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 지출 위축과 원자재 가격 상승이 맞물린 매크로 환경 속에서 리테일 산업의 경쟁 축이 완전히 재편되고 있다. 과거의 가격 할인 경쟁이 단기적인 프로모션이나 마진 축소를 감내하는 출혈 마케팅에 의존했다면, 최근의 흐름은 공급망 고도화와 소싱 구조 혁신을 통한 ‘구조적 저가격’ 달성으로 선회했다. 소비자가 체감하는 가처분 소득이 줄어들면서 필수재인 식품과 외식 분야를 중심으로 지출 통제가 정착됐고, 이에 대응하지 못하는 플랫폼과 브랜드는 생존을 위협받는 구조적 전환기를 맞이했다.
이러한 변화는 소비자의 구매 빈도가 높은 필수 식품군에서 가장 먼저 나타난다. 가계 내부 소비를 위한 신선·가공식품과 가계 외 소비를 대변하는 외식 시장 전체에서 가격 저항선이 급격히 낮아졌다. 유통 기업과 F&B 공급업체들은 단순히 판매가를 낮추는 단선적 접근에서 벗어나, 글로벌 직소싱을 통해 중간 유통 단계를 제거하거나 온·오프라인의 구매 물량을 대규모로 통합해 바잉 파워를 극대화하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온·오프라인 경계 허문 통합 기획과 세분화된 가치 제안
리테일 기업들의 대응 전략은 소싱 다변화, 대규모 기획전, 그리고 가격 대안의 세분화라는 세 가지 축으로 요약된다. 오프라인 SSM 업계는 국내 공급망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글로벌 소싱을 대안으로 택했다. 롯데슈퍼는 고병성 조류인플루엔자 여파로 국내 계란 시세가 상승하자 미국산 신선란 9300판을 직수입해 전국 160여 개 점포에 공급하는 방식을 취했다.
이 상품의 판매가는 5990원으로 국내 기업형 슈퍼마켓의 동일 규격 평균 시세보다 35% 이상 저렴하다. 필수 신선식품의 해외 직소싱은 유통사가 공급망 위험을 분산하는 동시에 가격 결정권을 주도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이커머스 플랫폼은 대규모 물량 통합과 타깃 마케팅을 통해 집객력을 높이고 있다. 쿠팡은 와우회원을 대상으로 4000여 개 품목의 먹거리를 결합한 ‘로켓푸드페스타’를 전개하며 신선식품과 가공식품의 통합 구매를 유도하고 있다. 매일 오전 7시 최저가를 제안하는 하루 특가와 특정 시간대 균일가를 제시하는 99특가 구조는 소비자의 플랫폼 체류 시간을 늘리는 장치다.

특히 구매 금액별로 차등 할인을 제공하는 선착순 쿠폰팩과 대상, 하림, CJ제일제당 등 대형 제조사와의 전용 할인 프로모션 연계는 플랫폼의 바잉 파워가 제조사와의 협상력 우위로 이어지고 있음을 증명한다.
외식 시장에서는 초가성비 포트폴리오의 다각화가 핵심 전략으로 부상했다. 신세계푸드의 노브랜드 버거는 브랜드 슬로건에 맞춰 가격대별 니즈를 세분화한 ‘어메이징’ 시리즈로 출시 1년 만에 누적 판매량 300만 개를 기록했다.
어메이징 더블 3종의 지난달 판매량은 1분기 월평균 대비 21% 증가하며 가격 저항이 심해진 외식 소비층을 흡수하는 데 성공했다. 매월 마지막 날 진행하는 오프라인 한정 특가 프로모션 역시 가성비 제안을 고도화해 가맹점 방문 빈도를 높이는 락인 전략의 일환이다.

고물가 기조의 상시화는 유통 및 외식 업계에 비용 효율화라는 본질적인 과제를 던지고 있다. 향후 리테일 시장은 자체 브랜드(PB) 개발 고도화와 글로벌 직소싱 네트워크 확보 여부에 따라 기업의 수익성이 갈릴 전망이다. 대형 유통사는 국경을 넘어선 소싱 다변화로 국내 수급 불안정에 따른 가격 변동성을 최소화해야 하며, 이커머스 플랫폼은 제조사와의 직거래 비중을 높여 마진 구조를 개선해야 한다.
브랜드와 제조사 관점에서도 기존의 프리미엄 전략만을 고집하기 어려운 환경이다. 유통 플랫폼이 자체적인 가격 정책과 기획전으로 시장을 주도함에 따라, 제조사는 유통사와의 공동 기획 상품을 확대하거나 마진을 최소화하더라도 물량을 확보할 수 있는 대형 프로모션 참여가 필수적이다. 결국 가성비 선호 현상은 일시적인 유행이 아닌 리테일 산업 공급망 전체의 비효율을 제거하는 구조적 촉매제로 작용하고 있으며, 가격 경쟁력을 체계적으로 확보한 기업만이 장기적인 시장 지배력을 유지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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