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비즈니스 환경이 불확실해짐에 따라 기업 내 ‘다양성과 포용성(D&I)’이 단순한 사회적 책임을 넘어 지속 가능한 성장을 담보하는 핵심 경영 전략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특히 여성 인재의 양적 확대를 넘어, 이들이 실질적인 의사결정 과정에서 얼마나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는지가 기업 경쟁력을 가르는 척도가 되는 추세다.
최근 유통 및 제조 산업 전반에서는 ESG 경영의 고도화와 함께 이사회 내 성별 다양성을 확보하려는 움직임이 거세다. 과거에는 여성 임원의 머릿수를 채우는 ‘토크니즘(Tokenism)’에 머물렀다면, 이제는 실질적인 경영 성과를 창출하는 핵심 보직에 여성 리더를 배치하는 ‘질적 변화’가 요구되고 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기업 여성 임원들로 구성된 사단법인 WIN(Women in INnovation)은 지난 9일 서울 양재동 엘하우스에서 ‘제8회 WIN 포럼’을 열고, 국내 기업들의 다양성 현황을 진단했다. 이번 포럼은 ‘기업 거버넌스에서의 여성 리더십 현황과 방향’을 의제로 삼아, 변화하는 시장 환경에 대응하는 기업들의 전략적 선택을 집중 조명했다.

올해 ‘2025 WIN 어워드’는 국내 매출 상위 500대 기업의 2024년 사업보고서를 정밀 분석한 결과를 바탕으로 수여됐다. 특히 이번 평가는 기존의 고용 비율이나 근속 연수 차이 등 6개 기본 항목 외에도, 여성 임원의 ‘직무 영향력’이라는 지표를 새롭게 도입해 변별력을 높였다.
조사 결과, 생활산업 부문에서는 영원무역과 매일유업이 나란히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영원무역은 임원 비중과 직위 항목에서 만점을 기록했으며, 매일유업은 등기이사 내 성별 균형 부문에서 독보적인 점수를 받았다. 이 외에도 현대자동차(기계), SK이노베이션(소재), 삼성물산(건설), 유한양행(제약), 크래프톤(ICT), 한국스탠다드차타드은행(금융) 등이 각 업종을 대표하는 다양성 우수기업으로 이름을 올렸다.
수상 기업들은 공통적으로 여성 인재 육성을 위한 구조적 장벽 제거에 집중하고 있다. 롯데그룹의 경우 이미 2013년 ‘다양성 헌장’을 선포하고 남성 육아휴직 의무화 등 가족 친화적 문화를 선제적으로 구축해왔다. 롯데지주 박두환 HR혁신실장(부사장)은 향후 과제로 “직무별 성별 격차를 해소하고 여성 리더 후보군을 질적으로 강화하는 것”을 꼽았다.

SK이노베이션 역시 수평적 소통과 심리적 안전망 구축을 통해 다양성이 성과로 이어지는 구조를 만들고 있다. 한정옥 SK이노베이션 ESG추진실장(부사장)은 맞춤형 성장 지원을 통해 구성원의 역량이 효과적으로 발현되는 조직 문화를 강조했다. 기조연설자로 나선 창신INC 남충일 대표는 제조 공정이 복잡한 신발 산업에서 여성 리더들이 보여준 탁월한 역량이 곧 기업의 혁신 동력이었음을 역설했다.
업계 관계자들은 기업 내 성평등 수준이 자본 시장의 투자 결정에도 유의미한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고 분석한다. 실제로 이번 시상에서 ‘개선 우수기업’으로 선정된 NH투자증권과 애경케미칼은 급여 및 임원 승진 상대성 지표에서 점진적인 우상향 곡선을 그리며 시장의 긍정적인 평가를 끌어냈다.
김미진 사단법인 WIN 회장은 “급변하는 시장에서 회복탄력성을 높이는 것은 이제 기업의 생존 문제”라며 “다양성과 형평성, 포용의 문화가 조직 내 완전히 뿌리 내릴 때 비로소 진정한 경쟁력이 확보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전문가들은 향후 여성 임원의 비중뿐만 아니라, 이들이 재무·전략·기술 등 핵심 의사결정 부서에서 발휘하는 실질적인 ‘영향력 지수’가 기업 가치를 평가하는 새로운 기준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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