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진 회장의 사업 이력을 들여다보면 일정한 패턴이 보인다. 새로운 트렌드나 해외 성공 모델에서 영감을 받아 대규모 투자를 단행하고, 초기 관심을 끌다가 수익성 벽에 부딪혀 결국 철수하는 수순이다.
2018년 6월 선보인 잡화전문점 ‘삐에로쑈핑’이 대표적이다. 정 회장이 직접 “1년 동안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고 밝힌 이 매장은 일본의 유명 잡화점 ‘돈키호테’에서 영감을 받아 기획됐다. 1.8m 폭의 좁은 동선, 4만여 개 상품을 빼곡히 쌓아놓은 압축진열, ‘급소가격’, ‘광대가격’같은 저가 마케팅까지 돈키호테와 판박이라는 평가가 쏟아졌다.

출발은 나쁘지 않았다. 코엑스 1호점은 개점 두달 만에 누적 방문객 60만명을 돌파하고 초기 매출 목표를 120% 초과 달성했다. 이마트는 같은 해 8월 동대문 두타점을 시작으로 논현점, 의왕점, 명동점까지 공격적으로 확장해 매장 수를 9개로 늘렸다. 그러나 1년 반 만인 2019년 12월, 이마트는 삐에로쑈핑 철수를 결정했다. 전문점 부문 영업적자가 연간 900억 원에 달했다는 설명이 뒤따랐다.
2020년 5월 완전 철수가 마무리됐다. 이마트 측은 높은 임대료를 주된 원인으로 꼽았지만 업계에서는 이를 납득하기 어려운 변명으로 받아들였다. 실패의 본질은 다른 곳에 있었다. 돈키호테의 가격 경쟁력을 구현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삐에로쑈핑에서 7500원에 판매하는 스타일링 왁스가 온라인몰에서는 4700원대에 살 수 있었고, 3000원짜리 마스크 제품은 온라인 최저가의 두 배에 달했다. 돈키호테가 점장 재량으로 상품의 40%를 그때그때 소싱해 최저가를 실현하는 구조였다면, 삐에로쑈핑은 이를 현지화하는데 실패했다. 겉모습만 베껴왔을 뿐 핵심 DNA는 옮겨오지 못한 것이다.

◇ 3조 4000억 인수 대금에…매년 쌓이는 적자까지 더한 G마켓
뷰티 사업도 비슷한 궤적을 그렸다. 정 회장은 2012년 자체 H&B 브랜드 ‘분스(BOONS)’를 1호점으로 론칭했지만 3년 만인 2015년 철수했다. 이후 2017년 글로벌 드럭스토어 ‘부츠(Boots)’와 손잡고 재도전에 나섰다. 영국 1위 H&B 브랜드의 글로벌 소싱파워와 이마트의 상품 기획력을 결합한 ‘한국형 H&B 모델’을 표방하며 스타필드 하남에 대형 매장을 열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2020년 부츠마저 사업을 철수하면서 H&B 두번의 도전은 모두 실패로 끝났다. 이 모든 실패 사례 중에서도 가장 뼈아픈 것은 단연 e커머스다. 이마트는 2021년 3조 4000억 원을 들여 G마켓과 옥션을 운영하는 이베이 코리아를 인수했다. 당시 이마트는 자금 조달을 위해 성수동 본사 사옥까지 매각했다. 쿠팡의 공세로 오프라인 유통업이 흔들리던 시기, e커머스 시장의 주도권을 잡겠다는 승부수였다.
하지만 G마켓은 신세계 품에 안긴 직후인 2022년 적자로 전환했다. e커머스 시장에서의 존재감도 빠르게 줄었다. 지난해 이마트는 중국 알리바바인터내셔널과 합작법인을 세우고 G마켓을 그 자회사로 편입하는 지배구조 개편을 단행했지만 실적은 나아지지 않았다.
G마켓 매출은 2024년 9612억 원에서 2025년 7405억 원으로 20% 넘게 줄었고, 영업손실은 674억 원에서 1217억 원으로 두 배 가까이 불었다. 유동성이 풍부했던 시절 최고가에단행한 인수가 재무 부담만 키운 전형적인 승자의 저주가 된 것이다.
3조 4000억 원의 인수 대금에 매년 쌓이는 적자까지 더하면 G마켓이 신세계에 안긴 상처는 숫자로 가늠하기조차 어렵다. 이처럼 굵직한 실패들이 쌓이면서 정용진 회장은 이른바 ‘오너 리스크’의 대표 사례로 거론되기 시작했다.

◇ 스타필드와 트레이더스…체류형 복합 쇼핑몰 전략으로 정면돌파
그러나 정용진 회장의 이력을 실패로만 규정하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 같은 시기, 그가 키운 사업 중 유통업계의 판도를 바꾸는 데 성공한 것들도 분명히 존재한다. 스타필드가 대표적이다. 쇼핑과 레저, 문화를 한 공간에 녹인 체류형 복합쇼핑몰 전략은 오프라인 유통의 위기를 정면 돌파하는 카드가 됐다.
최근에는 도심 밀착형 소규모 모델인 ‘스타필드 빌리지’로 진화했다. 올해 1월 경기도 파주 운정신도시에 문을 연 스타필드 빌리지 운정은 개점 한 달여 만에 방문객 100만명을 돌파했다. 운정신도시 인구의 3배, 파주시 전체 인구의 2배에 해당하는 수치다. 방문객의 70% 이상이 인근 거주민이고 재방문율이 40%에 달한다.
정 회장은 “고객이 찾아오길 기다리는 방식에서 벗어나 고객의 삶 속으로 깊숙이 들어가는 패러다임 시프트가 필요하다”며 스타필드 빌리지 모델을 경남 진주, 서울 가양, 대전 유성, 충북 청주로 확장하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창고형 할인점 트레이더스도 정 회장의 선구안이 적중한 사례다. 2010년 1호점을 열 때만 해도 시장의 반응은 냉담했다. 국내 소비자에게 생소한 창고형 할인점 모델에 우려가 쏟아졌다.
그러나 16년이 지난 지금 트레이더스는 2025년 3분기에 사상 처음으로 분기 총매출 1조 원을 돌파했다. 전년 동기 대비 3.6% 증가한 수치다. 같은 기간 영업이익은 395억 원으로 11.6% 늘었다. 1~3분기 누계 영업이익도 전년 대비 27.2% 증가했다. 2019년 이후 10개 신규 점포를 열며 전국 점포 수를 24개로 늘렸고, 지난해 9월 문을 연 인천 구월점은 오픈 첫날 매출 30억 원으로 역대 최고 일매출을 경신했다. 개점 한 달 만에 전국 매출 1위 점포에 올랐다가 현재는 하남점에 이어 전국 2위를 기록 중이다.

◇ ‘노브랜드’ 전문점 전국 300개 돌파…태국 등 해외 진출 본격화
노브랜드도 정 회장의 성공 사례 목록에 올릴만하다. 2015년 ‘브랜드가 아니다, 소비자다’ 라는 슬로건으로 출발한 노브랜드는 브랜드 마케팅 비용을 걷어내고 품질과 가격만으로 승부하는 이마트의 자체 브랜드(PB)다. 출범 초기에는 반신반의하는 시선이 많았다. 그러나 고물가 시대가 길어지면서 노브랜드의 가성비 전략은 정확하게 시장을 파고들었다.
현재 노브랜드 전문점은 전국 300개를 훌쩍 넘었고, 태국을 시작으로 해외 시장 진출도 본격화하고 있다. 프리미엄 아울렛도 빼놓을 수 없다. 신세계그룹은 2007년 여주에 국내 첫 프리미엄 아울렛을 열며 아울렛 시장의 판을 새로 짰다. 이후 부산, 파주, 시흥, 김해까지 전국으로 확장하며 국내 아울렛 시장의 절대 강자 자리를 굳혔다.
프리미엄 아울렛의 핵심은 ‘나들이’와 ‘쇼핑’을 결합한 공간 설계다. 야외 오픈형 구조에 조각 작품을 배치하고 인근 자연환경을 활용해 단순 쇼핑 공간을 넘어 목적지 자체가 되도록 했다. 실적이 반등 궤도에 오른 지금, 정 회장은 그룹의 미래를 걸 대형 프로젝트들을 동시에 진행하고 있다. 규모도 성격도 이전의 실패작들과는 차원이 다르다.
첫 번째는 스타필드 청라다. 인천 청라국제도시에 조성 중인 이 공간은 2만 3000석 규모의 멀티스타디움과 호텔, 인피니티풀, 쇼핑몰이 하나로 연결되는 세계 최초 초대형 복합 레저테인먼트 시설이다. 지하 3층부터 지상 8층, 연면적 15만 평으로 스타필드 중 최대 규모다.

◇ ‘미국 AI 기업 리플렉션AI’ X ‘한국 소버린 AI’ 팩토리 건립 MOU 체결
호텔 객실에서 야구를 관람하고, 인피니티풀에 몸을 담근 채 경기를 즐길 수 있는 방식은 기존 돔구장 개념과는 차원이 다르다. 2028년 초 오픈이 목표이며, SSG랜더스가 이 멀티스타디움을 홈구장으로 사용하게 된다. 두 번째는 AI 데이터센터 프로젝트다. 신세계그룹은 올해 초 미국 AI 기업 리플렉션AI와 ‘한국 소버린 AI 팩토리 건립을 위한 전략적 파트너십MOU’를 체결했다.
리플렉션AI는 알파고 개발자 출신이 창업하고 엔비디아 등으로부터 20억 달러(약 3조원)의 투자를 유치한 회사로, 서구권의 첨단 개방형 AI 모델을 표방하며 ‘딥시크 의 대항마’로 불린다. 양사는 하반기 합작법인을 설립하고 국내에 250㎿ 규모의 데이터센터를 건설할 계획이다. SK텔레콤과 AWS가 울산에 건설 중인 데이터센터(103㎿)의 두 배가 넘는 규모다. 이 데이터센터는 단순한 인프라가 아니다.
상품 소싱부터 발주, 가격 책정, 물류, 재고관리, 고객 관리까지 리테일 전 과정에 AI를 접목하는 ‘이마트 2.0’의 기반이 된다. 아마존과 알리바바가 유통기업에서 AI·클라우드 기업으로 변신한 경로를 신세계가 뒤따르겠다는 선언이다. 스타필드 청라가 완공되고, AI 데이터센터가 이마트 운영과 결합하고, 스타베이 시티가 문을 여는 2028~2029년에 정용진 회장의 경영 성적표가 어떤 결과를 만들어낼지 업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SSF샵-로고[1]](https://tnnews.co.kr/wp-content/uploads/2025/08/SSF샵-로고1.png)


![네이버볼로그[1]](https://tnnews.co.kr/wp-content/uploads/2025/08/네이버볼로그1-300x133.jpe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