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수 시장이 포화 상태에 이른 국내 백화점업계가 K패션을 앞세워 일제히 해외로 눈을 돌리고 있다. 롯데백화점이 지난달 21일 K패션 브랜드의 해외 진출을 지원하는 플랫폼 ‘롯데백화점 넥스트랩’을 론칭한다고 밝히면서, 이미 비슷한 사업을 운영해온 현대백화점 ‘더현대 글로벌’, 신세계백화점 ‘신세계 하이퍼그라운드’와 함께 국내 백화점 빅3가 모두 K패션 수출 플랫폼을 갖추게 됐다. 국내 신규 출점이 어려운 상황에서 K콘텐츠 경쟁력이 세계적으로 높아진 틈을 타, 백화점들이 국내 브랜드의 ‘해외 진출 전진 기지’를 자처하고 나선 모습이다.
세 회사가 내세우는 사업 구조는 공통적이다. 개별 브랜드가 혼자서는 감당하기 힘든 통관, 물류, 현지 인테리어, 마케팅, 리테일러 협상 등을 백화점이 대신 맡아주고, 그 대가로 백화점은 신흥 브랜드를 조기에 발굴해 육성하는 ‘인큐베이터’이자 새로운 해외 사업 모델을 확보한다. 국내 백화점 3사 모두 K패션·K뷰티의 해외 수요가 커지는 흐름을 놓치지 않으려는 전략인 셈이다.

◇ 롯데백화점, 해외 직영 점포와 연계한 ‘투트랙’ 전략
롯데백화점 넥스트랩은 성장 가능성이 높은 K패션 브랜드를 발굴해 해외 진출을 돕는 플랫폼이다. 수출 통관부터 인테리어, 마케팅까지 개별 브랜드가 단독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과정을 롯데백화점의 인프라와 노하우로 지원한다. 롯데백화점은 올해 초 신설한 사내 조직 ‘넥스트콘텐츠랩’을 통해 이 사업을 준비해왔다.
가장 큰 차별점은 국내 백화점 중 유일하게 해외에서 백화점을 직접 운영한다는 점이다. 이를 활용해 해외 리테일러와 제휴한 ‘팝업’과 자사 해외 직영 점포를 통한 ‘정식 입점’을 함께 추진하는 투트랙 전략을 짰다. 성과가 우수한 브랜드는 팝업과 인큐베이팅을 거쳐 베트남 등 해외 직영 점포에 정식 입점할 수 있도록 연결하는 선순환 구조가 핵심이다.

첫 무대는 2023년 문을 연 롯데의 베트남 세 번째 점포 ‘롯데몰 웨스트레이크 하노이’다. 올해 누적 매출 1조원 달성이 유력한 이 점포에서 K스트리트웨어 브랜드 ‘무센트’가 7월 24일부터 시작해 이달 4일까지 12일간 첫 팝업을 연다.
이어 ‘세터’, ‘노매뉴얼’ 등이 가세해 연말까지 총 5개 브랜드가 팝업을 이어간다. 하반기에는 일본 도쿄·오사카 상권으로도 팝업을 확대한다. 내년에는 넥스트랩을 상설형 K패션 팝업 전문관으로 격상시켜 하노이와 일본 등지에 정규 매장 형태의 전용관을 조성할 계획이다.


이혁 롯데백화점 넥스트콘텐츠랩 1팀장은 “국내 백화점 중 유일하게 보유한 해외 점포 인프라와 그간 쌓아온 해외 역량을 총동원해 롯데백화점이 유망 K패션 브랜드가 글로벌 브랜드로 성장할 수 있는 든든한 바탕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넥스트콘텐츠랩은 넥스트랩 외에도 K콘텐츠와 랜드마크 공간 기획, IP 사업 등 기존 유통업의 틀을 벗어난 사업 모델을 함께 개발하는 조직이다. 롯데백화점이 이미 베트남 3개, 인도네시아 1개 등 해외 4개 점포를 직접 운영하고 있는 만큼, 이 인프라와의 시너지를 극대화하는 사업 모델을 계속 개발한다는 방침이다.

◇ 현대백화점, 오프라인·온라인 투트랙으로 일본·대만 공략
현대백화점은 ‘더현대 글로벌’을 앞세워 패션·뷰티·엔터테인먼트 등 국내 브랜드를 발굴해 해외 유통사 매장에 입점시키는 방식으로 해외 진출을 지원한다. 통관과 수출입, 현지 판매, 해외 리테일러와의 협상까지 전 과정을 현대백화점이 도맡아 브랜드의 부담을 낮춘 것이 특징이다.
온라인에서는 최근 일본 온라인 패션몰 ‘누구’(NUGU)에 ‘더현대 전문관’을 열고 450여개 K패션 브랜드를 선보였다. 월간 활성 이용자 200만명 이상, 이용자의 70%가 20대인 이 플랫폼에 현대백화점은 지난해 운영사에 300억원을 전략 투자하며 발판을 마련했다.

오프라인에서는 지난해 9월 도쿄 파르코 시부야점에 정규 매장을 연 데 이어, 지난달 10일 도쿄 오모테산도 복합쇼핑몰 ‘도큐플라자 오모카도’ 3층에 더현대 글로벌의 첫 플래그십 정규 매장 ‘더현대’(THE HYUNDAI)를 열었다. 국내 백화점이 일본 핵심 상권에 대형 플래그십 매장을 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현대백화점은 7월 26일 기준 오픈 이후 2030세대 방문객이 이전보다 5배 이상 늘고 매출도 목표치를 30% 이상 초과 달성 중이라고 밝혔다.
‘코이세이오 038’ 펌킨 스커트를 비롯해 ‘더블러버스’ 선글라스, ‘히에타’ 타일라 백, ‘스탠드오일’ 미오 버킷백 등 주요 K패션 아이템은 오픈 첫 주말 만에 완판돼 2주 내 현지 재입고를 서두르고 있다. 공식 앰버서더 ‘TWS(투어스)’ 포토카드 증정 이벤트에는 오픈런이 벌어졌고, 관련 SNS 영상 누적 조회수는 2000만뷰를 넘었다. 중국·대만 등 아시아 유통사 관계자 60여명도 매장을 찾아 벤치마킹에 나섰다.

박동용 현대백화점 더현대 글로벌 팀장은 “패션과 라이프스타일 트렌드에 민감한 현지 2030세대와 K팬덤 고객이 몰리면서 주말마다 오픈런이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대만에서도 지난해 10월 신광미츠코시 백화점에서 두 달간 팝업을 열어 누적 매출 12억원을 기록했다. 현대백화점은 이번 흥행을 발판 삼아 2030년까지 일본, 대만, 홍콩 등 아시아 주요 거점에 10여개 플래그십 매장을 구축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유희열 현대백화점 패션사업부장(상무)은 “더현대(THE HYUNDAI)의 성과를 발판 삼아 향후 일본은 물론, 대만, 홍콩 등 아시아와 유럽 시장까지 글로벌 확장에 속도를 낼 계획”이라고 말했다.

◇ 신세계백화점, 가장 먼저 시작해 3년간 168개 브랜드 지원
세 회사 중 가장 먼저 움직인 곳은 신세계백화점이다. 2023년 K패션 신진 디자이너의 해외 수출을 지원하는 온라인 B2B 플랫폼 ‘케이패션 82’로 시작해 이후 ‘신세계 하이퍼그라운드’로 이름을 바꾸고 사업 영역을 K뷰티, F&B까지 넓혔다. 안전 결제, 해외 물류 대행, 현지 시장조사부터 계약·인테리어·운영까지 지원하는 것이 특징이다.
2024년 10월 일본 오사카 한큐우메다본점에서 국내 패션 브랜드 14곳과 11주간 릴레이 팝업을 열며 해외 진출을 본격화했다. 이후 프랑스 파리 쁘렝땅백화점 K뷰티 팝업, 지난해 10월 도쿄 시부야109 ‘시부야 패션 위크’ 연계 팝업(무센트·몽세누 등 7곳, ‘보고 바로 사는’ 모델), 11월 방콕 센트럴월드 K뷰티 팝업(15곳), 올해 4월 베트남 하노이 쇼케이스(쿤달 등 8곳)로 무대를 넓혔다.
지난달에도 방콕 센트럴백화점에서 세 번째 태국 팝업 ‘K-Experience Fair’를 진행했다. 신세계백화점에 따르면 최근 3년간 하이퍼그라운드를 통해 해외 시장을 경험한 국내 브랜드는 총 168개에 달한다. 박주형 대표는 “앞으로 미국, 대만, 일본 등으로 지원 범위를 넓히겠다”고 밝혔다.

◇ 같은 목표, 다른 방식… 업계는 ‘시너지 기대’
세 플랫폼은 해외 진출 부담을 낮춰준다는 목표는 같지만 방식은 조금씩 다르다. 롯데백화점은 해외 직영 점포를 보유한 유일한 사업자라는 강점을 살려 팝업에서 정식 입점까지 이어지는 구조를 내세운다. 현대백화점은 온라인 플랫폼 지분 투자와 오모테산도 플래그십 매장을 결합한 투트랙으로, 오픈 초반부터 흥행몰이에 성공하며 성과를 입증하고 있다. 신세계백화점은 세 회사 중 가장 오랜 기간 가장 많은 국가와 브랜드를 아우르며 태국·일본·유럽·베트남 등지에서 팝업 트랙레코드를 쌓아왔다.
백화점업계 관계자는 “국내에선 신규 출점도 쉽지 않고 내수가 포화 상태이기 때문에 해외에서 다양한 돌파구를 모색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업계에서 진행하는 모든 모델이 업체로서도 수익성 부담도 있겠지만, K브랜드가 경쟁력을 얻는 상황에서 국내 브랜드도 더 주도권을 가질 수 있고 백화점도 육성 플랫폼으로서 기능하는 시너지를 기대해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팝업과 플래그십 매장 운영에 들어가는 초기 비용, 현지 리테일러와의 관계 관리, 브랜드별 성과 편차 등은 세 회사 모두가 풀어야 할 과제로 꼽힌다. 그럼에도 국내 백화점들이 앞다퉈 ‘해외 수출 전진 기지’를 자처하고 나선 것은 K패션·K뷰티·K컬쳐의 글로벌 수요가 백화점업계의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떠올랐다는 방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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