물과 포토존, 한정 상품을 결합했다. 오픈 첫 주말인 12~13일 무신사 메가스토어 성수 방문객은 전주 같은 기간보다 15% 이상 늘었다. 10대부터 20·30대 키덜트까지 몰리면서 IP가 상품 판매뿐 아니라 오프라인 집객에도 힘을 발휘 한 셈이다.

무신사가 성수동에 마련한 ‘포켓몬 포코피아’ 컨셉스토어. 상품과 캐릭터 조형물, 체험 공간을 한데 묶었다.(사진=무신사 제공)

◇ 외부 IP와 협업하는 데서 더 나아가…자사 플랫폼에서 직접 만들기 시작
기업들이 비용을 지불하면서 외부 IP를 가져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IP 보유자에게 로열티를 지급해야 하지만, 그 뒤에는 이미 관심과 충성도를 형성한 소비자 집단이 있다. 대신증권에 따르면 소비재 라이선싱은 매출의 3~7% 수준의 로열티를 적용하는 경우가 많고, 장난감과 출판 등 일부 분야에서는 10% 안팎까지 올라가기도 한다.

시장도 커지고 있다. 2024년 글로벌 라이선싱 상품·서비스 시장은 약 3696억 달러 규모에 달했다. 캐릭터와 엔터테인먼트 IP는 이 시장의 핵심 축이다. 기업들이 IP에 적지 않은 비용을 지불하는 것도 이미 형성된 관심을 상품과 매장으로 빠르게 연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유명한 IP를 붙인다고 모두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협업이 늘어날수록 브랜드와 IP의궁합은 더 중요해진다. 화제성이 아무리 커도 팬덤과 상품의 성격이 맞지 않으면 실제 구매로 연결되기 어렵다. 민음사 빵은 책 표지를 상품 패키지로 가져오고 랜덤 책갈피를 넣어 원래 IP의 성격을 살렸다. 리센느 빵 역시 멤버별 취향을 상품명과 구성에 반영했다. 보해양조의 ‘진격의 거인’ 협업 제품도 작품을 오랫동안 소비해 온 성인 팬층을 주류와 연결한 사례다.

관건은 유명한 IP를 붙이는 데 있지 않다. 왜 이 IP가 이 상품에 들어가야 하는지를 소비자에게 납득시키는 데 있다. 지속성도 숙제다. 외부 IP의 인기가 떨어지면 협업 효과도 함께 약해질 수 있다. 하나의 IP에 지나치게 의존할 경우 위험은 더 커진다.

팝마트가 라부부뿐 아니라 몰리(MOLLY), 스컬판다(SKULLPANDA) 등 여러 자체 IP를 함께 키우는 것도 특정 캐릭터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려는 전략으로 볼 수 있다. 이 때문에 일부 유통기업은 인기 있는 외부 IP와 협업하는 데서 한발 더 나아가 자사 플랫폼에서 반복적으로 소비할 콘텐츠를 직접 만들기 시작했다.

굿즈와 멤버십을 하나로 연결한 팬덤 플랫폼 위버스. 팬을 플랫폼 안에 머물게 하는 대표적인 모델이다.(사진=위버스 제공)

◇ 콘텐츠 보러 온 고객에게 상품 제안…자사 고객으로 남기는 구조
CJ온스타일의 ‘더 김창옥 라이브’가 대표적이다. 기존 홈쇼핑처럼 상품 설명에 유명인을 붙이는 방식과는 다르다. 김창옥의 강연과 이야기를 하나의 콘텐츠로 만들고 그 안에 상품을 결합했다. 스튜디오 방청 신청 경쟁률은 52대 1까지 올랐다. 상품을 보기 위해 프로그램에 들어오는 것에서 한발 더 나아가 콘텐츠를 보러 온 고객에게 상품을 제안하는 구조다.

유아동 라이브커머스 ‘맘만하니’도 비슷하다. 매회 판매하는 제품은 달라져도 프로그램의 형식과 시청층은 남는다. CJ온스타일에 따르면 주문 금액도 유사 시간대 평균의 두 배에 가까운 수준을 기록했다. 외부 IP에 기대는 방식과 달리 자사 플랫폼 안에 반복해서 찾아올 시청층을 쌓으려는 시도다.

유통업계가 아직 실험하고 있는 이런 구조를 이미 사업 모델로 만든 곳은 엔터테인먼트 업계다. 하이브의 위버스(Weverse)가 대표적이다. 팬은 위버스에서 아티스트 콘텐츠를 보고 다른 팬과 소통한다. 굿즈와 멤버십을 사고 공연 관련 서비스도 이용한다. 하나의 IP를 중심으로 콘텐츠와 커뮤니티, 커머스를 한 플랫폼에 묶었다. 하이브 역시 음악만 팔지 않는다. BTS를 비롯한 아티스트 IP를 캐릭터와 게임, 굿즈, 전시로 확장했다.

하나의 음악 IP에서 여러 소비 접점을 만든다. 앨범을 산 팬이 공연을 보고 굿즈를 구매한 뒤 다시 플랫폼에 머무는 구조다. 협업 상품으로 고객을 불러온 뒤 거래를 끝내는 것이 아니라 앱과 멤버십, 자체 콘텐츠를 통해 관계를 이어가는 것이다. 외부 IP를 활용한 일회성 집객에서 고객을 자사 플랫폼 안에 남기는 전략으로 무게중심이 이동하는 셈이다. 한국에는 이를 확장할 수 있는 콘텐츠도 많다. K팝과 드라마, 웹툰은 이미 세계적인 팬덤을 확보했다.

반면 콘텐츠의 인기를 캐릭터와 굿즈, 라이선싱 등 2차 사업으로 확장하는 역량은 상대적으로 더 키울 여지가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리테일 기업에는 이 간극이 사업 기회가 될 수 있다. 콘텐츠가 만든 관심을 실제 상품과 매장으
로 옮기는 역할을 맡을 수 있기 때문이다.

유통업계가 IP를 단순한 광고 소재로 보지 않는 것도 그래서다. 팬을 매장으로 데려오는 데서 끝내지 않고 다시 방문하게 하고, 앱과 멤버십으로 연결해 자사의 고객으로 남기는 데까지 경쟁의 범위가 넓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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