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패션 시장이 장기 침체와 트렌드 급변이라는 이중고를 겪으면서,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운영 효율을 극대화하려는 패션 기업들의 움직임이 분주하다. 과거 디자이너와 MD의 직관 및 경험에만 의존하던 상품 기획 방식에서 벗어나, 빅데이터와 인공지능(AI)을 활용해 적정 생산량을 예측하고 재고 리스크를 방지하려는 AX(인공지능 전환) 바람이 거세다.
패션 기업의 고질적인 문제인 ‘재고 관리’를 해결하기 위해 신기술 도입이 필연적이라고 보고 있다. 트렌드 주기가 짧아진 현 시장 환경에서 생산 시점과 판매 시점의 미스매치를 줄이는 것이 곧 생존 전략이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에는 외부 솔루션을 구매해 쓰던 방식에서 나아가, 기업 내부 사정에 맞춘 자체 시스템을 개발하는 흐름이 포착된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창립 50주년을 넘긴 전통 패션 대기업 세정그룹이 실무진 주도의 자체 AI 시스템을 선보이며 체질 개선에 나섰다. 세정은 올해 초 ‘AI를 통한 일하는 방식의 혁신’을 경영 화두로 제시한 이후, 현업 직원이 직접 참여해 개발한 ‘AI 기반 상품 의사결정 시스템’을 현장에 단계적으로 이식하고 있다. 외부 IT 업체에 의존하지 않고 사내 인력이 직접 현업의 문제점을 반영해 설계했다는 점에서 비용 절감과 실무 최적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는 평가다.
새로운 시스템은 총 3단계에 걸쳐 현장에 적용된다. 우선 이달부터 적용된 1단계 ‘상품 속성 자동 추출’ 기능은 의류 사진 속 색상이나 소재, 패턴을 AI가 자동으로 표준 데이터화해 단순 반복 업무를 대폭 줄였다. 오는 10월 도입되는 2단계 ‘유사상품 자동화’ 단계에서는 축적된 이미지 데이터를 기반으로 과거 유사 제품의 판매 실적과 소비자 구매 흐름을 역추적한다. 올해 말 완성을 목표로 둔 3단계 예측 모델까지 구축되면 상품 기획부터 최종 물량 운영에 이르는 전 과정이 데이터 중심으로 연결된다.
이번 세정의 시도가 전통 패션 기업의 디지털 낙후 이미지를 쇄신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현업을 가장 잘 아는 직원이 AI 개발 프로세스에 참여할 경우 시스템 안착률이 비약적으로 높아진다”라며 “생산 적정화를 통해 재고율을 대폭 낮춘다면 수익성 개선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진단했다.
세정그룹은 이번 시스템 구축 외에도 사내 ‘AI 마에스트로 과정’과 ‘AI 프론티어’ 커뮤니티 등을 통해 임직원의 디지털 역량을 끌어올리는 전사적 내재화 작업을 병행 중이다.
패션 시장의 양극화와 글로벌 SPA 브랜드의 공세 속에서 국내 토종 패션 기업들의 디지털 혁신은 향후 시장 주도권을 결정 지을 핵심 변수다. 철저한 데이터 분석을 바탕으로 트렌드에 기민하게 대응하는 기업만이 살아남는 구조로 재편되는 만큼, 전통 패션가 전반으로 자체 AI 생태계 구축 흐름이 확산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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