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정부가 잇단 경기 부양책을 발표하면서 중국 내 경기 회복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동시에 한국의 중국 소비재 업종들도 수혜를 입을 것으로 점쳐진다. 화장품과 여행, 엔터테인먼트·음식료 등이 대표적이다. 최근 중국 정부는 국채 발행을 대폭 늘리기로 했다.
란포안 중국 재정부장은 “중앙정부가 부채를 늘릴 수 있는 상대적으로 큰 여지를 갖고 있다”며 국채 발행 계획을 밝혔다. 저소득층에 보조금을 제공하고 침체된 부동산 시장을 지원하기 위한 목적이다. 다만 구체적인 발행 규모는 제시하지 않았다.
지난 9월 말에는 은행 지급준비율을 0.5%포인트 내리고, 정책 금리·부동산 대출 금리를 인하했다. 은행이 지급준비금으로 보유하고 있어야 할 돈을 줄여주면, 시중에 더 많은 돈이 공급된다. 인민은행은 인하 효과로 시중에 1조 위안(약 190조원)의 돈이 더 풀릴 것으로 예측했다. 중국은 시장 유동성 상황을 보고 시기를 택해 지준율을 추가 인하할 수 있다고도 했다.

아울러 정책금리인 7일물 역환매조건부채권(역레포) 금리도 0.2%포인트를 인하할 방침이라고 발표했다. 이 금리는 단기 기준금리 역할을 한다. 현재 중국은 청년실업률이 치솟으면서 경기 침체에 시달리고 있다. 이에 따라 경기 부양과 내수 회복을 위한 정책이 필요했는데, 대규모 유동성 공급이라는 부양 카드를 꺼내든 것이다.
중국이 경기 부양에 나선 건 금년 5% 성장을 달성하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중국 3분기 국내 총생산(GDP) 성장률이 4%대 중반에 그치며 연간 5% 성장 목표 달성에 의문 부호가 달렸다. 중국 경제는 연초 호조를 보였으나 이후 내수 부진을 겪으며 디플레이션 위기에 시달리고 있다.
국경절을 전후로 정부 차원에서 잇단 부양책을 발표한 만큼 4분기 경기 흐름이 관건으로 지목된다. 중국 경제 회복의 가장 큰 걸림돌은 부동산이다. 부동산과 관련한 건설·시멘트·철강산업 등은 중국 연간 국내총생산(GDP)의 약 3분의 1을 차지하고 있다. 부동산시장이 장기 침체에 빠지면서 관련 산업 역시 크게 위축돼 있는 상태다. 무엇보다 부동산시장 침체는 소비 등 내수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중국 가계 자산의 65% 이상이 부동산이기 때문이다.

소비를 비롯한 내수도 부진을 이어가고 있다. 올해 들어 중국 소매판매는 연휴기간만 ‘반짝’ 좋아지는 흐름을 보였다. 월간 소매 판매 추이를 보면 춘제(중국 설) 연휴가 끼어 있는 1~2월에는 1년 전보다 5.5% 증가했지만 3월(3.1%)과 4월(2.3%)에는 그 폭이 크게 둔화됐다.
노동절 연휴가 있는 5월에도 3.7% 올랐다가 다시 6월(2.0%) 7월(2.7%) 8월(2.1%)에는 낮아졌다. 중추절 연휴가 있던 9월에는 3.2%로 소폭 반등했다. 게다가 중국 경제의 한 축을 담당하는 수출마저 최근 나빠지고 있다. 미국과 유럽 연합(EU) 등이 중국을 상대로 잇달아 고율 관세를 부과하고 있어 수출 전망이 갈수록 어두워지고 있다.
◇ 앞으로 눈여겨봐야 할 중국 수혜주들 어디일까

중국의 내수 침체는 우리나라 경제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중국은 1992년 수교 이후 함께 발전을 해왔을 만큼 한국의 대표적인 무역 흑자국이었기 때문이다. 중국은 불과 6년 전인 2018년만 해도 연간 흑자 규모가 500억 달러를 넘어섰다. 모든 국가 중에서 가장 많은 흑자를 낸 국가다. 이후 2021년까지에도 200억 달러가 넘는 흑자를 내며 무역 흑자국 2~3위를 유지했다. 그러나 2022년에는 흑자액이 12억 달러로 급감했고, 흑자국 순위도 22위로 밀렸다.
지난해에는 급기야 무역적자 상대국으로 바뀌었다. 작년 대중국 무역적자는 무려 180억 달러에 달한다. 수출 1248억1300만 달러(-4.4%), 수입 1428억4900만 달러(-7.6%)다. 한국이 대중국 교역에서 적자를 기록한 것은 30여 년 전인 1992년 이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올해에도 마찬가지다. 2월을 제외하고 지속해서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벌써 주가가 움직이는 산업도 있다. 바로 한국 뷰티 산업이다. 경기가 살아나면 중국에서 한국 화장품 브랜드가 다시 약진할 가능성이 높다는 이유에서다.
특히 K뷰티 양대 산맥으로 불리는 LG생활건강과 아모레퍼시픽그룹은 중국 매출 비중이 높은 덕분에 더 민감하게 반응했다. 9월 25일 아모레퍼시픽은 전일 대비 1만2500원(9.04%) 상승한 15만700원에 거래를 마쳤다. 시가총액은 하루 만에 7000억원 이상 급증해 8조8149억원이 됐다. LG생활건강의 주가 상승률도 5.35%를 기록했고, 아모레G의 주가도 4.17% 올랐다. 코스맥스 주가도 5.94% 오르는 등 화장품 업종이 고르게 강세를 보였다.

외국인 투자자의 국내 화장품주 투자도 늘어났다 (지난 9월 26일 기준). 아모레퍼시픽의 외국인 보유율은 32.14%로, 3년 만에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한국콜마와 LG생활건강 우선주의 외국인 보유율도 크게 상승했다. 외국인은 지난 9월 아모레퍼시픽을 1960억원 넘게 순매수했고, 한국콜마와 코스맥스도 대거 매수했다. 하지만 상승세를 계속 이어가는 데엔 실패했다. LG생활건강과 아모레퍼시픽 모두 10월 들어선 주가가 두 자릿수 넘게 하락했기 때문이다.
중국 의존도가 높은 아모레퍼시픽·LG생활건강은 모두 지난 상반기에도 시장의 기대치를 충족하지 못하는 실적을 기록했다. 중국을 벗어나 ‘시장 다변화’를 외치고 있지만, 여전히 실적은 중국에 좌우되는 모습이다.

유통업계 관계자는“지금은 중국 소비자의 눈높이가 많이 올라갔고, 또 중국 내수 기업들이 제품 경쟁력을 끌어올리면서 전성기 시절의 실적을 회복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라면서 “중국이 소비를 회복하더라도 중국에만 기대는 전략으론 생존하기 힘들다”고 설명했다.
오히려 전문가들은 중국 경기 부양책으로 인한 수혜를 대기업이 아닌 주로 OEM, ODM들에 집중될 것으로 봤다. OEM(주문자상표부착생산)은 생산설비만 있는 업체로 주문자가 요구하는 상품을 제조하고, 완성된 상품을 주문자의 브랜드로 판매하는 형태를 뜻한다. ODM(제조자 개발생산)은 자체 기술력으로 제품을 개발·생산해 주문자에게 납품하고, 주문자는 제품을 유통·판매하는 형태를 말한다.

이중 글로벌 최대 ODM 업체로 꼽히는 코스맥스는 전체 이익에서 중국 비중이 45% 이상을 차지하는 수준으로 중국 사업 의존도가 높다. 코스맥스는 지난 2004년 국내 화장품 ODM 업계 최초로 중국 시장에 진출했다. 중국 내 현지 R&I(Research&Innovation)센터를 운영하며 중국 현지 고객사와 소비자들의 피부 및 취향에 맞는 제품을 개발하는 등 현지화 전략을 펼쳤다.
또한 중국 온라인 화장품 시장 확대에 맞춰 제품 기획, 연구·개발, 생산, 제조에 이르는 전 분야를 지원하기 위한 올어라운드(all-around) 시스템을 구축했다. 제품 교체 주기가 빠른 온라인 시장의 특성을 반영해 제품 의뢰부터 출시까지 소요되는 기간을 2~3개월까지 단축했다. 현재 중국 내 고객사 수는 약 1000여 곳에 달한다. 직접 브랜드를 전개하는 게 아닌 기술만 담당하는 구조이다 보니 외교적인 이슈에도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었다.
◇ 中 내수 회복에 달린 K-패션의 성장세…활기 띨 것 기대

중국 내수가 회복하면 한국 패션업계도 활기를 띨 것으로 보인다. 그중에서도 중국 시장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대표적인 회사는 F&F다. F&F는 현재 매출의 40% 이상을 중국법인에서 올리고 있으며, 2019년부터 MLB 브랜드를 통해 중국 시장에 직 진출했다.
F&F는 매년 두 자릿수 성장을 기록하며 성공을 이어가고 있다. MLB는 특유의 화려한 색감과 구단 로고를 활용한 세련된 디자인으로 남녀노소 모두에게 인기를 얻으며, 현재 중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K-패션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 2023년 12월 기준으로 중국 내 MLB 매장 수는 1100개를 넘었으며, 올해 중국 매출은 약 8000억 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또한, F&F는 디스커버리 익스페디션 브랜드를 통해 중국에서 새로운 성장 기회를 모색하고 있다. 2023년 7월, F&F는 워너 브라더스 디스커버리로부터 중국을 포함한 아시아 주요 국가에서 디스커버리 익스페디션 라이선스를 취득했고, 이를 바탕으로 첫 매장을 상하이에 오픈했다. 국내에서 아웃도어 브랜드로 입지를 다진 디스커버리는 이번 상하이 매장을 시작으로 중국 전역에 브랜드를 확산시켜 글로벌 시장 공략을 본격화할 계획이다.
지난 1994년 중국에 진출한 이랜드 역시 중국에서 가장 성공한 국내 패션기업으로 꼽힌다. 이랜드월드의 중국 법인인 이랜드차이나의 올해 매출은 1조6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2016년 한한령으로 국내 유통 대기업들이 중국에서 발을 뺄 때에도 이랜드는 되레 쇼핑몰과 아울렛 등 중국 유통시장 확대를 본격화했다. 이랜드는 철저한 현지화 전략으로 현지에 3000개가 넘는 매장을 운영하며 성장세를 지속하고 있다.
중국의 대표적인 스포츠 웨어 기업 안타에 ‘휠라’의 중국 상표 사용권과 경영권을 넘긴 휠라홀딩스도 중국 내수가 반등하면 실적에 도움이 될 공산이 크다.

이 밖에도 최근 삼성물산 패션부문과 LF는 중국에 매장을 오픈하거나 현지 법인을 설립하는 등 적극적으로 사업을 펼치고 있다. 한국 패션 브랜드들이 중국 시장에서 지속해서 경쟁력을 유지하는 이유는 여럿이다. 첫째, 우수한 디자인이다. 한국 패션 브랜드는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디자인으로 중국 소비자들의 높은 평가를 받고 있으며, 이것이 매출 성과로 이어지고 있다.
둘째, 중국 젊은 세대의 구매 패턴이 외부 요인에 크게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들은 ‘차오파이(潮牌)’라고 불리는 트렌디한 브랜드를 선호하며, K-패션 브랜드가 이에 부합하는 제품을 제공하고 있다. 코로나가 한창이던 시기에도 K-패션이 중국 시장에서 오히려 매출 성장을 기록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중국 당국의 경기 부양책이 효과적으로 작동해 내수가 살아나게 되면, 이들 기업에도 당연히 호재가 된다. 유통업계 관계자는“로컬 시장 소비력이 개선된다면 가장 영향력을 미치는 게 화장품이나 패션 같은 소비재 상품들”이라면서 “다만 당장의 실적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긴 어려운 상황인 만큼 주가 변동성이 클 가능성이 높고, 중국 시장에서 양호한 성과를 보이는 기업 중심으로 대응할 것을 추천한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