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더위가 기승을 부리면서 유통업계가 하절기 상품 출시에 속도를 내고 있다. 최근 편의점 세븐일레븐은‘망고요거트빙수’를 출시했다. 지난해 5월 말‘쿵야메론빙수’를 선보였던 것과 비교하면 빙수 제품의 출시 일정을 45일가량 앞당긴 것이다.
세븐일레븐은 이외에도 셔벗 아이스크림 ‘크라시에유자셔벗’과 맥주 ‘프라가 프레시’를 예년보다 각각 앞서 출시했다. 자외선 차단제 ‘무기자차선크림’도 일찍 선보였다. 방충제 상품의 진열 기간도 지난해보다 4~5주가량 더 늘렸다.
라면 업계는 예년보다 이른 비빔면 신제품 출시로 여름철 라면 시장 공략에 속도를 내고 있다. 농심은 지난달 ‘배홍동 칼빔면’을 선보였다. 칼국수식 건면을 사용해 쫄깃하고 탱탱한 식감을 살렸으며, 마름모꼴 도삭면 형태로 입안 가득 풍성한 식감을 제공한다. 여기에 배, 홍고추, 동치미를 갈아 만든 매콤새콤한 비빔장에 다진 김치를 넣고, 김치전 튀김과 흑깨 토핑을 별도로 구성해 완성도를 높였다.

팔도는 설탕을 뺀 ‘제로 비빔면’을 앞세워 건강 트렌드를 제안했다.‘팔도비빔면 제로슈거’는 알룰로스를 활용해 당류를 줄인 제품으로, 국내 비빔라면 중 처음으로 식약처‘무당류’표시 기준을 충족했다. 기존 액상스프의 맛과 풍미는 유지하면서도 상큼한 맛을 더했다는 설명이다.
삼양식품은 ‘맵탱 쿨스파이시 비빔면 김치맛’으로 차별화를 시도했다. 이 제품은 특제 고추장 소스와 큐베브 후추를 조합해 매운맛을 구현했다. 김치와 야채 후레이크를 듬뿍 넣어 식감과 감칠맛도 함께 잡았다. 매운맛 콘셉트를 계승한 브랜드 첫 비빔면이라는 점에서 의미를 더한다. 라면과 함께 여름 소비의 양대 축을 이루는 빙수 시장도 이미 치열한 경쟁이 시작됐다. CJ푸드빌이 운영하는 뚜레쥬르는 여름을 맞아 빙수 신제품 2종을 선보인다.

‘와르르 베리베리 빙수’는 상큼한 베리 토핑이 풍성하고 먹음직스러운 비주얼과 네 가지 베리의 다채로운 맛이 어우러진 과일빙수다. 매해 여름 꾸준하게 사랑받아 온 팥빙수는 혼자서도 가볍게 빙수를 즐기고자 하는‘혼빙족’ 트렌드에 맞춰 컵 빙수 형태로도 선보인다. ‘팥절미 컵 빙수’는 한 컵에 얼음과 함께 달콤한 팥과 고소한 콩가루, 통통한 인절미 떡을 담아내 혼자서도 부담 없이 즐기기 좋다. 뚜레주르의 경쟁사인 파리바게뜨는 여름을 앞두고 ‘수박주스’를 출시했다.
수박주스는 여름을 대표하는 과일인 수박과 얼음을 블렌딩해 만든 슬러시 형태의 음료다. 수박 고유의 달콤한 맛과 청량감을 가득 느낄 수 있다. 여름 제철 과일인 황매실을 활용한 ‘황매실소다’도 함께 선보였다. 초록매실이 익은 단계인 황매실은 향이 더욱 풍부하고 상큼 달콤한 맛이 특징이다.

◇ 포시즌스호텔 서울 ‘제주 애플망고 빙수’가격 14만9000원에 책정
해마다 가격이 올라 화제가 되는‘호텔 빙수’ 역시 여름의 아이콘이다. 올해는 포시즌스호텔 서울은‘제주 애플망고 빙수’의 가격을 14만9000원에 책정하면서 화제가 됐다. 신라호텔과 롯데호텔의 올해 애플망고 빙수 가격은 11만원이다. ‘여름’하면 빼놓을 수 없는 냉방가전 시장의 경쟁도 뜨겁다. 에어컨과 선풍기 등 냉방가전을 찾는 수요가 예년보다 빠르게 증가하면서, 유통업계는 판매 시기를 앞당기고 마케팅에 속도를 내고 있다.
현대홈쇼핑은 지난해보다 2주 이상 앞당겨 냉방가전 판매 방송을 시작했으며, 방송 횟수도 10% 이상 확대했다. LG전자 에어컨 신상품을 중심으로, 1~2인 가구용 벽걸이형 에어컨과 서큘레이터 등 제품군도 점차 확대할 예정이다.
롯데하이마트는 올 4월 에어컨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30% 증가했으며, 에어컨 클리닝 서비스 신청도 두 배 이상 늘었다. 해당 서비스는 제품 분해 세척을 포함하며, 이용 후 1년 내 고장이 나면 무상 수리가 가능하다. 소비자들은 성수기 이전에 설치와 점검을 마치려는 움직임이 분주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대형마트도 특수를 실감 중이다. 이마트에 따르면 3월 에어컨 매출은 전년 동월 대비 48.1% 증가했고, 4월에도 18.3% 늘었다. 창고형 매장인 트레이더스에서는 3월 매출이 160% 가까이 급증했으며, 4월에도 48% 이상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마트는 현재 냉방가전 기획전을 열고 카드사별 할인과 상품권 증정 이벤트를 진행 중이다.
폭염이 오기 전부터 관련 시장이 과열 양상을 보이는 이유는 설치 대기 수요 때문이다. 에어컨은 설치 작업이 필요한 제품이라, 여름 성수기엔 배송까지 2~3주가 걸리기도 한다. 이에 따라 유통 업계는 ‘미리 사는 냉방가전’ 수요를 선점하기 위한 프로모션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처럼 유통업계가 분주한 건 2025년 여름이 관측 이래 가장 더운 해 중 하나가 될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기상청은 4월부터 기온이 급격히 상승하고, 10월까지도 ‘가을답지 않은’ 더위가 이어질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사계절의 경계가 허물어진 한국의 여름, 그 길어진 폭염은 유통 소비자들의 행태를 송두리째 바꾸고 있다. 더워질수록 더 많이 팔리고, 더워질수록 더 붐비는 매장. 유통업계가 이제 기온에 맞춰 전략을 짜는 시대에 들어섰다.
실제로 2024년은 관측 사상 51년 만에 가장 무더웠다. 기상청의 2024년 이상기후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대한민국 여름철 평균기온은 섭씨 25.6도로 1973년 이래 역대 1위를 기록했다. 열대야 일수도 20.2일로 평년의 3.1배에 달하며 역대 1위에 올랐다.
여름철 더위가 9월까지 이어지며 9월 평균기온도 역대 1위(24.7도)를 기록했다. 이례적으로 많은 6일의 폭염일수(평년 0.2일)와 4.3일의 열대야 일수(평년 0.1일)도 나타났다. 온열 질환자가 역대 최다를 기록했고, 이상기후로 인한 농·축·수산물 피해는 물론 유통업계도 큰 타격을 입었다.

리테일 업계가 벌써부터 긴밀한 대응 체제에 돌입한 것은 이러한 이유에서이다. 폭염 기간 소비자 수요 패턴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그리고 매출 증가를 기회로 삼기 위해 업계는 어떤 전략을 구사하고 있는지 짚어본다.
여름의 대표 제품은 단연 아이스크림이다. 다만 최근 아이스크림 소비는 단순한 날씨 반응을 넘어서 재고관리, 신제품 타이밍, 브랜드 이미지 전략까지 포함한 ‘기획성 계절 품목’이 됐다. 편의점 업계 관계자는 “33도 이상 폭염이 5일 이상 지속될 경우 아이스크림 매출은 평년 대비 최대 2배까지 급증한다”면서 “특히 한정판·컬래버 제품의 매출 탄력은 SNS 확산과 맞물려 계절 특수를 확대하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냉방가전도 마찬가지다. 전통적인 선풍기·에어컨에 더해 최근엔 냉풍기, 미니 냉방기, 휴대용 넥밴드 선풍기 등 개인용 냉방기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앞서 언급했듯 이미 많은 유통채널들이 냉방기 판매를 시작했다. 아예 봄 프로모션에 ‘여름 라인업’을 포함시키는 상황이다.
◇ 복합쇼핑몰로 피서 오는 사람들…식사~영화감상까지 한번에 해결
한낮 기온이 35도를 넘나드는 날에는‘쇼핑몰 피서족’이라는 용어가 낯설지 않다. 더위에 야외 활동을 꺼리는 소비자들이 실내 냉방 시설이 잘 갖춰진 복합쇼핑몰로 몰리기 때문이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신세계 스타필드, 롯데몰 같은 지역의 랜드마크 복합쇼핑몰의 경우 여름철 오후 시간대 평균 방문객 수가 20% 넘게 증가하는 것으로 파악된다”고 설명했다.
올여름 유통업계가 주목하는 또 하나의 변수가 바로 ‘고정형 소비의 증가’다. 이는 단순히 외출을 자제한다는 의미를 넘어, 한 번에 다양한 활동이 가능한 공간으로 소비자가 몰린다는 뜻이다. 고정형 소비의 대표 수혜 사례가 바로 복합쇼핑몰이다.

실내 냉방 환경이 잘 갖춰져 있고, 쇼핑뿐 아니라 식사, 여가, 영화 감상까지 한 곳에서 해결할 수 있는 복합공간은 더위에 지친 소비자들에게 ‘피서지’로 자리잡고 있다. 스타필드 안성점은 폭염이 절정에 달했던 8월 주말, 하루 방문객 수가 10만명을 돌파하며 개점 이후 최대치를 기록하기도 했다. 업계 관계자는 “외출은 하고 싶지만 실외는 너무 덥고, 에어컨 있는 곳을 찾다 보니 복합몰이 최적의 선택지가 됐다”고 설명한다.
이들 공간은 단순히 물건을 파는 공간을 넘어, 놀이·식사·문화 체험까지 가능한 ‘생활 밀착형 피서지’로 각광받고 있다. 유아 동반 가족, 1인 쇼핑족, 반려동물 동행 고객까지 수요군이 다양화되며 객단가 상승으로도 이어지고 있다. 이커머스와의 차별화 포인트로 ‘여름 복합경험’을 앞세우는 이유다.
폭염의 또다른 특징은 외식 빈도수가 줄어들고, 가정 내 소비가 확대된다는 점이다. 실제로 산업통상자원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24년 8월 폭염 일수가 전년보다 두 배 이상 늘어난 가운데, 편의점과 대형마트의 간편식(HMR) 매출은 23% 이상 증가했다. 가정에서 조리하기 쉬운 냉장 비빔면, 냉면, 샐러드 제품이 대표적인 수혜 품목이다.
냉장 물류에 강한 이커머스 업체들도 매출이 늘어난다. 쿠팡의 경우 로켓프레시 배송을 통해 여름철 야채·음료·아이스팩 제품군 매출이 여름철 평균 40% 이상 증가했다. 한 유통 전문가는 “폭염은 빠르고 시원한 배송을 요구한다”며 “풀필먼트 센터의 냉장 인프라가 중요한 경쟁력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 청량감을 앞세운 컬래버레이션도…‘쿨’한 브랜드가 뜬다
최근 들어 폭염은 브랜드 이미지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여름 전용 마케팅,‘쿨링 컬러’ 제품, 청량감을 앞세운 컬래버레이션은 물론, 매장 내 공조 시스템의 수준이 브랜드 만족도에 영향을 주는 요소로 부각되고 있다. 특히 카페 프랜차이즈 업계는 냉방 효율과 ‘피서하기 좋은 공간’으로서의 매장 이미지를 강화하고 있다.
스타벅스는 여름 시즌 신제품 출시와 함께 매장 내 서큘레이터, 무선충전 좌석, 반려동물 동반존 등을 확대해 매장 체류 시간을 늘리는 전략을 쓰고 있다. 소비자가 한여름에 머물기 편한 브랜드는 자연스럽게 구매·체류·재방문으로 이어진다.
한때 계절의 변화에 따라 운영되던 유통 전략은 이제 기후변화 대응의 일환으로 전환되고 있다. 폭염은 단기 매출 효과를 넘어서, 유통 업계 전반의 상품 기획, 물류 전략, 마케팅 구조, 고객 접점까지 전방위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백화점 업계 관계자는 “기후가 곧 소비 트리거가 되는 시대”라며 “기온과 날씨 기반의 실시간 마케팅은 물론, 폭염 취약계층 대상 캠페인도 기업 이미지에 영향을 준다”고 설명했다.
무더위가 바꾸는 유통업계의 또 다른 특징은 ‘시간 소비 패턴’의 변화다. 낮 기온이 지나치게 올라가면서, 매장 방문과 구매 활동이 저녁 시간대로 밀리는 이른바 ‘야간 소비 확대’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실제로 일부 백화점과 쇼핑몰은 폭염 시즌 한정으로 폐점 시간을 1시간 연장하는 ‘서머 나잇 마켓’ 전략을 활용하고 있다. 한 대형마트는 여름철 주말 매출 중 35% 이상이 오후 7시 이후에 발생한다고 분석하고 이 시간대 프로모션과 상품 배치를 전략적으로 구성하고 있다.
이렇듯 폭염은 단순히 날씨 문제가 아니다. 소비자의 이동, 구매, 소비 방식 전반을 바꾸는 강력한 변수다. 유통업계는 이 변수를 리스크가 아닌 기회로 전환하기 위해 물류, 마케팅, 상품 기획, 점포 운영 전반에 걸쳐 변화의 속도를 높이고 있다. 여름이 길어지고, 강도가 세질수록 유통의 생존 전략 또한 더욱 정교해지고 있는 셈이다.
결국 폭염은 ‘비상 상황’이 아닌 ‘뉴노멀’이 되고 있다. 그에 따라 한국 유통업계도 더위의 시작점에 맞춰 전략을 리셋하는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덥다고 피해가는 소비자 대신, 더우니까 오게 만드는 유통의 역발상이 경쟁의 본질이 됐다. 올해는 11월까지 더위가 이어질 전망이 나오는 만큼 리테일 업계는 폭염을 기회로 ‘쿨 서머 전쟁’의 후속 전략을 치밀하게 준비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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