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유통업계 전반에 희망퇴직 붐이 일고 있다. 장기화된 내수 침체와 더불어 이커머스(전자상거래), 인공지능(AI) 기술의 급속한 확산이라는 구조적 변화가 맞물렸기 때문이다. 특히 전통적인 아날로그 기반의 인력 구조를 대체하고 경영 구조를 재편하려는 흐름이 전면에 부상했다. 과거 실적 악화를 드러내는 ‘부정적 신호’에서 이제는 ‘젊고 슬림한 조직’, ‘미래 경쟁력 확보’라는 명분 아래 마치 하나의 경영 전략이자 경쟁력으로 내세워지는 분위기까지 형성되는 중이다.
최근 유통업계 희망퇴직의 중심에는 롯데그룹이 있다. 지난 1년간 적극적인 경영 효율화 전략을 추진해온 롯데의 유통·식품 계열사들은 잇따라 희망퇴직을 단행하며 업계에 큰 파장을 던졌다. 특히 롯데칠성음료는 창사 75년 만에 처음으로 구조조정에 나섰다. 유통업계에 따르면 롯데칠성음료는 11월 21일까지 1980년 이전 출생자 중 입사일이 2015년 이전인 직원(근속 10년 이상)을 대상으로 희망퇴직 신청을 받았다.

이는 지난해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12.2% 감소하고 순이익이 64% 급감하는 등 실적 부진에 따른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근속 15년 이상 직원에게는 기준급여 24개월치와 재취업 지원금 1000만원이 지급됐다.
롯데 통합 멤버십 엘포인트를 운영하는 롯데멤버스 역시 창사 이래 처음으로 희망퇴직을 공지했다. 근속 5년 이상의 45세 이상(1982년 이전 출생자) 직원을 대상으로 하며, 근속 기간에 따라 기본급 30개월에서 최대 36개월 치를 지급하는 파격적인 조건을 제시했다. 또한 재취업 지원금 1000만원, 재취업 교육 지원금 100만원, 대학생 자녀 1인당 학자금 1000만원까지 지원했다.
롯데멤버스 측은 “이번 희망퇴직 시행은 AI(인공지능) 도입이 가속화하면서 미래 성장 동력을 확보하고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전략적 결정”이라며, “인적 쇄신을 통해 빠르게 변화하는 대외환경에 선제로 대응하고 미래 산업에 대한 투자 기반을 마련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는 단순한 인력 감축이 아니라, 마케팅·핀테크 기업을 넘어 테크·데이터 기업으로 도약하려는 구조적 재편의 일환임을 강조하는 대목이다.

(사진 픽사베이)
◇ 편의점 세븐일레븐을 운영하는 코리아세븐…2년 연속 희망퇴직 접수
이 외에도 편의점 세븐일레븐을 운영하는 코리아세븐은 2년 연속 희망퇴직을 접수했고, 롯데웰푸드도 지난 4월 45세 이상, 근속 10년 이상 임직원을 대상으로 창사 이래 첫 희망퇴직을 시행했다.
대형마트들은 코로나19 확산 기간 이커머스가 급성장할 때부터 일자리가 줄기 시작했다. 롯데마트와 이마트 양사의 직원 수는 2019년 대비 5000명 가까이 감소한 것으로 집계된다. 청산 위기에 놓인 홈플러스는 지난해 12월 부산·울산·경남지역에서 희망퇴직을 실시했고, 올해 1월 공채 이후 회생절차 개시로 인해 공채를 중단하고 수시채용만 하고 있다. 이마트 역시 지난해에만 두 차례 희망퇴직을 단행하며 대리·사원급까지 대상을 확대하는 등 구조조정 강도를 높이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정부의 민생 소비쿠폰 정책이 대형마트를 제외하면서 역차별 논란이 불거지기도 했다. 가맹점 중심의 편의점은 대부분 포함됐으나 직영점 중심의 대형마트는 혜택을 받지 못해 장보기 수요가 전통시장과 편의점으로 이동하면서 실적에 악영향을 미쳤다. 실제로 이마트와 롯데마트·슈퍼는 3분기 국내 사업 영업이익이 각각 7.6%, 85.1% 급감하며 정부의 ‘민생 회복’ 정책이 오히려 구조조정을 부채질했다는 지적도 있다.

◇ 올해 성장세가 꺾인 편의점 업계도 축소 경영 대열에 합류
올해 성장세가 꺾인 편의점 업계도 축소 경영 대열에 합류했다. CU를 운영하는 BGF리테일은 업황 둔화를 고려해 예년과 달리 하반기 공채를 진행하지 않았으며, 세븐일레븐은 2년 연속 희망퇴직을 시행하고 점포 수를 줄이는 체질 개선 작업을 병행했다. 이커머스 기업인 11번가는 3년째 희망퇴직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2년간 여섯 차례 구조조정을 단행하는 등 생존 싸움에 돌입했다.
전통의 뷰티 대기업 LG생활건강도 칼바람을 피하지 못했다. 지난 10월 백화점과 면세점의 영업직인 판매판촉직(만 35세 이상 대상)을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시행했다. 이는 화장품 구매 수요가 오프라인 매장에서 이커머스 등으로 옮겨간 영향을 반영한 것이다.

(사진 롯데그룹)
◇ ai 통한 고객 상담 등…단순한 보조 수단을 넘어 생활 속으로
면세업계의 구조조정 강도는 더욱 높다. 외국인 관광 트렌드가 단체 관광에서 개별 관광으로 바뀌면서 롯데, 신세계, HDC신라는 지난해, 현대와 신라면세점은 올해 4월 각각 희망퇴직을 단행했다. 현대면세점은 시내 면세점 폐점과 함께 5년 차 직원까지 희망퇴직을 단행했으며, 신라면세점은 연봉의 1.5배 즉시 퇴직 또는 18개월 휴직 후 퇴직이라는 옵션을 제시했다.
영화관 업황 침체로 CJ CGV 역시 상반기 80여 명에 이어 하반기에도 희망퇴직 신청을 받았다. 팬데믹을 거치며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가 급성장하면서 영화 산업은 장기 침체의 늪에 빠졌기 때문이다.
평생직장을 기대하는 근로자가 줄고 고용 안전망이 강화된 것도 인식 변화에 영향을 미쳤다. 크래프톤처럼 역대 최대 실적을 기록한 기업조차 AI 전환이라는 시대적 변화 속에서 구성원이 자신의 성장 방향을 주도적으로 설계하도록 지원한다는 취지로 ‘자발적 퇴사 선택 프로그램’을 실시하는 건 희망퇴직이 재무적 위기 타개를 넘어서 전략적 수단이 됐음을 시사한다.
특히 AI 도입은 인력 감축의 결정적 배경으로 작용하고 있다. 유통업계에서 AI는 단순한 보조 수단을 넘어 경영 설계의 전제로 자리 잡고 있다. 자동 발주, 수요 예측, 타깃 마케팅, 고객 상담 등 핵심 기능이 빠르게 자동화되고 있다. 판매 현장에선 직원을 뽑는 대신 키오스크를 사들이는 게 일상이 됐다.

(사진 롯데호텔)
고용정보원은 지난해 서울 지역 음식점 2000개사를 대상으로 실태조사 및 설문조사를 진행했으며, 그 결과 키오스크와 태블릿 주문기의 도입은 음식점업의 판매·서빙 직종 근로자의 고용 감소를 유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키오스크, 태블릿 주문기는 각각 11%, 7.6%의 감소를 일으켰다. 고용 감소의 대상은 대부분 임시 일용직 근로자 인 것으로 확인됐다. 이처럼 기존 아날로그 기반 인력은 대체되고 조직 재배치와 감축이 동시에 이뤄지는 것이다.
연공 서열 중심의 나이가 많은 직원이 많은 ‘무거운 조직’은 AI에 맞춘 경영 재편 과정에서 가장 먼저 구조조정 대상이 된다. 반복 업무는 물론 일정 수준의 판단이 요구되는 중간관리 영역까지 감원 대상에 포함되는 추세는, 사람의 역할이 점차 축소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인력 효율화가 필요한 업종에서 희망퇴직은 기업과 근로자 모두를 만족시키는 대안으로 꼽힌다.
다만 희망퇴직의 일상화는 또 다른 구조적 압박 요인과 맞물려 있다. 바로 정치권의 정년 연장 논의다. 최근 노동계는 ‘법정 정년 연장(65세)’ 입법을 적극적으로 요구하면서 사회적 논쟁이 더욱 거세지고 있다. 초저출생·고령화 현상이 가속화되는 현실 속에서, 정부 또한 정년 연장 논의를 본격적으로 수면 위로 끌어올리는 분위기다.

◇ 희망퇴직 일상화…노동시장 전반이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도
생산연령인구가 급감하고 공적 연금의 재정 부담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구조적 문제를 감안할 때, 정년 연장은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시대적 숙제로 여겨진다. 경제 활동이 가능한 중장년층에게 정년 연장은 소득 공백 없는 ‘계속 고용’의 기회를 제공하며, 안정적인 노후 설계에 긍정적인 발판이 될 수 있다. 또한, 능력과 의지가 있음에도 연령 때문에 일터에서 배제되는 비효율적인 상황을 개선하는 효과도 기대된다.
희망퇴직이 일상화되면서 노동시장 전반이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도 함께 제기된다. 인원 감축이 신규 채용으로 이어지지 않고 AI 등으로 인력을 대체하는 경우, 고용 시장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매년 2000명가량의 희망퇴직을 추진하는 은행권은 신입 채용을 늘리기보다는 AI 등으로 인력을 대체하고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2026년 전망에서 인구구조 변화와 낮은 경제성장세로 취업자 수 증가 폭이 축소될 것으로 내다봤다. 유통업계에서는 인공지능(AI) 도입이 가속화되면서 일부 업무 공정이 축소되고, 이에 따라 희망퇴직 기조가 2026년까지 지속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업계 관계자는 “경기가 좋지 않고 고정비 비중이 높을 때는 인건비를 줄이고 비핵심 사업 규모를 줄이는 방법이 정석”이라며 당분간 희망퇴직을 받는 기업들은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전반적인 소비 위축과 오프라인 침체, 온라인 주춤이 맞물린 상황에서, 기업들이 미래 성장이 어렵다고 판단해 인건비 절감에 나서는 것은 불가피하다. 그러나 고급 인력의 대량 퇴직이 소비 감소를 부추기고, 이는 다시 기업 실적 악화와 추가 구조조정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우려된다.
결국 유통업계의 희망퇴직 일상화는 단순한 불황 대처가 아닌, ‘디지털 전환’과 ‘효율 극대화’를 목표로 하는 거대한 구조적 재편의 서막이다. 기업은 생존을 위해 ‘슬림화’를 택했지만,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고용 불안정성과 핵심 인재 유출, 그리고 노동시장 위축이라는 사회적 과제에 대한 깊은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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