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8월 16,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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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가 만든 변화, 임대인과 임차인 지위에 균열 현상

임의계약 해지 조항·철수 특약 등 불합리한 계약 수면 위로

대한민국은 몇 년 전만해도 ‘조물주 위에 건물주’의 시대였다. 임금은 제자리걸음, 은행이자는 제로에 가까웠지만 부동산 임대료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랐기 때문이다.

월세 수익을 따박따박 챙길 수 있는 건물주는 경외의 대상이 되곤 했다. 2016년 진행된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장래 희망 설문조사에선 건물주가 연예인에 이어 2위에 등극할 정도였다. 때론 건물주가 부럽고, 언젠간 나도 내 건물 하나 있었으면 하는 상상, 오늘날 대한민국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꿈꿔본 일이었다. 이에 과거 오랜 기간 건물주를 우리 사회의 ‘갑중의 갑’으로 보는 시선이 많았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이런 권력구조에 미세한 균열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1년 넘게 이어진 코로나19 사태로 임대료마저 제때 못 내는 상인들이 속출하기 시작하면서 부터다. 사회적 거리두기 조치로 영업이 제한된 업종을 중심으로 임대료를 연체하는 일이 곳곳에서 벌어졌다. 이에 오랜 기간 유지됐던 ‘조물주 위 건물주’란 세간의 인식과 달리 임차인이 빠져나가 임대료를 받지 못해 시름에 빠진 건물주가 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시장 환경 변화에 따라 임대인과 임차인의 입장이 뒤바뀌는 상황이 자주 나타난다. 경기가 좋아 장사가 잘 될 때는 임차인은 매장을 빼기 싫어하고, 임대인은 다른 임차인을 유치해서라도 임대료를 높이려 한다. 반대로 불경기에 장사가 잘 되지 않으면 임차인은 매장을 빼려 하고, 임대인은 임차인을 붙잡아 계속해서 임대료를 받고 싶어한다.

따라서 임대차 계약서 작성 시에 한쪽 일방에 무리한 조건을 요구하거나, 리스크를 모두 떠 넘기는 계약은 하지 않는 추세다. 위기는 누구에게나 올 수 있다는 체득으로 인해 균형 잡힌 합리적인 계약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점차 커지고 있는 것이다.

서울 명동이 코로나펜데믹으로 거리에 인적이 드물고, 공실 매장이 크게 증가했다.

◇ 공실율 증가로 조물주 위 건물주 위상 흔들려
실제로 임대투자수익률은 지난해부터 하락세를 보였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지난해 시장 임대료 변동을 나타내는 임대가격지수는 상업용 부동산 모든 유형에서 큰 폭으로 하락했다. 매출이 줄고 공실이 늘면서 소규모 상가와 중대형 상가의 임대가격지수가 각각 전년 대비 2.71%와 2.63% 하락했고, 집합 상가 임대료 수준도 전년 대비 2.27%나 하락했다.

공실율을 살펴보면 지난해 전국 중대형 상가(3층 이상 또는 면적 330㎡ 초과) 공실율은 연초 대비 1%포인트 상승한 12.7%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여덟 곳 중 한 곳이 공실인 셈이다. 소규모 상가(2층 이하이며 면적 330㎡ 이하) 공실율도 연초 대비 1.5%P 상승한 5.6%로 역대 최악이다.

이쯤되면 건물주 사이에서는 ‘우리도 힘들다’는 목소리가 터져 나올 법하다. 여기에 정부가 ‘나쁜 임대인’ 프레임을 만들고 있다는 소문까지 일면서 더욱 불만이 쌓이는 분위기다.

전북 전주 한옥마을 건물주 14명에서 시작한 ‘착한 임대인’ 운동이 지난해 전국으로 퍼지면서 임대료를 낮춰주지 않는 임대인에 대해 일부는 ‘나쁜 임대인’이라고 취급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상당수 임대인은 ‘임대료를 선뜻 낮추기 어려운 실정’이라고 토로한다. 대출금이나 은퇴 자금으로 건물을 매수한 임대인의 경우 매달 자금이 필요하긴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건물주 중에는 대출을 기반으로 소규모 임대사업을 하는 경우도 많아 예상 밖의 임대료 손실이나 중단으로 이자를 갚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일산의 한 중소형 상가를 보유한 임대인은 “임차인 월세를 받아야 은행에 이자를 낼 수 있는 입장인데, 임대인의 사정은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것 같다”면서 “어렵게 결정하고 마련한 자산인데 혹여 은행에 넘어갈까 걱정이 크다”고 털어놨다. 그럼에도 건물주인 임대인의 타격은 크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월세는 못 받더라도 보증금이 있어 일정기간 동안은 보증금이 임대료를 대신할 수 있기 때문이다.

통상 임대차 계약은 5년을 맺는다. 한 점포에서 5년간 안정적으로 영업하기 위해서다. 장사가 잘되는 경우 안정적으로 계약 기간 동안 운영이 가능하지만 그 반대로 장사가 안되는 경우에도 5년 동안 가게를 쉽사리 정리할 수가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임대인은 한번 계약하면 그 기간동안 공실 우려 때문에 현재 임차인이 나가는 것을 싫어한다. 공실이 되는 것보다 지금의 임대차 계약을 유지하면서 월세를 받는 것이 가장 안정적이기 때문이다.

결국 처음 임대차 계약 시에 조건을 잘 살펴보고, 꼼꼼하게 주변과 비교한 후 신중하게 결정하는 게 필요하다. 중간에 해지하면 그만큼 리스트가 발생해 임대인과 임차인 모두에게 손해가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계약서에 명기한대로 계약 기간을 지키는 것이 사회 활동의 기본이고 약속이다. 또 해당 임차인이 나가면 몇년 전 높은 임대료 수준으로 새 임차인을 구하기 어렵다는 문제가 있다. 임차인들이 계약 해지를 요구하더라도 좀처럼 들어주지 않기 마련이다. 결국 계약기간은 정해져 있고, 임대인은 이 기간만큼은 어떻게든 임대수익을 얻으려 하기 때문이다.

◇ 코로나19 확산으로 임차인 지위 상승

서울 명동역 인근에 2011년 11월 개장한 유니클로의 명동중앙점은 글로벌 플래그십스토어였지만 올해 초 폐점했다. 유니클로는 불매 운동과 코로나 여파로 매출이 한창 때의 반토막이 나고 유통망도 50여개 가까이 줄었다.

하지만 애초 계약 관계를 깨는 변칙 사례들이 속속 등장하기 시작했다. 가령 유니클로의 예를 들어보자. 2004년 말 한국 시장에 진출한 유니클로는 ‘SPA 브랜드’라는 개념을 국내에 알리면서 승승장구했다. 한국 진출 첫해인 2006년만 해도 매출이 205억원에 불과했지만 매년 평균 60% 이상 성장해 SPA 브랜드 선두 자리를 굳혔다.

‘히트텍’, ‘에어리즘’등의 인기 제품을 앞세워 2015년도에 처음 매출 1조를 넘어 2018년엔 1조5000억원을 기록하는 등 2019년까지 5년 연속 1조원 이상 매출을 달성했다.

심플한 디자인과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를 대표하는 ‘패스트 패션(SPA)’ 브랜드로 시장에 성공적으로 안착한 것이다. 이때만 해도 서울과 수도권의 웬만한 핵심 상권에서는 유니클로 없는 곳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전국 곳곳에 매장을 열었다. 그만큼 유니클로는 전국 상권과 상업용 부동산 시장의 파워 브랜드로 성장했었다.

한 부동산 컨설팅 관계자는 “과거 쇼핑몰 성공 조건 중 1순위는 유니클로 같은 SPA 브랜드가 입점해 있느냐 없느냐에 의해 결정됐다. 하지만 이들 SPA 브랜드 콧대가 워낙 높아지다 보니 임대료를 대폭 깎아 달라거나 여러 특약을 요구해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입점시키는 경우가 흔했다. 웬만한 프리미엄 브랜드보다 SPA 브랜드 지위가 더 높았다고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2019년부터 벌어진 ‘노노재팬’ 운동이 유니클로의 성장세에 직격탄을 날렸다. 2019년 7월 일본의 수출규제가 시작된 뒤, 국내 진출한 여러 일본 기업 가운데 유니클로가 주요 불매 대상으로 지목을 받고 큰 타격을 받았다.

결국 유니클로의 매출은 직전 연도대비 반토막이 났다. 2020년 회계연도(2019년 9월 1일~2020년 8월 31일)에 매출이 6297억원으로, 이전 연도와 비교하면 54% 감소했다고 공시했다. 영업이익은 884억원의 영업손실을 내며 적자 전환했다. 2019년 회계연도에 영업이익이 1994억원이었던 걸 고려하면 이 회사 영업이익은 2800억원 이상 감소한 셈이다. 이로 인해 유니클로는 대규모 폐점 결정을 내렸다. 당장 전국의 홈플러스에 입점한 유니클로 매장이 순차적으로 문을 닫았다. 롯데백화점 상인점과 광주점에 입점한 유니클로 매장도 영업하지 않는다.

현재 국내 유니클로 매장은 143개만 남았다. 지난 2019년 말을 기준으로 187개 매장이 있었지만, 1년 남짓 기간동안 40개 넘게 문을 닫은 셈이다.

유니클로의 미래는 여전히 밝지 않다는 게 지배적이다. 유니클로는 ‘NO 재팬’의 상징이 되면서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한국인들이 기피하는 브랜드가 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남아있는 매장도 언제 철수를 결정할지 모른다는 것이다. 이처럼 방을 빼거나 뺄 위기에 놓인 유니클로는 한때 잘 나갔던 당시의 덕을 톡톡히 볼공산이 크다.

앞서 언급했듯, 임대차 계약에서 임차인은 ‘갑’, 임대인은 ‘을’이다. 임차인이 상가를 임차해 영업을 하는 경우 경기가 호황일 때는 더 오랫동안 영업을 하고 싶고, 이때는 법에 따라 보장되는 재계약 시 갱신요구권 등을 적절히 활용하면 된다. 그런데 반대로 경기가 나쁘거나 매출이 나오지 않는 극심한 불황기엔 계약을 해지하는 게 임차인 입장에선 바라는 사항이다.

◇ 유니클로가 요구한 특약 ‘임의계약 해지 조항’ 건물주에 위협

유니클로는 임대차 계약 시 원하면 언제든 매장을 철수할 수 있다는 ‘임의계약 해지 조항’을 특약으로 요구해 임대인들로부터 비난을 받고 있다.

하지만, 임대차 계약 해지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대부분은 원래의 계약기간이 종료될 때까지 기다려 계약을 해지하는 게 일반적인 거래다. 계약 기간이 만료된 경우는 당연히 임차인이 갱신 요구권을 행사하지 않는 다면 해지가 곧바로 이뤄진다. 최근 개정된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은 장사를 더 하고 싶을 때 할 수 있도록 ‘최장 10년의 갱신요구권’이 보장되고 있다.

임대료 연체 등의 사유로 계약을 해지할 수도 있지만, 소송 등으로 번져 사건이 복잡해질 수 있다. 결국 임대인이 해지를 원하지 않는 경우, 임차인은 임의로 계약을 해지할 수 없는 것이다.

다만 계약서에 따로 특약을 넣으면 해지가 가능하다. 보통 특약 내용은 “임대인과 협의하여 임차인이 원할 경우 6개월 치의 월세를 미리 주면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는 식으로 진행이 된다. 어떻게든 임대기간이 남은 부분에 대해 보상하란 의미의 패널티다.

그런데 유니클로의 임대차 계약서엔 특별한 조항이 있다. 바로 임차인이 원할 경우, 아무런 패널티 없이 임대차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는 ‘임의계약 해지 조항’이다.

보통 일반적인 임대인이라면 임차인만을 위해 자신에게 불리한 특약을 넣는 걸 순순히 받아들이지 않는다. 하지만 상대가 유니클로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대형 쇼핑몰과 백화점 등에서 서로 모시기에 나설 정도로 최고의 대접을 받았다.

수익형 부동산 업계 관계자는 “유니클로의 경우 일본 본사에서 정한 임대차 계약서대로 진행하는데, 보통 십수장에 그치는 임대차 계약서와 달리 각종 위험들을 회피할 수 있는 다양한 특약들이 첨부돼 있다”면서 “유니클로의 임대차 계약서 두께가 백과사전처럼 두꺼운 이유가 유니클로 입장 일변도의 계약 내용이 엄청나게 들어가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임대인 입장에선 ‘임의계약 해지 조항’으로 인해 유니클로가 계약 만료 이전에 자신이 원할 때 철수할 경우, 남은 기간 못 받게 되는 임대료 외에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한다.

유니클로의 맞춤형 매장 설계가 유니클로에 최적화돼 있다 보니 타 브랜드는 이 매장을 사용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유니클로의 외관과 실내 인테리어엔 몇 개의 공통점이 있다. 층고도 일반 매장보다 높아야 하고, 화장실 위치도 본사가 정해준 가이드라인 대로 있어야 한다. 이처럼 유니클로만이 사용할 수 있는 특화된 공간인 것이다.

수익형 부동산 관계자는 “지금도 유니클로 본사에서는 한국 내 신규 매장 오픈 계획을 좀처럼 열어주지 않고 있다”면서 “만약 유니클로 본사가 고민 끝에 한국 사업 방향을 영업 지속이 아닌 점진적 축소로 결정하면 이어질 매장 철수로 인해 타격을 입는 건물주가 적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 임차인으로 중심 이동, 균형 잡힌 부동산 시장 기대

신세계그룹은 삐에로쑈핑과 부츠 등 브랜드 중단으로 매장 철수를 단행할 때 건물주와 해지조율을 잘 진행해 별다른 잡음 없이 계약 종료를 이끌어 낸 것으로 유명하다

이렇게 입지가 역전된 임대인과 임차인의 지위는 비단 유니클로만의 얘기가 아니다. 유니클로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글로벌 SPA 브랜드 자라 역시 본사에서 만든 임대차 계약서를 토대로 건물주와 임대차 계약을 맺고 있다. 이 계약서에도 임차인인 자라의 위험을 회피할 수 있는 각종 특약들이 명시돼 있다.

어쩌면 임차인이 자신에게 유리한 특약을 넣고 계약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라고 할 수 있지만 발생할 수 있는 리스크를 일방적으로 임대인에게만 씌운 다면 이것 또한 불합리한 계약으로 충분히 볼 수 있다. 요즘 세계적 흐름은 갑과 을의 수직 관계가 아닌 수평 관계를 통한 비즈니스가 바람직한 것으로 인정받고 있다.

자연 훼손, 동물 학대, 노동력 착취 등 반 사회적 비즈니스를 펼치면 지탄의 대상이 되는 것처럼 약자의 어려움을 외면하고, 리스크를 떠 넘기는 것 또한 지탄의 대상이 되기에 충분하다. 최근 들어 많은 브랜드들이 ‘임의계약 해지 조항’을 넣는 것을 요구하고 있다.

한쪽 기업 일변도의 임의계약 해지 조항이 아니더라도, ‘철수특약’까지는 꼭 넣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서로 협의한 패널티를 감수하더라도 원할 때 철수를할 수 있는 조항이다. 이 조항을 넣지 않으면 임차인이 계약을 맺지 않는 경우가 종종 나타나고 있다.

물론 임차인마다 다르긴 하다. 가령 국내에서 여러 유통채널을 전개하고 있는 신세계그룹의 경우 깔끔한 임대차 계약 처리로 정평이 나 있다. 이 회사는 몇 년사이 야심작으로 내 놓은 부츠와 삐에로쑈핑이 실적 부진 끝에 브랜드를 중단했다.

임대료가 만만치 않은 서울 주요 상권 건물에 임대차 계약을 맺고 영업을 펼쳐왔지만, 브랜드 중단으로 결국 계약 기간 만료 이전에 매장 철수를 단행한 것이다. 이때 신세계그룹 소속 브랜드들은 임대인과 협의를 진행해 불협화음 없이 임대차 계약 해지를 잘 마무리했다.

 

이마트는 서울 명동에 슈즈멀티숍 페이리스를 열었지만, 매출 부진으로 조기에 철수했다. 하지만 남아 있는 계약 기간 동안 임대료를 지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마트 또한 과거 전개했던 슈즈멀티숍 페이리스 명동점의 경우 계약기간이 남아 있는 상태에서 만료 이전에 매장을 철수했지만, 남은 계약 기간 동안 임대료를 지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부동산 업계 관계자는 “코로나19 시대에 산업과 재계만 뉴노멀을 겪는 게 아니다”면서 “부동산 임대차 시장도 코로나 이전과 이후로 나눠지면서 크게 바뀌게 될 것으로 보인다. 향후 시장 상황에 따라 주객이 바뀌고, 갑과 을의 지위가 바뀔 수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현명한 임대차 계약이 필요해 보인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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