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초 전세계를 덮친 코로나19의 파급력이 세긴 했나보다. 올해 상당수 유통·패션 상장사들이 2020년보다 나은 실적을 냈다. 백신 접종률이 상당히 높아졌고, 방역 수칙이 대폭 완화한 덕분이다. 코로나19 확진자가 늘어나고 있단 소식도 어느덧 무덤덤한 일상 중의 하나로 자리 잡았다.
테넌트뉴스가 유통 대기업 3사(롯데쇼핑·신세계·현대백화점)와 패션업계 상장사 22개사의 3분기 누적 실적을 분석한 결과, 6개 기업을 빼고는 모든 기업이 2020년 3분기보단 개선된 실적을 기록했다.
국내 유통 기업의 지난해 실적이 일제히 뒷걸음질 쳤던 것과는 상당히 다른 모습이다. 지난해 특히 패션업종은 타격이 컸다. 코로나19로 인한 재택근무 일상화 및 외부 활동 감소로 전반적인 의류 소비가 줄어든 탓이다.
신세계 역시 현대백화점 못지 않게 실적 개선이 두드러졌다. 올해 3분기 누적 매출 4조3824억 3140만원, 영업이익은 3222억1597만원을 기록했다.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27.9%나 늘어난 수치고, 영업이익은 적자에서 흑자로 턴어라운드했다. 신세계는 올해 1분기와 2분기에도 해당 분기기준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3분기 누적 영업이익은 3222억으로 누적기준 최고치다.
이에 따라 2019년 기록한 연간 최대 영업이익(4678억원) 갱신도 기대되는 상황이다. 실적 효자는 백화점 명품 부문이었다. 백화점 3분기 매출이 5096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5.0%나 성장했다. 영업이익은 727억원으로 전년 동기에 비해 81.1% 늘어나며 매출과 영업 이익 모두 3분기 사상 최대 실적을 달성했다.
반면 업계 맏형으로 꼽히는 롯데쇼핑은 웃지 못했다. 롯데쇼핑의 3분기 누적 매출은 11조 7892억806만원, 영업이익은 982억9593만원을 기록했다. 전년 동기 대비 각각 3.5%, 40.2% 후퇴한 실적이다. 지난해에도 실적이 나빴는데, 올해 들어서 한 단계 더 실적이 쪼그라든 셈이다.

롯데는 백화점 사업부와 대형마트, 기업형 슈퍼마켓 등 사업부문을 가리지 않고 실적이 나빴다. 영업이익은 백화점 사업부의 희망퇴직 관련 비용이 반영되면서 더 악화하긴 했지만, 코로나19 회복 상황임을 따져보면 아쉬울 수밖에 없는 실적이다. 연말 분위기를 바꾸기 위한 조치는 있었다. 롯데는 최근 대대적인 조직개편을 벌였다.
기존 비즈니스 유닛(BU, Business Unit) 체제를 대신해 헤드쿼터(HQ, Head Quarter) 체제를 도입하기로 했다. 그룹 주력인 유통군 총괄대표도 외부에서 영입했다. 총괄대표에 선임된 김상현 부회장은 홈플러스 출신으로 글로벌 유통 전문가로 꼽히는 인재다.
이전에 한국P&G 대표, 동남아시아 총괄사장, 미국P&G 신규사업 부사장을 거쳤다. 지난해 유독 쓴맛을 봤던 패션업계는 위드코로나 시행을 앞두고 실적 회복 기대감이 높다. 소비 심리 회복세도 빠르고, 추위도 이른 시기에 찾아와 상품 판매량이 크게 늘어나고 있다는 분석이다.
◇ 위드코로나에 실적 기지개 킨 패션업계

당장 삼성물산의 패션부문이 3분기 누적 매출 1조2400억원을 기록했다. 2020년 3분기 누적 매출은 1조75억원에 불과했는데, 15.3%나 증가했다. 영업이익도 810억원을 거두며 쏠쏠한 장사를 했다. 삼성물산의 지난해 3분기 누적 영업이익은 -440억원이었다.
올해 들어 흑자전환에 성공했다.부진한 오프라인 브랜드를 정리하고, 온라인 전용 브랜드 전환과 편집숍 경영 효율화 작업이 성공적으로 먹힌 셈이다. 삼성물산은 빈폴 스포츠는 사업을 접고, 빈폴 사업부에서 운영하는 빈폴 액세서리와 키즈를 온라인 전용 브랜드로 전환했다.
고급 브랜드 구호도 온라인 전용 브랜드 구호 플러스를 새로 출시하고 사업 부진으로 2016년 철수했던 정장 브랜드 엠비오도 온라인 전용 브랜드로 3년 만에 다시 내놨다. 지난 5일에는 온라인 중심으로 사업을 전개하는 여성복 브랜드 코텔로를 런칭했다.

지난 7월에는 전용 온라인 쇼핑몰 SSF샵을 전면 새단장하기도 했다. 아미·메종키츠네·톰브라운·르메르가 등 2030세대에서 신(新)명품으로 꼽히는 수입유통 브랜드가 날개 돋힌 듯 팔린 덕분이기도 하다.
코오롱인더스트리 패션부문도 영업이익 턴어라운드에 성공했다. 3분기 누적 매출도 전년 동기 대비 12.8% 증가했다. 급성장 중인 골프시장을 타깃으로 한 전략이 성공했다.
코오롱인더스트리는 지난 2월 미국의 프리미엄 골프 브랜드 지포어를 들여왔고, 3월에는 MZ세대를 타깃으로 한 자체 브랜드 ‘골든베어’를 런칭했다. 이들 제품이 인기를 끌면서 실적 상승을 이끌었다. LF의 3분기 누적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두 배 가까이 늘었다. 444억8135만원이던 영업이익이 올해 1008억3060만원으로 훌쩍 뛰었다.
패션 외에도 다른 사업부의 매출이 늘어난 덕분도 있지만, 온라인 채널 매출 증가에 따른 믹스 개선 효과와 패션 자회사 막스코(막스마라)의 실적 개선도 한몫했다. 여성 패션 의류 전문업체인 대현 역시 155.4%란 경이적인 영업이익 증가율을 선보였다. 지난해 누적 40억6158만원의 흑자에 그쳤는데, 올해 3분기엔 103억7701만원이나 벌었다.

신세계인터내셔널 역시 영업이익 세 자릿수 증가율을 달성했다. 명품 수요 증가에 힘입어 해외패션 부문과 수입화장품 사업이 대폭 성장한 덕분이다. 이 회사는 올해 3분기 누적 매출 1조328억5462만원, 영업이익은 619억1163만원을 달성했는데, 영업이익 증가율이 무려 278.0%나 된다. 신세계인터내셔널의 지난해 3분기 누적 영업 이익은 163억7761만원에 그쳤다.
골프웨어 전문 브랜드 크리스에프앤씨 역시 골프산업 성장에 따른 수혜를 입은 회사 중 하나다. 크리스에프앤씨는 일본의 ‘파리게이츠’와 ‘마스터바니’, 미국의 ‘핑’, 스코틀랜드의 ‘세인트앤드류스’ 등 해외 브랜드를 국내에서 판매하고 있다. 자체 브랜드로 ‘팬텀’도 갖고 있다. 중저가부터 초고가 제품을 모두 아우르는 덕분에 실적이 성장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이 회사는 올해 3분기 누적 매출 2538억4260만원. 영업이익 562억9827만원을 달성했다. 매출은 지난해 3분기 누적 실적과 견줘 33.8%, 영업이익은 111.2%나 늘어난 수치다.
이들만큼 드라마틱하진 않지만, 코로나19 타격이 극심할 때보단 실적이 소폭 좋아진 기업도 있다. 대표적으로 휠라홀딩스가 그렇다. 이 회사는 올해 3분기 누적 매출 2조9347억0021만원, 영업이익 4676억6535만원을 기록했다. 매출은 전년 동기비 25.8%가 늘었고, 영업이익은 71.3%가 증가했다.
코로나19와 직면하기 전인 2019년 3분기 누적 영업이익이 3856억264만원이었던 걸 감안하면, 상당히 선방한 실적이다. 주력 브랜드인 휠라의 위상이 예전만 못하지만, 글로벌 3대 골프 브랜드인 타이틀리스트를 보유한 자회사 아쿠쉬네트 덕분에 실적이 승승장구할 수 있었다. 휠라 역시 골프 산업의 성장 수혜를 제대로 누린 셈이다.
◇ 패션업계 실적, 4분기에 판가름 날까
티비에이치글로벌은 지난해 3분기까지 적자에 시달리다가 올해 3분기엔 흑자로 돌아선 회사다. 지난해 3분기 누적 83억3348만원의 마이너스 실적을 기록하다가, 올해 3분기까진 27억 9574만원의 플러스 영업이익을 달성했다. 다만 흑자 규모가 크지 않아 언제든 적자로 돌아설 수 있다는 점은 불안요소다.

제이에스티나(-30억5039만원)나 지엔코(-5억279만원), 배럴(-49억5292만원) 등은 3분기 누적 기준 영업이익 적자를 기록하긴 했지만, 전년 3분기 적자보단 그 폭을 줄여 개선된 실적을 보인 회사들이다. 특히 래쉬가드로 유명한 스포츠 브랜드인 배럴은 해수욕장, 워터파크, 수영장 등이 개장되면 수상 스포츠를 다시 즐길 수 있는 여건이 마련돼 실적이 금세 회복할 것이란 전망을 얻고 있다.
반면 위드코로나 시대에도 좀처럼 웃지 못하는 기업도 있다. 최악의 실적이라고 여겼던 2020년보다 올해 실적이 더 나쁜 회사들이다. 대표적으로 패션그룹형지의 골프웨어 자회사 가스텔바작이 그렇다. 이 회사 3분기 누적 매출은 465억2954만원, 영업이익은 11억7714만원이다. 매출도 0.9% 꺾였고, 영업이익은 전년과 비교해 79.2%나 감소했다. 고성장을 이어가는 골프 시장에서 제대로 고객을 공략하지 못했다는 판단이다. 신원은 간신히 흑자를 유지하곤 있지만 누적 영업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78.0%나 고꾸라졌다.
인디에프의 실적 부진도 심각하다. 2020년 3분기 누적 126억851만원의 영업이익 적자를 냈는데, 올해 3분기엔 188억2326만원으로 되레 커졌다. 전통의 패션기업으로 꼽히는 인디에프는 기존 주력 브랜드인 조이너스, 꼼빠니아, 트루젠, 테이트 등이 모두 실적 부진에 빠진 상황이다. 정구호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와 손잡고 만든 하이엔드 여성복 브랜드 존스 등 신규 브랜드의 성과에 인디에프의 미래가 달렸다.
물론 이렇게 부진한 기업에도 반전의 기회는 있다. 어찌됐든 올해 사업환경이 지난해보다 좋은 건 사실이다. 때 이른 추위와 크리스마스, 거리 두기를 완화하는 위드코로나 정책이 맞물리며 업계 전반에 훈풍이 불 것이란 기대가 커지고 있다. 고객 경험과 재미를 무기로 오프라인 매장에도 손님들의 발길이 다시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값비싼 품목이 많이 팔리는 4분기는 이들 기업에 대목으로 작용할 수 있다.
다만 이런 좋은 분위기가 내년에도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전문가들은 아직까지 국내는 코로나19와 건강하게 공존하기 위한 대비가 부족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백신 접종률이 높아도 확진자가 생길 수 있고, 접종자의 상당수가 돌파감염을 겪고 있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과거 같은 일률적인 방역 정책이 다시 등장할 가능성은 낮지만, 지금처럼 확진자 수가 급증하면 사람들의 동선이 아무래도 제한될 수밖에 없다”면서 “다시 거리두기가 강화가 되더라도 제품이 팔릴 수 있게끔 품질과 서비스를 차별화하는 게 관건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