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 6·3 지방선거가 열린다. 우리 지역의 살림과 행정을 책임질 지방자치단체장과 지방의원을 새롭게 뽑는 날이다. 지자체는 지역민의 삶과 직결된 조례를 만들고 예산을 집행하며 행정권을 행사하는 기관이다.
주민의 실생활에 밀착된 정책을 펼치고 지역의 발전을 이끄는 것이 이들의 소임이다. 선거를 앞두고 발표되는 각 후보와 정당의 지역 맞춤형 공약이 중요한 건 이기 때문이다. 특히 누가 지자체의 수장 자리에 앉느냐에 따라 대형마트 영업 규제, 지역화폐 발행 규모, 전통시장 지원 정책이 달라진다. 지역 유통업계 전체의 지형이 흔들릴 수 있는 선거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현금성 공약이 쏟아졌다. 허태정 대전시장 후보(민주당)는 고유가 피해 지원금 20만원을 약속했고, 추미애 경기도지사 후보는 1년에 300쌍의 부부에게 ‘결혼 결심 지원금’을 지급하겠다고 공약했다. 현금 살포식 추경을 비판해온 국민의힘도 마찬가지다. 박완수 경남지사는 도민 1인당 생활지원금 10만원을, 신상진 성남시장은 41만 모든 가구에 10만 원씩 지급하는 ‘100% 안심지원금’을 내놨다.

야구와 K-팝 인기에 힘입어 돔구장 신설 공약도 범람하고 있다. 전현희 민주당 서울시장 예비후보는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자리에 ‘서울돔’을 조성하겠다고 했고, 김태흠 충남지사(국민의힘)는 천안아산역 인근에 5만석 규모 돔구장을 짓겠다고 공약했다. 광명, 구리, 청주 등지에서도 돔구장 건립 약속
이 터져 나오고 있다. 수천억원의 건설비가 드는 사업을 면밀한 수요조사나 재정 검토 없이 공약으로 던지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표심을 겨냥한 공약 경쟁 속에서 유통업계가 주목하는 것은 따로 있다. 대형마트 의무휴업일 평일 전환, 지역화폐 정책 방향, 전통시장 디지털화 지원, 물류 규제 완화 등 실제 영업 환경에 직결되는 정책들이다. 그리고 이 정책들은 과거 선거의 공약이 실제로 현실이 된 전례가 있다는 점에서 더욱 주목된다.

◇ 대형마트 주변 소상공인 ‘의무휴업일 규제’…매출 타격 입을 것 토로
대형마트 의무휴업 문제는 선거철마다 반복되는 단골 쟁점이지만, 이번은 결이 다르다. 규제의 방향 자체가 정권에 따라 급격히 오락가락해 온 전례가 축적됐기 때문이다. 2012년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으로 도입된 월 2회 공휴일 의무휴업 제도는 전통시장과 소상공인 보호를 명분으로 13년째 유지돼왔다. 그런데 이 규제의 실효성을 둘러싼 논쟁은 도입 직후부터 시작됐고, 선거 때마다 정치권의 입장에 따라 다른 방향으로 흘렀다.
2022년 지방선거를 전후해 ‘비즈니스 프렌들리’를 앞세운 당시 윤석열 정부가 의무휴업일을 지자체 재량껏 평일로 전환할 수 있도록 허용하면서 변화가 시작됐다. 대구광역시는 2022년 12월 8개 구군이 대구시상인연합회, 한국체인스토어협회, 슈퍼마켓협동조합과 상생발전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주말 의무휴업 폐지를 실행했다.
이어 2024년 1월 정부가 민생토론회에서 ‘대형마트 영업규제 개선방안’을 발표하면서 전국으로 확산됐다. 서울 서초구·동대문구를 포함해 부산까지 전국 76개 기초지자체(출점 지자체중 44%)가 의무휴업일을 평일로 전환할 예정임을 밝혔다.

그러나 정권이 바뀌면서 흐름이 다시 뒤집혔다. 윤석열 정부가 추진하던 대형마트 규제 완화 정책은 정권교체 이후 동력을 잃었고, 집권 여당 내에서 규제 법안이 잇달아 나오고 있다. 실제로 소상공인연합회 회장 출신 오세희 민주당 의원은 공휴일 대형마트 의무휴업을 다시 의무화하는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다만 더불어민주당은 이 법안이 당론으로 정해진 것이 아니라고 일축했고, 이재명 대통령의 후보 시절 공약집에도 관련 내용이 없다는 점에서 실제 입법으로 이어질지는 불투명하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의무휴업 정책은 선거가 있을 때마다 완화와 강화를 반복해왔다”며 “이번 지방선거에서 어느 성향의 단체장이 다수를 차지하느냐에 따라 또 다시 지역별로 정책이 갈릴 것”이라고 말했다. 규제 변화의 실제 효과도 논란거리다.
서울시의 회가 공개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대형마트 의무 휴업일인 일요일에 대형마트와 SSM의 소비지출은 줄었으나 전통시장이나 골목상권 소비지출은 늘지 않았고, 오히려 유통업과 온라인유통업 매출은 영업 일요일 대비 큰 폭으로 증가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규제가 e커머스만 키워준 셈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근거다. 실제로 대형마트 주변 소상공인조차 의무휴업일 규제로 주변 유동인구가 줄어 매출에 타격을 입는다고 토로하는 상황까지 벌어지고 있다.

◇ 지역화폐, 발행 규모보다 사용처 설계&재원 지속 가능성 중요
지역화폐(지역사랑상품권)는 지방선거의 단골 공약이다. 2018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이재명 경기도지사 후보가 청년배당을 지역화폐로 지급하는 정책을 내세우며 전국적 관심을 끌었고, 이후 지역화폐는 전국 지자체로 급속히 퍼졌다. 2020년에는 코로나19 긴급재난지원금의 지급 수단 중 하나로 활용되면서 지역화폐 발행 금액이 17조원을 넘어섰다.
선거 공약이 실제 정책으로 구현되고, 위기 상황과 맞물려 폭발적 으로 확대된 대표적 사례다. 그러나 효과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한 국책 연구기관의 실증분석 결과 지역화폐 발행으로 추가로 발생하는 지역의 순 경제적 효과는 사실 상 없었으며, 거의 모든 지자체가 지역화폐를 발행하는 상황에서 지자체 간 경쟁적 발행이 제로섬 게임에 가깝다는 결론이 도출됐다.
인근 지자체의 매출 감소를 대가로 자기 지자체 매출이 늘어나는 구조라는 것이다. 반면 골목상권 활성화 측면에서는 긍정적 효과가 두드러진다는 반론도 있다. 경기도 연천군의 경우 지역화폐 정책을 시범 실시한 결과 음식점을 위주로 사업체가 109개 늘어나고 인구가 4.4% 증가하는 효과를 보였다. 이번 선거에서도 지역화폐 공약은 여야 가리지 않고 등장하고 있다. 핵심은 사용처 기준이다.

현재 대부분의 지역화폐는 연 매출 10억원 이하 소규모 가맹점으로 사용처를 제한한다. 이 기준이 유지되면 골목 상권과 전통시장으로 소비가 집중되지만, 가맹점 기준이 완화되면 규모가 큰 슈퍼마켓이나 편의점으로도 소비가 유입된다. 누가 단체장이 되느냐에 따라 정책의 수혜자가 바뀌는 구조다. 중앙정부가 지역화폐 국비 지원을 줄이는 기조로 전환한 상황에서 지자체가 독자 재원으로 발행 규모를 유지하거나 늘리기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점도 변수다.
공약은 크게 내걸더라도 재원 조달의 한계가 실행을 제약한다는 것은 이미 여러 지자체가 경험한 바 있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지역화폐는 발행 규모보다 사용처 설계와 재원의 지속 가능성이 훨씬 중요한데, 선거 공약에서는 이 부분이 구체적으로 다뤄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 전통시장 디지털화, 경쟁력 키우는방향으로 무게중심 이동
전통시장 정책의 패러다임도 변화하고 있다. 대형마트 규제를 통한 간접 보호 일변도에서 전통시장 자체의 경쟁력을 키우는 방향으로 무게중심이 이동하는 추세다. 이번 선거에서도 전통시장 온라인 배송 시스템 구축, 키오스크 도입, 주차장 확충, 모바일 결제 인프라 강화 등 디지털 전환 지원 공약들이 등장하고 있다. 방향의 전환이 필요한 이유는 데이터가 증명한다.
오프라인 유통시장에서 대형마트의 시장점유율은 2015년 21.7%에서 2020년 12.8%로 약 9%포인트 급락했고, 전통시장 역시 같은 기간 13.9%에서 9.5%로 4.4%포인트 하락했다. 대형마트 규제 이후 10년 동안 대형마트와 전통시장이 함께 쪼그라드는 동안 성장한 것은 e커머스였다. 전통시장의 신용카드 단말기 도입율은 2014년 60.8%에서 2020년 71.8%로 소폭 개선에 그쳤고, POS기기 도입율은 오히려 7.1%에서 6.8%로 떨어졌다.
규제 뒤에 숨어 자체 경쟁력 강화를 게을리한 결과다. 이런 맥락에서 디지털화 지원 공약은 방향 자체
는 맞다는 평가를 받는다. 온라인 주문·새벽배송 시스템을 갖춘 전통시장이 일부 지역에서 긍정적인 성과를 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행력이 관건이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키오스크를 들여놓고 사용하지 못하거나, 온라인 플랫폼을 구축한 뒤 상인들이 운영하지 못해 유명무실해지는 사례가 지자체마다 반복되고 있다”며 “단발성 장비 지원보다 지속적인 교육과 운영지원 체계가 함께 가야 한다”고 말했다.

현행법상 대형마트는 영업 제한 시간(자정~오전 10시)에 온라인 배송도 금지된다. 쿠팡이나 컬리가 새벽배송을 24시간 운영하는 동안 이마트·롯데마트의 온라인 배송은 이 규제에 묶여있다. 업계가 e커머스와의 역차별이라고 주장하는 핵심 근거다. 이케아, 코스트코 등 외국계 유통기업은 법상 분류 차이로 이 규제를 피하고 있어 형평성 논란도 계속되고 있다.
2024년 서울시의회가 대형마트 온라인 새벽배송을 허용하는 조례 개정안을 발의했고, 이재명 정부 들어서도 당정청 협의회를 통해 온라인 주문에 대해 관련 규제를 대형마트에 적용하지 않는 예외 조항을 두는 방안을 협의하는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어느 성향의 단체장이 당선 되느냐에 따라 이 흐름의 속도가 달라질 수 있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지자체가 직접 규제를 풀 수는 없어도 시범 사업을 만들고 중앙정부를 압박하는 창구 역할을 할 수 있다”며 “온라인 배송 규제 완화가 어느 지역에서 먼저 풀리느냐에 따라 대형마트들의 물류 전략도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 면밀한 수요 조사 필수…공약 실현 가능성 냉정하게 따져봐야
과거의 사례는 지방선거 공약이 유통업계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증명한다. 의무휴업 평일 전환은 2022년 선거 이후 전국 44%의 지자체로 확산됐고, 지역화폐는 2018년 선거 공약이 2020년 17조 원 발행이라는 현실로 이어졌다. 선거 때 나온 공약을 흘려듣기 어려운 이유다. 그러나 공약의 실현 가능성을 냉정하게 따져야 할 필요도 분명하다.
돔구장 신설이나 코스트코 유치처럼 재정 여건을 무시한 공약, 면밀한 수요 조사 없이 던진 대형 인프라 약속은 당선 이후 이행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국민의힘 광주시당이 내세운 코스트코 유치 공약만 해도 코스트코의 입점 결정이 기업 판단의 문제인 만큼 지자체의 의지만으로 실현될 수 없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지방선거 공약에서 유통 분야가 실제로 체감되는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은 의무휴업 전환과 지역화폐 정책 정도”라며 “나머지는 유권자 관심을 끌기 위한 카드인 경우가 많고, 이행되는 경우는 드물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어떤 후보가 당선되느냐에 따라 내년 사업 계획 자체가 달라질 수 있는 만큼 공약의 방향과 실현 가능성을 꼼꼼히 살펴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선거는 끝나도 정책의 영향은 4년을 간다. 유통업계에는 그 4년이 생존의 시간이다.
6·3 지방선거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 유권자에게는 지역의 살림을 맡길 사람을 고르는 시간이고, 유통업계에는 향후 4년의 영업 환경을가늠하는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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