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가 양대 산맥인 신세계와 롯데의 수장이 온오프라인을 겸직하게 됐다. 롯데백화점과 롯데온이 강희태 대표를 내세우며 온오프라인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상황에서 신세계 이마트 강희석 대표가 쓱닷컴 대표까지 맡게 됐다.
신세계그룹은 지난 10월 15일 이마트부문 2021년 정기 임원인사를 단행했다. 이번 인사에서 먼저 SSG.COM(쓱닷컴) 대표이사에 이마트 강희석 대표이사를 내정했다. 강 대표는 지난해 인사에서 이마트 대표이사에 선임된 데 이어 SSG.COM 대표이사까지 겸직한다. 업계에서는 강 대표의 겸직에 대해 오프라인에서의 성과를 어느 정도 인정하고, 온라인 파트에서도 실적을 기대하고자 하는 의미로 해석했다. 특히, 두 계열 간 시너지 효과도 클 것으로 내다봤다.

신세계는 경영 환경 극복과 경영 성과 창출에 초점을 맞추고, 전문성 강화와 우수 인재를 적재적소에 배치하는데 주력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온라인 역량 강화 및 온오프라인 시너지 창출과 조직 효율 제고 및 신성장 기반 구축에 중점을 뒀다고 전했다.
신세계그룹 관계자는 “어려운 경영 환경을 타개하고 그룹의 미래 준비에 실질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최적임자를 엄선해 인사를 시행했다”며 “앞으로도 철저히 능력과 성과주의에 기반한 인사를 계속 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온오프라인 수장 겸직에 따라 앞으로 보다 빠른 의사결정이 이뤄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강 대표의 이번 인사는 철저하게 실적 위주로 진행됐다는 평가가 높다. 지난해 인사에서 강희석 대표가 발탁됐을 때 컨설턴트 출신이라는 점에서 기대와 우려가 공존했다.
하지만 올해 신세계그룹 할인점이 8분기 만에 흑자를 기록하며 성과를 보이자 강희석 대표의 발탁은 물음표에서 느낌표로 변했다. 강 대표의 이마트는 그로서리(식료품)부문을 강화하고, 월계 이마트 리뉴얼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타 오프라인 유통기업들이 부진한 상황에서 빠르게 혁신을 도입했고, 실적회복을 이룬 것이다.
정용진 부회장이 강 대표를 온·오프라인 통합 대표로 앉힌 데는 이런 부분이 반영된 것으로 분석된다. 또 최근 SSG닷컴이 코로나 시기에 크게 성장하고 있어, 탄력을 이어 가기 위한 전략이라는 관측도 있다.
SSG닷컴은 올해 코로나19 특수를 확실하게 누렸다. 상반기 매출액은 전년 동기(3843억원)대비 61% 이상 증가한 6188억원을 기록했다. 강 대표의 겸직으로 쓱닷컴 역시 혁신이 가속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쓱닷컴의 성장률이 가파르지만 아직 이커머스 시장에서 넘어야 할 산은 높다는 것이 업계의 분석이다. 그럼에도 강 대표는 아마존과 알리바바 등 대형 기업들의 성장을 공부했던 경험이 있고, 컨설턴트를 거치면서 온라인에 대한 이해도도 높다.
강 대표는 앞으로 기존 이마트가 가지고 있는 전국적 오프라인 네트워크를 쓱닷컴과 접목하는 사업을 보다 활성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신세계가 물류창고와 배송시스템 등이 쿠팡에 비해 밀린다는 지적에 그나마 대응할 수 있었던 것은 이마트가 가진 역량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업계 관계자는 “아직 뚜껑을 열지는 않았지만 내년 신세계 온오프라인은 상당한 변화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며 “계열 간 시너지를 통해 전체적인 성장을 도모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신세계에 앞서 롯데그룹은 이미 온오프라인 통합 인사를 내놨다. 1987년 롯데쇼핑에 입사한 유통맨 강희태 부회장을 내세운 것. ‘뉴롯데’ 건설을 거론하는 신동빈 회장의 중추적 역할을 수행하는 인물이다. 온라인 파트에서 롯데는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롯데 내 주요 계열을 통합한 ‘롯데온’을 런칭하고 ‘옴니채널’을 구현하기 위한 노력을 지속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다른 기업에 비해 늦은 출발을 보이는 롯데에 대해 우려 섞인 목소리를 내고 있다. 거창하게 시작했지만 롯데온은 아직 성과면에서는 부족한 감이 없지 않다. 올해 2분기 온라인 시장 전체 성장률은 약 17%였지만 롯데온은 1.2%에 머물렀다.
롯데온은 먼저 브랜드 이름을 알리기 위해 집중하는 모습이다. TV, 인터넷 광고를 집중적으로 진행하고, 다양한 이벤트를 선보이고 있다. 또, 명품을 주력 상품으로 내세워 소비자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최근 쇼핑 주류로 떠오른 2030세대 공략을 위해 매주 일요일을 ‘명품데이’로 지정했고, 매월 첫 번째 월요일을 ‘퍼스트먼데이’로 운영한다. 10월 23일부터는 롯데온에서 열흘간 7개 유통계열사 전체 최대 2조원 규모 ‘롯데온세상’ 할인행사를 진행하기도 했다. 배송 파트에서도 경쟁력 강화를 위해 바로배송(3시간 이내), 즉시배송(1시간)이라는 프로그램으로 신선함을 던져주고 있다. 그룹 차원에서도 강희태 부회장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롯데그룹은 강희태 부회장 직속으로 데이터 거버넌스 태스크포스(TF)를 설치하고, 각 계열사에서 수집한 유통데이터를 한데 모아 맞춤형 쇼핑서비스를 제공하기로 했다. 10월 1일 강 부회장 직속 TF인 ‘데이터 거버넌스 태스크포스’를 공식 출범하고, 윤영선 롯데정보통신 상무(46)를 TF장 겸 CDO(데이터 최고 책임자)로 임명했다. 윤 상무는 롯데그룹 내에서 손꼽히는 빅데이터 전문가다. 서울대 수학과를 나와 미국 예일대에서 수학과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SK와 KT에서 빅데이터 분석 팀장을 역임하며 전문성을 쌓은 그는 2018년 롯데정보통신 AI Biz센터 부문장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롯데와 연을 맺었다. 이후 롯데정보통신 빅데이터 사업 부문장을 맡아왔다.
TF는 윤 상무와 관련 IT 전문가 10명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롯데그룹 데이터 사업 로드맵을 짠 뒤 제조·물류·유통 등 쇼핑 부문 사업 전반을 아우르는 ‘데이터레이크’(데이터 통합 저장소)를 구축할 예정이다.
롯데멤버스가 보유한 방대한 ‘유통빅데이터’도 적극 활용된다. 롯데멤버스는 4026만명에 달하는 엘포인트(L.POINT) 회원의 소비데이터를 취급하고 있다. 채널도 백화점·대형마트·슈퍼마켓·편의점·가전·시네마·면세점 등 유통 전역에 걸쳐 있다. 또 교보문고, 11번가, 에스오일 등 180여 제휴사의 온·오프라인 채널 50만개를 통해 수집하는 유통데이터까지 모두 비축했다.
TF가 분석·설계한 데이터 결과는 우선 롯데쇼핑의 통합 온라인몰 ‘롯데온’의 서비스를 고도화하는데 활용된다. 롯데온은 백화점, 마트, TV홈쇼핑 등 7개 계열사의 온·오프라인 데이터를 AI가 분석해 개별 소비자에게 맞는 상품을 추천하는 방안을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업계 관계자는 “강희석 대표가 온·오프라인 통합 대표를 맡으면서 강희태 부회장의 부담이 커질 것”이라며 “온·오프라인 실적 개선을 이룬 강희석 대표와 달리 강희태 부회장은 효율화에 집중하고 있어 향후 어떤 성과로 이어질지 귀추가 주목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