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기업회생절차를 신청하며 한국 유통시장을 뒤흔든 ‘홈플러스’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한때 국내 대형마트 2위 자리를 굳건히 지키던 홈플러스가 법원 문을 두드렸다는 소식은 업계와 소비자에게 적지 않은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업체들의 대규모 중단 움직임, 주주와 채권자들의 피해 호소, 그리고 대주주인 MBK파트너스를 둘러싼 책임론까지. 홈플러스 사태는 유통업계는 물론이고 증권, 금융, 부동산 등 전방위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일각에서는 홈플러스가 ‘제 2의 티메프(티몬·위메프) 사태’로 확산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까지 내놓고 있다.

홈플러스는 지난 3월 4일 새벽 기습적으로 법원에 기업회생절차 개시를 신청했다. 법원은 11시간 만에 승인했다.
홈플러스의 재무 상황이 좋지 않다는 것은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업계서는 알려진 사실. 지난 2020년부터 일부 점포를 매각해 자산 유동화를 시도한 게 대표적인 사례다. 기업형 슈퍼마켓(SSM)인 홈플러스익스프레스의 매각을 시도하려다 실패한 것도 뼈아픈 일이었다. 온라인 배송 업체의 급성장과 이로 인한 오프라인 유통의 불황, 코로나19의 대유행으로 인한 영향으로 매출이 급격하게 감소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말에도 홈플러스는 재무 구조 악화를 호소했지만, 시장 반응은 “설마 기업회생까지 가겠느냐”란 분위기가 대부분이었다.
기업회생은 재정적 어려움으로 파탄에 직면한 기업을 두고 채권자, 주주·지분권자 등 여러 이해관계인의 법률관계를 조정해 그 기업의 효율적인 회생을 도모하는 제도다. 회사가 문을 닫는 것은 아니지만 문을 닫기 직전까지의 위험에 처해있다는 뜻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당연히 브랜드 이미지가 악화하고, 이는 소비자에 직접 상품을 파는 B2C 기업에는 치명적인 꼬리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위험을 무릅쓰고 홈플러스는 회생절차를 신청했다. 홈플러스가 돌연 기업회생절차를 신청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가장 먼저 움직인 곳은 ‘납품업체’들이었다. 대금 지연 가능성 때문에 먼저 오뚜기, LG전자 등이 홈플러스에 납품을 중단한다고 밝혔다. 그 롯데웰푸드, 롯데칠성음료, 삼양식품, 동서식품 등 중단 업체가 점차 늘어나기 시작했다.
홈플러스의 신뢰도도 급락하고 있다. 외식 브랜드 빕스·뚜레쥬르를 운영하는 CJ푸드빌, 영화관 CJ CGV, 신라면세점 등 주요 제휴업체는 홈플러스 상품권을 받지 않기로 결정했다.
일부 중소 업체들 역시 “대금을 못 받으면 우리도 도산”이라며 공급을 끊었고, 인터넷 여론은 “홈플러스 곧 폐점되는 것 아니냐”는 불안감까지 확산됐다.

◇ 회생 신청 소식 알려지며… 신선식품 코너가 순식간에 텅 비어
실제로 홈플러스 한 점포 관계자는 “회생 신청 소식이 알려지면서 물량이 확보됐던 신선식품 코너가 순식간에 텅 비었다”면서 “소비자들에게 죄송하지만, 우리도 본사 지침만 기다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오랫동안 홈플러스를 이용해온 한 주부는 “낯선 브랜드 혹은 PB상품이라도 저렴하니 홈플러스에서 사곤 했는데, 앞으로 어찌될지 모르겠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홈플러스 측은 회생 신청 이유를 이렇게 밝혔다. “올해 초 주요 신용평가사들이 단기 신용등급을 하향조정(A3→A3-)하면서 향후 자금조달에 어려움을 겪을 것을 대비해 선제적으로 기업회생을 신청했다.”

악화했다.
홈플러스는 ‘부도’가 난 것이 아니라 ‘선제적 구조조정’이란 점을 거듭 강조했다. 파트너사 간의 결제 대금 등은 정상적으로 지급하고, 직원 급여 지급과 마트 영업도 문제없이 진행하겠다고도 했다.
‘사전예방적 차원’의 회생이라는 것이다. 단순히 단기 유동성이 나빠져 납품대금을 제때 정산 못할 것 같은 상황에 놓이게 되자, 이를 회피하기 위해 법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회생절차 개시 뒤 여러 논란에 휩싸이자, 결국 홈플러스 경영진이 나섰다. 회생 신청 열흘 만에 기자 회견을 열어 공식 입장을 밝혔다.
조주연 홈플러스 사장은 “이번 회생절차로 불편을 겪고 계신 협력사, 입점주, 채권자 등 모든분들께 진심으로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많은 분들의 피해와 불편을 최소화하기 위해 하루라도 빨리 회사를 정상화하는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고개를 숙였다.
그러면서도 제기된 의혹들에 대해서는 강경한 반박 입장을 내놓았다. 긴급 회생 결정이 부도 사태를 막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였으며, 최대주주 MBK파트너스가 홈플러스의 회생을 직접 주도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견해도 함께 제시했다.

홈플러스의 대주주인 MBK파트너스 등 경영진의 유통업계 전문성 부족 논란에 대해서도 반박했다. 김광일 MBK파트너스 부회장은 현재 경영진이 충분한 역량을 갖추고 있다고 옹호하며, 신속한 회생과 경영 정상화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김 부회장은 “신용등급 하락으로 인한 단기 유동성 위기를 해소하려면 기업회생 신청이 불가피했다”고 설명하면서, “MBK파트너스가 홈플러스의 회생을 적극 지원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일부에서 제기된 “기업회생 신청을 MBK가 지시했다”는 의혹도 전면 부인했다. 김 부회장은 “MBK가 3조2000억원을 투자한 주주인 만큼, 회생절차에서 가장 큰 희생을 감수하고 있다”는 주장을 펴기도 했다.
조주연 사장은 회생 가능성을 낙관하기도 했다. 조 사장은 “회생절차가 개시된 3월 4일 이후 한 주간 동안의 매출은 역대 최고 실적을 달성했던 작년 동기 대비 13.4% 증가했으며, 고객수도 5% 증가하는 등 회생과는 상관없이 좋은 성과를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 유통산업 온라인으로 옮겨갈 때 뒤늦게 대응…치명적 실책
이번 혼란의 진짜 원인은 무엇일까. 업계는 근본 배경으로 MBK파트너스가 2015년 테스코로부터 홈플러스를 약 7조2000억원에 인수했을 때를 지적한다. 그때부터 시작된 홈플러스의 ‘과도한 부동산 유동화 전략’을 꼽는 이가 많다. MBK가 홈플러스의 부동산 매각을 통한 현금 확보, 그리고 매장 운영을 임차 형태로 전환해 얻는 단기 이익에만 매달렸다는 얘기다.

업계 한 관계자는 “임대료 부담이 장기적으로 큰 비용이 되면서, 홈플러스는 마케팅·상품·물류 투자 여력이 턱없이 부족해졌다”면서 “비용 절감이 지속되면 결국 서비스 품질 하락과 소비자 이탈로 이어지는 건 당연한 수순”이라고 지적했다. 그사이 신선식품 매장 경쟁력이 떨어지고, PB상품 품질도 예전 같지 않다는 소비자 불만이 쌓였다.
유통산업의 패러다임이 온라인으로 옮겨갈 때 뒤늦게 대응한 것은 더 치명적인 실책이었다. 이커머스 시장 확장 속도는 더욱 빨라지고 있었다. 이마트가 SSG닷컴을 통해 적극적으로 온라인·오프라인 시너지를 구축한 사이, 홈플러스는 오프라인 매장에 치중하다가 뒤늦게 온라인 전환을 모색했다. 주문 즉시 상품을 보내주는 ‘즉시배송’, 고객이 원하는 시간에 배송하는 ‘마트배송’ 등 고객 맞춤형 이커머스 시스템을 도입했지만, 문제는 시기였다.
경쟁사들의 빠른 배송, 온라인 전용 할인, 풍부한 상품 구성을 따라잡기엔 너무 늦었기 때문이다. 이 공백을 보고 쿠팡·네이버쇼핑 같은 이커머스 업체가 식품·생필품 시장을 선점했고, 대형마트가 누려왔던 ‘필수 장보기’ 지위를 빼앗겼다.
한 유통 전문가는 “비슷한 시기 롯데마트도 ‘롯데온’을 론칭하며 대대적인 투자를 했지만 시작이 늦어 상당히 고전하고 있다”면서 “홈플러스는 그보다도 온라인 전환이 늦었고, 큰 투자도 없었고 전략적 차별화 없이 예산만 소진했다”고 평가했다.

업계에서는 홈플러스의 이커머스 대응이 늦은 이유 역시 내부에 문제가 있다고 보고 있다. MBK가 홈플러스를 인수하면서 많은 빚을 졌고, 이 빚을 갚느라 이커머스로의 전환 타이밍을 놓쳤다는 거다. 이커머스 경쟁에서 뒤쳐지면서 어쩔 수 없이 오프라인 의존도가 높아졌고, 변화하는 시장을 따라잡지 못하는 악순환의 고리가 완성된 것이다.
홈플러스가 한때 이마트, 롯데마트와 어깨를 나란히 하며 대형마트 시장을 이끌었던 것을 고려하면 안타까운 일이다. 홈플러스의 시작은 1997년 삼성물산 유통부문에서 비롯됐다. 당시 삼성물산은 대구 지역에 ‘삼성홈플러스’ 1호점을 개점하며 대형마트 시장에 뛰어들었으나, 이듬해 IMF 금융 위기를 맞으면서 매각 수순을 밟게 됐다.
◇ 대주주 경영 전략 실패와 실적 부진…홈플러스 위기 직면으로
두 번째 주인은 영국 테스코였다. 1999년 삼성물산으로부터 홈플러스를 인수한 테스코는, 업계 12위에 불과했던 홈플러스를 불과 3년 반 만에 2위로 올려놓았다. 유통업에 정통한 테스코가 고속 성장의 발판을 마련한 덕분이었다. 특히 테스코의 글로벌 유통 노하우를 접목한 PB상품 개발, 유럽식 매장 운영법 등으로 소비자에게 신선한 이미지를 줬다. 유통업계 사이에선 “신선식품이 깔끔하게 진열되고, 매장 직원들의 응대가 친절하다”는 입소문도 번졌다.
이러한 가운데 테스코가 분식회계 스캔들에 휘말렸고, 실적 부진까지 겹치면서 다시 주인이 바뀌었다. 2015년 MBK파트너스에 넘어갔다. 당시 MBK는 7조4000억원을 투자해 홈플러스의 지분 100%를 인수했다. 업계 안팎에선 ‘기업가치 고평가’ 논란이 일기도 했다. 당시 롯데마트와 이마트가 평가받던 기업가치보다 높은 몸값이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MBK파트너스의 업력을 고려하면 나쁜 선택지는 아닌 듯 보였다. HK저축은행, 한미캐피탈, 씨앤앰, 웅진코웨이, ING생명 인수·합병 건에 관여해 ‘대박’을 터트렸던 바가 있기 때문이다. 경영난에 빠지거나 여러 문제를 겪어 인수합병(M&A) 시장에 나온 회사를 인수해 체질 개선을 한 뒤 더 높은 몸값에 되파는 방식을 취하는 사모펀드를 고려하면, 홈플러스의 몸값 상승은 시간 문제처럼 보였다.

의외로 MBK 인수 후에는 ‘비용 절감’과 점‘ 포 자산 매각’이 우선시되면서, 과거의 품질 관리나 고객 서비스가 약화했다. 유통업계 사이에서는 “테스코 시절이 차라리 좋았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점차 소비자들의 신뢰를 잃었다. PB상품 경쟁력 역시 떨어지면서 홈플러스만의 강점이 희미해졌다.
이는 MBK파트너스가 인수금액의 60%가량을 차입금으로 조달했기 때문인 탓이 크다. MBK파트너스가 M&A 후 차입금 상환을 위해 ‘세일앤드리스백(점포 매각 후 재임차)’ 전략을 추진하면서 점포의 숫자가 줄어들었고 경쟁력도 잃었다. 결국 대주주의 경영 전략 실패와 오프라인 유통 업황의 부진이 맞물리면서 홈플러스가 위기에 직면하게 된 셈이다.

◇ MBK파트너스가 강도 높은 구조조정과 자구책을 내놔야
문제는 홈플러스가 회생 신청한 이후다. 당장 전국에 있는 홈플러스가 문을 닫을 가능성은 크지 않다. 홈플러스 측은 “협력해주면 이후 안정적으로 결제하겠다”는 메시지를 강조하며 대규모 할인행사를 동시에 추진했다. 불안감 속에서도 할인상품에 끌린 소비자들이 몰리며, 일부 점포에서는 전주 대비 매출이 오히려 20~30%가량 상승하는 ‘반전’이 나타났다.
다만 이는 어디까지나 ‘임시방편’이라는 지적이 많다. 공급업체들의 한숨도 여전하다. 한 중소식 품사 대표는 “결제 대금이 밀리면 우리 같은 중소기업은 즉각적인 타격을 입기 때문에, 재협상을 받아들였지만 아직도 못 믿겠다”면서 “홈플러스가 얼마나 확실한 구조 개혁을 할지 의문”이라고 토로했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과거 티메프(가명) 사태에서도 할인공세로 일시적인 매출 ‘폭발’을 맛봤지만, 결국 구조개혁이 따르지 않아 시장에서 사라졌다”는 예를 들었다. 장기생존을 위해선 점포 운영 효율화, 온라인 역량강화, 그리고 소비자 신뢰 회복에 기반을 둔 근본적 혁신이 필수라는 지적이다.
관건은 MBK파트너스가 강도 높은 구조조정과 자구책을 내놔야 하는데, 그럴 가능성은 크지 않다. 문제는 MBK가 단기 이익 회수를 선호한다는 ‘사모펀드’의 특성상, 과연 홈플러스가 진정한 체질 개선을 할 수 있을지 미지수다.
한 사모펀드 전문가는 “사모펀드의 기본 수익 모델은 일정 기간 투자 후 매각 차익을 실현하는 것”이라며 “홈플러스의 경우 비용 절감과 부동산 유동화라는 단기 성과 전략이 이미 너무 많이 쓰였다. 추가로 매각할 자산도 마땅치 않아, 장기 혁신이 불가피해 보인다”고 말했다.
홈플러스의 위기는 단순히 ‘한 기업’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 대형마트 채널 전체의 문제다. 예전에는 주말마다 대형마트를 찾아 한꺼번에 장을 보고 할인 혜택을 누리는 패턴이 일반적이었지만, 최근 소비자들은 하루하루 필요한 상품을 온라인으로 주문·배달 받는다. 가격 비교와 리뷰 확인도 쉽다.
이 때문에 업계에서는 홈플러스 사태가 ‘대형마트의 미래’를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는 평을 내놓는다. 홈플러스의 회생으로 반사이익을 얻을 것으로 보여지는 이마트·롯데마트 역시 아예 안심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온라인 유통이 거세게 성장하며, 과거에는 대형마트가 필수 경유지였던 가공식품·신선식품 시장이 대폭 잠식됐다.

이처럼 온라인·모바일로 재편된 시장에서는 오프라인 대형마트가 ‘넓은 주차장과 다양한 상품을 한자리에 모아놓은 곳’이라는 이점만으로는 승부하기 어렵다. 업계에서는 “앞으로 2~3년 내에 대형마트 점포를 축소하거나, 창고형·체험형 매장으로 전환하는 흐름이 가속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소비자 입장에서, 할인 폭이 크면 찾아가고 아니면 다른 대안을 선택하는 시대다. 인터넷 가격비교, 모바일 쿠폰 등으로 언제든 더 저렴한 곳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홈플러스를 비롯해 이마트, 롯데마트가 예전처럼 충성 고객을 붙잡기란 쉽지 않다.
결국 소비자들은 편리하고 빠른 배송, 다양한 선택지, 실시간 할인 정보에 더 매력을 느낀다. “대형마트가 오히려 체험형 공간, 즉 오프라인에서만 누릴 수 있는 경험과 이벤트를 제공하지 못한다면, 온라인과 경쟁이 되지 않는다”는 지적이 잇따른다. 홈플러스가 ‘오프라인 대형마트의 미래’를 어떻게 답안지로 내놓느냐에 따라, 대형마트 전체의 향방이 결정될 것이란 전망이다.
홈플러스는 전국적으로 수십 개 점포를 보유한 대형 유통플랫폼이다. 여기에 납품사·협력사·물류사 등 수많은 중소기업이 생계를 걸고 있다.
만약 홈플러스가 무너진다면 이들 업체도 연쇄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소비자 선택의 폭이 줄어드는 것도 문제지만, 지역 상권이 빈 사각지대를 메우기까지는 상당한 공백이 생길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홈플러스의 회생이 단순히 한 기업의 존폐를 넘어서, 지역 경제와 산업 생태계 전반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소비자들이 ‘홈플러스가 예전만 못하다’고 생각하는 지금이 오히려 마지막 기회일 수 있다. 이번 위기를 어떻게 헤쳐나가느냐가 대형마트 전체의 미래를 가늠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