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지하철 5호선과 7호선이 교차하는 군자역 일대와, 차로 10분 거리에 위치한 답십리 고미술상가 일대가 최근 몇 년 사이 서울에서 가장 역동적인 변화를 겪고 있는 지역으로 나란히 주목받고 있다.
불과 10년 전까지만 해도 군자역은 중장년층에게 ‘군자동 가구거리’로, 인근 주민들에게는 대원외고로 향하는 조용한 주거지로 인식됐고, 답십리는 소수의 수집가와 전문가들만 드나드는 폐쇄적인 고미술 시장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낡은 가구점들이 허물어진 자리에 대규모 오피스텔 단지가 들어서고 감각적인 카페와 식당들이 골목을 채우면서 군자역은 성수동의 뒤를 잇는 새로운 ‘미식 성지’로 부상했고, 답십리에는 고미술을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하는 젊은 상인들이 등장하며 반백 년 넘게 이어진 상권에 새 바람을 불어넣고 있다.

◇ 가구 거리의 쇠락을 딛고 피어난 군자역 ‘아리랑길’의 미식 파동
군자역 상권 변화의 핵심 동력은 주거 인구의 세대교체다. 과거 저층의 가구 상가들이 차지하고 있던 100~ 200평 규모의 땅들은 부동산 개발 붐을 타고 젊은 직장인들을 위한 오피스텔로 탈바꿈했다. 광화문과 강남으로 출퇴근이 용이한 지리적 이점 덕분에 유입된 2030 세대는 상권의 성격을 ‘회식 중심’에서 ‘취향 소비’ 중심으로 빠르게 재편했다. 주민들은 변화하는 이 골목에 ‘아리랑길’이라는 이름을 붙이며 새로운 지역 정체성을 만들어 가고 있다. 이 변화의 중심에는 독보적인 콘텐츠를 가진 매장들이 자리한다.
아메리칸 빈티지 스타일의 크림 파이를 전문으로 하는 ‘따우전드(Thousand)’는 군자역 상권의 상징적인 존재다. 95년생의 젊은 창업가는 대학 시절 군고구마 장사부터 시작해 현재는 하와이와 뉴욕 진출까지 앞둔 기업가로 성장했다. 그는 정통 미국식 디저트 문화를 군자에 이식했으며, 그의 매장은 전국 편의점과 콜라보레이션을 진행할 정도로 강력한 IP(지식재산권)를 형성하고 있다.

따우전드가 확장 이전하며 남긴 자리에 들어선 ‘윤숲(Yoonforest)’은 일본식 후르츠 산도와 과일 케이크로 연일 대기 줄을 세우고 있다. 여기에 닭을 베이스로 한 맑은 육수로 유명한 ‘유니드라면’과 성수동에서 건너온 ‘버거보이’ 등이 가세하며 군자역 일대는 도심 속 핫한 미식 플랫폼으로 진화하고 있다. 또한, 단순한 식물 판매를 넘어 1인 가구의 ‘반려 식물’ 문화를 선도하는 ‘분즈(Boonz)’와 티그레를 보석처럼 큐레이션하는 ‘카페 스너글리(Snugly)’는 군자역 골목에 감성적인 밀도를 더한다.


이처럼 과거의 군자가 곱창이나 고깃집 중심의 투박한 먹자골목이었다면, 지금의 군자역 뒷골목은 젊은이들이 이자카야와 위스키 바에서 밤을 지새우고, 주말이면 줄을 서서 디저트를 즐기는 세련된 공간으로 변모하고 있다. 상인들 사이의 커뮤니티 또한 끈끈해져, 단골손님이 카페의 홍보 대사가 되고 서로의 가게를 추천하는 유연한 상권 생태계가 구축되고 있다.


군자역에서 차량으로 10분 정도 동대문 방면으로 가면 답십리 고미술상가 상권이 나타난다. 군자역이 젊은 에너지가 폭발하는 생동감 넘치는 현장이라면, 답십리는 묵직한 세월이 빚어낸 전통의 가치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정적인 반란의 현장이다.

◇ 고미술의 문턱을 낮춘 젊은 통역자들, 답십리에서 만나는 현대적 민속
국내 최대 규모의 중고차 시장인 장한평 인근에 위치한 답십리 고미술상가는 한국 고미술의 거대한 저장고다. 오랫동안 소수의 수집가와 전문가들만이 드나드는 폐쇄적인 공간으로 여겨졌던 이곳에 최근 ‘오브(Of, Old Fashioned Inspiration)’, ‘리진(Litsin)’, ‘호박(Hobak)’ 같은 새로운 플레이어들이 등장하며 균열을 내고 있다. 이들은 자유롭게 영업 시간을 조절하면서 본업을 병행하는 등 유연한 운영 방식을 통해 고미술을 젊은 세대의 언어로 통역한다.
복합 문화 공간 ‘오브’는 조선 시대 사대부들의 취향을 담았던 ‘책가도’를 콘셉트로 공간을 구성했다. 이곳은 낡고 오래된 민속품이 현대적 인테리어와 어떻게 조화를 이루는지 보여준다. 비 올 때 갓 위에 쓰던 ‘갈모’를 조명 갓으로 재해석하여 제안하자마자 시장 가격이 몇 배로 뛰는 현상이 벌어진 것은, 이곳이 단순한 상점을 넘어 트렌드 세터로서 기능하고 있음을 방증한다.

또한 조선 말기 프랑스 공사관을 따라 유럽을 경험했던 무희 리진의 서사를 녹여낸 신상 커피·과자 전문점 ‘리진’은 고급 다구와 디저트를 통해 동서양의 조화를 시도하며 답십리 상권의 깊이를 더하고 있다.
특히 ‘호박포크아트갤러리(이하 호박)’는 고미술을 일상의 영역으로 가장 적극적으로 끌어들인 공간이다. 호박은 조선시대 골동품뿐만 아니라 70~80년대 빈티지 소품까지 폭넓게 취급하며 ‘남들이 정한 귀함에 집착하지 않는다’는 독특한 철학을 견지한다. 이들은 제사 때 쓰던 커다란 백자 접시에 사과나 참외를 올려 집안 분위기를 바꾸는 법을 제안하거나, 조상을 모시던 의자인 ‘교의’를 벽에 걸어 액자처럼 연출하는 등 파격적인 리빙 아이디어를 선보인다.

호박의 실험은 굿즈 제작으로도 이어진다. 말총으로 만든 전통 모자인 ‘탕건’을 조명 갓으로 새롭게 제안하거나, 조선 시대 실제 유리구슬과 현대의 플라스틱 구슬을 섞어 만든 키링을 판매하는 식이다. 심지어 시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연두색 마블 패턴의 떡볶이 접시에 옻칠을 입혀 고급스러운 공예품으로 재탄생시키기도 한다. 이러한 시도들은 고미술을 박물관에 갇힌 유물이 아닌, 현대인의 취향에 맞는 매력적인 소비재로 인식하게 만든다.
이 젊은 물결의 뒤에는 50년 넘게 이곳을 지켜온 원로들의 묵직한 존재감이 자리하고 있다. 1969년 시작해 최근 이곳에 둥지를 튼 ‘두손 갤러리’의 대표는 백남준과의 인연을 바탕으로 현대 미술과 고미술의 접점을 찾으며 답십리에 안정감을 안겨주는 역할을 한다. 그는 고미술과 골동품 등의 사물에 깃든 도깨비 같은 기운과 염원이 AI와 기술의 시대에도, 앞으로도 여전히 유효한 가치를 지닌다고 믿는다.

이처럼 군자역 상권과 답십리 고미술상가 상권은 서로 다른 색깔을 지니고 있지만, ‘공간의 기억’을 토대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한다는 점에서 궤를 같이한다.
낡은 가구 거리의 잔상 위에 세련된 미식을 얹은 군자와 저평가된 고미술의 가치를 젊은 감각으로 조명하는 답십리는 서울이라는 도시가 과거를 어떻게 기억하고 미래로 연결하는지를 보여주는 가장 생생한 보고(寶庫)로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 사라져가는 것들의 기억을 팔아 가장 밀도 높은 문화를 생산하는 두 거리는 서울의 뉴트로 문화가 단순한 유행을 넘어 하나의 독자적인 문화 유산으로 자리 잡아 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 변화의 실체는 결국 그 골목을 채운 매장들 하나하나에 있다. 미국식 파이로 군자를 사로잡은 ‘따우전드’, 식물로 골목에 생기를 불어넣는 ‘분즈’, 보석 같은 티그레를 굽는 ‘스너글리’, 반백 년의 역사를 답십리로 옮겨온 ‘두손갤러리’, 고미술의 문턱을 낮춘 ‘호박포크아트갤러리’, 그리고 오래된 것의 가치를 다시 쓰는 ‘오브’와 ‘리진’까지, 두 상권을 실제로 움직이는 일곱 곳의 이야기를 이어서 들여다본다.

◇ 미국 빈티지 감성과 달콤한 파이가 만난 ‘따우전드’
군자 골목에서 마주할 수 있는 붉은 벽돌 건물. 그 안에는 대표 메뉴인 ‘바나나 크림 파이’와 ‘펌킨 파이’를 비롯해 계절마다 여러 한정 파이를 선보이는 ‘따우전드(대표 천형제)’가 자리하고 있다. 2022년 군자에서 약 10평 규모의 작은 카페로 출발한 따우전드는 처음부터 파이를 중심으로 전개하는 브랜드는 아니었다.
천형제 대표는 하나의 디저트 카테고리에 집중해 다양한 메뉴를 선보이는 브랜드들이 주목받는 흐름을 보며 확장성을 갖춘 메뉴를 고민하기 시작했고 동일한 시트에 다양한 크림과 필링을 더해 여러 메뉴를 선보일 수 있는 ‘파이’를 선택했다. 천 대표는 “파이가 당시 국내에서는 쉽게 접하기 어려운 디저트였다는 점에서도 경쟁력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 미국 빈티지 감성과 달콤한 파이가 만난 ‘따우전드’
군자 골목에서 마주할 수 있는 붉은 벽돌 건물. 그 안에는 대표 메뉴인 ‘바나나 크림 파이’와 ‘펌킨 파이’를 비롯해 계절마다 여러 한정 파이를 선보이는 ‘따우전드(대표 천형제)’가 자리하고 있다. 2022년 군자에서 약 10평 규모의 작은 카페로 출발한 따우전드는 처음부터 파이를 중심으로 전개하는 브랜드는 아니었다.
천형제 대표는 하나의 디저트 카테고리에 집중해 다양한 메뉴를 선보이는 브랜드들이 주목받는 흐름을 보며 확장성을 갖춘 메뉴를 고민하기 시작했고 동일한 시트에 다양한 크림과 필링을 더해 여러 메뉴를 선보일 수 있는 ‘파이’를 선택했다. 천 대표는 “파이가 당시 국내에서는 쉽게 접하기 어려운 디저트였다는 점에서도 경쟁력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군자를 첫 매장으로 선택한 것도 해당 상권을 눈여겨본 결과였다. 천 대표는 퇴근 시간 군자역을 빠져나오는 젊은 유동인구는 많지만 감각적인 카페는 상대적으로 부족하다는 점을 발견했고, 이를 새로운 기회로 판단했다. 군자점은 재작년 현재의 공간으로 이전했으며, 하루 평균 약 200팀이 방문하는 매장으로 자리 잡고 있다. 다양한 연령층과 외국인 고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가운데, 아이돌 역조공과 기업 단체 주문도 꾸준히 이어지며 현재는 군자를 비롯해 신사와 성수까지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따우전드는 공간과 디자인에서도 일관된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구축했다. 앤틱한 가구와 매장에 흘러나오는 올드팝 음악, 자체 제작한 포스터와 굿즈, 패키지 디자인 등을 통해 미국 빈티지 감성을 구현했다. 매장 한편에는 방문한 외국인 고객들의 사진을 액자로 전시해 브랜드만의 분위기와 기록을 쌓아가고 있다.

이 같은 브랜딩은 다양한 협업으로도 이어졌다. 전국 CU 편의점에서 판매되는 컬래버레이션 상품을 비롯해 콘택트렌즈 브랜드 ‘하파크리스틴’과 협업한 키링·틴케이스 등 굿즈, 캐주얼 브랜드 ‘프룻오브더룸’과 함께 선보인 롱슬리브와 잠옷 컬렉션 등을 통해 매장을 넘어 브랜드 경험을 확장하고 있다.
따우전드는 올해 하반기 하와이 행사와 뉴욕 팝업을 통해 미국 시장 진출을 준비하고 있으며, 장기적으로는 유통이 가능한 완제품 사업도 검토 중이다. 천 대표는 “시간이 지나도 사람들이 먼저 떠올리는 브랜드가 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한편, 천형제 대표는 성수에서 강원도식 닭개장 식당 ‘어부오와’를 함께 운영하고 있으며, 연내 새로운 김밥 브랜드 론칭도 준비 중이다.

◇ 식물을 고르는 즐거움을 파는 곳, ‘분즈’
군자역에서 주택가 골목으로 들어오다 보면, 한적한 주택가 사이에서 싱그러움을 전달하는 가게가 있다. 바로 2022년 6월에 문을 연 식물가게 ‘분즈(대표 박하나)’이다. 분즈에 들어서면 식물이 가게에 아기자기하게 진열되어 있어 보는 사람의 눈을 즐겁게 한다.
분즈가 여느 식물가게와는 다르게 마치 전시장에 온 듯한 진열방식으로 차별화를 둔 점은 군자의 3040세대에게 주목을 끌며 골목에 활기를 더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근처에 대학교가 위치해 대학생 손님들도 소품샵을 구경하듯 분즈를 방문해 식물 추천을 받기도 하며 식물과 친근해질 수 있는 장소로 사랑을 받고 있다. 더불어 데이트 코스로 방문하는 커플 손님들도 눈에 띄게 늘었다는 반응이다.

분즈의 박하나 대표는 사람들이 편하게 들러 머물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으로 분즈를 시작했다. 분즈는 ‘뜻밖의 행운’과 ‘반가운 선물’을 의미하는 ‘Boon’에 ‘즈’를 붙여 다정하고 친근한 어감을 더한 이름이다. 분즈는 공간에 새로운 생기를 불어넣는 식물을 매개로 일상 속 작은 쉼과 기쁨을 전하고, 그 식물이 누군가의 삶에 찾아온 뜻밖의 행운이자 축복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분즈가 식물을 들이는 기준은 대중성보다는 ‘아름다움’에 초점을 맞췄다. 고객들에게 친숙한 몬스테라 등의 식물과 함께 쉽게 보지 못하는 색다른 식물도 추천해주고 있어 식물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더한다. 분즈 서해솔 매니저는 “처음 식물을 접하는 분들도 부담 없이 고를 수 있도록 이름표에 난이도를 표시해두고 있다”며 “해가 잘 들지 않는 집이어도 키울 수 있는 식물을 따로 안내해드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분즈의 맞은편에는 중대형 식물을 따로 판매하는 공간도 마련되어 있어, 작은 화분부터 큼직한 식물까지 다양한 크기의 식물을 두루 살펴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이렇게 다양한 식물을 볼 수 있는 분즈에서는 이벤트도 진행하며 고객들에게 즐거움을 제공하고 있다.
실제로 지난달 둘째 주에 ‘투 플러스 원’ 행사를 열었고, 넷째 주에는 유행하는 아이템을 입고 방문하면 할인해주는 행사를 열어 고객들의 높은 호응을 이끌었다. 이렇게 분즈는 식물을 사는 행위를 넘어, 고르고 구경하는 경험 자체를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서 고객들과 지속적인 교류를 이어가고 있다.

◇ 보석을 닮은 티그레로 군자 골목을 따뜻하게 물들인 ‘스너글리’
지난 2022년 문을 연 스너글리(대표 문현정, 김무호)는 부부가 함께 운영하는 디저트 카페로, 이름에 담긴 의미처럼 편안하고 안락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공간이다. 스너글리를 대표하는 메뉴는 프랑스 전통 구움과자 ‘티그레’다. 당시 주변에서 티그레를 전문적으로 선보이는 곳이 드물었던 만큼, 이를 스너글리만의 개성으로 풀어내고자 메뉴 개발에 집중했다.

문현정 대표는 티그레를 단순한 구움과자가 아닌 ‘보석 같은 선물’이라고 표현한다. 특별한 날 꽃이나 와인을 선물하듯, 티그레 역시 소중한 순간을 함께하는 디저트가 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이러한 철학은 티그레의 형태에도 반영됐다. 일반적으로 많이 볼 수 있는 타원형 대신 사각형 틀을 사용해 보석함을 연상시키는 형태로 완성했으며, 가운데에 다양한 페이스트와 토핑을 더해 마치 보석이 놓인 듯한 비주얼을 연출했다.

현재는 버터의 풍미와 달콤한 초콜릿이 어우러진 ‘오리지널 티그레’, 고소한 피스타치오 페이스트를 더한 ‘피스타치오 티그레’, 유자의 식감과 레몬의 상큼함, 생강의 향을 담은 ‘유자레몬진저 티그레’를 비롯해 ‘코코넛 티그레’, ‘흑임자 티그레’ 등 시즌 메뉴를 포함한 약 10여 종의 티그레를 선보이고 있다.
커피는 티그레와의 조화를 최우선으로 고려했다. 산미를 줄이고 고소한 풍미를 살린 원두에 집중해 누구나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맛을 구현했으며, 직접 개발한 크림을 올린 아인슈페너는 티그레와 함께 스너글리를 대표하는 메뉴로 꼽힌다.

스너글리는 단순히 디저트를 판매하는 카페를 넘어 군자 지역 주민들이 자연스럽게 모이고 머무는 공간으로 자리 잡고 있다. 시간대마다 매장을 찾는 단골이 있을 만큼 지역 주민들의 발걸음이 꾸준히 이어지고, 손님끼리 인사를 나누거나 약속을 이어가는 모습도 이곳에서는 익숙한 풍경이다.
오픈 이후 결혼식을 올린 두 대표의 결혼을 단골들이 함께 축하하고 축가를 불러줄 만큼 깊은 인연을 쌓아온 것은 이러한 관계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사랑방 같은 공간’이라는 단골들의 표현처럼 스너글리는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며 군자 골목의 따뜻한 지역 커뮤니티 역할을 이어가고 있다.

◇ 고미술의 오랜 향기를 담고 있는 ‘두손갤러리’
고미술의 메카로 불리는 답십리 고미술상가 2동 지하에는, 오랜 시간 한국 미술의 역사를 간직한 대한민국 1세대 화상 김양수 대표의 두손갤러리가 있다. 100평이 넘는 넓은 공간에 자리한 이곳은 답십리 골목 안에서도 유독 묵직한 존재감을 드러낸다.
김양수 대표는 50년 넘는 세월 동안 고미술에 애정을 쏟아온 인물이다. 서울대학교 미대 재학 시절이던 1969년, 황학동과 충무로에서 고미술상으로 화상의 길에 들어섰다. 이후 1977년 서울 동숭동에서 자신의 이름을 딴 ‘두손갤러리’의 문을 열고, 박서보, 정창섭, 곽인식, 심문섭, 최병훈 등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들을 지원해왔다.

1990년대에는 미국 뉴욕으로 건너가 대안공간과 미디어아트센터를 운영하며 세계적인 거장들의 전시를 기획하는 한편, 한국 작가들의 해외 진출을 돕기도 했다. 이후 한국으로 돌아와 2022년 정동1928아트센터에서 약 30년 만에 ‘두손갤러리’라는 이름으로 다시 문을 열었다.
최근 답십리 고미술상가로 자리를 옮긴 두손갤러리는 ‘케데헌(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고향’이라는 콘셉트로 자리를 잡았다. 이곳에 자리 잡은 이유에 대해 김 대표는 침체된 고미술의 가치를 알리는 데 힘쓰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고미술은 상품이 아닌 예술이며, 예술은 전시를 통해 사람들과 소통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러한 철학을 바탕으로 두손갤러리는 고미술과 현대미술을 함께 아우르며 이목을 끈다. 전시된 작품 중 ‘디지털 서낭당’은 런던 로열아카데미 출신인 정우원 작가의 작품으로, 빛이 흘러나오고 천이 흔들리며 색이 변화하는 모습을 담는다. 현대미술과 고미술이 한 공간 안에서 마주하는 순간을 보여주고 있다.

두손갤러리에는 다양한 고미술품이 전시되어 있다. 그중 우리나라가 가난했던 시절, 조선시대 박으로 만든 바가지에 옻칠과 자개를 입힌 물건에 대해 그는 “덮개가 달린 박일수록 더 귀하게 여겨진다”고 귀띔했다. 또 다른 한켠에는 고가구인 반닫이 위에 화장대가, 그 위에 다시 탁자가 얹힌 독특한 구조를 통해 익숙함과 새로움을 동시에 선사하며 눈길을 사로잡는다. 대한제국 말기, 외래문화가 처음 들어오던 시기에 만들어진 이른바 ‘하이브리드 시대’의 산물로, 당시 여러 기능을 하나로 합쳐 만든 물건이라는 설명이다.
김 대표는 ‘LALA(리빙 앤티크, 리빙 아트)’라는 슬로건을 바탕으로, 고미술과 현대미술, 디자인의 경계를 허물고 일상 속에서 예술을 향유하는 문화를 강조해왔다. 동명의 계간지 《LALA》를 발행하며 고미술품과 현대미술의 조화를 알려온 두손갤러리는, 앞으로도 현대미술과 고미술의 접점을 잇는 전시를 통해 익숙한 것으로부터 새로운 흐름을 제시하며 고미술의 가치를 널리 알리는 거점으로 이어질 것이다.

◇ 보석 ‘호박’처럼 세월을 품은 고미술의 재발견, ‘호박포크아트갤러리’
답십리 고미술상가 2동 안쪽으로 들어서면, 보석처럼 숨겨진 갤러리 공간이 나타난다. 이곳은 조선시대 고미술품을 주로 다루는 ‘호박포크아트갤러리’다. 호박이라는 이름은 보석 ‘호박(琥珀)’에서 따왔다. 호박은 나무의 송진이 오랜 세월에 걸쳐 굳어 만들어진 보석으로, 시간을 압축한 상징물을 뜻한다.
이 갤러리만의 색다른 매력은 고미술품과 현대 작가의 작품, 그리고 빈티지 제품의 감각적인 조화에 있다. 국내 골동품부터 1960~80년대 빈티지 소품, 미국에서 쓰이던 도장 보관함과 현대 작가의 작품까지. 서로 다른 시공간을 품은 기물이 한 공간에 매끄럽게 어우러지며 색다른 즐거움을 선사한다. 오래된 기물들이 감각적인 배치를 만나 우리에게 뜻밖의 ‘새로움’으로 다가오는 셈이다.

또 다른 차별점은 남들이 정한 ‘귀함’에 집착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김재윤 매니저는 “조선시대 백자는 흙을 물레로 하나하나 빚어 만들었기 때문에 큰 그릇을 만들기가 쉽지 않았다”며 “그러다 보니 제사용 큰 접시는 흔치 않았고, 양반 계층만 사용할 수 있어 값이 비쌌다”고 설명했다. 크기가 크고 희소할수록 귀하게 여겨졌던 셈이다. 호박은 이런 통념적인 ‘귀함’의 기준에 얽매이기보다, 청자나 백자가 오늘날의 공간과 어떻게 어우러질 수 있을지를 고민해 선보인다.
조선시대에는 위패가 곧 조상이라 여겨, 제사 때 위패에 조상의 이름과 관직을 적고 이를 모시는 의자인 ‘교의(交椅)’를 따로 두어 예를 갖췄다. 호박은 이 교의를 벽에 걸어 오브제처럼 색다르게 연출한다. 의자를 액자처럼 벽에 걸어두는 방식으로, 원래의 쓰임새를 완전히 뒤집어 신선함을 선보인 것이다.

말총으로 만든 탕건과 망건도 눈에 띈다. 망건은 헤어밴드처럼 머리에 두르고, 그 위에 탕건을 쓴 뒤 다시 갓을 쓰는 것이 전통적인 착용 순서다. 그러나 호박은 이러한 쓰임새의 탕건을 조명 덮개로 활용해 색다른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굿즈로는 옛 분식집에서 자주 쓰이던 떡볶이 접시에 옻칠을 더한 제품과 조선시대 실제 유리구슬과 현대 구슬을 함께 엮어 만든 키링은 과거와 현재를 믹스한 호박의 정체성을 여실히 보여준다. 김재윤 매니저는 “골동품이라고 해서 꼭 진중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며 이렇게 구성한 이유를 밝혔다.
그는 골동품은 ‘무엇과 관계를 맺느냐’가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반닫이에 원래 걸던 자물쇠 대신 꽃을 걸어 생동감과 재미를 더한 연출도 그 예다. 이렇게 호박은 고미술과 현대 작품을 절묘하게 어우르는 감각으로, 최근에는 미드센추리 가구와 함께 백화점 팝업을 진행하며 고미술의 가치를 널리 전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

◇ 오래된 아름다움을 번역하는 ‘오브’와 ‘리진’
지난해 11월 답십리 고미술상가 2동에 문을 연 ‘오브’와 지난달 오픈한 ‘리진’은 프로젝트 렌트의 최원석 대표가 운영하는 공간이다. 오브(Of)는 칵테일 ‘올드패션드(Old Fashioned)’에서 출발했다. 새로운 레시피가 계속 등장하는 가운데 결국 오래된 방식의 가치를 다시 발견하는 칵테일 ‘올드패션드’와 같이, 오브는 시간이 쌓인 물건 속 숨은 매력을 포착하고 오늘날로 연결한다.
공간 콘셉트는 조선시대 그림 ‘책가도’에서 출발했다. 진귀한 물건을 배치하며 자신의 취향과 안목을 드러냈던 책가도처럼 오브 역시 고미술품과 현대 작가들의 작품들을 감각적으로 선보이고 있다. 창이 없는 공간적 특징을 활용해 내부를 검게 마감하고, 은은한 조명 아래 기물에 집중할 수 있도록 연출한 것도 특징이다.

오브가 주목하는 것은 고미술을 단순히 보존하고 감상하는 대상이 아닌, 일상에서 경험할 수 있는 콘텐츠로 만드는 것이다. 실제로 전통 공예품을 조명이나 오브제로 활용하는 등 새로운 쓰임을 제안하면서 기존과 다른 가치를 만들어가고 있다. 이에 최 대표는 “고미술은 한국에서 아직 저평가된 영역이지만, 복제가 쉬워진 시대에는 하나뿐인 시간과 이야기를 가진 콘텐츠의 가치가 더욱 커질 것”이라며 “우리의 문화적 자산을 새로운 관점에서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어 ‘소요상회’와의 협업으로 문을 연 리진은 골동 다과점을 콘셉트로 한국과 서양의 문화가 만나는 지점을 담아낸 공간이다. 대한제국 시기 프랑스로 건너간 조선의 무희 ‘리진’에서 영감을 받은 이곳은 오브 인근에 위치해 동양과 서양이라는 서로 다른 감각을 경험한 인물의 서사를 바탕으로 새로운 한국적 미감을 제안한다.

최 대표는 “답십리 고미술상가에는 다양한 볼거리가 많지만 사람들이 머물며 숨을 돌릴 공간은 부족했다”며 “이곳을 통해 잠시 쉬어갈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리진은 전통적인 다과 문화와 서양의 커피 문화를 결합해, 조선인이 서양 문화를 경험했다면 이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풀어냈을지에 대한 상상에서 출발한 공간이다. 매작과에 베이컨 토핑을 더하는 등 한국적인 기반에 새로운 방식을 접목한 메뉴들은 이러한 방향성을 보여준다.
이처럼 오브와 리진은 단순히 전통을 재현하는 데 그치지 않고, 오래된 문화가 오늘날의 일상 속에서 어떻게 이어질 수 있는지를 제안하며 답십리의 고미술을 새롭게 제안하고 있다.
“군자는 치밀한 브랜딩의 승부처, 답십리는 낮은 임대료가 살린 보물창고”

군자와 답십리, 두 상권 취재에 동행한 노창희 메이트플러스 중개법인 대표는 베스트셀러 《연봉 10억 공인중개사의 영업비밀》의 저자이자, 군자역세권에 개인 사무실을 두고 상권의 변화를 가장 가까이서 지켜본 부동산 전문가다. 그가 짚어낸 군자와 답십리의 성장 공식을 정리했다.
◇ 군자역 “주거 형태가 바뀌면 상권의 체질이 바뀐다”
노 대표는 군자역 변화의 원동력을 “주거 형태의 변화”로 요약한다. 낡은 가구 상가 부지가 오피스텔로 대거 개발되며, 5·7호선을 타고 강남·광화문으로 출퇴근하는 2030 직장인들이 유입됐다는 것이다.
“예전 능동 먹자골목이 아저씨들의 회식 장소였다면, 지금 군자역 뒷골목은 2030 세대가 취향을 소비하는 공간”이라는 그의 말은 ‘아리랑길’로 불리는 이 골목의 변화를 압축한다. 그는 진입 장벽이 낮아 보이는 이 상권이 실은 ‘치밀한 브랜딩과 대중적인 맛의 조화’가 필요한 곳이라며, 그 덕에 가게들이 쉽게 문을 닫지 않고 성수동의 대안 상권으로 떠오르고 있다고 강조했다.
◇ 답십리 “낮은 임대료가 살려낸 보물창고”
답십리 고미술상가 상권에 대해 그는 ‘저평가된 보물창고’라 표현한다. 전문가들의 전유물이던 이곳이 젊은 층의 주목을 받는 배경은 역설적으로 낮은 임대료다.
“열 평 남짓한 공간의 월세가 서울 지역 치고는 매우 낮은 수준이다 보니, 본업이 있는 젊은 창업가들이 주말이나 특정 시간에만 문을 열며 취향을 실험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특히 호박포크아트갤러리의 시도에 주목하며 “남들이 정한 귀함에 집착하지 않고, 제사용 접시나 민속품을 현대적 리빙 아이템으로 제안하는 감각이 놀랍다”고 평가했다.
노 대표는 “군자와 답십리는 사라져가는 공간의 기억 위에 현재의 감각을 덧입혀 새로운 가치를 만든다”며, “성수동이 대형 자본의 무대가 된 지금, 이 두 상권이야말로 서울에서 가장 개성 있는 문화를 경험할 수 있는 곳”이라고 강조했다.
오래된 시간 위에 얹은 감성…
서울 동부권 상권을 바꾸는 답십리와 군자의 힘

‘[핫플레이스를 만드는 플레이어들]’를 출간한 신지혜 작가가 밝힌 서울 군자와 답십리 상권은 어떤 곳일까?
가로수길, 성수동 등 초기 핫플레이스들이 대형 자본의 유입과 젠트리피케이션을 거치며 고밀도 상업지구로 변모하는 동안, 서울 동부권의 상권 축은 보다 은밀하고 흥미로운 방식으로 재편되고 있다. 은밀하게 떠오른 군자 일대와 2030 세대 및 외국인 관광객의 발길이 이어지는 답십리는 도시의 역사적 레이어와 현대적 라이프스타일 콘텐츠가 어떻게 결합하는지 보여주는 대표적인 현장이다.
◇ 답십리, 고미술의 시간성과 산업 유산이 만든 문화적 켜
답십리 상권의 출발점은 140여 개 점포가 밀집한 국내 최대의 답십리 고미술상가다. 1970~80년대 청계천 복원과 도시 개발 과정에서 형성된 이곳은 고가구, 도자기, 석물 등이 축적해 온 깊은 시간의 아우라를 간직하고 있다. 최근 이 역사적인 켜 위로 개성 넘치는 공간들이 레이어링되고 있다.
고미술상가 2동을 중심으로 취향과 전문성을 보여주는 ‘고복희’, 프로젝트렌트 최원석 대표의 감성이 녹아든 ‘오브’, 빈티지 큐레이션 매장 ‘호박’, 동서양의 조화 속에서 차와 한과를 즐기는 ‘리진’, 1세대 갤러리스트 김양수 대표의 ‘두손갤러리’ 등이 들어서며 새로운 유동인구를 끌어모으고 있다.
이와 함께 6동의 유휴 지하 물류창고를 리모델링해 청년 작가의 현대미술을 소개하는 ‘답십리 아트랩’과 차(茶) 문화를 제안하는 ‘디디디 티샵’ 등은 답십리를 단순한 골동품 매매지를 넘어 ‘발견하러 가는 문화 거점’으로 진화시키고 있다.
◇ 군자, 조용한 역세권과 탄탄한 배후지가 만든 미식 실험실
답십리가 시간의 축적 위에 문화적 감성을 얹었다면, 군자역 일대는 밀도 높은 F&B(식음료) 중심 상권으로 확장 중이다. 지하철 5·7호선 환승 거점으로 주요 업무지구 접근성이 뛰어난 군자는 인근 아파트 단지와 세종대·건국대의 1인 가구, 직장인 배후 수요를 확보하고 있다. 특히 성수나 건대에 비해 유리한 임대 조건 덕분에 젊은 창업자들의 탄탄한 테스트베드 역할을 하고 있다.
‘동네 미식 실험실’로 출발한 군자는 최근 오픈런과 줄 서는 맛집들이 대거 늘어났다. 파이 전문점 ‘따우전드’와 베이커리 ‘윤숲’은 군자에서 시작해 성수·신사로 영역을 넓히거나 지역 내 여러 매장을 운영할 만큼 성장했다. 여기에 ‘유니드라멘’, ‘멘쿄’, ‘롱메’ 등 라멘 투어객을 부르는 매장들과 수제버거 브랜드 ‘버거보이’, 골목 곳곳의 이자카야, 단골들의 아지트인 ‘스너글리커피’, 식집사들의 성지 ‘분즈’까지 저층 상가를 자신만의 색깔로 채운 플레이어들이 낮과 밤의 활력을 책임지고 있다.
답십리와 군자 두 지역은 대형 자본이 일시에 진입하기 어려운 좁고 오래된 구조를 유지하고 있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성수동이 메가 브랜드의 팝업 무대로 변모한 것과 달리, 군자는 일상을 채우는 F&B 플레이어로 내실을 다지고 있으며, 답십리는 축적된 공간 유산을 기반으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한다. 하나는 ‘먹으러 가는 동네’, 다른 하나는 ‘발견하러 가는 동네’인 셈이다.
신지혜 작가는 이제 서울의 상권이 단순한 부동산 입지보다 어떤 플레이어가 어떤 콘텐츠를 쌓아 올리는가에 따라 정체성이 결정되는 단계에 있다고 분석한다. 화려한 메인 거리 너머, 오래된 시간이 조용히 숨 쉬고 있는 골목 안에서 대한민국 뉴트로 상권의 새로운 힌트가 싹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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