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Exclusive‘환승지’에서 ‘목적지’로, 서울 동북권의 심장 ‘청량리’의 변신

‘환승지’에서 ‘목적지’로, 서울 동북권의 심장 ‘청량리’의 변신

어두운 잔상에서 ‘힙량리’로, 초미세 혼합 상권의 탄생

서울 동북권의 관문, 청량리가 변하고 있다. 불과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이곳은 ‘청량리 588’로 상징되는 유흥가와 낙후된 이미지가 짙게 남아 있던 지역이었다. 기차역과 재래시장이 뒤엉킨 복잡한 도시 풍경, 그리고 어두운 상권의 잔상은 청량리를 ‘머무는 곳’이 아닌 ‘스쳐 지나가는 환승지’로 인식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지금, 청량리는 서울에서 가장 드라마틱한 변신을 꾀하는 상권으로 변모했다. 청량리역 한양수자인 그라시엘, 롯데캐슬 SKY-L65 등 초고층 주상복합 단지가 들어서면서 단순한 지역 변화를 넘어 서울 상권 지형을 바꾸는 핵심 거점으로 부상하고 있다. 과거의 청량리가 ‘지나가는 곳’이었다면, 현재의 청량리는 ‘머무는 목적지’로 전환되는 중이다.

과거 환승지에 머물렀던 청량리는 교통 인프라와 재개발을 기반으로 인구 유입과 상권 확장이 가속화되며 ‘머무는 목적지’로 전환되고 있다.

청량리 상권의 저력은 ‘교통 중심지’라는 견고한 인프라에서 비롯된다. 현재 청량리역은 지하철 1호선, 수인분당선, 경의중앙선, 경춘선, 중앙선, KTX강릉선 등 6개의 철도 노선이 교차하는 다중 역세권이다.

그러나 이것은 시작에 불과하다. 향후 GTX-B와 GTX-C 노선, 면목선, 강북횡단선 등 노선 신설이 예정되어 있어, 모두 실현될 경우 광역 철도망이 다층적으로 교차하는 서울 동북권의 압도적인 교통 요충지로 자리매김할 전망이다.

이러한 강력한 교통 인프라는 외부 유동 인구를 지속적으로 유입시키는 기반이 되고 있으며, 동시에 대규모 재개발 사업이 병행되고 있어 청량리 일대의 인구 유입과 상권 확장세는 더욱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

경동시장 일대는 청과물, 약재, 식자재 등 11개의 시장이 밀집해 있다.

◇ 6070 추억과 2030 취향의 교차점, 11개 시장이 빚어낸 ‘뉴트로’의 성지
청량리 상권의 핵심 가치는 ‘초미세 혼합 구조’에 있다. 청과물, 약재, 식자재 등 11개의 시장이 밀집한 경동시장 일대는 오랫동안 6070 세대가 주도하는 전통 소비 공간으로 기능해왔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 이 공간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재해석되고 있다. 단순한 생계형 시장에서 감성 소비와 경험 소비가 결합된 복합 공간으로 확장되는 흐름이다.

변화의 중심에는 공간의 재구성이 있다. 2022년 12월 스타벅스는 경동극장을 리모델링한 ‘경동1960점’을 개점했다. 1960년대 개관 이후 장기간 방치되던 폐극장이 새로운 모습으로 재탄생하면서, 경동시장 일대는 전통시장에서 감성 소비 공간으로 확장되기 시작했다. 과거의 구조를 그대로 살린 공간 연출은 단순한 소비를 넘어 ‘체험’을 제공하는 상징적인 사례로 평가된다.

폐극장을 리모델링한 ‘스타벅스 경동1960점’ 개점을 계기로 경동시장 일대는 체험 중심의 감성 소비 공간으로 확장되고 있다.

이 흐름은 이후 더욱 확장됐다. 도심형 뷰티 아울렛 ‘오프뷰티’를 비롯해 창고형 약국 등 생활형 리테일 브랜드들이 속속 들어서며 청량리의 구조는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특히 지난 4월에는 청량리 아트포레스트 지하 1층에 창고형 약국 ‘르 메디’가 새롭게 문을 열었다. 르 메디는 약국과 함께 뷰티, 건강기능식품, 전문 펫숍 등을 결합한 웰니스 복합쇼핑몰 MBB 내에 입점한 형태다.

최근에는 도심형 뷰티 아울렛 ‘오프뷰티’를 비롯해 창고형 약국 등 생활형 리테일 브랜드들이 속속 들어서고 있다. (사진=MBB가 입점된 청량리 아트포레스트 전경)

MBB 관계자는 “청량리 일대가 주상복합 단지를 중심으로 1~2인 가구와 여성 유입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며 “기존에는 충족되지 못했던 건강·뷰티·웰니스 수요를 한 공간에서 해결할 수 있는 구조라는 점에서 입지 적합성이 높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이처럼 청량리가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가운데, 주목할 점은 이러한 변화가 기존 고객층을 대체하는 방식이 아니라는 것이다. 청량리는 ‘교체’가 아닌 ‘중첩’의 방식으로 변화하고 있다.

청량리는 60~70대 기존 이용층이 소비 기반을 이루는 가운데, 2030 방문객이 빠르게 늘고 있다.

경동시장을 비롯한 청량리 일대는 여전히 60~70대 기존 이용층이 주요 소비 기반을 유지하고 있으며, 동시에 SNS와 콘텐츠를 통해 유입되는 2030 세대 방문객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장보기 중심의 생활형 소비와 로컬 감성 소비 등 서로 다른 소비 형태가 동일한 공간에서 이뤄지는 구조가 형성된 것이다.

청량리 내부 성격 또한 점차 다층적으로 변화하고 있다. 기존 생활형 기능은 유지되면서도, 일부 구간은 카페, 편집숍, 로컬 브랜드 등이 결합된 형태로 재편되고 있다. 전통적인 노포와 신흥 브랜드가 한 축에 공존하며 청량리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 소비 구조가 동시에 겹쳐지는 복합 상권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이처럼 청량리는 전통시장, 신축 주거단지, 인근 대학가가 모여 노년층, 젋은 부부, 학생 등이 동시에 교차하는 국내에서도 보기 드문 ‘초미세 혼합 상권’으로 진화하고 있다.

◇ 교통 허브를 넘어 상권 중심지로…청량리의 구조적 전환
현재 청량리 일대에서는 약 12곳의 재개발 사업이 동시에 추진되고 있다. 이는 단순한 물리적 변화가 아니라 인구 구조와 소비 구조를 동시에 재편하는 핵심 동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신축 아파트 공급은 젊은 세대 유입을 확대시키고, 이는 다시 시장 상권의 소비층 다변화로 이어지고 있다.

향후 GTX-B·C 노선 등 광역 철도망이 본격적으로 구축되면 청량리는 수도권 전역과의 접근성이 획기적으로 개선되며 유입 인구는 더욱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단순한 교통 개선이 아니라 상권 체류 시간 증가, 소비 빈도 상승으로 직결되는 구조적 변화다.

이에 따라 청량리는 을지로처럼 전통과 감성이 결합된 상권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다. 이미 일부 구간에서는 ‘로컬 브랜딩’과 ‘경험 소비’가 결합된 형태가 나타나고 있으며, 이러한 흐름은 점차 확산되는 중이다.

이 과정에서 청량리는 ‘힙량리’라는 새로운 별칭을 갖게 되었고, 이는 단순한 유행어를 넘어 상권의 성격 변화를 상징하는 키워드로 자리잡고 있다.

결국 청량리는 단순한 상권 회복을 넘어 서울 동북권 전체의 변화를 이끄는 중심지로 나아가고 있다. 환승 중심지에 머물렀던 과거에서 벗어나 주거, 소비, 문화, 교통 등이 결합된 복합 도시 상권으로 확장되며 서울 상권 구조 자체를 다시 쓰는 흐름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아래는 청량리 상권을 구성하는 주요 로컬 브랜드와 공간에 대한 소개다. 경동식당, 기태만두, 청량함박, 어센딩 커피 웨이브, 페스카데리아는 각기 다른 결을 지닌 채 경동시장 일대와 청량리 골목을 구성하며, 전통과 감각이 공존하는 현재의 상권 지형을 만들어가고 있다.


마케팅안내원 장영수 대표

청량리 상권을 보다 입체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현장을 기반으로 로컬 마케팅을 전개하고 있는 마케팅안내원의 장영수 대표를 만났다.

그는 동대문과 청량리를 중심으로 오랜 시간 상권을 관찰하며 소상공인과 브랜드를 연결해온 로컬 마케팅 전문가다. 청량리 골목을 함께 걷는 동안 그는 곳곳에서 상인들과 자연스럽게 인사를 나눴고, 이러한 장면은 그가 이 지역과 맺어온 깊은 관계를 보여줬다.

그는 청량리 변화의 중요한 전환점으로 스타벅스 경동1960점의 등장을 꼽았다. “스타벅스가 경동시장에 들어오면서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어요. 스타벅스 오픈 이후에는 사람들이 일부러 찾아오는 공간이 됐습니다”라는 설명처럼, 해당 공간은 단순한 카페를 넘어 상권의 흐름 자체를 바꾸는 계기로 작용했다.

이어 그는 청량리 상권을 한 문장으로 정의했다. “청량리는 어르신들에게는 ‘홍대 같은 곳’입니다” 오랜 단골과 상인을 중심으로 형성된 관계형 소비 구조와 시장 특유의 활기가 젊은 세대의 ‘핫플레이스’와 유사한 역할을 한다는 의미다.

마지막으로 그는 청량리의 미래에 대해 “앞으로 교통이 더 좋아지면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들어올 것”이라며 재개발로 인한 주거 환경 변화 역시 새로운 인구 유입을 이끄는 중요한 요인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의 말처럼 청량리는 단순한 ‘떠오르는 상권’을 넘어, 기존 생활 기반 위에 새로운 소비가 덧입혀지며 진화하는 복합적 도시 상권으로 자리잡고 있다.

한편, 마케팅안내원은 AI 마케팅 기술과 현장 중심의 로컬 인사이트를 결합해 소상공인과 중소 브랜드를 위한 통합 마케팅을 수행하는 전문기업이다.


 

(사진=테넌트뉴스) 카이스트 구내식당과 내빈관에서 쌓은 40년 조리 내공을 바탕으로, 20년째 경동시장 골목에서 변함없는 손맛을 지켜오고 있는 김영례 사장.

하루 수백 건 배달의 내공…경동시장 골목을 20년째 지켜온 백반집 ‘경동식당’
경동시장 안쪽 골목에는 이른 새벽부터 불을 밝히는 백반집 ‘경동식당’이 있다. 20년째 한결같이 자리를 지켜 온 이곳은 경동시장 1대 백반집이다. 무려 40년의 요리 경력을 가진 김영례 사장은 “과거 카이스트 구내식당과 내빈관에서 근무하며 체계적인 주방 운영과 조리 시스템을 익혔던 경험이 현재 식당을 안정적으로 이끌어가는 데 큰 자산”이라고 말했다.

김영례 사장의 하루는 매일 새벽 2시에 시작된다. 저녁 7시에 잠자리에 들어 서너 시간만 눈을 붙이고 일어나 장사 준비를 시작하는 일상은 이제는 그의 삶의 방식이 됐다. 이런 그의 부지런함은 매일 올라가는 상차림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이곳의 상차림은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매일 국과 반찬 구성이 바뀌는 것이 특징이다.

김치와 젓갈을 제외한 대부분의 찬은 매장에서 직접 조리되며, 충분히 불려 지어낸 솥밥과 매일 아침 시장에서 바로 공수한 신선한 식재료가 밥상의 기본기를 탄탄하게 채운다. 주력 메뉴인 닭볶음탕과 오징어볶음, 제육볶음 역시 갓 지은 솥밥 및 정갈한 반찬들과 완벽한 조화를 이루도록 짜였다. 일회성 유행을 좇기보다는 대중에게 가장 익숙한 백반 한 상의 완성도를 극대화하는 데 온전히 집중한 결과다.

(사진=테넌트뉴스) 갓 지어 맛이 좋은 밥과 매일 새롭게 구성되는 8~9가지의 반찬을 합리적인 가격으로 선보이는 경동식당의 든든한 백반 한 상.

김 사장은 ‘밥맛이 좋아야 한 상 전체가 살아난다’는 철학을 바탕으로 밥알의 식감부터 전체적인 밸런스까지 세심하게 관리하고 있다. 이러한 내실 있는 운영 방식은 입소문을 타며 외부 고객 유입으로 이어졌다. 방송 출연 전에는 시장 상인 중심의 단골손님 비중이 높았으나, 최근 여러 프로그램을 통해 소개되면서 신규 방문객이 눈에 띄게 늘었다. 이제 이곳은 시장 상인들을 넘어 노포 특유의 맛을 찾는 다양한 연령층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시장 곳곳으로 하루 300건이 넘는 쟁반 배달을 소화해 온 시간은 식당 운영을 한층 탄탄하게 다져준 바탕이 됐다. 최근에는 홀에서 식사를 하려는 손님이 크게 늘어나며 매장이 연일 활기를 띠고 있다. 영업 시작 전부터 대기 줄이 형성될 만큼 방문객이 부쩍 늘어난 가운데, 김 사장은 그간 다져온 맛과 노력을 바탕으로 앞으로 더 많은 손님을 넉넉하게 맞이할 수 있는 더 큰 규모의 식당을 운영하고 싶다는 소망을 밝혔다. 흔들림 없이 지켜온 원칙과 정성이 경동식당이 20년간 굳건히 자리를 지킨 비결이다.

모델 출신의 김기태 사장은 약 4년 전부터 기태만두에 합류해 아버지의 가업을 함께 이어가고 있다. (사진=기태만두 김기태 사장과 그의 어머니)

◇ 50년 전통의 ‘기태만두’…모델 출신 사장의 젊은 감각이 더해지다
청량리 경동시장 골목에는 50년 전통을 이어온 튀김만두집 ‘기태만두’가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곳은 하루 1만 2천 개에 달하는 만두를 쉼 없이 빚어내며 오랜 시간 지역 상권을 지탱해온 노포다.

‘기태만두’라는 이름에는 김중태 창업주의 아들인 김기태 사장의 성명이 담겨 있다. 4년 전 가업에 본격적으로 합류한 김기태 사장은 기존 운영 방식을 이어가되, 패키징 디자인, 서비스 개선, 전략적인 메뉴 구성 등을 도입하며 기태만두의 새로운 변화를 이끌고 있다. 특히 모델 출신인 김기태 사장은 훤칠한 키와 외모로 어르신들 사이에서 ‘경동시장의 임영웅’이라 불릴 만큼 큰 인기를 얻고 있다.

모델 활동을 뒤로하고 아버지가 일궈온 가업을 이어 받은 그의 진정성은 SNS를 통해 입소문을 타며 강력한 팬덤을 형성했고, 이는 젊은 층의 발길까지 불러모으는 계기가 됐다. 이처럼 젊은 감각으로 무장한 2세대 경영의 시작은 기태만두의 역사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으며 성공적인 제 2의 도약을 알리고 있다.

50년 전통의 ‘기태만두’는 하루에 1만 2천 개 이상의 튀김만두를 판매한다.

이와 함께 기태만두가 오랜 세월 변함없는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비결은 ‘바쁠수록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는 철저한 원칙에 있다. 아무리 손님이 몰려도 기름 교체 시기를 엄수하고 공정의 단계를 생략하지 않는 고집은, 50년 세월을 버텨온 이 집만의 견고한 근간이다.

기태만두의 독보적인 경쟁력은 김중태 창업주로부터 이어져 온 핵심 레시피에서 비롯된다. 특히 만두소에 풍미를 더하기 위해 직접 채소 기름을 내는 방식은 타 업체가 쉽게 흉내 낼 수 없는 맛의 비결이다. 또한 기태만두는 중장년층의 향수를 자극하는 추억의 간식, ‘못난이 만두’를 전국에서 유일하게 만나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기태만두는 떡볶이 시즈닝을 별도로 판매해 고객이 취향껏 만두에 뿌려 먹을 수 있다.

반백 년 가까운 시간 동안 한 자리를 지켜온 매장의 역사만큼이나, 그 시절 단골손님들의 소중한 추억을 고스란히 보존하고 있는 셈이다. 전통에 안주하지 않는 변화도 눈에 띈다. 최근에는 치킨 소스에서 착안해 떡볶이 시즈닝을 별도로 판매하며 고객이 취향껏 만두에 뿌려먹을 수 있도록 하는 등 다채로운 시도를 이어가고 있다. 익숙한 메뉴에 현대적인 감각과 재미를 더하는 이러한 노력은 기태만두의 위상을 한 단계 더 높이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김기태 사장은 “가격은 저렴하게 유지하되, 손님들이 만족감을 느끼고 돌아가셨으면 좋겠다”며, “앞으로도 지금처럼 기태만두를 잘 유지하는 게 목표입니다”라고 말했다. 반세기 동안 이어진 손맛과 원칙, 그리고 그 위에 더해진 김기태 사장의 감각. ‘기태만두’는 빠르게 변하는 외식 시장 속에서도 확장보다 ‘지속’을 선택하며, 시장 골목의 시간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이어가고 있다.

(사진=테넌트뉴스) 지브리 애니메이션 속 공간을 모티브로 구현한 ‘청량함박’ 내부 전경

일본 현지의 맛을 자랑하는 청량리 골목 식당 ‘청량함박’
서울 청량리 시장 인근 고즈넉한 골목에 일본 현지의 맛과 정취를 그대로 구현해 낸 공간이 있다. 바로 일본인 사이토우 리나(한국 이름 최리나) 사장이 운영하는 ‘청량함박’이다. 평소 누군가에게 맛있는 음식을 대접하기를 즐겼던 최 사장은, 한국에 100% 일본 정통 방식을 구현한 함박스테이크 전문점이 드물다는 점에 주목했다. 제대로 된 현지의 맛을 선보이겠다는 일념으로 수많은 레시피 연구를 거듭한 끝에 지난 6월 이곳에 문을 열었다.

큰길을 살짝 벗어난 골목 안쪽에 자리 잡은 것 역시, 일본 현지 식당 특유의 감성을 제대로 살리기 위해서다. 매장 인테리어는 최 사장이 평소 좋아하던 지브리 스튜디오 애니메이션 속 아늑한 가정집을 콘셉트로 삼았다. 이곳에서는 일본인 직원들이 함께 호흡을 맞추며 현지 고유의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가게 구성뿐만 아니라 맛의 본질을 지키기 위해 요리에 필요한 주요 향신료를 일본에서 직접 공수해 사용하는 등, 한국적인 변형을 하지 않은 ‘100% 현지의 맛’을 구현하는 데 주력했다.

(사진=청량함박) 일본 정통 방식의 부드러운 식감을 자랑하는 함박스테이크와 한정 판매하는 롤캬배츠까지. 전 연령층의 입맛을 사로잡는 깊은 맛을 자랑한다.

청량함박의 대표 메뉴인 함박스테이크는 쫀득한 떡갈비 형태의 한국식과 달리, 입안에서 부드럽게 풀리는 일본 정통 방식을 택해 식감의 차별화를 꾀했다. 이러한 부드러운 식감 덕분에 어린아이부터 시장을 찾는 어르신들까지 전 연령층이 즐겨 찾는 메뉴로 손꼽힌다. 최 사장은 일본과 한국을 오가며 주방과 홀에서 쌓은 실무 경험을 바탕으로 가장 이상적인 맛을 구현하고자 10여 종의 소스를 비교 연구했으며, 매일 직접 수제 소스를 끓여내는 정성을 들여 맛의 깊이를 완성하고 있다.

이러한 최 사장의 요리 연구 흔적이 녹아든 메뉴 구성에는 홋카이도 방식의 스프 카레와 일본에서 대중적인 스지 카레, 하루 10개만 한정 판매하는 ‘롤캬배츠’가 있다. 청량식당은 정통 일식 함박스테이크집으로서 온라인상에서 긍정적인 방문 후기와 다양한 영상 콘텐츠가 알려지며 손님이 늘었다. 이곳은 별도의 대대적인 홍보 없이도 입소문을 타면서 인근 대학가에서 단체 도시락 주문이 들어오는 등 지역 내 수요층을 형성해가는 모습이다.

(사진=테넌트뉴스) 청량함박 ‘사이토우 리나(최리나)’ 사장.

매일 반갑게 손님을 맞이하는 최 사장은 요리 과정은 고되지만 “맛있다”는 손님의 한마디에서 가장 큰 행복과 보람을 느낀다고 밝혔다. 40년 된 골목의 풍경 속에 일본인 사장의 뚝심 있는 취향이 스며든 청량함박은, 이제 골목에 자신만의 개성을 더하며 많은 이들이 즐겨 찾는 로컬 맛집으로 자리를 잡고 있다.

(사진=어센딩웨이브) 40년 된 철물점의 흔적 위에 신지영 사장의 디자인 감각을 입혀 제기동의 새로운 로컬 거점으로 거듭난 ‘어센딩 커피 웨이브’

40년 철물점의 힙(Hip)한 변신, 제기동 골목에 활력 불어넣는 ‘어센딩 커피 웨이브’
저녁 6시면 정적이 흐르는 제기동 골목, 전기도 수도도 없던 40년 된 낡은 철물점이 로컬 카페로 탈바꿈했다. 이곳은 2년 전 새롭게 변신하며 문을 연 ‘어센딩 커피 웨이브(사장 신지영)’다. 철물점의 철거 이후 비어있던 공간을 새롭게 조성한 이곳은, 젊은 감각의 카페가 드물었던 동네에서 주민과 주변 상인들의 시선을 단숨에 사로잡았다.

(사진=어센딩웨이브) 40년 된 철물점의 흔적 위에 신지영 사장의 디자인 감각을 입혀 제기동의 새로운 로컬 거점으로 거듭난 ‘어센딩 커피 웨이브’

신지영 사장은 평소 제기동 철물점 자리를 눈여겨보며 카페로서의 변화를 꿈꿔왔다. 그러던 중 운영하던 어르신이 은퇴하며 자리가 비자, 주저 없이 창업을 결심하고 이곳에 카페를 꾸렸다. 카페 이름인 ‘어센딩(Ascending)’은 평소 즐겨 하던 파워리프팅 용어에서 따온 명칭이다. 무게를 점진적으로 올린다는 본래 뜻에, 계단을 오르는 매장 구조와 커피로 기분을 상승시킨다는 의미를 더했다.

(사진=어센딩웨이브) 손님의 기분을 ‘어센딩(상승)’시킨다는 의미를 담은 어센딩 커피의 대표 음료.

신 사장은 3개월여의 공사 기간 동안 인테리어를 직접 도맡으며, 본인의 확고한 취향이 담긴 물건들로 공간의 디테일을 채워나갔다. 카페에서 맛볼 수 있는 어센딩 커피 웨이브의 시그니처 메뉴는 우롱티를 섞은 어센딩 커피와 태국 스타일의 오렌지 아메리카노다.

이국적인 감성의 음료와 더불어 주기적으로 교체되는 싱글 오리진 원두 라인업이 이곳의 특징이다. 신 사장은 과거 산미 있는 커피를 낯설어하던 분위기와 달리, 최근 스페셜티나 싱글 원두를 직접 찾는 손님이 늘어났다고 설명했다. 대학가 청년들부터 동네 어르신들까지, 이곳의 고객층은 세대를 가리지 않고 다양하다. 특히 초기의 우려 섞인 시선을 거두고 이제는 매실액을 건네며 안부를 묻는 어르신 단골이 됐다. 

(사진=어센딩웨이브) 40년 된 철물점의 흔적 위에 신지영 사장의 디자인 감각을 입혀 제기동의 새로운 로컬 거점으로 거듭난 굿즈 스토어 ‘어센딩 코너 웨이브

신 사장은 카페 운영에 그치지 않고, 과거 F&B 브랜드 디자인 팀에서의 경험을 살려 프로젝트 팀 어센딩 웨이브(Ascending Wave)를 통해 다각적인 활동을 펼치고 있다. 이곳에서 제작한 굿즈들은 카페 맞은편 스토어인 어센딩 코너 웨이브에서 만나볼 수 있으며, 손님들의 이야기를 담은 팟캐스트 운영이나 브랜드 협업 기록 등 소소한 로컬 콘텐츠도 꾸준히 쌓아가는 중이다. 

(사진=어센딩웨이브) 커피를 매개로 로컬 프로젝트를 펼치는 ‘어센딩 웨이브’ 팀원들이 팟캐스트를 통해 손님들의 사연과 브랜드 기록을 담아내는 모습.

디자이너이자 마케터, 운영자까지 1인 다역을 수행 중인 그녀는 패션, 음악 등 다양한 문화 요소를 자유롭게 결합하며 골목에 새로운 활력을 선사하고 있다. 신 사장은 당장의 점포 확장보다는 이 공간이 가진 연결의 힘을 통해 제기동의 개성을 살려 나가는 것이 목표다. 40년 철물점의 흔적 위에 신 사장의 기획력이 더해진 어센딩 커피는 단순한 카페를 넘어 제기동의 새로운 로컬 거점으로 자리 잡고 있다.

몰리노 프로젝트 진우범 대표

◇ 미쉐린 1스타 셰프의 ‘해산물 타코’…멕시코식 선술집 ‘페스카데리아’
청량리역 2번 출구 인근 경동시장 골목에는 멕시코 현지 색이 짙은 ‘페스카데리아(대표 진우범)’가 이색적인 분위기를 형성하고 있다. 스페인어로 ‘생선 가게’를 뜻하는 이곳은, 해산물 타코를 중심으로 다양한 주류와 함께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멕시코식 선술집을 지향한다.

멕시칸 푸드에 대한 애정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이 공간은 넷플릭스 예능 ‘흑백요리사’로 대중에게 얼굴을 알린 ‘코리안 타코킹’ 진우범 셰프의 손에서 탄생한 공간이다. 그는 성수동의 ‘엘몰리노’, 신당동의 ‘라까예’, 한남동의 ‘에스콘디도’ 등 멕시코 퀴진 F&B 기업 ‘몰리노 프로젝트’를 이끄는 대표이자 2025년 멕시코 요리로 미쉐린 1스타(에스콘디도)의 영예를 안은 아시아 최초 스타 셰프다.

페스카데리아의 내부는 UC버클리 건축학과 출신 진우범 셰프의 감각이 녹아져 있고 멕시코 현지 분위기를 자연스럽게 풀어냈다.

UC버클리 건축학과 출신의 그는 캘리포니아 유학 시절 우연히 맛본 푸드트럭 타코를 통해 멕시칸 푸드에 완전히 매료됐고, 군복무 이후 다니던 스타트업을 그만두고 현지 음식을 배우기 위해 멕시코로 떠났다. 어린 시절 우스갯소리로 내뱉었던 ‘타코 푸드트럭을 운영할 거야’라는 꿈이 ‘몰리노 프로젝트’로 실현됐고, 멕시코 요리가 가진 깊이를 널리 전파하는 진 셰프의 행보가 현재 경동시장 골목의 ‘페스카데리아’로 이어지며 멕시칸 푸드의 지평을 넓혀가고 있다.

‘페스카데리아’는 광장시장 팝업 당시 열광적인 반응을 이끌어냈던 ‘해산물 타코’를 본격적으로 풀어낸 스트리트 타코 ‘라까예’의 스핀오프 매장이다. 이곳은 정통의 재현에만 매몰되지 않는다. 멕시코식 이자카야를 표방하며 음식과 술을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선술집의 정서를 택했다. 데킬라와 메즈칼은 물론, 한국적 정서가 짙은 소주와 사케까지 구비해 주류의 경계를 허문 것이 특징이다.

페스카데리아의 시그니처 메뉴 ‘피쉬&쉬림프 타코’는 국내산 옥수수 또르띠야의 고소한 맛과 그 위에 갓 튀겨낸 해산물의 바삭한 식감의 조화가 일품이다.(사진=피쉬 타코)

페스카데리아의 메뉴는 이 같은 방향성을 직관적으로 드러낸다. 방문객들의 극찬을 이끄는 대표 메뉴 ‘피쉬&쉬림프 타코’는 국내산 옥수수 또르띠야의 고소한 맛과 그 위에 갓 튀겨낸 해산물의 바삭한 식감의 조화가 일품이다. 여기에 데킬라로 숙성한 삼치를 정성껏 구워 멕시칸 전통 소스를 곁들인 ‘몰레 삼치구이’는 특유의 이국적인 향과 깊은 풍미를 더해 방문객들에게 마치 멕시코 현지에 와 있는 듯한 미식 경험을 선사한다.

페스카데리아의 ‘몰레 삼치구이’는 데킬라로 숙성한 삼치를 정성껏 구워 멕시칸 전통 소스를 곁들여 특유의 이국적인 향과 깊은 풍미를 더한 메뉴이다.

공간 연출 역시 건축학과 출신인 진 셰프의 감각이 집약돼 있다. 멕시코 현지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각종 오브제들과 매장 안쪽으로 깊숙이 들어설수록 마주하게 되는 개방적인 공간이 주는 입체적 경험은 방문객들의 만족도를 높여준다.

진우범 셰프는 이처럼 멕시코 요리의 진가를 널리 알리며, 스트리트 타코부터 파인다이닝까지 서로 다른 4개의 매장을 통해 자신만의 요리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향후 한식을 기반으로 멕시코 진출까지 목표로 두고 있는 그는, 앞으로 또 어떤 이야기를 요리에 담아낼지 기대를 모은다.


전통시장의 귀환,
청량리는 어떻게
‘글로벌 힙’이 되었나

신지혜 / ‘[핫플레이스를 만드는 플레이어들]’ 저자(작가)
오랫동안 ‘춘천행 기차’의 거점이자 노년층 중심의 전통시장으로 여겨졌던 청량리가 최근 서울에서 가장 뜨거운 ‘목적지’로 급부상했다. 이곳의 변화는 무언가를 새로 짓는 방식이 아니라, 거대한 시장이라는 기존의 견고한 구조 위에 새로운 감각이 덧입혀지며 발생했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청량리 변화의 상징적인 전환점은 2022년 말 문을 연 ‘스타벅스 경동1960점’이다. 1960년대 폐극장을 리모델링한 이 공간은 단순히 커피를 파는 곳을 넘어, 청량리 일대를 ‘경험을 소비하는 관광지’로 재정의했다. 이후 국내외 방문객이 일부러 시장을 찾기 시작했고, 이는 시장 골목 전체로 활기를 전파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처럼 전통적인 장보기 공간이었던 시장이 세대를 불문하고 ‘탐험하고 싶은 플레이스’로 확장된 것이다.

◇ 시장 위에 얹힌 새로운 레이어
스타벅스의 성공 이후 청량리에는 감각적인 플레이어들이 속속 모여들고 있다. 25년 된 갈빗집을 개조해 시장의 기억을 보존한 ‘카페청량’을 비롯해, 동남아 감성의 칵테일바, 위스키 바 등이 들어서며 상권의 밀도를 높였다.

특히 미쉐린 1스타 셰프가 오픈한 멕시코 술집 ‘페스카데리아’는 시장 한복판에서 이국적인 경관을 연출하며 정점을 찍었다. 여기에 을지로의 명소 ‘커피한약방’의 오픈 소식까지 더해지며, 검증된 플레이어들에게 청량리는 이제 매력적인 실험 무대로 인정받고 있다.

청량리의 또 다른 특징은 극적인 대비다. 역 일대에 들어선 초고층 주상복합 대단지는 튼튼한 배후 인구를 형성했고, 이는 재래시장과 대비되는 진귀한 도시 경관을 만들어냈다.

도매시장과 약재 쇼핑, 먹거리 골목 탐험은 물론, 어르신들의 놀이터인 콜라텍 문화까지 여전히 강하게 유지되고 있다. 여기에 성시경, 최화정 등 유명 연예인의 콘텐츠와 정치인들의 방문이 잇따르며 청량리는 전 세대와 계층, 외국인 관광객까지 한데 섞이는 ‘글로벌 로컬시장’으로 거듭났다.

신지혜 작가는 청량리를 기획된 재생 상권도, 취향이 축적된 마을형 상권도 아니라고 말한다. 대신 이미 존재하던 강한 시장 구조 위에 새로운 소비와 플레이어가 가볍게 얹히며 진화하는 곳으로 분석한다.

새벽의 활기찬 시장 기능과 노포의 명맥은 유지하면서, 그 위에 세련된 감각이 겹쳐지는 청량리. 낡은 것이 아니라 시간이 켜켜이 쌓인 이 구조야말로 자본만으로는 흉내 낼 수 없는 청량리 상권만의 압도적인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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