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유통업계 M&A 시장이 유례없는 한파 속에 갇혔다. 여러 대형 매물들이 시장에 쌓여 있는데, 장부상 추정 가치만 5조 원을 훌쩍 넘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 주인을 찾는 일은 지지부진하다. 고금리, 고물가, 소비 위축이 장기화하면서 유통업 자체의 수익 모델이 근본적으로 붕괴하고 있다는 진단이 나온다.
과거 사모펀드(PEF)들이 공격적으로 유통기업을 사들여 ‘구조조정으로 돈을 벌던 시대’는 막을 내렸다.
이제는 ‘어떤 경험과 데이터를 쥘 것인가’라는 미래 비전 없이는 기업 가치를 인정받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 몇몇 딜이 성사되더라도 이는 시장의 활력이라기보다는 ‘가격의 벽’을 낮춘 결과일 뿐, 전체 시장상황은 여전히 꽁꽁 얼어붙어 있다.
테넌트뉴스가 핵심 매물들의 현주소와 시장을 막고 있는 구조적 원인을 심층 분석하고, 유통 M&A 시장의 전망을 짚어봤다.

현재 유통 M&A 시장의 가장 큰 시험대는 대형마트 시장 점유율 2위였던 홈플러스가 과연 팔릴 수 있느냐다. 법정관리에 돌입한 홈플러스는 청산가치(약 3조 6800억 원)가 계속 기업가치(약 2조 5000억 원)보다 높게 산정되면서 원칙적으로 청산 절차를 밟아야 하지만, 고용과 지역상권에 미치는 파장을 최소화하기 위해 인가 전 M&A를 통한 매각을 택했다.

홈플러스는 전국 126개 대형마트와 308개 홈플러스 익스프레스(SSM)를 보유하고 있으며, 특히 토지 자산만 3조 원 안팎으로 평가돼 부동산 유동화 측면에서는 매력이 크다. 그러나 인수자는 청산가치 이상의 금액을 제시해야 하는 부담을 안고 있다. 여기에 대규모 자금력은 물론, 오프라인 유통의 근본적인 체질 개선을 이끌 구조조정 능력까지 갖춘 전략적 투자자(SI)가 필요하다.
◇ 매출 상위 점포 폐점으로 수익성↓… 과도한 임차료 부담도 원인
문제는 유통업 환경 자체가 바뀌었다는 점이다. 지난 10년간 대주주였던 MBK파트너스는 차입인수(LBO) 후 이자 상환과 투자금 회수를 위해 알짜 점포를 ‘세일 앤 리스백(매각 후 재임차)’ 방식으로 팔아 현금을 확보했다. 이 과정에서 필수적인 온라인 물류 인프라 투자나 디지털 전환이 지연되며 홈플러스의 사업 경쟁력은 급속도로 약화됐다.
매출 상위 점포가 폐점되면서 수익성이 떨어졌고, 과도한 임차료 부담은 재무 구조를 더욱 악화시켰다.
시장은 통매각가를 1조 5000억~2조 5000억 원대로 가늠하고 있는데, 매각 흥행을 위한 ‘몸값 낮추기’에도 원매자 레이더에 선명하게 잡히지 않고 있다.
회생계획안 제출기한을 9월 10일, 11월 10일로 두 차례 연기하는 동안 인수의향자가 등장하지 않아 이달부터 공개경쟁입찰 방식으로 전환했다.
이에 홈플러스는 그간 진행 중인 인가 전 M&A를 스토킹호스 방식에서 공개경쟁입찰 방식으로 전환한다고 공고했다. 스토킹호스는 인수 의향을 보인 인수자와 먼저 조건부 우선인수자 계약을 체결한 이후, 공개경쟁입찰을 통해 최종 인수자를 확정하는 방식이다. 통상 스토킹호스 방식은 인수의향자를 먼저 선정하기 때문에 공개경쟁입찰보다 매각 성공률이 높은 방식으로 분류된다.
그럼에도 전망은 밝지 않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오프라인 유통 업황이 부진한 데다 이미 홈플러스란 브랜드 자체가 훼손된 상황에서 조 단위 자금을 써가면서 홈플러스를 사들일 기업은 많지 않을 것”이라면서 “결국 매각이 최종 실패해 청산 절차를 밟지 않겠냐는 게 업계의 중론”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앞서 별도 매각을 추진했던 SSM 채널 홈플러스 익스프레스만 봐도 쉽지 않은 것을 알 수 있다.
역세권 중심이지만 60~100평(198~330㎡) 규모의 애매한 점포 크기가 발목을 잡았다. 기업형 슈퍼마켓(SSM) 업계에는 너무 작다는 인식이, 편의점 업계에는 너무 크다는 반응이 나오면서 매수자를 찾지 못했다. 게다가 70%가 넘는 직영점 비중은 인수자에게 고정비 부담과 향후 구조조정 과정에서의 노사 문제 등 잠재적 리스크로 지목됐다.

(사진 11번가)
◇ 11번가 1년 넘게 새 주인인 못 찾아… 이커머스 시장 위축
이커머스 시장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특히 쿠팡과 네이버가 시장을 과점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는 가운데 ‘이커머스 2세대’로 불리는 플랫폼들은 생존을 위한 매각조차 쉽지 않다.
11번가는 1년 넘게 새 주인을 찾지 못하고 있다. 2023년 IPO 무산 이후 대주주 SK스퀘어가 콜옵션을 포기하면서 재무적 투자자(FI) 주도로 매각이 진행 중이다. 11번가는 희망가를 1조원대에서 5000억~6000억원대로 대폭 낮추고, 체질 개선을 위해 수익성 중심 경영과 구조조정을 단행하고 있으나 유효 원매자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

이는 시장의 구조적 문제 때문이다. 이미 쿠팡은 ‘로켓배송’을 통해 압도적인 물류와 풀필먼트 경쟁력을 구축했고, 네이버는 검색·광고·결제·금융을 아우르는 거대한 자체 생태계를 완성했다. 이 양강 구조 속에서 11번가가 차별화된 비전이나 안정적인 수익성을 보여주기 어렵다는 판단이 지배적이다.
오는 겨울, SK스퀘어의 콜옵션 재결정 시한이 다가오지만, 결과와 무관하게 플랫폼 자체의 ‘딜 프리미엄’이 깎인 상황이라 매각 전망은 매우 어둡다.
시장에 나와있는 또다른 매물인 위메프 역시 대규모 미정산 사태 이후 신뢰가 흔들렸고, 회생절차 하에 스토킹호스 방식까지 꺼냈으나 후보군 형성이 지지부진했다.

결국 위메프는 최근 공식 홈페이지와 앱을 통해 “서비스 이용은 더 이상 불가하다”고 밝혔다.
위메프는 “서울회생법원의 회생절차 폐지결정에 따라 서비스 운영을 종료하고 청산 절차에 들어가게 됐다”며 “이에 따라 위메프 사이트 및 관련 서비스는 더 이상 이용이 불가하다”고 설명했다.
한때 이커머스 빅3로 불렸던 티몬은 법원 인가를 거쳐 오아시스마켓으로 넘어가는 데는 성공했지만, 인수금 116억원을 제외한 채권 변제율이 1%에도 못 미치는 ‘헐값 매각’으로 마무리되며 플랫폼의 가치 하락과 신뢰 회복이라는 숙제를 동시에 안게 됐다.
이 일련의 사건들은 온라인 플랫폼 전반의 M&A 테이블에서 리스크 할인을 더욱 깊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커머스 업계 관계자는 “지금 시장 경쟁력은 볼륨이 아니라 생태계 싸움”이라며 “물류·트래픽·결제가 한 화면으로 묶이지 않으면 값을 더 낮춰도 인수 매력이 없다”고 말했다.
◇ 간편식·프랜차이즈·전통 식품회사까지 줄줄이 매각 레이더 잡혀
K-푸드가 글로벌 인기를 자랑하는 것과 무색하게, 식품·외식업 매물도 빠르게 쌓이고 있다.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최근 몇 달 새 간편식·프랜차이즈·전통 식품회사까지 줄줄이 매각 레이더에 잡혔다. K-푸드 수출 호황과 달리 내수 기반의 수익성은 얇아졌고, 플랫폼·유통의 협상력이 세지면서 밸류에이션 눈높이도 맞지 않는 분위기다.

(사진 성경식품)
가장 눈에 띄는 건 조미김 업계다. 성경식품은 매각을 추진해 왔다. 해외에서 ‘건강 스낵’으로 소비가 늘며 산업 성장성은 열려 있지만, 환율·원자재(원초·식용유) 변동과 수출 채널 다변화 비용이 발목을 잡는다.
전략적 투자자(SI)로는 삼천리, 농심 등도 물밑 관심을 보였으나 가격 간극을 메우지 못해 거래는 성사되지 않았다. 일부 잠재 원매자와 접촉은 계속되고 있어, ‘현금 흐름 가시성’과 ‘해외 판로’에 대한 추가 설명이 가격을 좁히는 관건이란 평가가 나온다. 같은 업종의 광천김도 시장에 나와 있다. 지역 강자들이 동시에 테이블에 오른 만큼, 업계 재편의 신호탄이 될지 주목된다.

프랜차이즈 상위권에서도 매물 소식이 이어진다. 한화갤러리아가 운영하는 에프지코리아의 버거 브랜드 파이브가이즈, 치킨·버거 브랜드 KFC, 피자 브랜드 한국피자헛, 치킨 프랜차이즈 노랑통닭 등 이름값이 있는 브랜드가 새 주인을 찾는 것으로 알려졌다. 노랑통닭의 경우 필리핀 국민기업 졸리비푸즈와 협상을 벌이다 결렬됐다. 가격에 대한 인식 차이가 협상 결렬의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배달비 고착과 인건비·임대료 부담, 원재료 가격 상승이 겹치며 가맹 본부 수익성이 얇아졌다. 광고·후원·리뉴얼 비용을 줄여도 본사 마진이 잘 서지 않는 구조가 문제다. 가맹점주와의 갈등 가능성, 상권 중복 이슈, 출점 속도 조절 등 비(非)재무 리스크가 밸류에이션 디스카운트로 이어진다는 지적도 나온다. 인수 후보 입장에서는 ‘브랜드력→신규 가맹→로열티·물류’로 이어지는 선순환 회복 시나리오가 확실해야 베팅이 가능한 상황이다.
플랫폼 부문에선 정육각이 대표 매물로 꼽힌다. 신선식품 D2C 모델로 육가공·밀키트를 묶어 성장했지만, 고물류비와 높은 반품·폐기율에 막혀 결국 기업회생 등 고강도 구조조정에 들어갔다. 2022년엔 대상그룹의 유기농 채널 ‘초록마을’을 인수하며 외연을 넓혔지만, 누적 적자가 커지자 자금 경색이 급격히 심화됐다. 플랫폼 가치가 떨어진 지금은 통매각보다 사업부·자산 단위 분리 매각 가능성도 거론된다.

장기매물의 상징은 버거킹(운영사 비케이알)이다. 어피니티에쿼티파트너스가 2021년부터 매각을 추진해왔지만, 3년째 마침표를 찍지 못했다. 브랜드 인지도와 매장 규모는 경쟁력이지만, 원재료·포장재 인상, 배달 채널 수수료, 인건비 상승이 겹치며 미국·유럽과 달리 한국 법인의 마진 회복 속도가 더디다.
인수 후보가 가장 예민하게 보는 건 ‘가격 인상 탄력성’과 ‘딜리버리 의존도’다. 출점보다 리뉴얼·포맷 전환(키오스크 고도화, 드라이브스루 확대)으로 단가와 회전율을 끌어올릴 수 있는지, 수치로 증명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거래가 막히는 이유는 여러 개다. 일단 수요가 약하다. 고금리·고물가로 외식 빈도가 줄고, 체감 가처분소득이 떨어졌다. 비용도 높다. 식자재·임대료·인건비가 동시에 올라 ‘가격 인상→수요 이탈’의 악순환이 발생했다. 향후 출구 전략을 짜는 것도 쉽지 않다. 아울러 플랫폼 의존도가 커졌다. 배달앱·대형 유통 채널에 대한 수수료·판촉 의존이 높을수록 인수 후 재무 개선 시나리오가 어렵다.
최근에는 ESG·식품안전·가맹거래법 등 규제 변수까지 밸류에이션 디스카운트를 키우는 요인이 됐다.
◇ 인기 매물 유통기업…운영 비용 상승하면서 ‘구조적 저마진’ 심화
이처럼 유통업계 M&A 시장에 매물이 쌓이기만 하는 구조적인 이유는 뭘까. 가장 큰 원인은 살 사람이 없다는 점이다. 불과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사모펀드(PEF)가 유통 M&A 시장의 큰 손이었다는 것과는 분위기가 달라졌다. 오프라인 자산을 인수한 뒤 점포 매각, 인력 감축 등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통해 이익을 창출하고, 외식·화장품 등의 브랜드는 리뉴얼과 공격적인 마케팅으로 매출을 키우는 방식이 통했다. 버거킹(비케이알), 아웃백 등 PEF의 손을 거쳐 성공적으로 회생한 선례도 있었다.

(사진 애경산업)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역전됐다. 유통업계는 물류비, 결제 수수료, 판촉 비용 등 모든 운영 비용이 상승하면서 ‘구조적 저마진’이 심화됐다. 여기에 이커머스의 침투율이 40%대 중반으로 고착화되면서 오프라인 유통은 다운사이징(Downsizing)이 상수가 되었다. 대형마트는 면적을 줄여 효율을 높이고 있지만, SSM·편의점과 겹치는 회색지대에서는 효율이 급락하는 악순환에 빠졌다.
온라인에서는 소수 빅 플레이어들이 광고, 검색, 풀필먼트를 수직 계열화하며 높은 진입장벽을 구축했다. 중소형 이커머스는 고객획득비용(CAC)과 물류 비용을 감당하기 어려워졌다.
PEF의 투자 성공은 결국 엑시트(투자금 회수)가 핵심이다. 하지만 현재는 IPO(기업공개) 창구가 좁아졌고, PEF가 인수한 기업을 다른 PEF나 전략적 투자자에게 되파는 2차·3차 매각 수요도 얇아졌다.
즉, PEF가 과거처럼 높은 레버리지(차입)를 얹어 고가에 유통 자산을 인수하더라도 ‘나갈 문’이 보이지 않는 투자 리스크가 극도로 커진 것이다. 금리 부담과 소비 둔화는 레버리지형 M&A의 수지 계산을 무너뜨리는 결정적 요인이 되었다. 사모펀드가 유통 기업을 사서 ‘단순히 마진을 남기던 시대’는 종언을 고한 것이다.
물론 시장 전체가 멈춘 것은 아니다. 애경산업 M&A처럼 매력적인 자산을 두고는 여전히 경쟁이 붙고 있다. 애경산업의 인수전엔 태광산업 컨소시엄, 앵커에쿼티 등이 경쟁하다가 태광산업 컨소시엄이 승리했다. 자체 공장과 R&D 역량을 갖춘 뷰티·생활용품 포트폴리오는 원매자들에게 큰 매력으로 작용했다.
K뷰티의 글로벌 인기가 모멘텀이 될 수 있다.

결국 그나마 되는 딜은 콘텐츠, 경험, 데이터를 묶어 객단가와 재방문을 만들 수 있는 자산이다. 호텔·리조트·급식(아워홈)처럼 경험 기반의 서비스업, 럭셔리 유통의 핵심 상권 또는 카테고리, 그리고 자체 공장·R&D 기반의 제조 역량을 갖춘 뷰티·생활용품 등이 여기에 속한다. 이들은 유통 채널 자체가 아닌 ‘브랜드 파워’와 ‘본질적 가치’에 집중하는 거래다.

(사진 아워홈)
반면, 시장 집중과 구조적 문제에 노출된 ‘중간지대’ 자산은 가격 발견 자체가 어렵다. 대형마트와 편의점 사이에 끼인 SSM(홈플러스 익스프레스), 빅테크 생태계에 종속된 2선 이커머스(11번가), 그리고 미정산 사태 등으로 플랫폼 신뢰 훼손 이력이 남은 위메프 등은 원매자를 찾기 힘들다.
소비 반등이 제한적이라면, 유통 M&A 시장의 한파는 내년 상반기까지도 지속될 공산이 크다. M&A는 딜 사이즈는 작아지고, 거래 기간은 길어지며, 거래 조건은 방어적으로 변할 것이다. 통매각 대신 분할매각이나 점포·자산 유동화 비중이 커지고, 인수 후 사후 통합(PMI) 및 부채 구조조정 조건이 거래의 핵심이 될 것이다.
PEF는 레버리지 비중을 낮추고, 목표 실적 달성 여부에 따라 매각 대금을 조정하는 ‘어니아웃(Earn-out)’ 등 복잡한 가격 조정 메커니즘을 치밀하게 설계할 것이다. 전략적 투자자는 단순히 덩치를 키우는 M&A 대신, 내 핵심 사업과 완벽하게 맞물리는 퍼즐 조각만 집을 공산이 크다.
결론은 명확하다. 유통 기업을 사서 인력과 점포를 구조조정해 빠르게 이익화하던 회로는 이커머스 전환과 시장 집중 속에서 효용을 잃었다. 이제 M&A 시장에서 유통 기업의 가치를 결정하는 것은 ‘무엇을 더 팔 것인가’가 아니라, ‘어떤 경험과 데이터를 어떻게 쥘 것인가’이다. 그 답이 없는 매물이라면, 가격을 아무리 낮춰도 매수자는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이는 현재 시장의 수많은 매물들이 증명하고 있는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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