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패션협회(회장 성래은)가 개최한 ‘2025 패션포럼’이 화제를 낳고 있다. 지난 7월 16일 영원무역 명동빌딩에서 협회 회원사 2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포럼에서 강연자로 나선 송길영 작가의 강연 내용이 참석자들에게 신선한 충격과 인사이트를 제공했기 때문이다.
송길영 작가는 강연을 시작하면서 “현재 전 세계가 한국에서 나온 것을 좋아하기 시작했다”며, “이는 패션업계에 예상치 못한 새로운 기회가 온 것”이라고 진단했다. 송 작가는 지난 30년간의 경험에서 지금과 같은 현상은 처음이라며, 한국적인 문화와 라이프스타일이 글로벌 시장에서 새로운 주목을 받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특히 개인 관광객(FIT)의 증가와 일상 속 한국 문화 콘텐츠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국내 기업들이 이러한 변화를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개인 관광객(FIT) 시대의 도래에 대해 송 작가는 과거 단체 관광 위주에서 개인 관광객(FIT: Foreign Independent Tour) 중심으로 관광 트렌드가 변화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FIT는 과거 5명씩 움직이던 중국 관광객이 2명으로 줄고, 젊은 여성이 주도하며, 쇼핑보다는 디지털 앱을 활용하고, 일주일에서 9일까지 체류 기간이 길어졌다는 특징을 가진다. 이들은 면세점 대신 다이소나 올리브영을 찾고, 그룹 투어 형태의 숙박 대신 롯데호텔과 같은 시내 호텔을 선호한다. 이러한 변화는 특히 길거리 상점과 한국적인 일상 공간에 유리한 국면을 만들고 있다고 송 작가는 분석했다.
‘콘텐츠’가 이끄는 새로운 관광 명소, 즉 전 세계 관광객들은 더 이상 박제된 전통문화가 아닌 ‘지금의 한국 문화’를 원한다고 제언했다. 또한 송 작가는 일본 애니메이션 ‘너의 이름은’이 실제 골목 풍경을 담아 해당 장소가 관광 명소가 된 사례를 들며, 한국 역시 ‘골목’을 팔 수 있는 시대가 왔다고 강조했다. 이는 거대한 기념물이 아닌 일상적인 공간을 콘텐츠와 연결할 때 가능하다는 덧붙여 설명했다.
<>드라마 ‘선재 업고 튀어’ 사례: 시청률은 높지 않았지만 전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얻으며 드라마 촬영지인 수원의 ‘대문’까지 관광객들이 찾게 만들었다. 이는 건물이 아닌 콘텐츠가 중요하며, 한국은 연간 100개 이상의 드라마를 제작하며 이미 풍부한 콘텐츠를 가지고 있음을 시사한다.
<>관광객들이 찾는 것: 경복궁, 남산타워, 한강 유람선, 태권도 시범, 부채춤 등 한국인이 평소 가지 않는 곳이 아닌, K-드라마, K-패션, K-푸드, K-팝, 한국 배우(특히 남성 배우), 스트리트 푸드, 축제(워터밤) 등 ‘지금 한국인이 향유하는 삶’을 경험하고 싶어 한다.
<>숨겨진 명소의 부상: 황령산, 달마지 공원(서울 금호동), 인천 송도 등 야경 명소나 은평구 한옥마을처럼 한국인이 잘 가지 않는 곳들이 인기를 얻고 있다. 또한 해외 관광객들에게는 수도 서울에 자리한 북한산의 하이킹 체험이 산이 없는 전 세계 수도에서는 경험하지 못하는 것으로 인식돼 인기를 얻고 있다. 특히 수원 스타필드 같은 대형 실내 공간이 방문객들이 올린 틱톡의 숏폼 영상을 통해 전 세계에 퍼지며 새로운 명소가 된 것은 콘텐츠의 힘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한국적인 것’의 재정의와 프리미엄화’
송 작가는 ‘한국적인 것’에 대한 인식이 변화하고 있다고 역설했다. 과거 ‘가성비 좋은 물건’이나 ‘빠르게 만드는 곳’으로 인식되던 한국 제품이 이제는 ‘퀄리티 좋고 프리미엄한 것’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는 것이다.
<>’넥스트 불닭’의 가능성: 한국인이 이미 일상적으로 소비하는, 그러나 외국에는 없는 것들이 글로벌 시장에서 주목받을 가능성이 높다. 아이스 아메리카노(한국 스타벅스 판매 1위), 짜장면, 볶음밥(한국인의 디저트) 등이 그 예시다.
<>K-푸드의 하이엔드화: ‘한식’은 과거 20불 내외의 저렴한 음식이라는 인식을 넘어, 밍글스, 옥동식, 권숙수 등 미쉐린 스타 레스토랑을 통해 500불 이상의 고가 ‘퀴진’으로 격상되었다. 고추장, 된장, 김치 등 한국의 식재료가 ‘레드 페이스트’가 아닌 고유명사로 인식되며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메이드 인 코리아’의 가치 상승: BBQ 팬과 같이 한국에서만 소비되던 형태의 제품들이 ‘메이드 인 코리아’ 라벨과 함께 비싸게 팔리는 현상은, 한국적인 것이 프리미엄 가치를 지닌다는 인식의 변화를 보여준다. 이는 더 이상 저가 생산에 매달릴 수 없는 한국의 현실에서 ‘한국적인 것’을 명확히 정의하고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것이 중요함을 시사한다.
<>’문화’ 판매의 중요성: 송 작가는 재료나 물질을 넘어 ‘문화’를 팔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물질은 3D 프린터나 스마트 팩토리 등으로 무한 생산이 가능하므로, 기업들은 이제 ‘생산’이 아닌 ‘창의’와 ‘문화적 헤리티지’를 통해 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다.
매장의 역할 변화와 마케팅 기회 이러한 변화 속에서 매장의 역할 또한 중요해지고 있다. 과거에는 판매 공간이었던 매장이 이제는 ‘쇼룸’이자 ‘마케팅 매개체’로 기능하며, ‘인스타그램어블’한 경험을 제공하는 공간으로 진화했다.
젠틀몬스터와 같은 플래그십 스토어의 성공 사례처럼, 외진 곳에 위치하더라도 독창적인 경험을 제공하는 공간이 중요해졌다는 분석이다. 특히 젊은 여성 관광객들이 한국 방문 경험을 촬영하여 온라인에 공유함으로써 ‘소비자가 앰버서더’가 되는 효과를 낳고 있어, 국내 기업들은 이러한 오프라인 공간을 글로벌 마케팅 채널로 활용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한국의 카페 문화가 인스타그램 명소로 떠오른 것도 같은 맥락이다.
송길영 작가는 현재 한국이 인구 감소로 인한 내수 시장 위축이라는 도전과 마주하고 있지만, 전 세계적으로 K-컬처와 한국 라이프스타일에 대한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황금 같은 기회’를 맞이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국내 기업들은 이러한 흐름을 놓치지 말고, 해외 소비자의 시선으로 ‘가장 한국적인 것’을 발견하고 이를 프리미엄 문화 콘텐츠로 승화시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