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일, 9월 16,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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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종원 신화의 위기로 본 한국 프랜차이즈 산업의 명암

무리한 가맹점 확대·리더십 부재…‘K-프랜차이즈’ 미래는?

‘백종원’이라는 이름은 이제 대한민국 프랜차이즈 산업의 아이콘이다. 일반 대중에게도 너무나 친숙한 대표 브랜드다. ‘백종원의 골목식당’, ‘맛남의 광장’ 등 방송을 통해 얻은 국민적 신뢰뿐만 아니라 실제 프랜차이즈 산업에서도 성공 신화를 써 온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더본코리아는 지난해 경사를 맞았다. 창립 30주년을 맞아 상장에 도전해 ‘대박’을 터뜨렸다. 지난해 8월 한국거래소의 상장 예비심사를 통과했고 10월 수요예측을 시작으로 절차를 순조롭게 밟았다. 더본코리아는 기관 투자가 수요예측에서 공모가가 희망범위 상단(2만8000원)을 넘긴 3만4000원에 정해지고 일반청약에서도 높은 경쟁률을 보이기도 했다.

더본코리아는 글로벌 푸드테크 기업으로 성장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지금의 더본코리아의 상황은 썩 좋지 않다. 올해 초 더본코리아는 통조림 햄 ‘빽햄 선물세트 논란’에 휩싸였다. 정가에서 45% 할인 판매한다고 선전했으나 애초 가격이 과도하게 책정됐고, 돼지고기 함량도 국내 1위 제품에 비해 떨어진다는 주장이 논란의 골자였다. 빽햄의 정가를 일부러 높게 책정하고 대폭 할인하는 등 사실상 소비자를 기만해서 제품을 파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더본코리아의 빽햄은 각종 논란에 휩싸였다.

악재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이번에는 원산기표기법 위반 혐의로 당국의 수사 대상에 올랐다. 최근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 경기지원 서울사무소는 더본코리아가 간장, 된장, 농림가공품 등 3개 품목의 원산지를 거짓 표기한 사실을 적발했다. 원산지 표시 삭제와 변경을 명령했다. 앞서 국산 제품으로 홍보된 백종원의 백석된장과 한신포차 낙지볶음의 재료가 실제로는 외국산이라는 논란이 제기된 바 있다.

이 밖에도 감귤이 들어갔다고 홍보한 맥주가 타사 과일 맥주 대비 감귤의 함량이 낮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실내에서 액화석유가스(LPG) 가스통을 곁에 두고 요리했다가 과태료 처분을 받는 등 끝없는 논란에 휩싸였다.

백종원 대표는 사업가이자 방송인이다.

특히 백종원 대표의 명성을 믿고 더본코리아에 투자했던 투자자들 입장에선 황당할 수밖에 없다. 상장 첫날 5만1400원에 마감했던 더본코리아의 주가는 3월 18일 기준 2만8000원 안팎에서 거래되고 있다. 주가가 40% 넘게 하락한 셈이다.

동시에 한국 프랜차이즈 산업 전체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한국 프랜차이즈 산업의 아이콘이었던 백종원 대표의 리더십이나 비즈니스가 흔들리는 사이, 그 뒤를 받쳐줄 마땅한 대안이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 때문이다. 연초부터 수많은 논란에 휩싸이긴 했지만, 더본코리아는 그나마 견실히 운영되던 프랜차이즈 기업이었고 몇 안되는 상장사이기도 하다.

올해 초 백종원 대표와 더본코리아가 여러 구설수에 올랐다.

◇ 가맹점 운영 노하우 & 브랜드 품질 유지에 대한 역량 갖춰야
그간 한국 프랜차이즈 산업에는 여러 ‘스타CEO’가 있었다. 그러나 백종원 대표만큼 방송매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동시에 국민적 호감도를 쌓은 사례는 매우 드물었다. 백 대표는 현장에서 쌓은 노하우를 직접 프랜차이즈 시스템에 접목하고, 이를 대중에게 쉽게 어필했다. 이를 통해 더본코리아의 숱한 브랜드들이 인지도를 단번에 높였고, 가맹점 확장도 빠르게 이뤄졌다.

문제는 ‘백종원 2.0’이라고 할 만한 새로운 리더가 나타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최근 뜨는 신생 프랜차이즈 기업들은 대부분 SNS 바이럴 마케팅에 집중하거나, 유명 인플루언서를 섭외해 단기적인 홍보 효과를 노린다.

이렇게 경영할 경우, 소비자들의 장기적 신뢰를 쌓기는 어렵다. 프랜차이즈 업계 관계자는 “방송에서 쌓은 이미지를 사업에 연계하는 건 쉬워보이지만, 사실 백종원의 케이스는 거의 예외적 성공”이라면서 “그만큼 그가 갖춘 사업 노하우가 탄탄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냉정하게 따지면 더본코리아의 비즈니스가 실패한 것은 아니다. 더본코리아는 실적이 매년 성장세를 보였다. 국내 프랜차이즈 시장에서 그나마 ‘비교적 투명한’ 가맹 조건을 제시하고, 갑질 논란 같은 문제에서도 상대적으로 구설이 적은 회사이기도 했다. “더본코리아 정도면 시장을 선도하는 업체라고 봐야 한다”는 평가를 듣는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한 신생 브랜드 관계자는 “초기 가맹점을 100개, 200개까지 단숨에 늘리는 대신, 가맹점 운영 노하우나 브랜드 품질 유지에 대한 내부 역량을 키우지 못한다면, 결국 소비자들이 금방 질리게 된다”고 지적했다. 이는 이미 시장에서 여러 차례 반복된 문제이기도 하다.

‘가맹점 수 확장=성공’이라는 방정식에 집착한다는 점은 한국 프랜차이즈 산업의 구조적 특징 중 하나다. 물론 규모의 경제를 달성하면 원가 절감, 브랜드 인지도 상승 등 장점이 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무리하게 가맹점을 늘리면, 부실 점포가 증가해 본사와 점주 모두 손해를 보는 상황에 빠질 수 있다.

더본코리아는 글로벌 푸드테크 기업으로 성장하겠다고 밝혔다.

국내 프랜차이즈 업계에서는 단숨에 300~400개 가맹점을 모은 뒤, 불투명한 회계 처리나 본사의 문제로 파산 직전까지 몰리는 사례가 여러번 있었다. 커피·디저트 업종에서 특히 그런 일이 많았는데, SNS상으로 매장 분위기를 ‘핫플레이스’처럼 포장한 뒤, 가맹점주들에게 고가의 인테리어 비용을 떠넘기고 회수는 제대로 안 해주는 식이다.

문제는 이러한 사례들이 한 번씩 터질 때마다 산업 전체의 신뢰도에 큰 금이 간다는 것이다. “또 사기냐”, “또 ‘가맹점주들 피눈물’ 패턴이냐”라는 소비자 불신이 커지면, 결국 제대로 운영하는 업체도 덩달아 의심받게 된다. 여기에 상대적으로 건실한 브랜드, 즉 더본코리아마저 흔들린다면, 프랜차이즈 시장 전체가 회복하기 어려운 타격을 입게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여기에 최근 외식 트렌드가 ‘가성비’와 ‘SNS 인증’ 중심으로 급격히 변하면서 프랜차이즈 시장이 왜곡됐다. 예전에는 유명 맛집이 입소문을 타서 프랜차이즈화되는 사례가 많았다. 반면 요즘은 제품의 맛이나 품질보다, 저렴한 가격과 인스타그램·틱톡 바이럴 영상으로 단숨에 주목받는 경우가 흔하다.

이 경우 단기에 체인점을 늘려 점주들에게 수익을 안겨줄 순 있어도, 품질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소비자들의 외면도 순식간에 돌아온다. 업계 내부에서도 “요즘 MZ세대는 사진이나 영상으로 보고 매장에 가지만, 만족도가 낮으면 재방문하지 않는다”면서 “바이럴 마케팅으로만 버티는 브랜드는 금방 퇴조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더본코리아는 상장을 통해 식품 사업을 확장하려 했다.

◇ ‘가맹점 수 확장=성공’(?)…한국 프랜차이즈 산업의 구조적 특징
프랜차이즈는 본사가 로열티·물류 마진 등을 통해 수익을 창출하고, 가맹점주들은 브랜드 파워로 안정된 매출을 기대한다. 그런데 만약 본사가 ‘돈 되는 상품’에만 집중해, 가맹점의 장기 운영안정성이나 소비자 만족을 도외시한다면 어떻게 될까. 결국 가맹점이 줄줄이 폐점하고, 본사도 이미지 타격을 입고, 소비자들도 해당 브랜드를 기피하게 된다.

특히 새로운 브랜드일수록 초기 가맹점 확장에 매몰되는 경향이 강하다. “3년 뒤, 5년 뒤에도 살아남을 매장을 키워야 한다”는 인식보다는 “일단 가맹비와 초기 인테리어 비용으로 본사가 수익을 확보하자”는 ‘단타주의’가 만연하다는 점이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제대로 된 프랜차이즈는 가맹점주와 본사가 ‘윈윈’해야 오래간다”면서 “그런데 한국 시장은 단타 이익만 노리는 플레이어가 너무 많다”고 비판했다.

더본코리아는 상장 이후 다양한 식품 제품을 내놨다.

한국 프랜차이즈 산업을 옥죄는 제도적 문제도 빼놓을 수 없다. 가맹사업법, 하도급법 등 다양한 규제가 있다. 그런데 실질적으로 가맹본사의 부당행위를 막는 데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일단 가맹계약을 맺으면, 본사의 갑질이나 원재료 강매, 로열티 인상에 쉽게 대응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나마 더본코리아 같은 일부 업체가 최대한 ‘합리적인 조건’을 내놓는다고 해도, 신생업체들은 여전히 사각지대에서 무리한 사업 확장을 벌일 수 있다.

더본코리아의 위기는 한국 프랜차이즈 시장의 위기로도 번질 수 있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원산지 표기나 품질 문제, 원재료 가격 인상 같은 이슈가 터질 때마다 사실상 ‘본사-가맹점’ 중 누구 책임인지 판단하기가 쉽지 않다. 이 때문에 한 번 불신이 생기면 프랜차이즈 산업 전체가 매도되는 현상도 발생한다.

산업 전체가 단기 이익과 가맹점 숫자에 매몰되다 보면, 소비자 불신이 커지고 시장 가치가 하락하게 된다. 이는 국내 F&B 산업 전반에 악영향을 미친다. 더본코리아가 다시 한 번 기지개를 켜고 논란을 극복할지, 아니면 이참에 업계 전체가 ‘리더십 공백’ 상태로 치닫게 될지, 한국 프랜차이즈 시장이 중요한 변곡점을 맞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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