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 플랫폼 발란이 설립 10년 만에 시장에서 퇴장하며 적잖은 충격을 주고 있다. 업계 1위에 등극해 대형 스타 배우 김혜수를 모델로 기용하며 한 때 ‘유니콘 기업’을 꿈꿨으나 유동성 위기를 극복하지 못하고 파산 선고를 받았다.
발란은 트렌비, 머스트잇과 함께 이른바 ‘3대 명품 플랫폼’으로 불리며 빠르게 몸집을 키웠다. 해외 부티크와 국내 병행수입 셀러를 연결하는 구조를 앞세워 온라인 명품 시장을 키웠고, 코로나19 시기에는 그 성장세가 더 가팔라졌다.
2019년 256억 원 수준이던 거래액은 2021년 3150억 원, 2022년 6800억 원까지 불어났다. 숫자만 보면 성공한 플랫폼처럼 보였다. 시장도 그렇게 받아들였다. 발란의 핵심 수익원은 입점 셀러에게서 받는 중개 수수료였다.

문제는 이 수익만으로는 플랫폼 운영비와 마케팅비, 각종 고정비를 감당하기 어려웠다는 점이다. 명품 커머스는 고객을 끌어오는 비용이 높은 시장이다. 소비자는 가격에 민감하면서도 동시에 정품 여부와 신뢰에도 예민하다.
플랫폼 간 차별화가 쉽지 않다 보니 결국 쿠폰, 카드 할인, 광고, 프로모션 경쟁이 치열해질 수밖에 없었다. 수수료로 번 돈이 다시 마케팅 비용으로 빠져나가는 악순환이 굳어진 셈이다. 엔데믹 이후 상황은 더 나빠졌다.
해외여행이 재개되자 소비자들은 다시 현지 구매로 돌아섰고, 백화점 같은 오프라인 채널도 살아났다. 팬데믹 기간 온라인으로 쏠렸던 명품 수요가 분산되기 시작한 것이다. 여기에 고금리와 고물가가 겹치면서 명품 소비 자체도 둔화했다.
명품 시장이 꺾이자 발란 같은 플랫폼의 구조적 약점도 그대로 드러났다. 거래액은 줄었고, 매출은 감소했다. 그런데도 플랫폼의 존재감을 유지하기 위해 쿠폰과 광고 지출을 크게 줄이지 않았다. 출혈 경쟁을 멈추는 순간 이용자 이탈이 더 빨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위험 신호는 이미 재무제표에 찍혀 있었다. 2023년 말 기준 발란은 자본총계가 마이너스 77억 3000만 원으로 완전자본잠식 상태였다. 겉으로는 플랫폼이 돌아가는 것처럼 보여도 안쪽에서는 체력이 바닥나고 있었다는 뜻이다.
결국 투자 유치가 막히면서 정산 대금 지급도 멈췄고, 회생절차를 거친 뒤 결국 파산 선고로 이어졌다. 회생절차 폐지와 견련파산 전환은 플랫폼 실패가 입점업체와 채권자, 직원에게 얼마나 큰 충격을 주는지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이었다.
초기에 제시된 변제율은 5%에 불과했고, 수정안도 15.5% 수준에 그쳤다. 체불 임금과 조세 같은 공익채권이 먼저 처리되고 나면 일반 판매자와 채권자에게 돌아갈 몫은 사실상 거의 없다는 말이 나왔다. 플랫폼이 단순한 중개자가 아니라 자금 흐름의 핵심 고리라는 점이 다시 확인된 셈이다.

◇ 뚜렷한 수익 모델 없이 외형 성장에만 급급…결국 한계에 부딪혀
지난 2024년 여름 한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티몬·위메프 사태, 이른바 티메프 사태는 이 문제를 더 거칠고 선명하게 드러냈다. 플랫폼의 위기가 더 이상 개별 기업의 실패에 그치지 않고 사회적 재난으로 번질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이커머스 플랫폼인 티몬과 위메프는 경영난 및 심각한 재정 악화로 인해 수많은 셀러들에게 대금을 제때 지급하지 못했다. 이로 인해 발생한 미지급 대금은 약 1조 원에 달했고, 대다수의 중소 셀러들은 심각한 자금난을 겪게 됐다.
플랫폼 사업은 겉으로 보기보다 훨씬 무겁다. 소비자들이 누린 할인과 편리함의 비용을 결국 판매자들이 떠안는 구조가 된다는 점이다. 이러한 문제는 티메프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머지포인트, 보고플레이, 바보사랑 등 과거의 여러 사례도 구조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뚜렷한 수익 모델 없이 외형 성장과 트래픽 확대에만 기대다 한계에 부딪혔다는 점에서 닮아 있다. 지난해부터 회생절차를 진행 중인 정육각과 초록마을의 사례도 플랫폼에 대한 환상을 걷어내는 사건이었다.
정육각의 창업주 김재연 대표는 tvN 예능 프로그램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유망한 청년 사업가로 출연해 대중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지만, 실제 사업에는 성공하지 못했다. 신선식품 유통은 자본이 많이 드는 사업이었기 때문이다.

상품의 특성상 온도 관리가 필수이고, 배송 시간과 품질 관리도 까다롭다. 폐기율 관리까지 신경 써야 한다. 정육각은 신선도를 앞세운 D2C 모델로 주목받았지만,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콜드체인 구축과 마케팅 비용은 계속해서 수익성을 갉아먹었다.
앞서 지난 2022년 신선한 회를 산지에서 당일 배송한다는 아이템으로 수백억 원의 투자 유치를 받았던 스타트업 ‘오늘식탁’의 ‘오늘회’가 전 직원에게 권고사직을 통보하고 서비스를 중단했던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
특히 정육각의 경우 2022년 약 900억 원을 들여 초록마을을 인수한 게 결정적 부담이 됐다. 온라인 플랫폼 운영의 효율을 오프라인 채널에 접목하려는 시도였지만, 저성장과 소비 둔화라는 벽을 넘지 못했다. 오프라인 점포 운영은 훨씬 까다로운 일이었다.
점포 유지비와 인건비, 브랜드 관리 비용이 계속 들어가 결국 누적 적자는 유동성 위기로 이어졌다. 플랫폼의 확장성에도 물리적 한계가 있다는 점을 드러냈다. 기술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줄 것이라는 기대가 현실의 비용 구조 앞에서 무너진 셈이다.

◇ 가격 외에 차별화 어려워지자… ‘수수료·마케팅’ 출혈 경쟁으로
패션 이커머스 플랫폼의 상황도 비슷하다. 한때 가장 역동적인 버티컬 플랫폼 시장으로 꼽혔지만, 지금은 성장 둔화가 뚜렷하다. 무신사, 지그재그, W컨셉 같은 플랫폼은 과거 신진 브랜드를 키워내는 인큐베이터 역할을 했다.
특정 플랫폼에 입점해 트래픽을 얻고, 팬덤을 만들고, 스타 브랜드로 성장하는 그림이 가능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상품 구성은 상향 평준화됐고, 플랫폼 간 중복 입점은 흔해졌다.
소비자들은 여러 플랫폼을 넘나들며 가격을 비교하고 가장 유리한 채널로 움직인다. 가격 외에 뚜렷한 차별화가 어려워지자 플랫폼은 수수료 경쟁과 마케팅 출혈 경쟁으로 내몰렸다. 연 매출 100억 원 안팎에서 성장이 멈추는 브랜드가 많아지면서 플랫폼 수익도 정체되고 있다.
이 때문에 주요 플랫폼은 중개를 넘어 다른 길을 찾기 시작했다. 자체 브랜드를 키우고, 오프라인 매장을 늘리고, 브랜드 투자와 육성에 직접 나서는 식이다. 무신사가 ‘무신사 스탠다드’를 키우고 오프라인 확장에 속도를 내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플랫폼의 역할이 단순 연결에서 브랜드 보유와 제조, 투자로 옮겨가고 있다는 뜻이다. 중개만으로는 살아남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여기에 알리익스프레스, 테무 같은 중국계 초저가 플랫폼의 공습도 이어지고 있다.
이들은 공장 직거래를 앞세워 국내 플랫폼이 따라가기 어려운 가격 경쟁력을 확보했다. 중간 유통 단계를 최소화한 구조는 국내 플랫폼의 연결 수익 기반을 정면으로 흔든다. 국내 플랫폼 기업들이 정산 불안으로 흔들리는 사이, 중국 플랫폼들은 한국 시장 공략에 속도를 내고 있다.
물류센터를 짓고, 현금성 마케팅도 공격적으로 집행한다. 국내 중소 플랫폼 입장에선 단순한 경쟁이 아니라 생존의 문제다. 품질 논란과 개인정보 우려가 제기돼도, 고물가 시대의 소비자들은 결국 가격에 반응한다. 그 결과 국내 버티컬 플랫폼의 입지는 더 좁아지고 있다.

◇ 자동화된 물류, 정교한 타게팅, 저효율 광고 정리…체질개선 우선
그렇다면 플랫폼이 살아남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제는 생존 조건이 꽤 분명해졌다. 먼저 수익 구조가 다양해야 한다. 중개 수수료 하나만으로는 외부 충격을 버티기 어렵다. 자체 브랜드, 광고, 데이터 서비스, 멤버십, 구독 같은 추가 수익원이 필요하다.
충성 고객 확보도 중요하다. 할인에만 반응하는 고객은 오래 남지 않는다. 서비스 경험과 품질, 플랫폼에 대한 신뢰로 다시 찾는 고객이 많아야 한다. 반복 구매율과 객단가를 높이는 전략이 필요한 이유다. 운영 효율화도 필수다. 시장이 빠르게 커지던 시기에는 마케팅비를 쏟아붓는 방식으로 버틸 수 있었지만, 지금은 아니다. 자동화된 물류, 정교한 타게팅, 저효율 광고 정리 같은 체질 개선이 먼저다. 콘텐츠와 커뮤니티의 힘도 점점 커지고 있다.
가격은 누구나 따라 할 수 있지만, 취향과 경험은 쉽게 베낄 수 없다. 소비자가 단순히 물건을 사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정보를 얻고 머물기 위해 찾는 플랫폼이 돼야 한다. 또 중요한 건 정산 경쟁력이다. 이제 정산 주기는 단순한 운영 지표가 아니다. 플랫폼의 재무 건전성과 신뢰를 보여주는 핵심 기준이 됐다. 정산이 불안한 플랫폼은 결국 우수한 셀러부터 잃게 된다. 좋은 판매자가 빠져나가면 상품 경쟁력도 무너지고, 소비자 이탈도 빨라진다.
유통 플랫폼의 위기는 역설적으로 산업을 더 건강하게 만드는 과정일 수 있다. 팬데믹과 과잉 유동성이 만든 환상은 끝났다. 이제 시장은 플랫폼에게 기술적 화려함이 아니라 유통업자로서의 기초 체력과 재무적 지속 가능성을 요구하고 있다.
앞으로 자본력과 인프라를 갖춘 대형 플랫폼은 위기를 틈타 버티컬 시장을 더 빠르게 흡수할 가능성이 크다. 반면 중소 플랫폼은 자신만의 대체 불가능한 강점을 증명하지 못하면 생존이 쉽지 않다. 결국 다음 승자는 단단한 신뢰와 수익 구조를 만든 기업이 될 가능성이 크다. 정산하는지, 얼마나 오래 버틸 체력이 있는지가 훨씬 중요해졌다.


![SSF샵-로고[1]](https://tnnews.co.kr/wp-content/uploads/2025/08/SSF샵-로고1-300x58.png)

![네이버볼로그[1]](https://tnnews.co.kr/wp-content/uploads/2025/08/네이버볼로그1-300x133.jpe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