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리테일 시장의 가장 강력한 화두는 ‘제로(Zero)’의 범용화다. 초기 탄산음료와 주류 시장을 강타했던 제로 트렌드는 이제 가공식품의 영역을 넘어 간장, 파스타 소스, 드레싱 등 일상적인 기초 식재료와 기능성 발효유 시장으로 그 저변을 급격히 확장하고 있다.
이는 일시적인 유행을 넘어 소비자의 장바구니 구성 자체가 ‘건강 기능성’과 ‘당류 저감’을 중심으로 재구조화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유통업계와 제조사들은 단순히 성분을 빼는 단계를 지나, 원천 발효 기술과 공정 혁신을 통해 맛의 품질을 유지하면서도 영양학적 우위를 점하는 기술 중심의 생존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보이지 않는 당과의 전쟁, 식재료 카테고리의 전략적 변곡점
소비자들이 가공식품 뒷면의 영양성분표를 정교하게 분석하기 시작하면서, 리테일러와 제조사들은 ‘숨겨진 당’을 제거하는 데 사활을 걸고 있다. 과거의 ‘건강식’이 특정 성분을 강화하는 방식이었다면, 현재의 시장 구조는 불필요한 성분을 완전히 배제하는 ‘클린 라벨(Clean Label)’ 지향형으로 급변했다.
이러한 변화는 특히 요리의 기본이 되는 장류와 소스류에서 두드러진다. 소비자들이 한 끼 식사에서 섭취하는 총 당량을 관리하기 시작하면서, 매일 사용하는 기초 양념이 식단 관리의 최대 변수로 떠오른 것이다.
식품 제조사들은 이에 대응해 단순한 라인업 확장이 아닌, 생산 공정 자체를 재설계하는 초강수를 두고 있다. 60년 이상의 업력을 가진 전통 기업부터 프리미엄 브랜드를 지향하는 중견 기업까지, 이제 ‘제로’와 ‘저당’은 선택이 아닌 시장 점유율 방어를 위한 필수 인프라가 되었다. 유통 플랫폼 또한 이러한 흐름에 맞춰 저당 기획전을 정례화하고 전용 카테고리를 신설하는 등 매대 운영 효율화를 꾀하고 있다.

자체 기술력으로 만든 시장 우위…R&D 기반 차별화 전략
최근 눈에 띄는 성과를 거둔 기업들의 공통점은 독자적인 기술력을 바탕으로 ‘맛과 건강의 트레이드오프(Trade-off)’를 해소했다는 점이다. hy가 선보인 제로 발효유 ‘야쿠르트XO’는 출시 1년 만에 누적 판매량 2,500만 개를 돌파하며 메가 히트 상품으로 안착했다.
이는 유산균을 7일간 장기 배양하는 LF-7 공법을 통해 당과 지방을 모두 제거하면서도 기존 야쿠르트 특유의 풍미를 유지한 결과다. 특히 hy는 자체 개발한 특허 프로바이오틱스에 균주번호를 부여하고 이를 투명하게 공개하는 캠페인을 전개하며, 단순한 제로 음료를 넘어선 전문 기능성 제품으로서의 신뢰도를 확보했다. 이러한 기술적 우위는 메가MGC커피와의 협업 음료가 한 달 만에 230만 개 이상 공급되는 등 B2B 채널 확장으로도 이어지고 있다.
전통적인 장류 시장의 강자 샘표 역시 ‘양조간장 제로’를 통해 카테고리 킬러로서의 입지를 굳히고 있다. 일반적인 양조간장은 발효 과정에서 콩과 밀 유래 당분이 잔류하게 되는데, 샘표는 이를 제어하기 위해 메주, 유산균, 효모, 숙성으로 이어지는 4단계 발효에 ‘당 제로 발효 공정’을 추가 도입했다.
그 결과 당류 0g을 달성함과 동시에 칼로리는 39%, 염도는 25% 낮추는 데 성공했다. 이는 고추장, 쌈장, 비빔장 등 저당 장류 라인업으로 확장되며 식단 관리에 민감한 소비자들을 락인(Lock-in)시키는 핵심 전략이 되고 있다.

프리미엄 가치 재정립, 서양식 소스 시장의 저당 경쟁
서양식 소스와 드레싱 시장에서도 저당화는 브랜드 경쟁력의 척도가 되었다. 프리미엄 브랜드 폰타나는 나폴리 토마토 저당 파스타소스를 통해 100g당 당류 3g, 지방 1.6g이라는 수치를 제시하며 건강 지향적 소비자들을 공략 중이다.
이들은 정제 탄수화물에 대한 거부감을 고려해 이탈리아산 유기농 통밀 스파게티면을 도입하고, 당류 0g의 제로슈거 드레싱 4종을 선보이는 등 식단 전반을 커버하는 포트폴리오를 구축했다. 특히 폰타나는 온라인 브랜드 스토어를 중심으로 ‘저당 테이블’ 기획전을 운영하며 D2C(Consumer to Direct) 채널에서의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이러한 행보는 단순한 할인 판매가 아니라, ‘지속 가능한 식단 관리’라는 가치를 제안함으로써 고관여 소비자층의 반복 구매를 유도하는 구조적 접근이다.
이러한 기업들의 움직임은 유통 구조 전반에 걸쳐 신규 수요를 창출하고 있다. 저당 및 제로 제품은 일반 제품 대비 객단가가 높게 형성됨에도 불구하고, 건강이라는 명확한 편익을 제공함으로써 소비자의 지불 용의를 높인다. 결과적으로 유통 플랫폼 입장에서는 카테고리 수익성을 개선할 수 있는 효자 품목으로 자리 잡고 있으며, 이는 PB(자체 브랜드) 상품 기획 시에도 핵심적인 가이드라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식품 리테일 시장의 ‘제로’ 경쟁은 향후 더욱 세분화되고 지능화될 전망이다. 초기에는 탄수화물과 당을 줄이는 데 집중했다면, 앞으로는 개인의 대사 상태나 라이프스타일에 맞춘 ‘초개인화된 기능성 식재료’ 시장이 열릴 것으로 보인다. 기업 입장에서는 단순히 성분을 제거하는 기술을 넘어, 대체 원료의 수급 안정성과 대량 생산 체제에서의 균질한 맛 구현이 장기적인 수익성을 결정짓는 핵심 변수가 될 것이다.
유통사와 브랜드사는 단순히 ‘건강에 좋다’는 추상적인 마케팅에서 벗어나야 한다. 수치화된 데이터와 입증된 공정 프로세스를 기반으로 소비자의 식단 고민을 해결해 주는 ‘솔루션 프로바이이더’로서의 정체성을 구축해야 한다. 기초 식재료의 제로화는 거스를 수 없는 거대한 시장 흐름이며, 이 파도에 올라타는 기업만이 다음 세대의 식탁 권력을 쥐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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