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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 제친 위스키, 유통가 독점·협업으로 영토 넓힌다

양주 매출 2위 등극과 프리미엄·실속 양극화 전략이 이끄는 리테일 주류 시장의 재편

국내 리테일 주류 시장의 권력 구도가 흔들리고 있다. 고물가 기조가 장기화되는 가운데 소비자의 주류 소비 패턴이 단순한 취함에서 개인의 취향을 증명하는 가치 소비와 합리적인 실속형 소비로 양극화되면서 오랜 기간 시장을 지탱하던 와인의 아성이 무너졌다.

최근 발표된 대형마트의 주류 매출 분석에 따르면, 2023년부터 2025년까지 3년 연속 유지되던 주류 매출 순위에서 양주가 와인을 제치고 2위 자리를 탈환하는 이변이 일어났다. 한 병을 구매해 오랜 기간 나누어 마실 수 있어 실질적인 심리적 만족도가 높은 위스키의 특성이 홈술과 혼술 문화의 고도화와 맞물린 결과로 해석된다.

실제로 올해 상반기 롯데마트의 양주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2.3% 성장했다. 세부적으로는 블렌디드 위스키 매출이 13.6% 상승하며 전체 성장을 견인했고, 엔저 현상과 맞물린 일본 위스키 역시 12.6%의 견조한 성장세를 보였다. 반면 지난 수년간 홈파티와 데일리 주류 시장을 장악했던 와인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1.1% 감소하며 양주에 밀려 3위로 내려앉았다.

이러한 시장 구조의 변화는 유통 대기업들이 단순히 주류를 매입해 판매하는 전통적 방식에서 벗어나, 독점 소싱과 이종 산업 간의 적극적인 협업을 통해 독점적 콘텐츠를 확보해야만 생존할 수 있는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음을 시사한다.

롯데마트 ‘김창수 위스키 연꽃 50도’ 홍보 이미지(제공 롯데마트)

유통 업계가 급변하는 위스키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꺼내 든 핵심 카드는 단독 소싱을 통한 차별화다. 타 채널에서는 구할 수 없는 희소성을 무기로 오프라인 매장으로의 고객 유입을 유도하는 전략이다. 롯데마트는 국내 싱글몰트 위스키의 대표 주자인 김창수 위스키 증류소와 손을 잡고 한국의 사계절을 담아내는 계절꽃 시리즈의 여름 에디션인 김창수 위스키 연꽃 50도를 단독으로 출시했다.

단 288병만 한정 생산되는 이 제품은 희소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전용 모바일 앱인 보틀벙커와 온라인 플랫폼 롯데온의 스마트픽 서비스를 연계한 예약 판매 방식을 채택했다. 이는 단순한 제품 판매를 넘어 온·오프라인을 연계한 옴니채널 전략으로 고관여 위스키 마니아층을 락인(Lock-in)하는 효과를 내고 있다.

동시에 글로벌 유명 브랜드의 마지막 잔여 물량을 확보해 마트와 창고형 할인점의 채널 특성에 맞게 용량을 이원화하여 시장을 공략하는 사례도 주목받고 있다. 수입 유통사 비이엑스 스피리츠는 미국의 전설적인 버번 위스키 브랜드인 올드 테일러를 국내 최초이자 마지막 한정 물량으로 독점 수입하여 이마트와 트레이더스에 공급했다.

‘올드 테일러’ 버번 제품 이미지(제공 비이엑스 스피리츠 코리아)

가정에서 부담 없이 니트나 하이볼로 즐기기 좋은 750ml 규격은 대형마트인 이마트에 배치하고, 홈파티나 대량 소비를 겨냥한 1.75L 메가 사이즈는 창고형 할인점인 트레이더스에 단독 배치하는 전술을 구사했다. 이는 유통 채널별 주 타깃 고객의 구매 여정에 맞춘 세밀한 상품기획(MD) 전략의 승리로 평가받는다.

위스키의 흥행 세는 F&B 영역을 넘어 타 산업과의 이종 협업을 통한 라이프스타일 비즈니스로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의류 브랜드 말본골프가 글로벌 스카치 위스키 브랜드 발렌타인과 협업하여 한국 시장에 단독으로 선보인 캡슐 컬렉션은 이 같은 트렌드를 명확히 보여준다.

이들은 골프 라운드가 끝난 뒤 이어지는 소통과 교류의 시간인 19번째 홀(THE 19th Hole)이라는 문화를 테마로 삼았다. 두 브랜드의 이니셜을 조합한 고유의 심볼과 캐릭터를 활용해 의류부터 가방, 클럽 커버 등 총 15종의 협업 상품을 출시하며 골프와 위스키 애호가들의 소장 욕구를 자극했다.

성수동 플래그십 스토어에서 개최된 론칭 행사는 브랜드의 정체성을 시각적 경험을 넘어 미각적 경험으로 확장하는 리테일 테인먼트의 전형을 보여주었다. 현장에서는 이번 협업을 기념해 한국에서만 특별히 출시된 발렌타인 17년 말본 에디션을 기주로 한 시그니처 칵테일을 제공하며 공간 경험의 밀도를 높였다.

말본 X 발렌타인 협업 컬렉션 사진(제공 하이라이트브랜즈)

이는 위스키를 단순히 마시는 음료가 아니라 하나의 문화적 코드로 소비하는 젊은 세대의 라이프스타일을 정확히 겨냥한 움직임이다. 패션과 주류라는 전혀 다른 카테고리의 결합은 브랜드 가치를 제고하는 동시에 새로운 소비층을 유입시키는 전략적 시너지를 발휘하고 있다.

최근 주류 시장의 흐름은 고가 프리미엄 위스키의 독점 소싱 전략과 함께 실속형 가성비 제품 및 저도주 시장의 동반 성장이라는 복합적인 구조를 띠고 있다. 롯데마트의 상반기 실적을 보면 위스키의 성장세와 더불어 논알콜 및 무알콜 주류 매출 비중이 2021년 6%에서 올해 상반기 13%로 두 배 이상 확대되었고, 관련 매출 신장률은 25.4%에 달했다.

가성비를 중시하는 흐름에 따라 수입맥주와 소주 매출도 각각 11.2%, 2.2%씩 동반 상승했다. 결국 현재의 주류 시장은 최고급 한정판 위스키로 브랜드의 헤리티지와 전문성을 과시하는 동시에, 대용량 가성비 제품이나 논알콜 주류로 대중적 수요를 촘촘히 메워야 하는 다원화된 전략을 요구하고 있다.

앞으로 리테일러와 브랜드사들이 주목해야 할 시사점은 명확하다. 단순한 가격 할인 중심의 판촉 경쟁은 장기적인 마진 확보와 브랜드 로열티 형성에 한계가 있다. 유통사는 독점적인 제조사 협업(PB) 및 단독 소싱 파이프라인을 구축해 채널 자체의 매력도를 높여야 하며, 제조 브랜드는 이종 산업과의 과감한 협업을 통해 소비자의 일상 속에 자연스럽게 침투하는 브랜드 경험을 설계해야 한다.

위스키의 성장이 촉발한 주류 시장의 구조적 재편은 이제 상품을 파는 시대를 넘어, 그 상품이 담고 있는 스토리와 라이프스타일의 가치를 제안하는 유통사만이 살아남을 수 있음을 방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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