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 12월 1,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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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배송 딜레마에 빠진 유통시장… 이대로 멈추나

‘삶의 인프라’ 지키려는 ‘소비자 vs 근로자’

결혼 5년 차 30대 직장인 김현지(가명) 씨에게 새벽배송은 이제 생활의 일부를 넘어선 필수 인프라다.
밤늦게 주문해도 아침이면 문 앞에 도착하는 편리함 덕분에 직장과 육아로 바쁜 맞벌이 가정은 시간을 확보하고 일상을 지탱할 수 있다.

10여 년 전만 해도 상상도 할 수 없던 일이었다. 당시 온라인 쇼핑으로 상품을 주문하면 2~3일이 걸리는 게 당연했다. 목요일이나 금요일에 주문한 물건은 택배가 오지 않는 주말을 거쳐 4~5일이 걸리기도 했다. 이 때문에 급하게 사용해야 하는 물건이나 금세 상하는 신선식품을 온라인 쇼핑으로 주문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그런데 2015년, 당시 마켓컬리가 ‘샛별배송’이라는 이름으로 시작한 새벽배송 서비스는 현재 시장 규모가 약 15조 원에 달하며, 쿠팡, 네이버, SSG닷컴, 컬리 등을 합해 대한민국 인구의 38%에 달하는 약 2000만 명이 이용하는 거대 산업으로 성장했다. 쿠팡의 로켓배송 서비스가 가능한 생활권을 의미하는 ‘쿠세권’이란 단어가 등장할 만큼 일상에 자리잡았다.

10년 전, 당시 마켓컬리가 샛별배송이란 이름으로 새벽배송 경쟁의 신호탄을 쐈다. (사진 컬리)

그러나 최근 택배 노동자의 잇단 사망사고를 계기로, 이 혁신의 그늘에 가려져 있던 ‘배송 노동자의 건강권’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르며 사회적 갈등을 빚고 있다. 노동계는 배달 노동자의 과로와 안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새벽배송 제한’을 주장하고 나섰으나, 이는 소비자 불편과 생계를 이유로 새벽배송을 옹호하는 워킹맘, 소상공인, 그리고 심지어 같은 업에 종사하는 택배 기사들의 강력한 반발에 직면하고 있다.

새벽배송을 금지할 것인가, 아니면 계속하되 새로운 안전망을 구축할 것인가에 대해 한국 사회는 지금 중대한 딜레마에 놓여 있다.

이 논쟁이 격화한 건 지난 10일 제주시에서 발생한 비극적인 사고에서 비롯됐다. 제주시 오라 2동에서 쿠팡로지스틱스서비스(CLS) 협력업체 소속 30대 택배 노동자 A씨가 몰던 1t 트럭이 전신주를 들이받아 숨지는 사고가 났다. 경찰은 졸음운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사고 경위를 조사 중이다.

새벽배송 노동자들의 과도한 노동 강도와 잇따른 과로사가 논란이 됐다. (사진 택배노조 )

이 사건이 발생하자 전국택배노동조합(택배노조)을 비롯한 노동계는 즉각 성명을 내고 “이번 사고는 단순한 교통사고가 아닌 구조적 과로의 결과”라고 비판하며, 쿠팡의 장시간 노동과 불규칙한 근무체계가 노동자의 생명을 위협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민주노총 전국택배노조는 이번 사고를 계기로 과거 제안했던 ‘자정(0시)부터 오전 5시 사이의 초(超)심야 배송 제한’ 개선안을 다시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 제조업·운수업 야간근무자 심혈관질환 사망률…주간 근무자의 약 2배
일단 야간노동의 위험성은 유난히 크다. 국제암연구소(IARC)는 2007년부터 야간노동을 ‘2급 발암 요인’으로 분류하며, 장기간의 야간근무가 유방암, 전립선암, 대장암 등 암 발생 위험을 증가시키고 심혈관질환, 수면 장애 등 다양한 건강 문제를 유발한다고 경고하고 있다. 제조업과 운수업 고정 야간근무자의 심혈관질환 사망률이 주간 근무자의 약 2배에 달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재해 비율도 높았다. 산업안전공단 연구용역에 따르면 2019년부터 2023년까지 새벽배송 중 발생한 사망 사고는 8건에 달하며, 재해자 수는 5년간 14배나 급증했다. 전체 재해자 중 야간 재해자가 차지하는 비율도 2019년 10.1%에서 2023년 19.6%로 증가하는 추세다.

제주시 택배 노동자 사망사고를 계기로 전국택배노조를 비롯한 노동계가 ‘구조적 과로 해소’를 촉구하며 새벽배송 제한 논란이 격화했다. (제주도 소방안전본부)

연속 고정 심야노동이 미치는 해악도 심각했다. 택배노조는 새벽배송이 교대 없이 계속하는 ‘연속 고정 심야노동’ 형태로, 이는 생체 리듬을 파괴해 수면장애, 심혈관 질환, 암, 우울증 등 심각한 건강 문제를 일으킨다고 지적했다.

택배노조는 새벽 0시부터 5시까지의 가장 위험한 시간대 배송 업무를 제한함으로써 노동자에게 최소한의 수면 시간과 건강권을 보장하자는 것이 제안의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즉, 밤 12시까지의 배송과 새벽 5시 이후 배송은 계속 이뤄지므로, 긴급 품목에 대해서는 기존처럼 받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노동계의 주장에 대해 소비자와 산업계, 그리고 배송 노동자 당사자들은 격렬히 반발하고 있다. 이들은 새벽배송 제한이 가져올 사회적 피해가 노동자 건강권 보호라는 명분보다 클 수 있다고 우려한다.

노동계는 새벽배송 노동자의 건강권을 보장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사진 택배노조)

현재 국회 국민동의 청원 게시판에는 ‘새벽배송 금지 및 제한 반대에 관한 청원’이 올라왔다. 자신을 두 자녀를 키우는 워킹맘이라고 소개한 작성자는 “저녁 늦게 귀가하는 맞벌이 부모에게 새벽배송은 단순한 편의가 아니라 일상을 지탱하는 중요한 수단”이라며 “가정의 행복과 건강, 육아와 교육을 지켜주는 삶의 기반의 문제”라고 호소했다. 온라인 자영업자 커뮤니티에서도 “새벽배송을 제한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라며 부정적인 여론이 들끓고 있다.

◇ 서비스 중단 시 불편함을 느낄 것이라는 응답이 64.1%에 달해
소비자 단체들 역시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사단법인 ‘소비자와함께’와 ‘한국소비자단체연합’이 소비자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새벽배송 경험자의 98.9%가 앞으로도 계속 이용하겠다고 답했으며, 서비스 중단 시 불편함을 느낄 것이라는 응답이 64.1%에 달했다.

소비자주권시민회의는 “심야배송 전면 금지는 소비자나 자영업자의 불편에 그치지 않고, 물류 종사자와 연관 사업자 등 광범위한 사회 구성원의 일상과 생계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한국중소상공인협회도 “새벽배송은 대기업만의 사업이 아니라 수많은 중소 식품제조업체, 납품업체, 농가가 이 시스템에 맞춰 성장해 온 유통 생태계”라며 반대했다.

주요 대도시는 컬리의 샛별배송 권역에 포함됐다. (사진 컬리)

당사자인 택배 기사들도 반대의 목소리를 냈다. 돈이 되는 일자리인 만큼, 함부로 없애지 말라는 거다.
쿠팡 위탁 택배기사 1만여 명이 소속된 쿠팡파트너스연합회(CPA)가 야간 새벽배송 기사 2405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긴급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93%가 ‘심야 배송 제한’에 반대했다.

많은 노동자가 병원비나 빚을 갚기 위해 새벽배송을 ‘자발적으로’ 선택하고 있다. 새벽 배송은 비교적 높은 수입을 보장해 저숙련·저임금 실업자들에게 금전적으로 좋은 선택지가 돼왔다. 새벽배송 기사 A씨는 주 6일 근무로 월 400만 원 이상의 수입을 가져갈 수 있다고 밝혔다.

이들은 “야간 노동이 2급 발암 물질이라고는 하지만, WHO는 자외선도 1급 발암 요인으로 분류한다”며
“이렇게 따지면 야외 활동도 모두 금지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지적하며, 초점은 ‘특정 시간대’ 노동 금지가 아니라 ‘과로’ 자체의 해소에 맞춰야 한다고 주장한다.

쿠팡 노조는 “새벽배송은 국민 생활에 필수적인 서비스이자 쿠팡 물류 핵심 경쟁력”이라며 “단순히 ‘야간근로를 줄이자’는 이유로 새벽배송을 금지하는 것은 산업 근간을 흔드는 조치”라고 반박했다. (사진 쿠팡)

쿠팡 노조 역시 “새벽배송은 이제 국민 삶에 없어서는 안되는 서비스로 자리 잡았고, 쿠팡 물류의 핵심 경쟁력”이라며 “단순히 ‘야간 근로를 줄이자’는 주장만으로 새벽배송을 금지하자는 것은 택배 산업의 근간을 흔드는 처사”라고 강하게 반대했다.

CPA는 오전 5시 배송을 시작하면 출근 시간 교통 혼잡과 엘리베이터 이용 문제 등으로 인해 오히려 배송이 불가능해지는 현실적 문제를 지적하기도 했다.

◇ 새벽배송 금지 추진 이면에 쿠팡 길들이기 의혹?…정치권 설전도
이번 새벽배송 논쟁은 단순한 노동 문제가 아니라, 노동계 내부의 갈등, 그리고 정치적 논쟁으로 확산됐다. 특히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와 장혜영 전 정의당 의원은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공개 토론을 벌이며 논란의 중심에 섰다. 한 전 대표는 “새벽배송을 하시는 분들은 강요를 받아서 그 선택을 한 것은 아니다. 주야간 모두 근무하는 분들이 아니라 주간과 야간 중 선택하는 분들”이라며 직업 선택의 자유를 강조했다.

반면 장 전 의원은 “직업 선택의 자유가 죽음을 각오한 일터를 선택하는 것까지 포함하느냐, 그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노동자들의 죽음의 원인이 되는 고강도 장시간 심야 노동을 최소한으로 줄여보자는 합리적인 안”이라고 반박했다.

쿠팡의 로켓배송 서비스가 가능한 생활권을 의미하는 ‘쿠세권’이란 신조어가 나왔다. (사진 쿠팡)

일부에서는 민주노총이 새벽배송 금지를 추진하는 이면에 ‘이커머스 업계 길들이기’ 의도가 있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도 제기됐다. 한 전 대표는 “새벽배송 영역은 쿠팡 위주라서 아직 민노총이 장악하고 있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실제로 민주노총은 CJ대한통운 기사 사망 사례에 대해서는 과로사라고 주장하지 않는 등 특정 회사에 대한 선택적 문제 제기를 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정치권의 찬반이 극명하게 갈리면서 정부는 조심스러운 태도를 취하고 있다. “새벽배송은 이미 필수 생활 서비스로 자리 잡았고 산업 파급력도 크다”는 이유로 사회적 대화를 통해 합리적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 문제의 해법을 찾기 위해선 새벽배송의 딜레마를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이 서비스가 어떻게 노동자의 희생 위에 구축됐는지, 그 복잡한 시스템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새벽배송은 쿠팡풀필먼트서비스(CFS) 물류센터, 쿠팡로지스틱스서비스(CLS) 배송센터(캠프), 그리고 최종 배송을 담당하는 택배 기사로 이어지는 ‘보이지 않는 컨베이어벨트’를 통해 완성된다.

쿠팡은 촘촘한 물류 인프라를 통해 새벽배송 시스템을 고도화하고 있다. (사진 쿠팡)

쿠팡의 야간 노동은 물류센터에서부터 시작된다. CFS 물류센터는 주간조와 오후조(야간근무 포함), 신선센터의 경우 심야조(밤 9시~새벽 6시)까지 운영된다. 노동자들은 밤 11시 59분까지 이뤄진 주문을 다음 날 새벽에 배송하기 위해 정해진 마감 시간(밤 9시 5분, 10시 5분, 0시 59분 등)을 짧은 시간 안에 처리해야 하는 극심한 스트레스와 노동 강도에 시달린다.

◇ 새벽배송 논란…국제 기준에 비춰볼 때 매우 취약하다는 점 드러나
물류업계 관계자는 “로켓프레시 물량을 처리하는 신선센터는 오후 5시 30분에 출근해 새벽 2시 30분까지 일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물류센터를 떠난 물건은 각 지역의 CLS 배송센터(캠프)로 향하며, 이곳에서 물품을 택배 기사별로 분류하는 ‘헬퍼(일용직)’들이 밤새도록 작업한다.

최종 단계인 택배 기사들은 배송 외 부수적인 업무로 인해 노동 시간이 더욱 늘어난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의 조사에 따르면 쿠팡 택배 노동자는 하루 평균 11.1시간 근무하며, 이 중 물품 분류에 드는 시간만 평균 2.6시간에 달한다. 헬퍼들이 1차 분류를 하지만, 택배 기사들은 다시 섞인 물건을 최종적으로 분류해야 한다.

여기에 평균 0.9시간이 소요되는 프레시백 회수, 세척, 정리, 반납 작업 역시 택배 기사의 업무다. 프레시백 회수·반납 실적은 서비스 평가지표에 반영돼 배송 단가나 계약 갱신에까지 영향이 미친다. 이러한 부수 업무와 늘어나는 물량에 따른 ‘다회전 배송’이 겹치면서 야간 고정 근무를 하는 택배 기사들의 노동 시간이 극도로 늘어나고 있다.

새벽배송의 위험을 줄이려면 더 많은 투자를 해야 하는데, 지금도 투자 비용이 상당하다는 문제가 있다. (사진 컬리)

고용노동부의 ‘뇌심혈관질환 업무상질병 판단기준’에 따르면 밤 10시~새벽 6시의 야간시간은 근로시간을 30% 가산한다. 이 방식으로 계산하면 야간 택배 기사들은 주 5일만 일해도 주 60시간, 주 6일 근무 시에는 72.6시간이 되며, 이는 뇌심혈관 질환 판단 기준인 ‘12주 평균 근무시간 60시간’을 상회하는 수치다. 이처럼 새벽배송 노동자들은 고강도 노동에 노출돼 있어, 노동계는 야간노동에 대한 규제가 꼭 필요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이번 새벽배송 논란은 한국 사회의 야간노동 규제 시스템이 국제 기준에 비춰볼 때 매우 취약하다는 점을 드러냈다. 국제노동기구(ILO)나 유럽연합(EU)의 노동시간 지침은 야간노동을 ‘자정부터 오전 5시를 포함한 연속 7시간 이상 노동’ 등으로 정의하고, 노동시간 상한을 설정하며, 무상 건강검진권, 건강상 이유 발생 시 주간근무 전환권 보장 등 보호조치를 마련하고 있다. EU 회원국 대부분은 이러한 지침을 이행하고 있다.

나아가 스웨덴, 노르웨이, 프랑스 등 일부 국가는 야간노동을 아예 ‘원칙적 금지, 예외적 허용’의 원칙 아래 운영하고 있다. 이들 국가는 야간 근무를 “대중의 필요 또는 기타 특별한 상황”이 있는 경우, 가령 의료, 대중교통, 경찰, 소방 등 필수 공공서비스에만 제한적으로 허용하고 있다. 일반적인 경제 활동이나 이윤 추구 극대화형 야간노동은 최대한 제한하려는 것이다.

CJ대한통운도 주7일 배송을 시작했지만, 상대적으로 논란은 적다. (사진 CJ대한통운)

◇ 한국의 미흡한 노동 현실…가장 시급한 것은 노동 강도 낮추는 일
반면 한국은 야간노동에 대해 근로기준법상 가산수당 지급, 임산부·청소년 야간노동 금지, 특수건강진단 실시 등 최소한의 규제만을 시행 중이다. 야간노동자를 따로 정의하지 않고, 사회적으로 야간노동을 당연하게 보는 경향이 강해 수당만 지급하면 되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노동 전문가들은 “먼저 지속적 야간노동 등을 담아 야간노동자 정의 규정을 만들고 위험에 따른 보호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한국은 아직 ILO 171호 야간노동 협약을 비준하지 않은 상태라서다. 결국 새벽배송 시스템이 한국에서만 자리 잡을 수 있었던 배경엔 이런 규제 문제도 있었던 셈이다.

물론 새벽배송을 무작정 금지하는 것은 막대한 사회적, 경제적 손실을 초래할 수 있다. 한 물류 산업 학회에서는 새벽배송과 주 7일 배송 서비스가 금지될 경우 54조 원의 경제적 손실이 있을 것이라고 추정하기도 했다.

지금도 새벽배송은 낮 배송에 비해 인건비 등 운영비가 2배가량 더 들고, 신선식품 특성에 따른 냉장·냉동 배송 시스템 구축 투자비도 많이 든다. 새벽배송의 선구자 격인 마켓컬리를 비롯해 쿠팡과 SSG닷컴 등 자금력 있는 기업만 뛰어드는 것도 투자비가 많이 들어서다. 신선식품 유통 인프라와 콜드체인 배송 시스템을 갖추기 위해선 막대한 투자비를 투입해야 하기 때문이다.

쿠팡은 2027년 한반도 최남단 남해군을 포함해 전국 5000만 인구가 주문 하루만에 식료품과 생필품을 무료배송 받을 수 있는 시대를 열겠다고 말했다. (사진 쿠팡)

결국 새벽배송의 혁신성과 편리함은 유지하되, 노동자의 건강권을 보장할 수 있는 합리적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 가장 시급한 것은 노동 강도를 낮추는 일이다. 택배 기사들이 물품 소분류, 프레시백 세척까지 떠맡는 현재의 시스템을 개선하고, 물류 인력을 보강해 업무를 나눠야 한다. 노동계에선 쿠팡이 비용 문제로 대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고 비판한다.

한국노총은 새벽배송 전면 제한에는 반대하지 만, ‘주 5일 근무제 정착’과 ‘주 최대 야간 작업시간 50시간 이내 제한’ 등 근본적인 개선 방안을 내놓았다. 최저 소득을 보장할 수 있는 보수 지급 방식을 마련해, 정해진 시간 내에 배송해야 한다는 기사들의 부담을 줄여줄 것을 제언하는 전문가도 있었다. 택배노조는 ‘새벽배송 품목 제한’을 통해 긴급하지 않은 물품은 주간에 배송하도록 하자는 대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다만 이런 모든 대안에는 비용이 수반된다. 가령 주 50시간 같은 근로시간 통제를 도입하려면 택배 단가가 올라야 한다. 장시간 노동이 표준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사회적 결단이 필요하다. 결국 소비자들이 자신의 편익을 위해 노동자 안전에 대한 비용을 기꺼이 더 지불할 용의가 있느냐의 문제로 이어지는데, 이 역시 풀기 쉽지 않다.

새벽 배송은 한국에서만 자리 잡은 독특한 비즈니스 방식이다. (사진 픽사베이

과거 GS리테일과 같이 일부 유통업체들은 막대한 비용 부담을 이유로 새벽배송 사업을 접고, 기존 점포를 활용해 효율이 높은 퀵커머스(즉시 배송) 시장으로 눈을 돌렸다. 퀵커머스 시장은 2025년 5조 원대로 급성장할 전망이지만, 이 역시 수요 예측의 불확실성과 도심형 물류센터(MFC)가 입점한 지역의 골목상권 침해 논란이라는 새로운 숙제를 안고 있다.

새벽배송 논쟁은 단순히 0시부터 5시까지 배송을 금지하느냐 마느냐의 차원을 넘어섰다. 여당인 민주당 관계자는 “연속적인 심야 노동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고용노동부가 연구용역에 착수했다”며, 이를 바탕으로 사회적 대화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새벽배송의 혁신을 멈추지 않으면서도, 그 서비스의 토대가 되는 노동자들의 삶과 건강을 보장할 수 있는 ‘조금 더 나은 세상’을 향한 논의는 이제 막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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