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2·3조 개정안, 이른바 ‘노란봉투법’으로 업계 전체가 긴장하고 있다.
노란봉투법은 지난 8월 24일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재석 의원 186명 중 찬성 183표, 반대 3표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국민의힘은 전날 오전부터 무제한 토론(필리버스터)으로 맞섰지만, 24시간 뒤 민주당은 필리버스터를 강제 종료시키고 표결 처리했다.
이 법의 기원은 201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들이 2009년 대규모 파업 이후 회사와 채권단으로부터 47억 원 규모의 손해배상 소송에 휘말려 생계가 파탄 나는 상황에 놓였다. 시민사회가 모금운동을 벌이면서 한 시민이 “작은 정성이지만 힘이 되길 바란다”며 현금이 담긴 노란색 봉투를 보낸 것이 상징이 됐다.
당시 월급봉투가 노란색이었던 데서 착안해, 손해배상으로 고통받는 노동자들이 예전처럼 월급을 받아 일상을 되찾기 바란다는 의미에서 지어진 뜻이다. 이것이 퍼져 시민들 사이에서 캠페인으로 이어지게 됐고, 실제로 약 15억 원이 모금됐다. 이후 언론은 이를 ‘노란봉투 캠페인’이라 불렀다. 이 움직임은 곧바로 노동권 보호 입법 요구로 확산됐다.
2015년부터 민주노총과 시민단체들은 손배·가압류 남용을 막기 위한 관련 입법 청원이 본격화됐고, 전환점은 2022년이었다. 화물연대 파업과 같은 대형 노동분쟁에서 수백억 원 규모의 손해배상 청구가 쏟아졌다. “쟁의권은 있으나 행사하면 곧바로 파산한다”는 비판이 확산됐다.
반면 경영계는 강하게 반발한다. 노조 활동에 따른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하면, 기업은 정당한 권리를 보호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불법 파업이나 과도한 쟁의행위로 회사가 심각한 손실을 입어도 이를 만회할 방법이 없어지면, 결국 경영 불확실성이 커지고 투자 환경이 악화될 수 있다는 우려다. 또, 노란봉투법이 합법·불법 파업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어, 노조의 활동을 지나치게 확대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올해 말부터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노란봉투법’이라는 이름으로 근로기준법과 노동조합법 개정을 추진했다. 핵심은 합법 파업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 제한, 하청·간접고용 노동자에 대한 원청의 교섭 의무를 명문화한 것이다.
정권이 바뀌면서 법안은 결국 국회 문턱을 넘었다. 통과를 앞둔 노란봉투법의 핵심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 사용자 범위 확대다. 지금까지 사용자는 근로계약의 직접 당사자인 ‘고용주’로 한정했지만, 개정안은 ‘근로조건에 실질적 지배력 또는 영향력을 행사하는 자’까지 포함시켰다. 이에 따라 하청·용역·파견 노동자가 원청을 상대로 교섭할 수 있는 길이 열리고, 배달기사 같은 플랫폼 노동자들도 플랫폼 본사와 교섭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된다.
둘째, 파업 노동자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 제한이다. 폭력·파괴 행위를 제외하면, 정당한 노동쟁의 과정에서 발생한 손해에 대해 기업이 노조나 조합원에게 과도한 손해배상 청구를 하지 못하도록 제약한다. 지금까지는 파업 참가자 개인에게 수억 원대 손해배상 청구가 들어오면서 생계 자체가 무너지는 일이 비일비재했는데, 이를 차단하겠다는 취지다.
결국 노동계는 ‘노조의 권리를 보장하는 법’이라 강조하고, 반면 경영계는 ‘기업 활동을 위축시키는 법’이라고 반발하는 상황이다. 뚜렷한 사회적 합의가 없는 상황에서 통과한 노란봉투법은 노동권 보장과 경영 안정성 사이의 팽팽한 줄다리기 속에서 갈등을 빚을 가능성이 크다.
◇ 노란봉투법 시행되면 협력업체 직원도 원청과 교섭 권리 불가피
이렇듯 갑론을박이 한참이지만, 어찌됐든 법안은 통과 가능성이 높다. 이 법안의 리스크에 가장 크게 노출된 업종 중 하나가 바로 유통업계라는 점이다. 노동집약적 산업인 유통업계는 법안 통과 시 가장 직접적이고 즉각적인 영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유통업은 다른 산업과 달리 전국적 네트워크와 다층적 고용 구조 위에 서 있다. 대형마트·편의점·백화점·온라인몰·물류센터·배송기사·협력업체 종사자까지 얽혀 있다. 사용자와 근로자 사이의 관계가 복잡하게 얽혀있다.
물류센터와 협력업체 노동자도 마찬가지다. 지금은 물류센터 운영사가 하청업체 직원과 직접 교섭할 필요가 없었지만, 개정안이 통과되면 원청 기업이 책임을 져야 할 가능성이 생긴다. 실제로 쿠팡 물류센터 화재 사건이나 CJ대한통운 택배노동자 과로사 논란 때마다 원청 책임론이 제기돼 왔다. 이번 법안은 이를 제도적으로 확정 짓는 효과를 낳을 수 있다.
대형마트와 백화점은 이미 정규직·비정규직·용역직이 혼재된 고용 구조를 갖고 있다. 계산원, 안내원, 판매사원 상당수가 협력업체 소속으로 분류돼 왔다. 지금까지는 파업 시 원청인 이마트·롯데·현대백화점이 직접 책임질 이유가 없었다. 그러나 노란봉투법이 시행되면 이들 협력업체 직원도 원청과 교섭할 수 있는 권리가 생긴다. 가령 명절 대목에 계산원 파업이 발생했을 때, 협력업체와의 계약 문제로 치부할 수 없고 본사 차원의 교섭과 조정이 필요해진다. 매출 차질뿐만 아니라 브랜드 이미지에도 직접 타격이 발생한다.
◇ 유통업계는 단순한 노사관계 넘어…비용 구조 전체가 바뀔 수 있어
노란봉투법이 통과될 경우, 유통업계는 단순한 노사관계 변화를 넘어 비용 구조 전체가 바뀔 수 있다. 무엇보다 인건비 상승 압력이 뚜렷해진다. 지금까지는 협력업체·특수고용직으로 분류된 인력의 임금 교섭이 제한적이었다. 하지만 원청 교섭권이 보장되면, 본사는 더 높은 임금과 수수료를 받아들여야 할 가능성이 크다.
특히 배달·배송 기사와 편의점 점주 등 전국 단위로 분포한 인력과 교섭이 진행되면, 단일 업종이 아닌 산업 전체의 비용 체계가 재편될 수 있다.
노동분쟁이 장기화할 가능성도 커진다. 손해배상 청구 제한으로 기업이 파업을 막을 카드가 줄어든다. 노동계는 자신들의 요구를 더 강하게 밀어붙일 수 있고, 분쟁은 쉽게 타협되지 않을 수 있다. 유통업은 하루라도 물류가 멈추면 손실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기 때문에, 파업 장기화는 곧 매출과 이익의 직접적 손실로 연결된다.
투자 위축을 둘러싼 우려도 높다. 유통업계는 온라인·오프라인 통합, AI 물류 자동화 등 대규모 투자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그러나 노사 리스크가 커지면 기업들은 ‘불확실성 관리’를 이유로 신규 투자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 해외 진출을 앞둔 플랫폼 기업의 경우, 글로벌 자본이 ‘한국 시장의 규제 리스크’를 고려해 투자 결정을 미루는 경우도 나올 수 있다.
산업 전반의 가격 구조 변화로 이어질 수도 있다. 인건비 상승과 분쟁 리스크가 겹치면, 결국 비용은 소비자 가격에 전가될 수밖에 없다. 배송비·상품 가격 인상 압력이 커지고, 소비자 물가에도 반영된다. 특히 생활 필수재를 다루는 유통업 특성상, 노란봉투법은 곧바로 국민 생활비와 연결될 가능성이 높다.
첫째, 선제적 노사관계 재편이다. 법안 통과 여부와 상관없이 원청-하청 구조를 넘어선 직접 교섭 채널을 구축하는 시도가 필요하다. 노동계가 요구하기 전에 기업이 먼저 협력적 틀을 짜는 방식이다.
둘째, 리스크 분산 전략이다. 국내 노사 규제가 강화될 경우를 대비해, 글로벌 시장에서의 비중을 더 키우는 선택도 거론된다. 실제로 대형 유통 플랫폼은 이미 해외 직구·역직구를 통한 매출 다변화에 힘을 쏟고 있다.
셋째, 정책 대응 로비와 제도 개선 요구다. 경영계는 노란봉투법을 무조건 반대하기보다, 법안 시행 과정에서 현실적 보완 장치를 마련하도록 정부와 협상할 가능성이 크다. 예컨대 대체인력 투입의 최소한 허용, 손배 제한 범위의 구체적 가이드라인, 노사 분쟁 중재 기구의 확대 같은 보완책이 논의될 수 있다.
결국 노란봉투법은 단순히 노조법 개정안의 이름을 넘어, 한국 유통업계의 미래 비용 구조와 투자 방향을 가르는 분기점이 될 전망이다. 노동계와 경영계, 그리고 정치권이 어떤 해법을 내놓느냐에 따라 유통업의 경쟁력과 소비자 생활비가 직결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