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승장구하던 럭셔리 이커머스 플랫폼 업계가 최근 수난시대를 보내고 있다. 지난해 온라인 명품 판매의 인기에 힘입어 고속성장 했지만, 각종 구설수에 휘말리면서 소비자들의 신뢰를 잃고 있는 모양새다. 이로써 머·트·발(머스트잇·트렌비·발란)로 불리는 국내 3대 럭셔리 플랫폼에 따가운 시선이 꽂히고 있다.
이들 기업의 신세가 빛에서 어둠으로 왜 뒤바뀌었는지를 알아보려면 먼저 한국 명품 시장의 특수성을 찾아봐야 한다. 한국은 글로벌 럭셔리 브랜드의 격전지로 꼽힌다. 코로나19 여파로 경제가 침체에 빠졌는데도 국내 명품 시장은 오히려 최고의 전성기를 맞았다. 시장조사업체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국내 명품시장 규모는 지난해 기준 약 16조원에 육박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직전 년도 대비 4.6% 성장한 것으로, 이 같은 한국 럭셔리 시장은 전 세계에서도 7번째로 규모가 크다. 코로나19 발생 전인 2019년과 비슷한 수준이지만 지난해 전 세계 명품 매출이 19% 줄어든 것과 비교하면 놀라운 수치다.

코로나19 확산에도 지난해 국내 3대 백화점 실적이 일제히 개선된 것도 명품 덕분이다. 통상 에르메스, 루이비통, 샤넬은 매장 한 곳당 연간 1000억원 이상씩의 매출을 올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일년 새 신세계백화점의 명품 매출 성장률은 41.9%에 달한다. 이 기간 현대백화점의 해외 명품군 전체 매출은 38% 늘었다. 롯데백화점도 럭셔리 해외패션 품목 매출이 25.5% 증가했다.
수천만원을 호가하는 가격에도 국내 소비자의 열렬한 명품 사랑에 없어서 못 사는 럭셔리 제품이 많다. 수요가 폭증하는 데 반해 공급은 늘 비슷한 수준이어서 불균형이 형성된다. 이 같은 상황을 틈타 일부 명품들은 적극적인 가격 인상 정책을 펼치고 있다. 제품을 구매하려는 손님들이 백화점 매장 오픈 전부터 장사진을 치는 일명 ‘오픈런’은 사회적 현상으로 물질주의의 극대화의 상징으로 지적되고 있기도 하다.
최근 오픈런 현상은 더욱 잦아지고 있다. 단지 값비싼 물건을 사는 게 아니라 아무리 돈이 많아도 살수 없는 제품을 사는 데 의미를 두는 현상 때문이다. 실제로 비싸게 되팔 수 있어 소비가 아닌 투자, 재테크의 성격도 있다.

명품을 사는 것에 그치지 않고 사들인 명품을 더 높은 값에 되파는 재테크와 연결해 샤테크(샤넬+재테크), 롤테크(롤렉스+재테크) 등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이런 유행은 MZ세대가 명품 시장의 주력 소비층으로 떠오르면서 시작됐다. 과거 럭셔리는 일부 부자만의 전유물로 소비됐지만 지금은 다르다. 젊은 세대가 럭셔리 시장의 주 소비자로 등극했다.
이들은 디지털 환경에 익숙하고, 최신 트렌드에 민감한 동시에 남과는 차별화한 자신만의 독특한 경험을 추구하고 있다. 이러한 MZ세대의 새 소비 형태는 럭셔리 브랜드의 유통 시스템마저 변화시키고 있다.
진입 문턱이 높기로 유명한 럭셔리 산업에 온라인 열풍이 불고 있는 건 이 때문이다. 모바일 명품 시장이 급성장세다.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온라인 명품 시장 규모는 1조5957억원으로, 전년 대비 약 11% 늘었다. 전체 명품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2015년 8.6%에서 2020년 10.6%로 커졌다.
◇ 명품도 온라인에서 사고 파는 시대
역사와 전통, 장인의 수작업 같은 아날로그적인 가치를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분야가 명품이다. 이런 특성 때문에 명품 브랜드는 일정 기간 이커머스로의 전환에 뒷짐을 지었다. 고객들이 직접 매장을 방문해 제품을 만지고 느껴 보기를 원한다는 것에 집착한 것이다. 하지만 백화점 매장이나 플래그십 스토어에서의 우아하고 대접받는 경험을 중시하는 건 어디까지나 부모 세대까지이다.

그간 국내 명품 시장의 특징은 기존 유통 대기업들의 사실상 독점 유통이었다. 하지만 소비자의 니즈가 다변화되면서 직구, 구매대행 등 온라인 거래가 잦아지면서 급격히 거래액이 커졌다. MZ세대는 디지털 서핑으로 전 세계 최저가 명품을 찾아내 가성비를 최대한 높이는 온라인 쇼핑을 즐겼다.
백화점 유통 형태엔 판관비가 적잖게 들어가고 브랜드의 가격 정책을 고수해야 하지만, 온라인 이커머스는 이런 룰을 따를 필요가 없다. 국내에선 머·트·발(머스트잇·트렌비·발란)로 불리는 3대 플랫폼이 럭셔리 이커머스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이들은 모바일 앱과 PC 홈페이지를 통해 명품을 구매할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머·트·발은 스타트업 업계에서 소위 잘 나가는 미래 유니콘 기업으로 꼽힌다. 머스트잇의 누적 투자금액은 280억원 규모고, 발란과 트렌비의 누적 투자금액은 400억원이 넘는다. 이들 세 기업은 각각 수천억원에 달하는 기업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 머스트잇, 누적 거래액 1조 돌파·매출 지난해 199억원

각 기업의 면면을 살펴보면 그럴만하다. 세 플랫폼 중 가장 먼저 2011년 설립된 머스트잇은 1600여개 명품 브랜드의 제품을 판매하는 명품전문 커머스 플랫폼이다.
머스트잇은 경쟁사 대비 저렴한 가격과 빠른 배송을 강점으로 내세우고 있다. 머스트잇은 병행 사업자의 제품을 활용, 백화점 대비 평균 20~25% 저렴한 가격에 제품을 제공한다. 병행 수입은 같은 상표의 제품을 여러 업자가 수입해 국내에서 판매할 수 있는 제도다. 배송기간도 짧다. 2018년부터 평균 당일 3시간 배송 서비스 ‘깜짝 배송’을 운영 중이다. 수도권에서 전용 퀵 배송을 통해 판매자와 구매자를 바로 연결하는 방식이다.
머스트잇의 위상은 숫자로 잘 드러난다. 지난해 기준 연간 거래액 3527억원을 달성하며 3사 중 가장 높은 수치를 달성했다. 가장 먼저 시장에 뛰어든 플랫폼인 만큼 누적 거래액도 1조원을 넘어섰다. 머스트잇의 월간 방문자 수는 55만 5000명에 달하고, 69만7326개의 누적 상품 후기를 보유하고 있다. 그간 이 플랫폼에서 팔린 명품 개수는 279만개다. 2020년 120억원에 그쳤던 순수 매출도 지난해엔 199억원으로 끌어올렸다.
지난해 10월엔 서비스 성장과 사업확장, 인력 충원에 따라 압구정으로 사옥을 확장 이전했다. 신사옥 1층에 업계 최초로 오프라인 쇼룸도 열었다. 온라인상에서 판매하는 머스트잇 상품을 오프라인에서도 구매할 수 있다. 머스트잇 측은 “합리적인 가격에 개성 있는 상품을 접할 수 있는 자사 온라인몰의 강점과 다양한 명품 브랜드 상품을 직접 경험해볼 수 있는 오프라인의 강점을 더해 쇼룸을 선보이게 됐다”면서 “이번 오프라인 진출을 통해 고객과의 접점을 확대하는 건 물론 온라인 채널과의 시너지 효과를 이뤄 기존 온라인 명품 플랫폼들과는 다른 차별화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2015년 문을 연 발란도 머스트잇 못지않게 영향력이 큰 플랫폼이다. 발란은 이탈리아, 파리 등 현지 부티크 제품을 유통한다는 강점으로 내세워 시장 공략에 속도를 내고 있다. 부티크는 명품 브랜드가 물건을 공급하는 대규모 도매상이다. 이 플랫폼은 현지 부티크로부터 물건을 직접 공급받는다. 덕분에 도매업체에서 소매업체로, 또 오프라인 판매처로 이어지는 기존의 유통 과정을 줄이면서 가격 경쟁력을 갖추게 됐다. 지난 2020년 10월엔 국내 최대 빅테크인 네이버로부터 전략적 투자 유치를 이끌어내기도 했다.
◇ 발란, 8000여개 브랜드에 지난해 거래액 3150억원 기록

최근엔 퀵커머스 서비스인 ‘발란 익스프레스’를 선보이면서 업계 주목을 받고 있다. 발란 익스프레스는 기존 당일 배송 서비스인 ‘오늘도착’에 당일 출고하는 ‘오늘출발’을 확장한 서비스다. 4만여개의 ‘오늘도착’ 상품을 서울 거주 고객이 오후 1시 이전에 구매할 경우 당일 자정 전까지 상품을 받을 수 있다는 게 회사 측의 설명이다.
발란 역시 오프라인 매장을 통해 고객과의 접점을 늘릴 계획이다. 발란의 오프라인 매장은 최근 서울 여의도 국제금융센터(IFC)몰 L2층에 위치한 공간에 입점하는 것으로 확정했다. 현장에서 모바일 앱으로 직접 결제하는 통합결제 시스템을 도입하고, 고객 데이터 기반으로 스테디셀러부터 트렌디한 상품까지 유동적으로 배치할 계획이다.
발란의 성장세 역시 실적으로 잘 드러난다. 2019년 256억원에 불과했던 발란의 거래액은 지난해 3150억원으로 2년 만에 10배 넘게 성장했다. 해외 부티크업체, 국내 파트너사 등 1400여개 공급사로부터 약 8000여개의 럭셔리 브랜드를 다루고 있다. 발란에 등록된 개별 상품은 140만개 이상이다. 앱 누적 다운로드 수는 280만회를 넘었다. 덕분에 회사 매출도 수직 상승했다. 2020년 243억원이던 발란의 매출은 지난해 521억원으로 두 배 넘게 증가했다.
2016년 창업한 트렌비는 인공지능(AI)을 포인트로 내세우고 있다. 자체 검색엔진 ‘트렌봇’을 통해 전 세계 최저가 명품을 찾아주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마치 ‘비행기 표, 어디가 제일 저렴해?’라고 물어보면 그것을 제공해주는 서비스가 있듯, 트렌비도 ‘전 세계 명품 중에 어디가 제일 저렴해?’라고 하면 그것을 찾아주는 엔진이 있다는 게 이 회사의 설명이다. 한국, 영국, 미국, 독일, 이탈리아, 프랑스, 일본 등 전 세계 주요 명품 쇼핑 거점에 해외지사 및 물류센터를 가지고 있다는 점도 눈에 띈다.
트렌비는 판매상품의 60~70% 이상을 ‘직접바잉-직접검수-직접배송’ 과정을 통해 판매하고 있다. 직접 조달이 아닌 별도로 유통되는 상품들은 ‘트렌비프리모클럽’이라는 자체 관리 시스템을 구축해 엄격하게 선별된 파트너사들을 통해 제품을 공급하고 있다. 아울러 자체 검수팀과 전문 감정팀을 운영하고 있어 가품 구매에 대한 소비자 우려를 낮췄다.
◇ 트렌비, 지난해 거래액 3000억원에 매출 963억원

트렌비의 실적 성장세 역시 두드러진다. 트렌비의 지난해 거래액은 전년 대비 296% 상승한 3000억원을 기록했다. 아울러 트렌비 해외 자회사를 연결한 국내외 연결재무재표 기준 상품 매출은 약 829억원, 서비스 및 수수료매출 약 131억원, 기타매출 약 3억원으로, 전체 매출액은 약 963억원을 달성했다.
2020년 전체 매출액 약 342억원에서 큰 폭으로 증가한 것이다. 설립 4년만에 월 활성 사용자수(MAU) 450만을 돌파하는 쾌거를 달성하기도 했다. 지난해 12월에는 최대 월 거래액 500억원을 기록했다.
올해도 머·트·발 3사는 지난해보다 뛰어난 실적을 기록하겠다면서 승승장구할 것이란 비전을 밝혔다. 하지만 지금 분위기로는 목표 달성이 순조롭지 않을 수 있다. 럭셔리 이커머스 플랫폼 업계에 여러 악재가 한꺼번에 겹쳤기 때문이다.

가장 큰 이슈는 가품 논란이다. 무신사와 네이버 크림의 정품·가품 논쟁이 이 이슈를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올해 초 국내 1위 패션 플랫폼 무신사가 판매한 미국 명품 브랜드 피어오브갓의 ‘에센셜’ 티셔츠가 가품 가능성이 높다는 판정을 받으면서 소비자들 사이에서 명품 가품 유통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가품 논란은 명품 이커머스 플랫폼의 가장 큰 리스크다. 머스트잇, 발란, 트렌비 3사 모두 판매 품목을 확대하기 위해 병행수입 상품을 판매하고 있다. 병행수입 상품은 국내외 판매자가 해당 브랜드와 정식 계약을 맺은 부티크나 온·오프라인 업체를 통해 물건을 구입해 판매하는 방식이다. 구체적으로 어떤 경로를 통해 물건을 확보했는지 알 수 없어 100% 정품 인증이 구조적으로 어렵다.
세 업체 모두 자체적으로 명품 상품에 대한 정품 인증 서비스를 진행하고, 가품일 경우 제품을 환불해주는 등 위조품 관련 서비스를 적극적으로 전개하고 있지만, 명품업계에선 가품 유통 가능성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문제가 크다고 지적하고 있다.
럭셔리 업계 관계자는 “소비자가 명품 플랫폼을 이용하는 이유는 순전히 편리함 때문인데 편리하다는 이유로 가품을 받아들 리스크까지 감수하겠다는 소비자는 많지 않을 것”이라면서 “아무리 이들 업체가 가품 유통에 대한 대책을 세우더라도 애초에 가품이 발생할 가능성이 전혀 없는 공식 판매처를 찾는 게 소비자 입장에선 훨씬 안전한 구매 방법”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몇몇 명품 브랜드는 D2C 전략을 통해 온라인 시장을 개척하고 있다. 에르메스·까르띠에·프라다 등이 자사 온라인 몰을 오픈했고, 티파니는 카카오커머스에 입점했다. 앞으로도 더 많은 브랜드가 온라인 판매를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 이들 브랜드는 직접 제품을 판매하기 때문에 가품이 발생할 가능성이 제로에 가깝다.
대기업도 이커머스 플랫폼을 구축하고 전문 인력을 모아 명품 시장 진출에 나서고 있다. 신세계그룹이 통합 온라인 플랫폼 SSG닷컴을 통해 온라인 명품 판매를 확대하고 있는 게 대표적이다. SSG닷컴은 최근 명품 브랜드들과 공식 파트너십을 체결하고 온라인 명품 신뢰도 확보에 나섰다.
이 회사는 대체불가토큰(NFT)를 활용해 명품 디지털 보증서 전문관을 만들어 명품 경쟁력을 강화했다. 이는 SSG닷컴이 판매하는 명품에 대해 정품을 인증해주는 품질 보증서를 NFT로 발급하는 것으로 가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도입했다.
롯데쇼핑은 명품 화장품을 이커머스로 확대하고 있다. 롯데쇼핑 통합 온라인 플랫폼 롯데온에 뷰티 전문관 ‘온앤더뷰티’를 열고 명품 브랜드 등 뷰티 제품을 입점시켰다. 업계 관계자는 “수많은 업체가 명품 이커머스 시장에 진출해있지만 결국엔 자본력을 갖춘 대기업들이 시장을 장악할 것으로 보인다”면서 “이들은 명품 판매에 대한 노하우도 갖추고 있는데다 가품 이슈에도 상대적으로 자유롭다”고 설명했다.

◇ 매출 늘었지만 적자는 더 크게 증가한 머·트·발
이들 3사가 대규모 투자에 따른 수익성이 악화하고 있는 점도 문제다. 2020년 14억원의 영업 이익 흑자를 냈던 머스트잇은 지난해 -102억원으로 마이너스 전환했다. 2020년 63억원이던 발란의 영업손실은 지난해 185억원으로 크게 증가했다. 같은 기간 트렌비 역시 101억원이던 적자가 330억원으로 3배 넘게 늘었다.
지난해 전년 대비 매출은 크게 올랐지만, 반면 영업 비용 증가폭은 더 컸다. 인력 채용을 늘리면서 페이가 두배가량 늘어난 탓도 있지만, 특히 광고선전비 비중이 상당했다. 머스트잇은 지난해 광고선전비로 134억원을 썼다. 발란은 190억원을 지출했다. 후발주자인 트렌비는 두 업체의 광고선전비를 크게 웃돈다. 지난해 298억원을 썼다.
이들 업체가 영업이익 적자 규모에 맞먹는 큰 돈을 광고선전비에 쓰는 건 ‘스타 마케팅’을 통해 점유율 확대에 나섰기 때문이다. 머스트잇은 배우 주지훈, 발란은 김혜수, 트렌비는 김희애·김우빈 등 톱스타를 광고에 기용하고 있다.
럭셔리 플랫폼 관계자는 “인지도를 높이는 과정에서 톱스타 기용은 불가피한 일이었다”면서 “광고선전비에 적잖은 지출을 한 건 사실이지만, 이를 통해 광고에 쓴 비용보다 매출 상승효과를 더 크게 얻은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앞선 스타트업들이 마케팅 효과를 톡톡히 누린 점도 영향을 미쳤다. 무신사는 유아인, 마켓컬리는 전지현 등을 앞세워 초반 인지도 확산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브랜드를 제대로 알리기에는 톱스타가 제격이라는 게 이들의 설명이다. 문제는 마케팅 고삐를 계속 쥐어야 할 만큼 시장 경쟁이 치열하다는 점이다. 결국 톱스타 기용을 통해 브랜드 인지도를 계속 키워나가야 하는데, 그만한 자본이 앞으로도 뒷받침될 지는 의문이다.

이들 기업에 돈줄이 될 VC 업계는 최근 허리띠를 바짝 졸라매고 있다. 전 세계적인 인플레이션 및 그에 따른 통화정책, 러시아-우크라이나 간 전쟁, 중국 경제 둔화, 코로나19의 추가 확산 등그 어느 때보다 불확실성이 큰 상황에 직면해 있다. 경기 둔화는 현실화되고 있으며, 이로 인해 글로벌 공급망 및 인플레이션, 세계 경제 회복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커졌다.
VC의 한 투자심사역은 “지난해 만하더라도 풍부한 유동성을 바탕으로 가능성이 엿보이는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데 큰 걸림돌이 없었지만 최근엔 최대한 옥석을 가려내 보자는 분위기가 팽배하다”면서 “거래액이 늘어나고 있는 패션 플랫폼이면 계산기도 두드리지 않고 투자를 집행했겠지만, 주식과 자산시장이 흔들리는 상황에선 럭셔리 이커머스 시장의 성장성을 원점에서 따져봐야 할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는 적자 구조에도 높은 성장성을 토대로 외부 투자 유치 등 자금 수혈을 받아 왔던 럭셔리 이커머스 생태계가 위협받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그럼에도 아직 사업 포트폴리오를 바꾸고 수수료를 높이는 등 수익성을 개선하기 위한 움직임은 포착되지 않고 있다.
◇ 부정적인 이슈로 소비자 신뢰 흔들리는 럭셔리 플랫폼들
스타트업이다 보니 경영 관리의 미숙함을 드러내기도 한다. 고객정보 유출사고로 몸살을 앓고 있는 게 대표적이다. 발란은 최근 두 차례 개인 정보가 유출된 정황이 드러났고, 트렌비는 지난해 9월 개인정보 유출로 인해 과태료 360만원을 부과받았다.
발란에선 닉네임과 이메일, 전화번호, 배송정보 등 일부 고객 정보가 유출되는 사고가 발생했고, 트렌비는 개인정보 처리 시스템 접근 권한을 아이피(IP)로 제한하지 않아 개인정보가 유출됐으며, 접속 기록을 1년 이상 보존·관리하지도 않았다.
또한 최근에 발란은 또다시 홍역을 앓았다. 유명 유튜브 프로그램 ‘네고왕’에 출연해 할인 프로모션을 약속했지만 일방적으로 가격을 올려 할인 효과가 없게 만든 게 아니냐는 지적을 받은 것이다. 지난 4월 유튜브에 공개된 네고왕에서 발란은 28일부터 다음달 2일까지 5일간 최종 결제 금액에서 17% 추가할인(금액 제한 없음)을 해주기로 약속했다.
하지만 네고왕 방송 직후 비판 여론이 이어졌다. 장바구니에 미리 담아둔 제품 가격이 네고왕 방송 이후 갑자기 올랐다는 게 고객들의 주장이었다. 할인 프로모션을 하기 전, 발란이 손해를 보지 않게 가격을 꼼수를 부려 올린 게 아니냐는 의혹이 쏟아진 것이다.

논란이 커지자 발란 측은 ‘서버 오류’라고 해명했다. 발란 측은 ”할인쿠폰 개발 및 배포 과정에서 일부 상품의 가격 변동 오류가 발생했다”며 “당사는 프로포션 오픈 후 1시간 내에 오류를 인지한 즉시 조치에 착수했다. 오류 없이 네고왕 프로모션 혜택을 받아 구입이 가능하다. 쿠폰 혜택을 받지 못한 고객에게는 차액 적립금으로 일괄 보상하거나 부분 취소해 드릴 예정”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업계에선 이미 발란이 소비자 신뢰를 크게 잃었다고 판단하고 있다. 모바일 빅데이터 플랫폼 모바일인덱스에 따르면 5월 첫째주(5월 2~8일) 발란 앱의 주간 순 이용자는 29만명으로 4월 말보다 20만명이 줄었다. 절반에 가까운 이용자가 발란 앱을 떠난 것이다.
VC 업계 관계자는 “발란이 이 논란으로 곤욕을 치르는 가운데 신규 투자 유치에도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알려졌다”면서 “현재 발란은 1000억원 규모의 시리즈 C 투자 유치를 진행 중인데, 네고왕 사태와 개인정보 유출 사고로 발란의 브랜드 이미지가 심각하게 훼손되면서 투자를 망설이는 FI(재무적 투자자)가 늘었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들 플랫폼의 주요 고객인 MZ세대가 ESG경영에 민감한 특징을 보인다는 점에서 이런 부정적인 이슈에 휘말리는 건 심각한 문제로 번질 수 있다. 기업의 상품을 살펴볼 때에도 기업의 진정성, 진실성, 도덕성을 구매 기준 중 하나로 여긴다. 기업이 불공정 또는 불평등한 행위를 할 때 이를 처단하는 불매 운동을 가장 적극적으로 벌이는 세대가 MZ이기도 하다.
◇ 가품 이슈로 톱 스타 광고 계약 고민, 해외 여행 소비자 이탈

한 스타트업 관계자는 “가품 이슈를 비롯한 각종 논란 때문에 최근 톱스타들이 광고 모델 계약을 심사숙고하고 있다는 소문이 파다하다”면서 “이들 플랫폼의 주요 수익원은 중계 수수료인데, 이용자가 감소하게 되면 더 이상 성장을 담보할 수 없게 된다”고 꼬집었다. 이 관계자는 “경영 관리에 잡음을 내지 않으려고 살얼음판을 걷는 심정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2019년 1월 출발한 업계 후발주자인 캐치패션은 아예 이들 3사의 구조적인 문제점을 제기하고 나서기도 했다. 캐치패션 운영사 스마일벤처스는 지난해 9월 머스트잇, 트렌비, 발란 3사의 저작권법위반, 정보통신망침해, 표시광고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 위반 등을 담은 고발장을 서울 강남경찰서에 제출했다.

이들 3사가 해외 유명 온라인 명품 플랫폼 매치스패션, 마이테레사, 파페치, 네타포르테, 육스에 게시된 사진과 상품 정보 등을 그대로 긁어와(크롤링) 무단 게재했다는 것.
이 판매 채널들은 스마일벤처스가 제휴를 맺고 있는 공식 파트너사이다. 캐치패션은 또 ‘머트발’ 3사가 판매자명, 판매자 정보는 물론 유통경로 등을 정확하게 기재하지 않고 모호하게 표시하면서 ‘100% 정품’이라는 홍보로 소비자 판단을 흐리게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캐치패션은 명품 공식 판매처만 모아 놓은 국내 유일의 플랫폼임을 내세우면서 3사와의 차별화를 강조하고 있다. 100% 정품만 유통되기에 가품 보상제를 실시하지 않는다는 게 이 회사의 설명이다. 캐치패션으로부터 고발당한 머·트·발 3사는 “사실무근의 일이며 후발주자의 도를 넘은 네거티브로 법적 대응을 하겠다”고 맞섰지만, 병행수입 제품을 판매하고 있는 이상 가품 유통을 100% 막을 수 없다는 점을 드러냈다는 건 뼈 아픈 일이었다.
가뜩이나 럭셔리 플랫폼을 향한 주변 환경이 우호적이지 않는 흐름을 보이고 있다. 특히 엔데믹 전환에 따라 해외여행이 가능해졌다는 점은 문제다. 이들 3사가 지난해 폭풍성장을 할 수 있었던 것도 코로나19 사태 장기화로 억눌린 소비심리가 고가 상품을 구매하는 ‘보복 소비’로 전환한 덕분이다.

이미 리셀 시장에선 샤넬·롤렉스를 비롯한 명품 중고 가격이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업계에선 거리두기 해제로 국내에서 어렵게 명품을 살 바에야 해외여행을 택하는 이들이 늘어났기 때문으로 보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최근 머·트·발이 여러 부정적인 이슈에 휘말리면서 이들의 지속가능한 성장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면서 “실제로 이들 플랫폼에서 가장 많이 판매된 품목은 수백만원을 호가하는 명품이 아니라 수십만원 안팎의 비교적 저렴한 제품이란 점에서 수익성을 큰 폭으로 늘리기도 쉽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